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쓺』1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추상만화(abstract comics)란 무엇일까? 분명 많은 이들에게 추상만화란 익숙지 않은 용어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류 만화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추상만화는 안드레이 몰로티우 (Andrei Molotiu)가 2009년 『Abstract Comics: The Anthology: 1967-2009』에서 정식화한 만화 범주이다. 추상만화의 출발점, 안드레이 몰로티우.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안드레이 몰리티우가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추상만화를 독자적으로 창안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추상만화는 안드레이 몰로티우가 가시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비록 추상만화라 불리진 않았지만 늦어도 1950년대 이후 만화계에 그 모습을 산발적으로 드러냈으며, 단적인 예로 안드레이 몰로티우가 추상만화의 시작으로 소개한 로버트 크럼(Robert Crumb)의 <Abstract Expressionist Ultra Super Modernistic Comics>(1967)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때의 <Abstract Expressionist Ultra Super Modernistic Comics>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주류만화의 대안을 모색하던 추상만화와 그래픽노블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로버트 크럼의 언더그라운드 만화와 교차한다는 점에서 아니면 마약, 섹스, 반전운동을 전경화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 현실로부터 어느 정도 초연한 추상만화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테지만 정확하게는 <Abstract Expressionist Ultra Super Modernistic Comics>라는 제목이 추상 만화의 기원인 추상 연속예술을 지시하여서다. 추상 연속예술((abstract sequential art) 그러니까 20세기 추상으로 수렴하는 모더니즘과 동시대 성행하던 연속언어와의 결합. 물론 추상연속예술과 추상만화에 직접적 연속성을 내세우는 것은 다소 무리한 주장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이 두 사이의 어떤 잠재적 관계를 개시할 수 있다면 거기에는 혹여 전에 보지 못한 만화적 상(像)이 떠오르지 않을까. <Abstract Expressionist Ultra Super Modernistic Comics>에서 몰로티우가 추상만화의 표본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스콧 맥클라우드의 만화적 기획을 쫓아 추상만화사를 추상미술사로까지 확장시키려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럼 추상회화에서 추상만화의 기원에 해당할 추상연속예술을 살펴보자. 안드레이 몰로티우에 따르면, 캔버스의 아우라를 박탈할 경우 어쩌면 추상만화라 불릴 무언가를 작업했을 작가는 다음과 같다. 절대주의의 엘 리시츠키(Эль Лиси́цкий)는 검은색과 붉은 색의 사각형이 변증법적 투쟁을 하는 그림책 『About Two Squares』(1922)를 제작한다. 그리고 1920년대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오스카 피싱거(Oskar Fischinger)의 추상애니메이션 언어를 공유한 바우하우스의 학생, 쿠르트 크란츠(Kurt Kranz)는 <Picture Sequence, Black:White>, <20 Phase in the Life of a Composition>을 통해 추상 형상의 운동과 변형을 실험한다. 물론 여기에는 추상만화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을 하지만 미술계에선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추상표현주의 연속예술이 누락돼서는 안 된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윌리엄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은 회화에서 허용된 연속기법(연작, 접합)으로 추상만화로의 노정에 예비적으로 참여한다. 게다가 추상표현주의를 언급한 이상 다음으로 만화와 직접 연관성이 있는 팝아트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팝아트라면 필시 인쇄만화의 산업적 양식을 선점한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Fox Lichtenstein)을 떠올릴 게다. 하지만 그는 만화의 연속성을 해체하고 하나의 통일된 이미지에 몰두한 작가라는 점에서 대신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제스 콜린스(Jess Collins)과 오이빈드 팔스트룀(Öyvind Fahlström) 같은 작가를 주목하는 것이 보다 온당하다. 특히 제스 콜린스와 오이빈드 팔스트룀은 만화 어휘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선형적인 서사를 해체한 콜라주 작품으로 추상만화에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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