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만화: 만화 운동성의 탐구

by 오혁진

만화사에서 재평가 받아야 할 장르 ‘스포츠 만화’. 『슬램덩크』의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고려하면 의아할 수 있지만, 웹툰이라는 매체에서 스포츠 만화가 여전히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만화를 어떻게 재평가해야 하는가? 이를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포츠 만화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스포츠 만화란 무엇인가. 스포츠 만화는 축구, 야구, 탁구, 테니스 등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이다. 주인공이 동료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승리를 쟁취하는 이야기로, 이를 통해 역동적 에너지, 극적인 긴박감 그리고 승리와 성장의 희열감을 전달한다. 스포츠 만화에 관한 설명은 이로써 충분한가. 아니다. 이 정의만으로는 ”노력, 우정, 승리“로 대표되는 소년 만화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스포츠 만화는 일본 소년만화 잡지에서 확립된 장르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열정, 성장, 청춘의 속성을 탁월하게 구현할 소년이라는 잠재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 만화로서의 스포츠 만화. 이 같은 스포츠 만화의 소년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보다 심층적 논의를 위하여 소년 만화와 구별되는 스포츠 만화의 고유한 본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반복되는 시합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라이벌이라는 경쟁 관계에 주목해보자. 라이벌 구도는 다른 장르 만화에서도 발견되는 특성이기는 하나, 스포츠 만화의 경우 대립과 경쟁의 관계를 어느 장르보다 다층적이고 역동적으로 구축한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같은 팀의 서태웅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매 경기마다 자신과 경쟁하는 선수들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간다. 또한 『하이큐』는 적에서 동료가 된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를 중심으로 까마귀와 고양이의 쓰레기장 결전으로 상징되는 카라스노 고교와 네코마 고교의 선명한 대립구도를 전개한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강백호, 히나타 쇼요, 카게야마 토비오는 왜 끊임없이 라이벌을 갈망하는가. 스포츠 만화가 경쟁을 통해 성립된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다소 동어 반복적이다. 하지만 라이벌을 단순한 적대 관계를 넘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관계로 확장한다면, 우리는 스포츠 만화의 또 다른 본질에 도달하게 된다. 강백호, 히나타 쇼요, 카게야마 토비오가 라이벌을 갈망하는 이유는 바로 ‘성장’하기 위해서라고. 요컨대 스포츠 만화는 라이벌이라는 특정한 관계성 내에서 성장을 고양시키는 장르이다.


스포츠 만화를 경쟁, 라이벌, 성장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사실 스포츠 만화가 펼쳐내는 경쟁과 성장의 이야기는 어딘가 기이한 면이 있다. 스포츠 만화는 경기라는 형식을 통해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경쟁 관계를 만들어내지만 종국에는 주인공과 대립하는 적대자가 소멸되는 방향으로 수렴된다. 내부의 적대자이든, 외부의 적대자이든 간에 그들은 어느 시점 적대자에서 조력자로 전환되며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 때문인지 스포츠 만화의 주인공은 비현실적이리만큼 낙관적인데 심지어 이러한 주인공의 낙관성은 라이벌의 관계망으로부터 스포츠 만화 세계 전체로까지 확산된다. 스포츠 만화의 세계는 실력이 우수한 팀이 규칙에 따라 최선의 경기를 펼치고 승리하는 공간이며, 동시에 객관적 실력이 부족한 개인이나 팀이 그날의 컨디션이나 팀워크, 정신력에 따라 역전승하기도 하는 기적의 공간이기도 하다. 반칙이 소거되고 공정성은 실현되며 노력, 열정, 성장이 펼쳐지는 유토피아적 세계. 이러한 유토피아적 세계에서는 성공과 실패의 구분마저 무의미해지는데, 주인공은 목표를 설사 달성하지 못할지라도 승리한 패자가 되어 이전보다 성숙한 존재로 거듭난다. 물론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이 모든 건 “끔찍한 대중의 희망”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나 역시도 스포츠 서사가 이데올로기와 긴밀히 결부된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장이 녹아든 청춘의 한 페이지와 함께 푸른 녹음과 눈부신 하늘이 배경으로 펼쳐질 때 스포츠 만화에 진정으로 매혹되지 않을 도리는 없다.


탁구 만화의 운동성

스포츠 만화는 청춘을 예찬하며 성장을 촉진하고 가속화하는 장르이다. 나는 이쯤에서 스포츠 만화와 무관해 보이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란 가능태로 존재하고 있던 것이 현실태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성장이라는 질적 변화로 설명하면서도 무엇보다 장소적 변화를 포함한 운동의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스포츠 만화가 재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장 때문만이 아니다. 스포츠 만화는 성장과 함께 운동을 생성하고 가속화하는 장르이다. 단적으로 스포츠 만화의 핵심 기호인 ‘공’을 떠올려보라. 공은 원형이라는 단순한 형태로, 내부의 절대적 울림과 이를 에워싸는 외부 평면과의 울림이라는 이중울림을 발생시킨다. 게다가 포물선, 회전, 작용-반작용 등의 운동을 직관적으로 구현하는 공이 만화의 과잉성과 스포츠 서사의 극적 연출과 결합될 때, 스포츠 만화의 소우주로까지 확장된다.

