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 아이스너(Will Eisner)
아이스너 상(Eisner Awards)은 미국 만화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 하나로 만화가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그럼 에두르지 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윌 아이스너는 미국 만화사에 어떠한 업적을 남겼을까? 모험 만화의 황금시대에 데뷔한 아이스너는 30년대 잭 커비와 밥 케인을 거느린 만화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40년대에는 새로운 만화 미학을 제시한 <The Spirit>을 발표한다. 또한 50년대는 ‘American Visuals Corporation’을 설립해 공공기관에 교육 만화를 제공하였으며 무엇보다 78년 <A Contract with God>의 작업을 통해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킨다. 이처럼 윌 아이스너의 주요 지점 그러니까 40~50년대 코믹스(Comics), 50~70년대 교육 만화, 80~00년대 그래픽노블(Graphic novel)을 잇는다면 우린 개략적으로나마 미국 만화사를 그려볼 수 있다.
반세기에 걸친 윌 아이스너의 업적. 하지만 어쩌면 윌 아이스너가 기여한 가장 큰 업적이라 할 것을 아직 소개하지 않았다. 수많은 만화가 중 하필 아이스너를 추모해야 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윌 아이스너가 만화가적 자의식을 표명한 최초의 미국작가이기 때문이다. 윌 아이스너는 일찌감치 1940년 <Baltmore Sun>과의 인터뷰에서 만화를 예술 형식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동료 만화가의 반응이었다. 윌 아이스너의 야망은 지지 되기는커녕 오히려 건방지고 오만하다 비난받는다. 만화가 경멸받는 매체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만화가의 자기 부정적 태도는 놀랍다고만 할 수 없는데, 가령 예술가로 드물게 인정받은 ‘조지 헤리만(George Herriman)’ 조차도 만화에 관해서는 항상 겸손한 태도를 취해야 했다. 1960년 만화가 협회에서 루브 골드버그(Rube Goldberg)는 그래서 윌 아이스너를 이렇게까지 질책한다. “자네는 우리 같은 보드빌리언(vaudevillian)이야...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말게.”
이후 윌 아이스너는 오랜 시간 만화에 관해서는 실질적으로 혼자였고 맥클라우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무모하게 풍차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의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50~60년대 만화검열의 시대를 지나 60년대 말에 이르러 윌 아이스너의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 된다. 히피 운동과 맞물린 언더그라운드 만화 코믹스(Comix)가 부상하면서 윌 아이스너와 <The Spirit>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된 것이다. 당연히 야심가라 할 아이스너는 이 반문화의 흐름이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임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린다. 그 결과 윌 아이스너는 코믹스(Comix)가 제시한 대안(독자, 출판, 유통, 서사, 형식)에 적극 화답하며 최초의 그래픽노블 <A Contract with God>으로 만화계에 새로이 진입한다. 다만 이때 주의할 것은 아이스너의 극적인 귀환은 받아들이되 ‘그래픽노블의 창시자(Godfather)’라는 휘광엔 지나치게 휘둘려서 안 된다는 점이다.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적 기획은 과거와 철저히 단절된 무언가가 아니다. 단적으로 아이스너가 그려낸 외양과 동선, 칸과 페이지는 어떤 면에서 과거의 작품 <The Spirit> 보다 낡아 있다.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은 동시대 만화로부터 얼마간 앞서 있으며 또 얼마간 뒤처져 있는 것이다. 혁신주의와 의고주의가 공존하는 역설로, 윌 아이스너의 경우 만화의 혁신을 위해 언더그라운드 만화뿐만 아니라 동시에 과거 30년대 미국 대중문화까지 도입한다. 이는 단순히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이 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지시하려는 게 아니다. 이보다 30년대의 형식 즉 오 헨리 소설의 극적인 구조, <Krazy Kat>의 흐릿한 경계 그리고 공공사업진흥국(WPA) 연극의 상상적 무대 등을 지시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30년대 대중문화 형식과 7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만화 코믹스(Comix) 형식이 엮어낸 비주얼 내러티브로.
