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네가 아니라 나였어
2018년 12월 14일, 인천공항에서 영국 런던 히드로로 떠나는 아시아나의 OZ521편 이코노미 G열을 존을 담당했던 스튜어디스는 어쩌면 내가 기억에 남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가끔 생각한다. 비행기에 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깨나 신난 얼굴로 자리를 찾아 덥썩 앉더니 이윽고 안정세를 찾은 기내에서 나눠주던 국적기의 장점이기도 한 쌈밥을 열심히 싸먹고는, 소등이 던진 어둠 속에서 갑자기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던 한 손님. 어떻게든 울음을 참아 보겠다며 크기도 큰 노트북을 꺼내어 모 아이돌의 얼굴을 열심히 그리던 손님,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끄윽끄윽 울고있던 그 손님.
낮 두시 반에 출발한 비행기에서 내가 울기 시작한 시간은 대충 저녁 일곱 시가 되어 가던 때였다. 나는 그때 영국으로의 워킹홀리데이 길에 오르고 있었다. 울음의 이유는 한 마디조차 제대로 뱉지 못했던 영어나 행선지에 대한 무지가 주는 두려움이나 막막함이 아니었다. 저녁 일곱 시는 평소라면 일을 끝내고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를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든 건 여덟 시가 지날 무렵이었고 꺼이꺼이 떨어지던 눈물이 이내 설움이 된 건 집에 도착할 즈음인 밤 아홉 시였다. 울음의 이유는 올 시간이 됐음에도 오지 않는 나를 궁금해하며 기다릴 우리 집 검은 개, 김밥이었다.
그로부터 일년 반이 지나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비닐장갑을 낀 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집안 가장 깊은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 저 멀찍이 김밥을 다시 만났을 때에 김밥은 나를 낯설어했다. 그러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김밥은 나의 품으로 와서 떠나지를 않았다. 자가격리를 위해 떼어놓으려 할 때면 방문을 사정 없이 긁고 우는 소리였다. 자가격리 삼일 차에 김밥은 가족과의 격리를 택하고 나에게 왔다.
원래부터 혼자가 될 때면 쓰레기통을 다 뒤엎어 놓는 성미였던 김밥이 그 이후부터 분리불안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그게 심통이 아니라 불안이라고 생각했다. 잘 때가 되면 꼬옥 내 겨드랑이 사이에서 팔을 배고 자는 김밥은 나에게서 분리불안이 있다고.
그리고 다시 독립을 준비하는 나에게 그런 김밥의 존재는 하염없는 아픔이고 눈물이었다. 벗어날 수 없는 부동산의 악재 속에서 발품을 팔다 팔다 밑창이 다 닳았을 즈음에 기적처럼 찾은 집에 가계약을 하고 온 날부터 나는 줄곧 김밥 생각에 울었다. 박한 상황에서 오던 구집난이 해결된 기쁜 시점에도 나는 기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집들에게서 거절 당하며 내 몸 뉘일 곳이 이토록 없는 것일까 맘을 곯던 시절들은 사실 내가 김밥과 함께 지낼 수 있는 합리적인 핑계가 있었던 시절인 것이다.
비록 김밥이 잘 때에는 꼭 내 곁에 오고, 유일하게 오빠(이미 오래 전에 독립한)와 나의 무릎에만 올라와 앉지만 김밥은 이 집의 모든 구성원을 제법 좋아한다. 이 집의 모든 구성원들은 김밥을 사랑했다. 그러니 독립이라는 글자에 따라오는 수많은 준비내역에 김밥은 없었다. 야근이란 글자의 사용마저 굳이 싶은 직종에 있는 혼자라이프에 애꿎은 개를 끼어 넣을 수는 없었다. 좁다란 방에 이 친근하고도 활발한 개를 줄곧 혼자 둘 수 없다. 그러자 내게 찾아온 것이 온종일 서글픔과 미안함 뿐인 나날들이었다. 김밥의 얼굴만 보고도 자꾸만 눈시울이 시큰했다. 함께 개를 오래 키운 친구가 말했다. 분리불안은 김밥이 아니라 너에게서 있는 것이라고.
잘 때가 되면 타닥타닥 방으로 향해 오는 발소리, 무겁게 팔을 누르는 무게감과 스물스물 풍기는 고수한 냄새 그리고 이따금 들리는 새액새액 숨소리, 사람의 아이와는 또 다른 그 소리와 온도. 어쩌면 인간의 아이는 평생 줄 수 없을 어떤 다른 마음저림.
개에게는 인간만큼의 깊은 사고능력이 없어 눈앞에 있으면 기뻐하고 없으면 슬퍼하더라도 그것에 서운해할 수 없다고는 한다. 하지만 개에게의 분리불안이 생겨버린 나는 어쩌면 그래도 개가 느낄 서운함을 짐작하며 이를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과 옆에 있지 않아 슬퍼함에 미안함만이 또 늘어 오늘도 개를 꼭 끌어 안고 너른 등을 토닥이며 고순 내를 맡으며 밤을 보냈다. 그러면서 나의 분리불안은 고쳐지지 못한 채 더욱 심해져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