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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Feb 23. 2021

(맘에 들진 않지만) 코로나, 너와 나의 2020 #1

2020 코로나 결산

COVID-19이 우리 삶에 발을 디딘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난 라오스-한국-오스트리아 3국을 거쳐 지내왔다. 때마다 COVID 진행 상황과 심각도는 달랐고, 내가 살고있던 국가마다 그때그때 감염자 수와 전파의 확산도, 경보단계 등이 달랐다. 그만큼 이 바이러스와 감염병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도 굉장히 상이했고,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훼방꾼 역할을 하고 있음 느낄때도, 감지하지 못할때도 있었고, 그래서 이 못된 녀석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내 적응도도 계속해서 변해갔다.

2020을 보내며, "COVID와 나" 그 시간들을 한번 되짚어 볼까.


Part #1. 라오스

2월. pandemic이란 것이 가까이오고있었을 줄이야.

중국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라오스 북부에 거주하고 있는 많은 중국인들, 새해맞이 여행을 다니고 있는 중국 관광객들에 대한 경계심+두려움이 한켠에 자리잡아가기 시작하며, 방문 중인 Flo와 조심스레 여행을 다님. 방비엥에서 딱 하루 마음먹고 한 cave tubing을 하필 중국인 2명과 같은 그룹에 묶여 하게됐고, 뭔가 찜찜한 기분에 사로잡힘, 그날 이후 Flo는 조금이라도 열이나고 속이 안좋아지면 그 중국인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서 코로나 감염이 됐던게 분명하다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함. 


3월-5월. 라오스 lockdown.

겉잡을 수 없는 감염 확산- pandemic, 매일매일 바뀌는 fact 그리고 가이드라인. 

주변의 봉사단으로 파견된 친구들의 갑작스런 귀국. 피난가듯 짐을 싸고 전쟁터에서 탈출하듯 그렇게 영화같이 마주한 이별. 인간에게 패닉이란 감정이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하면 제정신을 갖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보게된 경험.

라오스 정부의 카오스는 안봐도 비디오고, 그건 내가 속한 기관의 라오스사무소도 마찬가지였다. 엄연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이 팬대믹 상황에서의 원조 계획과 활동을 우리끼리 절대로.할 수 없다는 현실은 끝나지않을 것 같은 논의와 의사결정과 추진의 한없는 지연을.. 몸이 꽁꽁묶인 락다운=재택근무 속에서 발만 동동 구르게 하는 답답함을 경험케했다. COVID-19의 진정한 시작이었다.

갑작스레 닥친 상황의 락다운에 차차 익숙해지고 어느정도의 포기와 단념을 통해 오히려 평정심을 되찾아가며, 어쩌면 어느정도 단절과 고립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마실 물과 먹거리 구매를 위한 주1회 장보기도 딱 괜찮음) 나름의 만족과 평화의 negotiation에 다다름. 때마침 Easter holiday는 년초에 계획한 쿠알라룸푸르 여행이 강제취소된 불행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평안함과 감격의 부활절을 맞이함.

발코니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비타민 섭취에 좀더 집착하게 됐다

6월-7월. 우리 코로나 끝난거야??

락다운과 함께 막혀버린 국경은 오로지 특별히 허락된 특정 그룹의 사람들에게만 오랜시간과 노력과 인내심과 맞바꾼 입국허가를 내준채 지금까지도 꽁꽁 묶여있음. 감염자 수십명만 생겼다간(물론 공식적인 정부 발표에 따른 확진자 수)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의 능력치를 벗어나게 될 것이기에, 외부 유입을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은 너무나 이해됨. 그러니 한국발 전세기를 타고 들어온 누군가가 확진판정을 받는 즉시 전세기 일정 모두 취소! 재개 일정 미정!! 특별비자 발급 중단!!! 뭐 이런 불확실성의 상황으로 다시 접어들고, 입출국 계획이 있는 누군가는 또 발만 동동구르며 이제나 저제나만 기다리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하지만, 라오스를 떠나거나 입국할 계획을 꿈도꾸지 않고 그냥 여기서 일상생활을 한다면, 어느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우리 코로나 끝난거야?? 시장의 상인들은 어느순간 스르륵 빗장을 풀듯 마스크를 벗은채 손님을 맞이하고, 마스크 착용없이 출입을 금지하는 가게들도 차츰 사라져간다. 그저 개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마스크 쓰기를 결정할뿐. 하루에도 몇천명 심지어 만여명씩 신규 확진이 나오는 미국과 유럽의 상황을 멀뚱멀뚱 지켜볼 뿐.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겨울에 시작된 이 바이러스의 공포가 봄을 맞고 뜨거운 여름이 바이러스를 모조리 죽여주기를 기대하던 시간을 지나, 가을을 향해가며 불운한 예감을 조심스레 꺼내놓는 시간의 흐름과도 관계없는 우리는 늘 언제나처럼 어제도 오늘도 그냥 여름이었다. 해가 쨍쨍하고, 올해 우기는 비가 많이 오네- 근데도 덥네-, 딱히 계절을 세고 앉아있을 일이 없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어쩌면 겁나 감사하구나 생각하면서도, 근데 진짜 우린 안전한 건가. 머리를 긁적거리게 하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오랜만에 피자나 먹으러 가자. 이런 삶이었다.