도시 이야기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는 작품이며 일반 만화보다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스토리에 완결성을 가진 단행본 형식으로 발간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라고 정의된다. 엄밀한 정의라 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그래픽노블이 소설 즉 문학이라는 예술 형식을 강하게 의식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예컨대 이는 윌 아이스너의 작품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진실로서 그는 그래픽노블을 채택함으로써 만화에 문학적 가치에 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길 희망했다. 인간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하려는 기대, 복잡하고 일관된 형식을 발견하려는 기대 결국 인간 본질을 다루는데 있어 깊은 성찰에까지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말이다. 더욱이 이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는 우연찮게 아이스너 작품의 소설적 기원을 지시하기도 하는데, 그의 작품 상당수는 30년대 펄프픽션과 단편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특히 독자의 기대나 예상을 뒤엎고 결말을 역전시키는 ‘트위스트 엔딩(twist ending)’은 바로 오 헨리의 그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린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을 손쉽게 소설적이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아트 슈피겔만, 세스, 체스터 브라운으로 이어지는 그래픽노블의 ‘자전적 만화’와 겹쳐 볼 때 윌 아이스너의 고유한 미학은 보다 뚜렷해진다. 이를테면 자전적 작품으로서의 검토. 윌 아이스너는 그래픽노블 <A Contract with God>이 과거 기억을 재구성한 작품이라 언급했고 또한 2004년판 서문에서는 ‘딸 잃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실제 자신의 이야기였음을 고백한다. 때문에 30년대 배경의 윌 아이스너 그래픽노블을, 자전적 만화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코믹스(Comix)의 몇몇 작품과 동반하여 자전적 만화의 계보에 편입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비교적 적실한 선택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아이스너는 실제의 진실을 전하겠다는 계약을 맺지도 않았을 뿐더러 <Life in Picture>를 제외하고는 명시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내세운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전적 작품을 굳이 고집하지 않고 다음의 인터뷰로 넘어가보자. “나는 30년대 뉴욕 의 모든 것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빌딩들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또한 주위에 소화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를요.” 얼마 정도의 과장적 어조지만 이 발언의 진실까진 의심할 필요 없다. 윌 아이스너는 1917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뉴욕 토박이였으며 무엇보다 대공황 시절 뉴욕 거리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신문팔이 소년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이스너는 자신의 작품을 도시 생활의 반영이자, 도시 지각의 미학적 대응이라 소개한다. “나의 그림은 대도시의 삶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빛 연출은 도시의 팽창하는 조명의 결과이며, 원근법은 5층 공동주택의 열린 창문으로부터 배운 것입니다.” 그러니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은 내밀한 삶을 고백한 자전적 작품은 아닐지라도 30년대 뉴욕의 공간을 기억하는 작품으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첫 그래픽노블 <A Contract with God>은 뉴욕의 공동주택 세입자 이야기다. 다음 작품 <New York: The Big City>, <The Building> 역시 제목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듯 도시의 이야기다. 어쩌면 30년대 번성한 펄프 소설의 자장에 놓인 <The Spirit>까지도 이 도시 연작에 포함시킬 수 있을 텐데, <The Spirit>은 하드보일드 탐정 장르로서 심리적 불안과 도덕적 타락을 잉태한 도시 이야기다. 실제로 윌 아이스너는 <The Spirit>을 이처럼 언급한다. “나의 이야기가 대도시의 환경에 놓이길 원했고 또한 도시를 배회하며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설탐정을 창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윌 아이스너가 그려낸 30년대 뉴욕을 들여다보자. 윌 아이스너는 인상파 화가처럼 거리의 군중을 관찰하여 그들의 풍속을 재빠르고도 정확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때론 히치콕의 영화 주인공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은밀히 파고들며 시선을 창에 고정한 후 뉴욕의 거리를 어떠한 논평 없이 몇 페이지에 걸쳐 보여준다. 누군가는 이와 같은 시선에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여주려 하는 리얼리즘을 떠올릴지 모른다. 하지만 도시와 인간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노력에도 윌 아이스너의 도시는 리얼리즘 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실제 그가 재현하는 세계는 자연주의의 탁월한 기교에도 여전히 멜로드라마적 양식에 머무는 디킨스적 세계에 가깝다. 더구나 윌 아이스너에게 있어 뉴욕은 찰스 디킨스의 런던처럼 사회 문제를 탐구하기 위한 콘텍스트가 아니었다. 사회 모순을 보여주고 그 세계의 희생자에 연민을 보내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계급의식으로까지 나아가진 않는다. 대신 그의 그래픽노블에는 대공황적 주제 즉 생존을 향한 인간의 고군분투가 지배하며, <A Contract with God>의 경우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숙명적 태도로 빈민가의 주택을 “콘크리트 바다 위에 멈추어 버린 배”처럼 그려낸다. 결국 윌 아이스너의 도시는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거대한 극장”으로 이에 따라 이 도시의 군상들은 각자의 무대에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를 지어낸다. 누군가는 깊게 들어선 무대에 조명을 받으며 가혹한 운명에 울부짖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껴간 무대에서 어둠과 함께 깊은 침묵 속으로 침착해 들어가며.
