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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Jun 05. 2018

호크아이 Vol2 소소한 사건들




 마블 코믹스의 ‘어벤전스’를 현대판 신화라 가정해보자. 신에게 바쳐진 ‘만신전’에 누군가를 추방한다면 어떤 슈퍼히어로가 될까? 단도직입적으로 능력의 측면만으로 한정해보자. 슈퍼 히어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자다. 신적인 존재인 ‘토르’, 또 다른 종으로 진화하는 ‘헐크’, 비록 인간의 육체를 가졌지만 신적인 금속 육체를 부여 받은 ‘아이언맨’까지. 다른 슈퍼 히어로도 정도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인간의 육체를 넘어서는 통과의례를 경험한다.

 단, 호크아이만은 예외다. 그는 그저 활을 잘 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래서 호크아이는 천상계 어벤전스의 세계에 속하지만, 인간계 즉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 루크 케이지가 활동하는 디펜더스 세계에 보다 적합한 인물처럼 보인다. <호크아이 VOL2>의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호크아이가 뉴욕 빈민가 빌딩에 살게 된다면, 그리고 러시아 마피아 건물주가 퇴거를 통보한다면.

 이제 도시라는 공간은 <호크아이 VOL2>의 서사를 조율하고, 신에서 인간으로 퇴락한 호크아이를 창조한다. 이 도시는 시티 뮤직의 세련된 감성의 도시도, 갱스터 영화에서의 ‘위험하면서도 슬픈 상상의 도시’도 아니다. 프레임과 프레임, 점과 선으로 연역되는 기하학적 공간이다.      



도시, 빌딩, 프레임의 세계

 <호크 아이>의 사건은 뉴욕 특히 주인공이 거주하는 빌딩을 중심으로 발생한다. 여기서 빌딩은 중요하다. 서사뿐만 아니라 작품의 작화를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호크아이 VOL2>의 속표지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빌딩이 장면 전체를 빈틈없이 메운다. 빌딩의 입면. 직사형의 창문과 창틀 그리고 수직으로 상승하는 사다리까지. 빌딩의 형상은 프레임의 향연이다.


빌딩이 배경인 <호크아이 VOL2>는  칸과 프레임을 강조한다.



프레임에 관한 관심은 #6의 도입부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재현된다. 페이지에는 균일한 직사각형 칸이 블록처럼 쌓여 있다. 잘게 분절된 칸은 전경, 중경, 원경을 포함하는 다층적인 정보보다는 세부적인 특정 정보를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어지럽게 얽힌 전선과 초조해 보이는 인물들의 표정.

 그런데 자세히 들여보면 이 일련의 칸들은 일반적인 클로즈업과는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클로즈업은 인물의 미묘한 표정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도입부 클로즈업은 이 같은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정보의 많은 영역을 잘라내고, 그래서 그것은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 차라리 은폐하는 것에 가깝다.



#6 도입부 : 카드 게임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는 작화뿐만 아니라 이후 서사 방식을 예고한다.



 #6 도입부 페이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페이지에는 칸이 부재한 영역이 다수 존재하는데 이는 마치 완성되지 못한 채 카드 게임을 보는 것 같다. 칸의 정보가 불완전하듯, 칸의 배열 역시 불완전하다. 이상하게 들리지 모르지만 이 같은 불완전성은 오히려 매혹적인 게임의 초대장으로 기능한다. 도입부는 앞으로 전개될 서사의 방식을 말 그대로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후 서사는 선형적 시간 구성을 택하지 않는다. 12월 18일 화요일, 12월 13일 목요일, 12월 17일 월요일과 같이 나열하며 시간을 카드처럼 뒤섞어버린다.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작위로 던져진 카드, 지연된 시간을 끈기 있게 모아 의미를 채워 넣어야만 한다.



개의 감각을 재현한다면

 슈퍼 히어로 만화는 깊은 심도, 극적인 구도, 과장된 인체묘사와 같은 특성을 공유한다. 그러나 <호크아이>의 경우 이러한 전형적인 작화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여기에는 ‘데이비드 아자’의 작화와 ‘맷 홀링스워스’의 채색에 힘입은 바가 크다. 두껍고 검은 윤곽선과 음영이 제거된 평면 그리고 미묘하게 배합된 보라색. 이것은 그 자체로 신화의 세계에서 인간 세계로 추락한, 그것도 대도시의 고단한 일상에 지친 소시민적인 영웅의 자기반영이다.


