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텅구리』에서 병맛 만화까지
개그 만화는 지표성이 강한 만화 장르다. 이는 개그 만화가 단순히 일상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웃음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웃음의 의미가 텍스트를 둘러싼 맥락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에서[1], 개그 만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해당 작품이 창작된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장르라는 원론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개그 만화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텍스트, 제작자, 수용자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생성되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개그 만화의 지표성과 이를 토대로 한 웃음의 분화와 장르적 변주를 논의하기 위해, 개그 만화가 연재된 매체의 변화를 중심으로 개그 만화를 재구성하겠다. 즉 신문, 잡지, 인터넷으로 이어지는 매체 변화를 기준으로 개그 만화의 역사를 세 시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에 대응하는 근대 만화, 명랑 만화, 병맛 만화를 차례로 검토하려는 것이다. 다만 이때 주의할 점은 신문, 잡지, 인터넷이 단순한 물질성에 기반한 지지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히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언급한, 작품의 구현에 필연적인 기술적, 역사적 관습과 규칙인 ‘기술적 지지체’[2]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렇게 주장할 수 있겠다. 한국 사회와 역동적 관계를 맺어온 시대의 매체들은 웃음의 주제와 형식, 생산유통 구조,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며 각 시기 개그 만화의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멍텅구리』의 슬랩스틱과 근대적 웃음의 감각
먼저 1924년 10월 13일 《조선일보》에 연재된 한국 최초의 신문 연재만화 『멍텅구리』를 살펴보자. 연재에 앞서 10월 12일자 신문에는 『멍텅구리』의 게재를 예고하는 광고가 실렸다
그림리야기 『멍텅구리헛물켜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소설도 아니오 넷날리야기도 아니오, 자미스러웁고, 우습기로만 주댱을 삼아, 그림으로써 리야기를 하고, 리야기로써 그림을 그린 것이 올시다. 매우먼적 발달되야다는 서양의 신문으로 보아다 이 그림리야기라는 것은 시작된지가 그닥지 오래지 안치만은 어느 나라에서든지 독자라부터 매우 만흔 환영과 큰 갈채를 바든 까닭에, ··· 그리하야 최근 수년이래로는 일본에서도 대신문사 사이에 이 『그림리야기』의 경쟁이 일류대유행이 되야 잇스며, 이번에 우리 신문에 시작되는 『멍텅구리 헛물켜기』라는 그림리야기도 실로 세계 대류행의 한가지로, 조선에서만 드러내는 그림야기로는 실로 처음 되는 것이올시다.[3]
서양신문에서 시작된 지 그다지 오래지 않았으나 일본에서도 신문사 사이에 경쟁이 유행하는, 실로 ”세계 대류행“의 한 가지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신문 산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상품으로서의 만화, 더 정확하게는 신문 만화의 코믹 스트립(Comic strip)이라는 형식이다. 부연하자면 조선일보에서 근무했던 김을한(金乙漢)(1906~1992)의 증언에 따르면 『멍텅구리』의 원형은 다름 아닌 미국의 코믹스트립 『지그스와 매기(Bringing Up Father)』였다.[4] 그렇다면 『지그스와 매기』는 어떤 만화인가? 1923년 번역된 이후 전후까지 일본의 최장 연재만화로 기록되며, 무엇보다 1890~1900년대 미국 코믹스트립이 창조한 시청각 만화(audiovisual comics)형식을 일본 만화에 확산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작품이다. 이때 시청각 만화란 말풍선 유무를 넘어 정지 이미지에서 운동 이미지로, 침묵에서 소리로의 이행으로, 근대의 시청각을 둘러싼 철학적·기술적 혁명의 산물이다.[5] 우리는 이로써 『멍텅구리』의 네 칸 형식과 슬랩스틱이 촉발한 웃음을 이해할 단서를 얻게 되었다. 『멍텅구리』가 도입한 네 칸 만화는 단순히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대 독자들이 『멍텅구리』를 통해 경험했을 즐거움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후대의 제한된 독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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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매체와 개그 만화의 재구성: 『멍텅구리』에서 병맛 만화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