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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Feb 23. 2021

이 와중에 결혼을 하겠다고...

코로나 락다운 vs 결혼 준비

고르고 고른 마음에 쏙 드는 웨딩드레스, 이를 더욱 우아하게 돋보여줄 면사포, 내 취향 흠씬 묻어나는 청첩장, 성대한 웨딩파티. 이런건 굳이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결혼식이란 것에 대해 사실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어떤 웨딩을 하고싶었다는 그림도 사실 구체적으로 없었다. 사회가 만들어놓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굳이 우리 스스로 매일 필요성이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이 유러피안 모던 보이를 파트너로 두었기에, 이번 생엔 웨딩파티는 글렀다고 이미 마음을 내려놓고 살았기도 했겠다.


그런 우리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왜냐면 우리는 서로를 많이 사랑하니까. 으하하- 

EU국가가 아닌 제3국에서 온 나를 본인 곁에 오래오래 두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합법적'인 방법으로 현재 시도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혼인관계가 되는 것임을 그가 인정했다. 사실 난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ㅋ, 그렇다고 또 이렇게 급하게 결혼을 할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쉥겐조약에 따라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90일이 가기 전 내 체류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확실히 찾아내야했고, 그게 정말로 결혼한 배우자와 동거하기 위해 여기 거주해야한다는 논리 외에는 현재 내 상황에서 이렇다하게 신청할 수 있는 적합한 비자가 오스트리아에는 없다. 그리하야, 약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긴 대화 끝에 결혼이란 것에 얽매어 보기로 했다.

결혼 결정 후 곧장 시작된 매우 안로맨틱 서류 준비 & beurocracy는 지난 포스팅에서 숨가쁘게 이야기했기에- 그다음 nightmare로 넘어가자면.


'그런데 우리 지금 락다운인데(=식료품, 약국 제외한 모든 가게 문닫음), 결혼 반지 어디서 사?'

최소한 결혼반지는 있어야 한다. 이 생각을 혼인신고 신청 서류를 내고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하게됐다.

그렇게 시작된 온라인 반지 쇼핑 @.@

종이 반지를 사이즈별로 만들어 수십번을 끼웠다 빼봤다 해봤자! 저건 진짜 반지가    아니기에 절대로 내 사이즈를 확신할 수 없다!

난 반지를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나의 반지 쇼핑은 주로 플리마켓과 아티스틱한 것들 모아놓고 이벤트하는 뭐 그런 곳에서, 앞에 놓여진 반지들을 쭉- 하나씩 껴보면서 내 손에 맞는 녀석들을 데려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내 손가락들의 사이즈, 더더욱 결혼반지 손가락 사이즈를 제대로 알고 있을리가 없고, 게다가 유럽의 반지 사이즈는 또 다르다는 것. 락다운으로 문 열린 가게가 없으니 실제 반지를 끼워보면서 내 사이즈를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리하여 온라인 샵에서 알려주는 대로 종이반지를 만들어 내 왼쪽 약지의 둘레를 재기 시작했더랬다.....

이건 생각보다 너무 스트레스였고, 우리의 혼인신고일이 대략 1월 중순 즈음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반지 주문과 engraving까지 생각하면 서둘러 주문을 해야만 혼인신고에서 서로에게 반지를 끼워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넘들은 몇날 며칠-몇주-몇달씩 앞서 수십가지 반지를 수백번씩 껴보기를 하는데, 난 하루이틀만에 태어나 처음으로 결혼반지 탐색을 시작해 주문까지 마쳐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병이 안나고 그나마. 그 와중에서 '갖고싶다'는 반지를 찾아낸 게 다행.


초심플 미니멀리즘 스타일을 원하는 Flo에게 끼워줄 반지는 약 하루만에 서칭과 주문, 독일집으로 발송이 완료되었으나, 문제는 내 반지.

'난 큰 욕심없어...'로 시작된 탐색은 여러가지 정보의 수집과정을 거쳐 조금씩 변해갔고 웨딩드레스며 파티며, 내 친구와 가족 한명 없이 하게되는 결혼이라면 최소한 반지에는 공을 좀 들여도 되는거 아닌가.+ 언니의 조언을 받아 스스로 타협점을 찾으며 이름값있는 반지들을 탐색하기에 이르렀다. 

