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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Sep 15. 2021

머리칼과 살갗을 스치고 지나간 그 밤 공기

India



어느 동네였더라. 이젠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 시간들이 더이상 내게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야.

혼자하는 여행에서 너를 만나 함께 다니기로 결정을 했고, 그렇게 우리가 만난 Goa를 떠나 처음 이동한 곳이었던 것만은 확실해. 

어둑해진 밤, 난 어쩐 일로 혼자 밖에 나와있었는지 (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가게에서인가 어떤 나이가 다소 지긋해보이는, 어쩐지모르게 편안한 느낌을 준 미국 아저씨를 만나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리고 바닷가의 여름밤 공기에 취했는지, 오늘 막 도착한 내게 동네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라이드를 제안한 그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선뜻 앉았다. 처음 만난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겁없이 올라탔지만 그 아저씨의 허리를 안고 라이딩을 하는 건 왠지 머뭇거렸던 내 어색해하는 팔을 잡아 아저씨는 자기 허리춤으로 당겼어. 빨리 달리지 않을 거지만 여기를 꽉 잡고 있는게 안전하다 그랬었던가...

낮 동안의 열기와 습기를 머금고 있을 법도 한 밤 공기는 오토바이 위로 불어오는 바람에 뒤섞여 기분좋게 내 머리칼과 눅눅해진 살갗을 스쳐지나갔다.


'인도는 처음왔니?'

'응. 근데 혼자 인도 여행한다니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어. 생각해보니 자기들은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인도는 여자 혼자 여행해도 괜찮아. 근데 너 혼자서 여행해선 안되는 곳이 있다면 라틴아메리카야'

'그래? 나 남미에 정말 가보고 싶은데. 거기 가려면 남자친구 만들어야겠네 그럼...'


그리 특별할 것 없었던 동네는 해가 지고 깜깜해지자 고요-해진 채 바닷물의 출렁이는 소리와 동네 사람들의 사소한 대화들이 들리고, 이따금씩 켜져있는 가게나 집안에 켜진 불빛의 도움으로 주변 풍경들이 희미-하게 새로운 형상으로 보였다. 여전히 별것 아닌 거리의 풍경과 나무들이 천천히 달리는 오토바이 뒷자리에선 뭔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보여졌어. 잠시 대화가 끊어진 정적도 눈치채지 못할 즈음, 아저씨의 왼손이 살며시 내려와 맞닿는 내 왼쪽 다리를 지그시 스치며 어루만졌다. 예상하지 못한 스킨십에 잠시 놀란 내 다리가 나도 모르게 움찔했고 그런 나를 안심시키고 싶었던걸까 아주 살며시 다시 내 다리를 토닥토닥거렸어.


잠깐 동안 이 아저씨가 멀리 으슥한 곳으로 가서 나한테 나쁜짓할 마음이면 어떡하지? 하고 겁이 났었던 것도 같아. 근데 내 맨살에 느껴진 그 손길이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은 아닌 것 같았던 그때의 감각, 그리고 그 촉감이 전해진 신경계가 말하고 있던 신호는 뭔지 모르게 이내 나를 안심시켰어.

그리고 우리는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와 굿나잇 인사를 하고 헤어졌고, 그밤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어. 


겁이 조금 덜 났었다면 돌아와서 헤어지기 전에 '내 다리를 토닥토닥한거 무슨 의미였는지 물어봐도돼?' 라고 물었을 것 같애. 지금 생각해도 가끔 궁금하거든. 아저씨도 그때 그 밤 공기가 주는 황홀함에 젖었있었 던건지, 그 순간을 함께 통과하고 있던 누군가와 잠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외로웠던 마음이 위로받고 있었던건지...


근데 내가 이 얘기 너한테 했었던가.?


                                                                                                                               May 2008, @In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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