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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May 05. 2021

친구와 연락 끊긴 3개월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몇안되는) 친구 중 한명과 3개월이 넘게 연락 한번 하지 않고 지낸다는 건 뭔가 문제가 있는게 맞을까? 이런 질문을 갸우뚱거리며 하고 있는 것부터가 일단 문제가 조금 있는 것일 수 있겠다.

고등학교 친구이니 20년이 넘은 이 친구와 나 사이에 약간의 미묘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고 생각하자 원인으로 여길만한 두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사건 #1

2019년 말, 라오스 생활에 잠시 무료함이 찾아올 즈음 이 친구에게 제발 놀러오라고 떼를 썼고, 월화수목금토일 매일매일 낮이고 밤이고 뭔가 계속 바쁜 이 친구도 쉼이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웬일로 비행기표를 끊고, 시간을 내어 라오스를 찾았다. 이런 계획과 코디네이션에 상당히 숙달된 나는 나름 근사한 계획과 물론 숙박을 제공하는 릴랙스 일정을 마련해두었다. 그렇다고 나도 같이 "여행자"와 같은 처지는 아닌지라 매끼 어디서 밥을 먹을지, 첫날은 여기갔다 이거하고, 둘째날은 저기갔다 요거.. 이러한 치밀하고 패키지 여행 끌고다니는 듯한 일정표를 생각해둔 건 아니었다. 그러니 그때그때 먹고싶은것 하고싶은 거, 그날의 컨디션과 느낌가는 대로~ 맞춰서 결정하면 될일이지. 생각했다.

헛.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에 직면한 나는 나도 모르게 다소 짜증이 섞인, 아름답지 못한 말투로 대화를 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 친구는 딱히 하고싶은 게 없는, 딱히 내세울 의견이 없는, 그래서 무언가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하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나: 점심 뭐 먹을까?

그녀: 뭐 아무거나. 너 먹고싶은거.

나: 난 아무거나 잘먹잖아 여기음식도 익숙하고. 근데 넌 비위도 약하고 은근 못 먹는거 많으니까 땡기는거 말해봐. 팟타이나 밥 종류 같은 현지식이나, 일식, 아님 피자 이런거 있고. 길거리 음식 싫으면 레스토랑 가야되니까...

그녀: 아무거나~ 난 다 괜찮아.

나: 괜찮긴! 너 냄새난다고 그러고 맛없다 그럴거면서. 응? 땡기는거 없어??

......

이런 딱히 생산성없는 대화가 거의 매끼 식사를 결정해야 할때마다 반복되다보니 나의 너그러움의 인내심이 자주 한계치에 다다랐고 말이 곱게 나가질 못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날 열받게 한 건, 결국은 어디든 결정해서 먹으러가면 반드시 뭔가 트집을 잡고 딱히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 이 친구의 (무의식적인) 말버릇이었다.

그녀: 으- 지저분해. 테이블 봐, 먼지가.... 한국이었으면 이건...

나: (표정 관리, 기분 관리) 동남아시아 다 그래... 테이블 번쩍거리도록 깔끔하게 해놓고 있으면 여기가 한국이죠.

(밥 나옴)

그녀: 음- 이건 못먹겠다. 좀 별로다.....역시 한국에서 먹는 밥이 제일 맛있지....


이런류의 내뱉는 말들은, 결국 그녀가 아무 결정을 안하시니 기껏 고민해서 데려온 나를 화나게, 기운빠지게 하는 것들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다니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길에서 뭔갈 보거나 무얼 먹을 때나 할때마다 한국과 비교하기 일쑤고, 한국의 우월성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난 애국자가 오셨는지 뭐든 한국이 최고, 저건 마치 한국으로 치면 뭐-, 한국의 뭐- 이런식으로 일주일 뒤면 다시 돌아갈 그 한국을 벗어나려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온 이곳에 가슴을 활짝 열고 궁금해하고 가까이 다가가보려 하지 않는 친구의 태도가 안타까우면서도 불편했다. 그러다보니 기분이 안좋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말이 곱게 나가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이 또 그녀에게는 기분나쁜 말투로 다가갔을 것이다.


