생각
너의 기타에서
*솔레아 풍의 노래를 들으면
내 영혼의 침묵이 들려
그것이 진짜 음악이지
진짜 음악
별들도 그 노래를 들을 수 있게
침묵한다는 그 음악
*호세 베르가민(José Bergamín, 스페인 작가)
*솔레아: 고독과 애수가 느껴지는 플라멩코 형식 중 하나.
마드리드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세비야로 향했다. ‘세비야의 이발사'와 ‘카르멘’이 펼치지는 도시로 출발. 고질병 멀미로 앞에 앉아 창밖을 보는 동안 친구는 버스 안에 가득한 잠 기운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슬슬 내 눈도 감길 무렵... 이게 웬일, 갑자기 내 손에 승객들의 운명이 쥐어졌다.. 졸음운전.. 방향이 휘청이는 순간 소름. 누구라도 깨어있길 바랬지만, 차 안은 조용했고 나는 계속 백미러로 아저씨를 주시했다. 결국 친구를 깨웠다. 그리고 아저씨의 졸음을 쫓고자 생뚱맞게 내리는 곳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단답형의 대화가 끝난 후, 친구와 나는 뜬 눈으로 세비야에 도착했다. 플라멩코의 도시 세비야에..
세비야 주의 한 도시, 레브리하(Lebrijas)가 나은 세계적인 플라멩코 피아니스트가 있다. 바로 다비드 페냐 도란테스(David Peña Dorantes)! 플라멩코계의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인 페드로 페냐 페르난데스(Pedro Peña Fernández), 형도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페드로 마리아 페냐(Pedro María Peña), 할머니는 플랑멩코 가수인 마리아 페르난데스 그라나도스(María Fernández Granados), 삼촌 역시 플라멩코 가수인 후안 페냐(Juan Peña)이다. 자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같은 길을 가고 있지 않을지...
플랑멩코(Flamenco)라는 말의 어원에는 여러 가설이 있는데,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는 집시를 플라멩코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불꽃(플라마 flama)’에서 왔다는 내용이 왠지 모르게 가장 와 닿는다. 너무 어울리지 않는가?
집시는 원래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일까? 이들은 본래 인도 펀자브 지방에서 대륙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해 왔는데, 14세기 즈음 유럽 전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특히 남부를 여행하다 보면 집시들의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도 남미 거리에서 돈을 요구하는 인디오 정도겠거니 생각을 했다가 큰 코를 다친 적이 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기를 안고 있던 집시 여성이 너무 당당하게 돈을 요구했다. 거절하며 자리를 피하자 계속 따라붙고 친구들까지 불러서 아주 곤란했었다. 그들은 경제적인 개념이 많지 않기 때문에 타인의 물건을 가져도 되고, 소매치기를 정당한 경제행위로 생각한다고 한다. 8세기, 스페인에서 이슬람교도를 몰아내려는 리콩키스타(국토회복) 운동이 벌어졌을 때, 이들도 여기에 참여했고, 이후 국가에서 가톨릭 개종을 강요당하면서 이들은 산으로 숨거나 아프리카로 추방되었다. 실제로 알람브라 궁전 건너편 언덕을 보면 경사진 동굴 속에서 사는 집시들이 아직도 보인다. 이후 프랑스인들은 체코 보헤미아 지방에 많이 사는 집시들을 보며 오늘날에는 온갖 문화 예술, 패션 영역에서 자주 듣는 말인 ‘보헤미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5년 이후, 부정적인 뉘앙스의 ‘집시’라는 말은 ‘로마(Roma: 집시어로 Rom(사람)의 복수형)’로 바뀌었다. 다시 플라멩코로 돌아가서...