이러한 공의 운동성 맥락에서, 알렉시 보클레어(Alexis Beauclair)의 추상 형식주의 만화(Abstract Formalist comics)를 살펴보자. 보클레어는 만화 형식을 최대한 정제하여 원으로 추상화된 공을 일종의 화이트 큐브와 같은 정사각형 칸 연속체에 배치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화 운동성의 조건 즉 형상과 배경의 관계, 인접한 사물의 시각적 유대, 칸의 완결성 연상 등을 검토한다. 다음으로는 정원교 작가의 『4컷 만화 시리즈』와 『8 BALLS』이다. 정원교 작가는 만화 형식에 관한 알렉시 보클레어의 기획을 보다 철저하게 밀어붙여 칸의 집합체를 만화의 운동을 발생시키는 생성기로 조직한다. 특히 가속으로 촉발된 배경의 변형과 더불어 다차원 공간, 비선형 경로, 게임 인터페이스의 도입으로 공의 운동성은 반복과 변주를 거듭한다.


(좌) 알렉시 보클레어, 무제, (우)정원교, 4컷 만화 시리즈



논의가 지체된 감이 없지 않으니, 다시 스포츠 만화로 돌아가자. 스포츠 만화는 어떤 의미에서 스포츠의 존재론을 순수한 운동 내에 위치시키는 기획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만화의 운동성에 관해 논의하기 위해 어떤 스포츠 만화를 택해야 할까. 앞서 운동을 매개하는 공의 위상을 언급한 바 있으니, 공을 사용하는 만화 중 탁구 만화를 선택하면 좋겠다. 하스미 시게이코의 말을 변용하자면, 만화는 놀란 만큼 단순한 것으로 이점에서 탁구 만화는 길이 2.74m, 폭 1.525m의 탁구대를 중심으로 공을 주고받는 행위만으로 만화의 운동-이미지를 성립시킨다. 가령 탁구 만화의 풍요로운 단순함의 계보에 속하는 『어쨌거나 핑퐁』을 살펴보자. 그래픽노블 『어쨌거나 핑퐁』은 탁구 만화의 운동-이미지를 탁구대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거듭되는 교체로 환원시킨다. 공과 만화의 운동성은 충분히 전개되고 있는가. 그리드의 반복성으로 작용-반작용의 운동성을 추동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영화처럼 극단적 대조로 구축된 쇼트-역쇼트의 난감함이 존재한다. 칸과 칸 사이의 홈통은 때로 탁구대 네트의 기능을 넘어서, 운동성을 보증하는 공간적 단일성마저 해체하는 지점에까지 이른다. 이러한 이유로 『어쨌거나 핑퐁』은 단편들로부터 총체적 공간을 재구축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하나의 연속체로 통합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지표를 창조한다. 이를 테면 운동과 감정의 중심지인 ‘신체’라는 지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담한 데포르메를 통해 리듬감 있는 선율과 안무로 변형된 신체. 공 또는 디즈니 캐릭터의 탄성에 참여하며 눌려지고, 휘어지며 움직이는 와중에, 인물들의 신체가 자아내는 선율과 안무는 분절된 칸과 공간을 유려하게 이어나간다.


다음은 『어쨌거나 핑퐁』에서 마츠모토 타이요의 『핑퐁』으로 공을 넘겨보자. 『핑퐁』은 『어쨌거나 핑퐁』과 마찬가지로 격렬하게 몸을 뒤틀며 라켓을 휘두르는 선수들이 번갈아 칸을 차지한다. 다만 차이점이라 하면 운동과 액션의 극적인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해 두 선수 사이에 분절된 신체의 계열체를 삽입한다는 점이다. 감정-이미지인 얼굴과 동력의 축인 발은 선수들 간의 상호작용을 확장시키며 운동의 질적 도약을 이끈다. 마츠모토 타이요에게 탁구 만화란 두 명의 선수와 분절된 신체의 축적과 다름 아니다. 선수-신체-선수라는 연속체는 물론 『핑퐁』만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없다. 다만 『핑퐁』에서 역동적 신체의 지배적 방향성이 ‘경사’라는 점은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경사는 기본 위치에서 이탈한 하나의 변형태로 지각되며, 이러한 점에서 동선의 대각선은 긴장과 운동을 활성화하는 효과적 수단이다. 사선에 대한 강렬한 추구는 이뿐만이 아니다. 『핑퐁』은 페이지 내부의 칸들을 과감하게 사선으로 절단한다. 칸을 사선으로 절단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절단된 칸은 사선을 경계로 긴밀하게 밀착되는 동시에 칸 내부의 역동적 구도를 취하는 인물들과 공명한다. 더욱이 교차하는 사선으로 선형적 독해가 약화된 『핑퐁』의 페이지를 조망할 때면, 해당 장면에서는 콜라주의 2차원 표면이 떠오른다. 이질적 요소들이 동시적으로 공존하는 콜라주. 스포츠 만화는 선수와 관중의 시공간을 동시적으로 재현하기를 열망하는데, 그런 점에서 콜라주는 『핑퐁』의 필연적인 형식처럼 보인다. 나아가 현재의 순간으로 분출하는 과거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상승 이미지(새, 나비, 비행기)가 탁구 경기와 함께 하나의 페이지로 뒤엉킬 때, 『핑퐁』은 새로운 지각적 차원으로 고양된다.