30년대의 경계적 상상력
<A Contract with God> 서문에서 윌 아이스너는 만화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기로 단호하게 밝힌다. 서사의 길이는 판형에 제한돼서 안 되며, 서사의 전개 역시 칸의 레이아웃에 구속돼선 안 된다고 주창한 것이다. 만화 혁신에 관한 자부심 넘치는 서문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번에는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 그래픽노블의 매체적 혁신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사실 윌 아이스너는 <The Spirit>을 연재할 당시 신문 연재만화를 그래픽노블 만큼이나 동등하게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윌 아이스너의 변덕스러운 태도를 부정할 필요 없다. 당시 아이스너에게 신문 연재만화는 정말로 혁신적인 만화 매체였다. 신문 연재만화는 슈퍼 히어로가 지배하는 만화 잡지와 다르게 아이스너가 그토록 열망한 성인 독자를 제공했다. 게다가 창작에 있어서도 만화 잡지보다 많은 자유를 허락했으며 심지어 아이스너가 사장으로 있던 만화 잡지를 포함하더라도 그랬다. 물론 신문 연재만화가 전적으로 혁신적인 매체라 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윌 아이스너가 신문 형식을 부정하기보다 활용하기를 택했다는 것이고 이와 관련한 명백한 징표로는 넓은 신문 표지에 선명히 자리 잡은 로고 ‘SPIRIT’을 꼽을 수 있겠다. ‘SPIRIT’의 로고는 정적인 슈퍼히어로 로고와 달리 매회 크기와 형태를 변화시켜 나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지 표면에서 디제시스 내부로 진입하여 거리의 간판으로 매달리거나 아니면 흩어진 서류로 휘날리다 어느 때엔 거대한 추상적 형상으로 조각되기까지 한다. ‘SPIRIT’이라는 로고는 어째서 이렇게 부단히도 변신을 수행하는 걸까. 서사를 예고하고 분위기를 암시하거나 아니면 시각적 유희를 산출하기 위해서지만 이보다 심층적인 층위에서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적 체계의 원리로 기능하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텍스트 차원과 조형적 차원, 디제시스 내부와 디제시스 외부를 오가며 경계를 무효화시키는 시각적 체계. 그래서 총, 담배로부터 수반되는 <The Spirit>의 특유의 연기는 느와르 장르의 기호라는 이유와 무관하게 의미심장하다. 경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흐르는 연기는, 비록 잠재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앞으로 등장할 유동적인 경계(글과 그림, 그림과 그림, 칸과 칸, 칸과 페이지)를 예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윌 아이스가 경계를 지우고 더 나아가 칸 자체를 밀어내 기어코 그 아래 놓인 페이지를 펼쳐내기로 결심한 까닭을. 그 까닭은 윌 아이스너는 독자가 연쇄하는 칸의 인질이 되길 원치 않았고 대신 칸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이 페이지를 탐험하길 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독자의 참여를 격려하고 독자의 상상력을 확장 시키길 열망했는데 이쯤 해서 다시 30년대 대공황의 시기로 되돌아 가보자. 신문팔이 소년 윌 아이스너는 코믹 스트립 <Krazy Kat>의 열렬한 팬이었다. 윌 아이스너의 결정적 순간으로 아이스너는 칸을 비워낸 텅 빈 여백에 독자를 초대하는 헤리먼의 시적 제스처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여전히 칸을 비워낸 페이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이번에는 30년대 공공사업진흥국(WPA) 연극 무대로 이동해보자. 윌 아이스너는 대공황의 빈곤함이 야기한 소박한 무대 장치에서 많은 것을 배웠노라 고백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장식 없는 연극 무대는 여기저기 칸을 치워낸 <Krazy Kat>의 페이지와 닮아있다. 텅 빈 여백에 선 하나 그으면 그것으로 지평선을 성립시키고 마는 <Krazy Kat>처럼, 이때의 연극도 경계를 그으면 그곳이 무대가 되고 관객이 와 자리를 잡으면 그곳이 객석이 되었다. 아이스너가 회상한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연극 무대를 보자. 배우들은 긴 막대기 사이를 두고 분주히 오간다. 이때의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이 보잘것없는 무대에도 그들은 배우들과 “믿는-체하기”놀이에 참여하며 풍요로운 연극적 세계를 떠올린다.