약 하루반나절 가량 인텐시브한 서칭과 남의 손에 끼워진 반지 사진들을 보며 내 손에 끼워진 모습을 상상하면서 우선순위를 골라대기를 반복. 재고, 주문가능 현황 등을 파악한 끝에, 결혼하는 그날에 내 손에 내가 원하는 반지가 끼워질 수는 없겠다는 현실적인 체념을 강요당하듯,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1)정확한 사이즈 모름. 2)인터넷 주문-택배발송만 가능함. 3)사이즈 교환이 필요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engraving을 바로 할 수 없고, 주문-수령 후 사이즈가 맞으면 다시 돌려보내 engraving 을 받아야 함 = 내 타이트 한 일정상, 또한 귀중품에 속하는 반지를 이렇게 여러번 왔다리갔다리 택배 발송 정서 상, 말이 안됨. 4)내가 원하는 반지가 오스트리아에는 현재 재고가 없댜-....그리고 이 문제로부터 파생된 넘나 복잡하고 구구절절한 사연은 노코멘트하겠음. Anyway,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내 톨러런스가 더이상은 안된다고 고함치며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했고, 눈물로라도 해소가 필요했다. (그날밤 엉엉 울었더랬다)



독일 또는 오스트리아에서 결혼하기, 혼인신고는 검색만 하면 준비서류부터 과정까지 매우 상세히 필요한 정보들을 잘 정리해두신 포스팅들이 많기 때문에 나는 그저 잠시, 나의 혼인신고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만 설명해보고자 한다.


- Flo는 오스트리아에 사는 독일사람.

- 우리가 사는 빈에서 혼인신고를 하려했으나, 현재 코로나의 여파로 (멍청한) 빈의 공무 시스템은 거의 마비가 된 상태임. (예상컨데) 사망신고처리 하기에도 바쁜 해당관청에서 답변하기로, 현재 예약 가능한 혼인신고는 대략 2월 이후이며 사실상 당분간 빈에서 혼인신고는 불가한 것으로 판단.

- 혼인관계증명서류를 가지고 기한 내 나의 체류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시급했기에, 우리는 서둘러 결혼을 해야했다. 따라서 Flo의 독일 주소지의 관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기로 결정. 럭키하게도 아버지와 가까운 관계인 담당 관청 직원의 적극적인 협조로 kind of fast track 수준의 신속한 진행이 그나마 이루어지고 있음(현재진행형)

- 혼인신고에 필요한 Flo와 나의 서류를 모두 준비하여 부모님께 성탄절 연휴 직전 등기발송. 연휴 후 12/29일 오전 아버지께서 바로 받으셨으나 웬 연말 연휴를 독일답지 않게 그 지역 관청들은 그리 오래도 쉬는지 1/5일에서야 혼인신고 신청서류를 제출 할 수 있게 됨.

- Flo의 독일 집은 바바리아(독일말로 Bayern,바이얀)주에 속하고, 주도인 뮌헨에 있는 고등법원에서, 간단히 말하면 외국인인 나의 신상에 이상이 없음을(=법적으로 혼인하는데 문제없음) 승인해주셔야만 결혼을 할 수있는 거지같은.....

즉, 우리 지역 관청 직원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서류들을 검토하여 이상이 없다 판단되면, 뮌헨 고등법원으로 문서들을 "우편발송"하여, 최종결정권자의 검토 후 승인을 거쳐, 해당 문서가 다시 지역관청으로 재"우편발송"되면, 우리의 혼인신고를 주재할 해당 공무원의 일정, 장소 등등을 따져 가까운 일정이 잡힘.

*Flo의 결혼한 동생과 통화하다 발견한 사실은, 이 모든 거지같은 서류준비와 여기저기 왔다갔다 승인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단지 내가 EU시민이 아닌 "제3국"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혼인신고에 필요한 여러 문서 중 독일/EU에서 규정한 형식의 문서와 완벽하게 동일한 이름과 내용의 것이 당연히 한국에는 없을 수 밖에는 이 예외상황에 대해 고등법원에서 그들이 요구하는 문서를 갖고 있지 않은 이 사람이 법적으로 하자가 없는지, 혼인을 허가해줘도 되는지 살펴보고 최종 승인을 해주는 것이다. shit

-그렇다면, 왜 내가 원하는 날에 관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할 수 없느냐.