한국에선 여기저기 같이 많이 다니면서 이런식으로 부딪혀보지 못했는데 이상하다 왜이럴까... 생각해보니 우리가 이 오랜시간을 알아오면서 해외에서 같이 여행을 하는게 난생 처음이었던 것이다! 나야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적지 않지만 이 친구가 날 보러 놀러온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친구에게 이번이 해외경험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같은 곳을 다녔던 출장과,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혼자 배낭여행이던 패키지 여행이던 자유롭게 해외를 자주 다니지 않았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낯섦과 결정장애가 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나의 challenges의 포인트는 Attitude였다.  

빈곤한 나라에 대한 생각과 마음가짐, 그 안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존중, 이 낯선 여행지에 와있는 자신의 모습과 이 시간에 대한 바램. 과 같은 "생각, 의견" 그리고 "마음"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 친구가 못된 마음을 갖고 있거나 이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동들을 반복적으로 하는 등의 멍청한 사람은 물론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많은 외국 친구들과 사귀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고 여길 수도 있는 이 친구에게 전혀 다른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자 조금은 한심하고(미안), 안타까운 모습이 여지없지 나타났고, 나 또한 이런 상황은 익숙치 않아 여러모로 힘들었던 그 때가 떠오른다.



사건 #2

그 후 한국으로 돌아간 친구와 예전과 다르지 않는 관계로 돌아갔다. 그 친구는 라오스의 야시장을 그리워 하는 메시지를 보내기도하고 난 가끔 그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내주곤했다.

그러고 잠시 한국에 돌아가 만났을 때 이 친구는 남편과 점점 심각하게 안좋아지고 있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난 예전과 크게 다를바 없는 남편에 대한, 그녀의 부부관계에 대한 의견을 (전적으로 내 친구 편에 서서)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 난 예전부터 그들의 관계나 그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 친구에게서들은 온갖 얘기들과 남자/사람보는 내 감각, 주변인들의 경험을 근거로), 진심어린 의견을 진지하게 말하곤했다. 하소연하는데 의미가 있고 딱히 뭔가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이 친구가 이번에는 정말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더이상 무언가 노력하고 잘해보려고 할 마음이, 남편에 대한 마음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문제에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되도록 냉철한 판단을 마냥 미루지 않고 추진하는 스타일의 나는, 비슷한 접근법으로 이번에도 (전적으로 내 친구 편에 서서) 진심으로, 실행가능하고 생산적이라 생각되는 코칭을 내 나름 전달했다. 비엔나에 와서도 몇차례 긴 전화통화를 하며 결국 이혼을 앞두게 된 상황, 이혼이 쉽지 않게 진행되는 상황 등등을 하소연하며 말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여주고 상처를 만져주려고 노력하며 실제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순간부터 이혼 얘기도,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얘기도 아무런 업데이트도 없이 친구가 조용해졌다. 인사치레의 "Happy new year", 생일축하해, 결혼축하해. 이걸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이상 대화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되어가고있는지 물어보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어쨌든 나는 이혼이 그녀 삶에 훨씬 나은 행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그 친구의 이혼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관심과 마음을 쏟은 건데, 이런 내 얘기가 이젠 더이상 듣기 싫어졌을까. 차라리 남편과 관계가 드라마같이 갑자기 회복되어 잘 지내고 있다면 좋으련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본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걸까? 마침 느즈막히 결혼을 막 한 나와 훨씬 앞서 결혼한 그녀가 앞두고 있는 이혼의 대조관계가 그녀에게 불편한걸까?

아님 사건 #1 이후로 내가 진저리치게 싫어진걸까??


그냥 먼저 연락하면 되는거지. 라는 당연한 생각도 물론 했지만, 이런 여러가지 떠로는 생각들 중의 하나 혹은 그보다 더 안좋은 이유가 있다면 결국 원인은 내가 그녀에게 불편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일테고, 그녀가 처했던 상황이 어떤식으로든 결론이 지어져 마음이 보다 편안해지면 나에게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저 부디 잘 지내고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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