두꺼운 윤곽선과 보라색의 색조는  고단한 일상에 지친 소시민적인 영웅의 자기 반영이다.



그렇다고 <호크 아이 VOL2>가 단순히 도시의 뒷골목만을 배회하는 작품만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호크아이 VOL2>는 보다 야심적인 만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양식화된 표현을 더욱 추상화하여 자연을 기호로 변형시켜 현실을 다른 차원의 세계로 이동 시키는 것이다.


 이 모든 실험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호크아이 반려견 ‘럭키’의 감각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개의 시각, 후각, 청각을 만화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작화가 ‘데이비드 아자’의 지적대로, 만화는 일반적으로 칸을 통해 인간의 시각을, 말풍선을 통해 인간의 청각을 재현했다. 이러한 이유로 개의 감각의 재현은 당연히 전통적인 만화 방식과는 다른 모습이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도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은 개의 세계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크아이 VOL2>는 그래서 우회로를 택한다.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무리하게 재현하기보다 오히려 극단적으로 나아가 개의 감각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한다.     


 #11의 에피소드를 보자. 개 ‘럭키’는 계단을 통해 건물 아래로 내려간다. 균일한 직사각형 칸이 차례로 나열되어 있고, 그 칸에는 각 거주자의 대문과 그 곳을 지나치는 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시각으로 구성된 세계의 모습이다. 하지만 칸 너머 페이지의 공간에는 다른 세계 즉 개가 경험하는 세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호크아이 VOL2>는 개의 감각을 점,선, 면과 같이 기하학적 재현한다.



 개의 인식과 감각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첫째 건축 설계도면을 연상시키는 디자인과 레이아웃. 직선으로 구성된 평면의 공간은 개가 인식하는 총체적 세계를 의미한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개의 세계를 인간의 넘어서는 다채로운 감각으로 재현하기보다 오히려 개의 본성과 대조되는 수학적 개념인  연장의 속성, 즉 공간을 차지하는 속성으로 구성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연장의 개념에는 x,y 좌표가 암시하듯 운동과 정지의 가능성이 주어진다. 그래서 <호크아이 VOL2>은 둘째 방법으로 기하학 속성의 연장으로 점, 선, 기호로 구성된 다이어그램의 이용한다. 개의 후각, 청각과 같은 보다 국지적인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서 기존의 드로잉이나 말풍선 대신 선과 아이콘으로 이뤄진 다른 ‘시각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가령 개가 후각으로 인간을 인식하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개가 문을 지나 거주자의 냄새를 맡을 때마다 각 인물의 얼굴 아이콘이 윈도우 창처럼 칸 위에 뜬다. 그리고 얼굴 아이콘을 중심으로 선이 확장되면서 다시 여러 아이콘이 생성되는데, 각 아이콘에는 인물의 특정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개가 ‘호크아이’의 냄새를 맡는다 가정 해보자. 호크아이 아이콘이 발생할 것이고 다음으로 그가 활을 쏘고, 뜨거운 커피를 즐겨 마시며, 개 자신에게 밥을 준다는 의미의 아이콘이 추가 확장될 것이다.     


 어벤전스가 아닌 호크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전처럼 세계를 무대로 빌런과 대적하진 않을 것이다. 대신 세계의 한 귀퉁이에서 조금 더 작은 악과 대치한다. 이 공간은 프레임으로 구성된 세계다. 빌딩, 창문과 같은 직시각형 이미지가 반복되고, 이를 담아내는 칸 역시 프레임의 흐름에 종속된다. 더 나아가 프레임의 세계는 기하학 구조의 세계로 변모하기도 한다. 개 ‘럭키’의 시각으로 재현된 세계는 설계도면 같은 평면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의 물체는 선과 기호를 통해 운동한다. 세계는 점점 추상화 되고 마침내 점, 선, 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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