: 결혼은 그 자체로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자 두사람의 확신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중대한 결정이며, 또한 이 두 사람 각자의 (혼인전) 상태가 법적으로 문제삼을 일이 없는지, 즉 혼인을 할 수 있는 적법한 상태인지 확실한 확인이 거듭거듭 필요한 문제이다(라고 여긴다, 물론 it is true). 따라서 해당 혼인신고를 처리하는 관청에서 그저 접수된 문서를 paper work로 처리하여 승인해주는 방식이 아닌, 관청 공무원이 두사람을 직접 면담하여 확인이 필요한 중요한 질문들을 다시(이미 신청서에 해당질문에 대한 답을 하게 되어있음)함으로써 verbal 인터뷰를 통한 최종 확인을 한다. 그 후 한국의 결혼식의 약식과 같은 형태로 담당 공무원의 주례사 비슷한 좋은 말씀을 듣고, 신랑신부가 서약 후 반지를 끼워주고 키스키스-. 두사람의 결혼이 확실한 것임을 보증하는 증인들의 사인과, 신랑신부의 혼인계약서 사인이 완료되면 이 모든 골칫덩어리 혼인신고가 마무리되고, 마침내! 결혼관계증명서를 획득하게 됨!!!!Huuurrayyy-----

- back to the point, 어제 우리의 혼인신고 신청서가 관청에 접수되어 담당공무원의 속사포 리뷰를 마치고 뮌헨에 "우편발송"이 되었다. 상위 관청의 서류 검토와 승인에 소요되는 시간은 최소 2주에서 한두달까지 주마다, 그때그때마다 가지각색으로 다르단다; 우리도 10일에서 3주까지로 인폼을 받았고 다음주 중에 follow up을 해봐야 대략적인 일정 파악이 되리라 봄.


1월5일, 독일 정부는 현재의 방역 조치를 더욱 강화한 추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즉 결혼 날짜가 잡힐 1월 말에도 이 강화된 조치가 유지될 것이며, 안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개고생하고 있는데, 이번엔 quarantine에, 여행 제재까지 더해졌단 말이다, damn it!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형제의 나라(?)이기 때문에 강력한 여행 중지나 무조건적인 2주 자가격리 이런 규제가 생길 일은 없지만, 여행 제재 조치가 발생하는 한 기차 운행 횟수가 줄어들거나, 여행객들을 까다롭게 컨트롤하는 귀찮은 일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게다가 독일 내 60km 이동 거리 내에서만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450km가 넘는 거리에 있는, 내가 석사공부를 했던 도시 Freiburg에 사는 친구도 증인 참석을 위해 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약식의 혼인신고 세리모니이긴 하지만 엄연히 공식적인 결혼인데, 내 가족도 절친들도 함께 하지 못하는 살짝 눈물나는 상황도 그냥 질끈 눈 감고 넘겼다 치자. 하다하다 못해 이젠 내 결혼의 증인이 되어 줄 같은 땅에 있는 친구 한명 조차도 부르지 못하게 됐으니, 진짜 열 받을만 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나 진짜 코로나 너무 싫어해도 되는거 맞는거지?

정작 별로 신경쓰지 않는 Flo는 엄마아빠 동생 가족, 남동생 가족 전체!가 함께 참석하는 매우 가족적인 결혼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또 지네 동네에서 혼인신고를 하니 그중 가장 친한 친구 한명 -  이동도, 숙박 걱정도 할필요 없는 -에게 증인 부탁하는 건 일도 아닌, 뭐 약간 혼자서만 디게 축복받는 결혼식하게 되는 듯한 질투심이 날 지경이다.


유럽 국가들도 백신 사전확보와 공급망 확보 등에 크게 다르지 않은 삽질을 하고 있으니, 코로나 확진자 수는 크게 줄어들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 강력한 조치를 발효할 수 밖에 없을테다. 현재 오스트리아 락다운도 18일까지인데, 1-2주일 잠깐 숨통 틔워줬다가 또 다시 3주 락다운 재개하겠지 뭐. 그럼 보나마나(지금까지 경험한 우리의 재수없음으로 봤을 때), 그 즈음 우리가 독일에서 '일 치르고' 빈 으로 복귀할 즈음 락다운이 다시 시작되어, 또 새로운 빡침을 또 마주하며 하루하루 고된 인격수양의 과정을 거치듯 정신줄 붙잡고 투쟁하듯 그렇게 이 겨울을 보내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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