페이지의 재발명 그리고 만화의 미래
흐릿한 칸의 윤곽선, 엄격한 그리드의 와해, 이미지와 페이지 사이를 흐르는 문자. 윌 아이너의 그래픽노블은 종국에 어떤 형태로 현상될까. 먼저 칸과 페이지의 전통적 관계가 해체되고 다음으로 칸, 문자, 이미지가 뒤섞여 일련의 흐름을 생성하다 마지막엔 전체 페이지로 수렴된다. 여기서 페이지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칸처럼 기능하며 윌 아이스너는 이를 메타-칸(meta-panel)이라 명명한다. 이런 점에서 스콧 맥클라우드가 중세 ‘비와이 테피스테리’로부터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을 이끌어낸 건 결코 비약적인 추론은 아닐 테다. 그는 “윌 아이스너만이 영원한 예외일 뿐, 현대 만화가 중 ‘바이외 테피스트리’ 형식을 제대로 활용한 작가는 거의 없다”고 상찬한다. 다만 이 상찬에서 아울러 지적할 것은 아이스너의 혁신이 탁월함에서 기인한 것이지 독창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록 아이스너의 메타-칸이 새로운 무언가로 보일지라도, 그 형식은 이에 앞서 ‘상위 칸으로서의 페이지’ 계보에 귀속돼 있다. 일례로 60년대에는 칸과 말풍선을 자제하고 페이지를 전면화한 <The Stars My Destination>과 같은 SF 그래픽노블이 있었다. 당시 SF 잡지는 윌 아이스너에 앞서 만화도, 소설 삽화도 아닌 자신들의 독특한 예술 형식을 지칭하기 위해 그래픽노블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더군다나 ‘상위 칸으로서의 페이지’의 기원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무려 19세기 중반 영국 삽화잡지(<Graphic>, <Illustrated Lond News>)에 실린 ‘그림 이야기(picture story)’에까지 다다른다. 프레드릭 바나드(Frederick Barnard), 해리 퍼니스(Harry Furniss)와 같은 작가는 텅 빈 페이지에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이미지를 엮거나 때론 무언가를 느슨하게 덧붙이는 감각으로 이미지를 배열했고 이를 통해 호가스와 퇴퍼의 절충 즉 페이지와 칸, 동시성과 연속성, 조망적 시각과 국소적 시각, 유동적 시선과 강제적 시선을 종합한다.
바이외 테피스트리, 영국 삽화잡지, 70년대 SF 소설잡지 그리고 윌 아이스너 그래픽노블로 이어지는 연속 언어의 계보. 중단 없이 이미지를 이어가고자하는 연속언어는 그 자체로 흥미롭지만 디지털 만화의 무한 캔버스와 교차할 때 더욱 더 흥미롭다. 스콧 맥클라우드가 윌 아이스너를 <만화의 이해>의 서론과 <만화의 미래>의 결말에 각기 배치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윌 아이스너의 그래픽노블이 어떠한 것인지가 아닌 어떠한 것일 수 있는지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윌 아이스너는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의 기획으로 만화의 미래를 예견한 듯하다. 비록 그의 의도와 다르게 ‘노블(novel)’의 영역이 아닌 무한 캔버스를 암시하는 ‘그래픽(graphic)’의 영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로써 페이지 형식을 초과하는 아이스너의 연속언어는 40년대 인쇄만화부터 2000년대 디지털 만화까지 모두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미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상의 이름이 ‘아이스너’인 건 진실로 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