(좌) 마빌, 어쨋거나 핑퐁, (우) 마치모토 타이요, 핑퐁


『펜홀더』, 수직의 프레임과 평면의 미학

이 글의 매치포인트에서 마지막으로 다룰 작품은 『펜홀더』다. 『펜홀더』는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과 달리 웹툰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지닌다. 탁구 만화에서 웹툰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웹툰은 탁구만화를 재현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 무력하다. 웹툰은 수직의 프레임과 스크롤을 물리적으로 조건화한다는 점에서, 수평으로 진행되는 탁구와는 불가피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다. 반면, 웹툰과 달리 수평의 우위를 가진 매체를 통해 탁구의 수평적 운동을 그려낸 정원교, 란탄 작가의 만화를 상기해보라. 정원교 작가는 출판 만화의 양쪽 페이지를 활용하여 공의 포물선과 전진, 중진, 후진의 거리 변화로 탁구의 운동-이미지를 표현한다. 또한 란탄 작가는 연속으로 펼쳐지는 아코디언 북을 통해 되돌아오지 않고 보내기만 하는 공과 감정을 수평의 운동으로 구현한다. 그렇다면 웹툰인 『펜홀더』는 수직의 공간과 운동에 구속된 채 빈곤한 탁구 만화를 그려내야 하는가. 이은재 작가는 흥미롭게도 웹툰의 수직적 한계를 부정하기보다 이를 오히려 긍정한다. 수직의 프레임에서 수평의 주제를 구현하려 애쓰는 대신, 수직성을 내포한 직사각형 초상화 구도로 인물들을 통합하는 특권적 공간을 구축한다. 예컨대 『펜홀더』의 인물들은 초상화 양식으로 평면화를 동반한 정면 혹은 측면의 상(像)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후 그들은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인물 간의 거리와 관계없이 수직의 프레임 안으로 결합된다. 더욱이 공간적으로 분리된 위치에 있는 선수와 관중 또한 예외일 수 없는데, 경기장과 관중석의 실제 물리적 거리의 무효화로 한층 높은 층위의 추상적 프레임으로 통합된다.


이은재, 펜홀더


공간의 비약적 압축과 인물들의 역동적 결합. 이처럼 『펜홀더』의 초상화 구도는 수직의 직사각형 프레임을 기반으로 새로운 공간구조를 창출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초상화 구도가 단지 공간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펜홀더』는 역동적인 운동-이미지를 구현한 만화지만, 때때로 정지된 인상의 평면 이미지를 수직으로 나열한 형태로 나타난다. 물론 『펜홀더』는 공간의 단일성을 보증하는 롱 쇼트를 사용하여 운동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우리가 『펜홀더』에 진정으로 매혹되는 이유는 스포츠 만화의 연속적인 운동성을 단순히 재확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초상화의 매체 특정성을 연장하여 평면성과 정지 이미지라는 만화의 조건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보다 매혹적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주인공 한희연과 주학 고등학교 김소희와의 첫 경기를 주목해보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관객은 물론 격렬히 움직이는 한희연과 김소희조차 때론 초상화처럼 놀라우리만큼 고요하다. 두 선수는 탁구의 역동적인 운동성에 참여하면서도, 동시에 주어진 초상화 프레임이라는 틀 속에 단단히 고착된 양상을 보인다. 더욱이 특정 국면에는 프레임의 경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것에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나간다. 그러니 끝으로 운동성을 매개하는 스포츠 만화의 핵심 기호인 ‘공’의 동선을 쫓아가 보자. 서브를 넣을 때 손 위에 놓인 공은 음영이 완전히 제거되어 공이라기보다 차라리 평면의 흰 원처럼 보인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탁구공은 원으로 환원되면서 『펜홀더』의 평면성과 정지성에 전적으로 동참한다. 경기가 진행되면서 운동이 가속화될 때 공은 견고한 형태를 잃고 운동선에 종속되기도 하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주인공보다 넓은 면적으로 평면성과 정지성을 과시하며 배치된다. 상대편으로 넘기지 못하고 공이 선수의 범위를 초과해 결국 바닥에 닿고 마는 그 패배의 결정적 순간 말이다. 혹은 평면과 깊이, 정지와 운동의 변증법적인 결정적 순간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추상만화의 추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