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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Jul 02. 2021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박했던 것들

라디오, 그리고 DJ유

매일 같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시간, 작은 두 귓구멍에 이어폰을 꽂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오프닝 시그널과 멘트를 가슴두근거리며 듣는다. 그렇게 나와 DJ유, 그리고 소리없이 함께 듣는 수(백)만인들의 음도시민들, 라천민들, 올댓청취자들과 함께 우리들만의 세계로 빠져든다.


그곳은.. 따뜻했고 신선했고 아닌척 세련됐으며 언빌리버블했고 종종.....아주그냥 난장판이었다.

난 거기서 박효신과 성시경이라는 이름모를 신인가수가 장차 인기가수가 될 것임을 혼자서 짐작했었고, 또 류이치사카모토를, 토미타 라-브를,펫메스니 그리고 ELO를 알았으며, 시부야케이를, 쌈바를, 땅고를 배웠다.

왜 안생기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안생기던 그때, 저주같은 ‘안생겨요-’를 그 입에서 내뱉을 때마다 뭐가그리 좋다고 낄낄거렸고,

라디오는 경마도 하고 요가도 할 수 있는 실로 불가능이 없는 보이지않는(그당시는) 매체구나. 배를 움켜잡고 감탄했었다.


뭔 눈물이 그리도 많은지, DJ를 떠날 때마다 그리도 눈물을 펑펑 흘리던 남자가 능글맞게 "나 돌아왔어요~"하며 빼꼼-히 멋진 목소리를 귀여운척하며 들려줄 때면, 아 다시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겠구나..당분간은 행복.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라디오가 있어서 밤을 기다렸고, 그 시간을 너무 사랑해 시간이 가는 게 아까워 붙잡고만 싶었던 그 시절, 나의 고딩시절부터 스무살이 훌쩍 가버릴 그 때까지. 내가 이 지구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와 함께 해주고 울고 웃게 해준 라디오. 그리고 DJ유.


그 시간들이, 그 때 라디오에서 듣던 수많은 노래들이, 그때의 소녀가 그리고 소녀같은 마음을 가졌던 이십대의 내가 오늘 문득 그리워진다.

그때는 알수도없었겠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 아름답고 세련되기만 해보이는 오스트리아 빈의 어느 오래된 멋진 (심지어 남편도 있는!) 집에 홀로 앉아, 소박했고 가진것 별거 없어도 워크맨과 낡은 이어폰만으로 세상 행복했던 그때가 어쩌면 더 좋았던것 같애...하고 생각하는 날이.. 온다. 가끔 살다보면.


그러고보면 꽤 한동안 이런 얘기를 하지 않고 살아왔다. 주변에 두고 지내는 사람들이, 내가 그 시절 깊은 밤 이렇게 보낸 시간들을 그들도 그렇게 보냈거나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인지, 사실 라디오와 그 시간보다 더욱, 나와 닮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인진 알 수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 새삼 깨닫는다. 뭐 그게 친구가 되는 것에 있어 너무너무 중요한건 아니다.

근데…내 친구들은 다 어디에 갔고 난 언제부터 무슨 생각을 갖고 사람을 사귀고 있는거지?


출처: 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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