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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Feb 28. 2023

하양지적 순간, 하양지적 몸짓

『안녕이 오고 있어』

* 이 글은 『지금 만화』1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안녕이 오고 있어』는 이별을 준비하는 중학생 소녀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지우, 시영, 채린, 송이는 이 과정에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종국에는 우정을 재확인하고 통과의례라 할 이별을 받아들인다. 『안녕이 오고 있어』는 아름답다. 흘러간 유년 시절을 어렴풋하게 떠오르게 하는 일련의 장면들이 아름답고 또한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정말이지 중요한 어떤 순간을 사진적 잘라내기로 포착한 표지가 아름답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사로잡는 것은 따로 있다. 이러저러하게 펼쳐놓은 사람들과 사건을 넉넉하게 품어내는 낙관적 세계. 아니면 『안녕이 오고 있어』가 성장만화이니 갈등과 성숙이 조화를 이루는 온유한 리듬이라 달리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갈등과 성숙 그리고 온유한 리듬. 그렇다. 『안녕이 오고 있어』를 이왕 이렇게 성장만화의 궤적과 겹쳐놓았다면, 갈등과 성숙 속에서 의미를 창출하는 어떤 형식에 관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성장만화와 긴밀히 연결된 더 나아가 낙관적 하양지 세계를 아우르는 형식에 관하여.     


  『안녕이 오고 있어』의 형식은 무엇일까. 일단은 『안녕이 오고 있어』의 형식을 사진적인 것이라 해두자. 흘러가는 이러저런 사건들 속에서 미묘하지만 한편으로 놓쳐서는 안 될 순간들을 정확히 포착한다. 그러니까 연속성에서 떨어져 나와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서는, “인파 속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복도를 서성이기도 하며 들뜬 마음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안고 있다는 듯이 바삐 몸을 움직이는” 일련의 순간들을 조심스레 담아내는 것이다. 그럼 이 사진적인 하양지적 순간이 『안녕이 오고 있어』의 형식인가. 아니다. 『안녕이 오고 있어』의 형식이되 아직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충분하지 못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는 이때 불연속인 사진을 또 다른 사진의 결합으로 구제하려 했던 존 버거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존 버거는 말한다. “삶에서 의미란 순간적인 것이 아니다. 의미는 관계를 짓는 과정에서 발견되며, 진행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단절된 순간의 외양을 때어낸 사진은 그 순간을 넘어 확장된 시간의 지속 안에서 읽어낼 때에만 의미를 얻는다.”라고.1) 『안녕이 오고 있어』 역시 그렇다. 존 버거의 엄밀한 의미는 아닐지라도, 고립된 하양지적 순간에 무언가를 연속적으로 배치한다. 하양지적 순간과 대비되는, 단순하고 소박한 선들로 지어낸 하양지적 몸짓을.


 하양지적 순간과 하양지적 몸짓. 이러한 하양지적 순간과 하양지적 몸짓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비될까. 정지와 운동의 대비 혹은 클로즈업과 원경의 대비?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만화의 추상화와 관계된 카툰화의 위상차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테다. 하양지 작가는 구체적 형상의 캐릭터로 감정을 고조시키다가도 다음 장면에서는 이내 뻔뻔할 정도로 낙천적인 추상적 형상의 캐릭터를 휘갈겨버린다. 그런데 왜 하필 카툰화의 위상차일까. 카툰화의 위상차 그 자체는 특별한 만화 형식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만화들은 유머를 유발하기 위해 복잡한 구체적 캐릭터와 단순한 추상적 캐릭터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곤 한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보자. 『안녕이 오고 있어』가 세계의 형상을 급격히 전환한 데는 유머 이외에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닐까. 가령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학교도 모자라 집에서도 너네 얘기 듣는 거 이제 지겨워”라고 하는 결정적인 하양지적 순간을 보자. 그런데 작가는 보는 이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바로 이 순간 자유분방한 드로잉으로 하양지적 몸짓을 도입한다. 어떠한 이유에서일까. 그러니까 왜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하양지적 순간과 하양지적 몸짓을 애써 결합하려하는 걸까.  긴장과 이완이라는 서사적 맥락에서 고찰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양지적 순간과 하양지적 몸짓의 결합이 『안녕이 오고 있어』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삶은 특별한 순간, 결정적 순간 같은 하양지적 순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설사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 한편 고이접어 간직할지라도 말이다. 정리하자면 하양지 작가는 특별한 하양지적 순간 다음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평범한 하양지적 몸짓을 덧붙인다. 그러니 이별의 주제로 『안녕이 오고 있어』와 나란히 겹쳐지는 『정순전』을 이쯤에서 떠올려 보자. 달빛이 내려앉는 길을 걸으며 정순이는 독백한다. “이상하게 작별을 하고 나서야 난 벗을 잃은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추억을 나누었으니 어디에서든 그것들을 떠올리며 여생을 보낼 수 있지 않은가. ···  삶 속에서 작고 초라한 것들을 보며 고찰도 하고 음미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원래의 곳으로 돌아간다는 건 좋은 것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뜻과 같다.” 특별한 순간과 평범한 순간 그리고 구체적 캐릭터와 추상적 캐릭터가 쉼 없이 왕래하는 이야기. 그래서 마지막 장면 주인공 시영이는 남은 친구들을 그렇게 한 없이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1) 제프 다이어, 『존버거 사진의 이해』, 열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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