바로 이렇게 이슬람의 흔적과 집시들의 삶의 애완, 특유의 감성들이 얽히면서 플라멩코라는 음악이 탄생했다. 노래+춤+기타가 만드는 이 음악을 생각하면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떠오른다. 우선 노래(깐떼, cante)를 들어보면 맑고 고운 소리가 아닌 탁성으로 판소리를 듣는 듯한 애끓는 감정이 느껴진다. 기타 소리 또한 보통의 익숙한 연주 기법과는 다르다. 라스게아도(Rasgueado)라는 주법인데 강렬한 터치가 가슴을 친다. 이 음악이 여운을 길게 남기는 이유는 정지의 순간과 갑작스러운 마무리 때문이기도 하다. 감정을 정리하지 않고 클라이맥스에서 바로 커튼을 닫아버리는 느낌. 이 플라멩코는 클래식 음악에도 많은 영향과 영감을 주었다. 18세기,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나 안토니오 솔레르(Antonio Soler)부터 20세기의 미하일 글린카(Mikhail Glinka), 드뷔시(Debussy), 라벨(Ravel), 알베니스(Isaac Albéniz) 등 수많은 음악가들이 이 장르로부터 영감을 얻었는데, 그중에서 단연 최고는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이다.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태어난 그가 그 영향을 받은 게 당연하겠지만.
아무튼 이런 모든 요소들을 음악을 피아노로 풀어낸 사람이 있으니, 바로 플라멩코 피아노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다비드 페냐 도란테스이다. 어린 시절 기타로 시작했지만, 마드리드왕립고등음악원(Real Conservatorio Superior de Música)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피아노와 같은 이례적인 악기로 플라멩코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재즈와 클래식을 비롯한 다른 장르를 더했다. 그리고 22살, 알카사르 궁전(Real Alcázar), 스페인 왕과 여왕이 있는 자리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 그 후 1998년 <오로브로이Orobroy>라는 명반을 내면서 대중들과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고, 4년 동안 월드 투어를 돌며 수많은 상을 받았다. 그는 플라멩코에 인상파 음악과 드뷔시의 메아리, 재즈의 터치, 그리고 뉴 에이지를 더한 멜로디 교향곡 같은 연주를 선보인다. 그 후에 다양한 음반을 내면서 전 세계 페스티벌과 극장을 다니며 수많은 공연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여러 미디어로 협업하며 플라멩코 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꼼꼼한 테크닉, 혁신적인 구성, 완벽한 실행을 자랑하는 도란테스는 이미 플라멩코 피아노 세계의 대명사이다. 오늘날 안달루시아 음악의 최고의 대사 중 한 명이다(Prensa Comunidad de Madrid)’
‘순수한 영혼의 음악을 만드는 도란테스는 아이의 섬세함, 솔직함 및 상상력을 가지고 있고 동시에 그의 아이디어에 모양과 구조적 일관성을 부여하는 데 필요한 성숙함도 있다(Manuel Moraga).’
‘도란테스는 뿌리에서 시작하여 원래 사운드의 시력을 잃지 않고 자유로운 처리를 통해 작곡가로서의 능력과 재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diario ABC).’
일본에서 오케스트라 협연도 했는데, 우리나라는 왜 아직인가... 개인적으로는 내한이 기대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이름에 늘 따라붙는 곡이 있으니 바로 , 25살에 녹음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로브로이Orobroy>이다. 당시 그가 학업을 마칠 무렵이었는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공연 예술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타고난 예술가는 그 운명을 거스를 수 없지만.. 무엇보다 곡 중간에 어린이 합창이 나오는데, 처음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정말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내공이 깃든 원숙한 가수들의 노래도 좋지만, 플라멩코의 피를 이어받은 이들의 순수한 목소리는 더 진한 감동이었고 집시 언어가 주는 신비로운 매력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오늘은 이 곡을 소개하지만, 관심이 생긴다며 교향악적인 콘셉트인 <Sur 남쪽>, <Sin Muros 벽들 없이>도 함께 들어보길 권한다.
생각(Orobroy)
Bus junelo a purí golí e men arate sos guillabela duquelando palal gres e berrochí
Prejenelo a Undebé sos bué men orchí callí ta andiar diñelo andoba suetí rujis pre alangarí.
지난 수세기의 공포를 기억하며 울고 노래하는 내 피의 옛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검게 탄 내 영혼을 향기롭게 하는 신을 느끼고,
이 세상에서 고통 대신 장미를 심는다.
*스페인어 번역본을 참고해서 내용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음.
[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