10인 이상 모임 + 손에 손잡고 저런 짓을 5월에 하고 있다뉘. 에잇 모르겠다. 피자나 먹으러 가자-

코로나로 인해 바뀐 커다란 그리고 중요한 변화의 시작은 내 계약의 연장이었다. 7월말까지 한국에 귀국하고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던 (이미 한차례 연장했던) 계약은 코로나로 인해 나의 귀국일정과 후임자의 파견 일정이 불투명+약간 불가능해지면서 재논의의 과정이 요구되었다. 나라도 여기 붙잡아놓고 중요한 시기에 공백이 발생하지 않게 하고싶은 그네들의 목적과. 어차피 한국 귀국도 비엔나 출국 계획도 모두 reset될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평화로운 청정국 라오스에서 몇달 더 일하고(재택근무 따위 없다! 현장 출장과 보고서 작성, 온라인 인수인계 열일함!) 월급받는(이런 상황에서 나같은 월급쟁이가 얼마나 안전하고 감사한 직종인가!) 옵션은 딱히 나쁠 것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Flo를 겁나 설득시키고, 나 또한 우리의 재회가 한없이 미뤄지는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난 현실에 대한 직시가 빠른 편이며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결정하고 원안에 대한 미련따위는 잊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데 나름의 훈련이 잘 되어 있다. 그래서, 그렇다. 9월쯤에는 한국-라오스간 전세기도 재운항되고, 귀국 후 자가격리는 피할 수 없을지라도 며칠정도 삼실 출근도 가능해지는 단계가 찾아오기를 근거없이 바라며 연장 계약서에 사인을 했더랬다.


8월. 관광객이 득실대던 그때가 간절하다! + 나 한국 갈 수 있는거야?

어쨌든 난 9월로 라오스와는 bye bye, 한국을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막판 벼락치기 여행을 계획하며 그간 가려고 저장해둔 몇몇 곳으로의 getaway를 설레이며 그려봤으나, 제기랄. 관광객이 뚝 끊긴 여행지는 잠정 out of business를 선언하거나 최소한의 인원으로 구성된 그룹 방문/투어가 아니고서야 예약을 받지 않는  실정이었다. 8월은 외국 관광객에게나 peak시즌이지, 라오스는 한창 우기 중인,, out of season으로 국내 관광도 별로 없을 때라는 것. 흐- 돈과 시간을 기꺼이 쓸 마음의 준비를 다하였으나, 날 기꺼이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더라는 이 현실은, 다 코로나 네 탓이다!!

루앙프라방의 텅빈 거리에서. 

9월말 추석 연휴를 자가격리하며 혼자 보내지 않으려면, 최소한 이때까지는 한국에 도착해야하는 날짜가있었다. 하지만 라오스의 꽁꽁 막힌 국경은 8월 말이 돼도 빈틈을 허락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조금씩 염려스러운 상황이 되어가니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UN기관으로서 국경 봉쇄와 관계없이 특별 허가를 받고 운항되고 있는 WFP(World Food Program) charter 전세기를 타고 비엔티안-쿠알라룸프 이동. 여기서 KAL 일반여객기로 인천까지. 이마저도 출발 2일전 최종 운항 승인이 나오니 이틀전까지 항공권도 못받아본상태에서 '나 뱅기 타는거 맞...지?' 자문하며 짐정리를 하고 있었더랬다. 

공항으로 see off 해주러 와준 사람들과 내내 마스크를 쓴 채 작별 인사를 나누고. 제한된 탑승 인원으로 예약된 기내 안에는 그야말로 PPE의 휘양찬란함의 끝판을 보여주듯 각자 준비한 다양한 아이템들을 선보인 사람들과, 반면 마스크 조차도 제대로 쓰지 않으려하는 (멍청한) 몇몇 인간들이 한대 뒤섞여 그렇게 라오스를 탈출했다. 1년반의 짧았던 나의 또다른 집이 되어 준 그곳과 어색한 안녕을 하고.

출국 전날 목숨을 걸만큼 터프했던 말도 안되는 등산 후, 정말 예상치 못한 비아레띠 에스프레소 산위에서 우아하게 즐겼다. 2020년 최고의 커피 한잔으로 기억하기로 함.


2020 상반기 결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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