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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Aug 31. 2019

이직, 실패의 기록

포지티브 이직과 네거티브 이직


개발자로 같은 회사를 9년째 다니고 있다.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많은 일이 없을 수 없는 세월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를 만족해서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기 회사에 백 프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연봉 많이 주고 발전의 기회가 있고 이름 있는 회사에 대한 이직은 모든 직장인들의 소망이다. 나 역시 그런 소망을 꺽지 않고 여러 번 도전했고 모두 실패해서 이곳을 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이직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고 그렇진 않다. 수많은 이직 시도 끝에 약간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마인드도 바뀌어 회사 잘 다니고 있다. 


이제부터 이직에 실패했던 기록에 대해 써보려 한다. 그리고 내가 얻은 해답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어떻게 보면 개인적으로는 부끄러운 얘기일 수 있지만 나에게 씁쓸한 열매가 다른 사람에게 달콤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적어본다. 



1. 회사에서의 부적응

첫 번째 회사를 2년 5개월 정도 다니고 두 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다. 나이도 직급도 막내로 왔다. 솔루션을 파는 회사이고 개발자로 입사했다. 연봉은 이전 회사보다 소폭 올랐다. 


솔직히 난 개발자로서 수준이 낮았다. 모르는 게 많았고 잘 못했다. 성격도 모 나있어 좋은 동료라고 말 못 한다. 업무도 별로고 성격도 별로인데 사실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스스로는 그걸 잘 못 느낀다.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연봉은 작고 팀원들은 꼰대이고 다들 성격도 괴팍하다고 느꼈다. 솔루션을 판매하는 회사이다 보니 고객사와 갑을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도 상당했다. 


회사에서 부적응자가 되어갔고 팀장도 관심 사원으로 점찍었다. 단지 그때 잘리지 않은 이유는 타고난 성실성(?)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하기도 싫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맡은 업무는 성실하게 해내는 스타일이라 데리고 있기에는 부족하지만 자르기에는 아쉬워 안 잘렸던 것 같다.



2. 이직을 시도

회사가 참 싫었다. 일이 싫었고 사람이 싫었다. 항상 낮은 대우를 해주는 팀이 싫었다. 이직용 경력으로 3년만 버티려고 했다. 중간에 스카웃 제의가 두 번이나 들어왔는데 여기서 이룬 게 없다고 느껴져 우습게도 그걸 뻥 차 버렸다. 내 윗사람들이 나가고 책임 있는 위치가 되고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버텨져서 시간이 제법 지났다. 


경력도 쌓이고 나이도 먹었지만 동년배에 비해 낮은 연봉과 일에서 느끼는 한계는 나를 계속 좀먹어갔다. 개발자로서 발전을 느낄 수 없어 이직을 결심했다.



3. 이력서, 그리고 15번의 면접

이직 결심을 하고 몇 년에 걸쳐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뿌렸고 구직 사이트의 이력서를 공개로 돌렸다. 헤드헌터에게 무수히 많은 연락이 왔고 선별해가며 열심히 지원했다. 


그렇게 총 열다섯 번의 면접을 봤다. 그중 최종 면접까지 간 건 한 번이었고 결과적으로 모두 떨어졌다. 



4. 떨어진 기업들에 대한 분석

면접 봤던 회사 리스트


개발자이다 보니 기술 면접을 보는 회사들이 있었다. 내가 대답을 잘 못하거나 기술 테스트를 제대로 못해서 떨어진 건 인정한다. 하지만 무난하게 면접을 봤는데 떨어지는 회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위의 표처럼 떨어진 회사들에 대해 분석을 해 봤다. 혹시 복장이 문제였나 싶어서 옷차림도 적었다. 사복을 입기는 했지만 세미 정장에 가까운 사복을 입었기에 막 입지는 않았다.


탈락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적어낸 연봉이 높았다거나 나이가 많아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었다면 연봉은 협상을 했을 것이고 나이가 많은 게 문제였다면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때는 무난히 면접 본 회사도 탈락한 이유를 잘 몰랐다.



5. 이직 준비에서 오는 피로감

이직 준비는 굉장히 힘들다. 적합한 회사를 선별하고 이력서를 보내고 서류 면접이 통과하면 면접 일자를 조정하고 다니던 회사에는 몰래 휴가나 반차를 내야 한다. 면접 보기 위해 준비를 하고 긴장을 하고 면접을 보고, 짧지 않은 과정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탈락되었다는 연락을 받거나 아예 연락조차 없으면 자존감이 심하게 무너진다. 내 문제는 아니었을 거라 자위하며 조금 회복되면 중독자처럼 또 회사를 검색하게 된다.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으니 회사에는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일은 하기 싫고 저 인간들 조금 있으면 안 본다는 마음뿐이고 면접 날짜 때문에 휴가나 반차 쓰기 위해 눈치는 봐야 하고 생활이 말이 아니게 된다. 당연히 업무 성과가 좋을 리도 없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인 출판 쪽 IT 담당자 채용 공고가 올라온 걸 보게 되었다. 수많은 탈락 속에서 지쳐갔고 자존감도 많이 훼손되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에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기마저 떨어지면 더 이상 답이 없다 판단하고 과감히 이직을 포기하고 지금 회사나 열심히 다니기로 다짐했다.



6. 마지막 도전, 그리고 최종 면접에서 탈락

책을 좋아하다 보니 출판사 쪽에서 꼭 한번 일해보고 싶었다. 집과 가까운 출판사에서 IT 담당자를 채용 중이었다. 딱 한 명 뽑는 자리인데 기술 면접도 통과해 임원들 앞에서 최종 면접까지 봤다. 최종 면접까지 본 건 처음이라 합격에 대한 기대감에 심하게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채용 담당자분의 정중한 탈락 메시지를 보며 고마우면서도 심하게 허탈했다. 그 많은 도전이 다 실패로 돌아갔으니, 거의 산 정상에서 미끄러져 버렸으니 허탈하고 힘 빠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이제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7. 이직을 포기하자 생기는 변화

이직을 포기하니 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다니기 싫으면 그만두거나 아니면 제대로 다녀야 한다. 그만둘 수 없으니 제대로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회사 생활이 조금씩 달라졌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회사가 긍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긍정적으로 보이니 직장 상사와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고 후배들과도 잘 지내려고 했다. 업무에서는 적극성을 띠어갔고 새로운 기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직 시도 전/후로 나눠야 할 정도로 회사 생활이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회사는 그대로인데 스스로 발전하고 있었다.



8. 시간이 지나서 얻은 깨달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난 포지티브 이직이 아닌 네거티브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는 이직이 아닌 부정적인 마음으로 이직을 준비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떤 회사에서도 합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네거티브 이직을 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회사가 도저히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막장이라면 떠나는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부정적인 마음으로 이직하려는 인과 관계를 파악해 봐야 한다. 자신을 부정적으로 이끈 게 외부 요인인지 내부 요인인지, 해결 가능한 것인지, 불가능한 것인지 말이다. 난 업무와 사람과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네거티브 이직을 준비한 것인데 업무는 내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고 사람은 나의 모난 성격 때문에 트러블이 있었던 것이고 회사는 다른 회사도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네거티브 이직의 쳇바퀴

나 : 부족한 업무 능력 -> 회사에서 낮은 대우 -> 불만이 생기고 팀원들과 불화 발생 -> 네거티브 이직 준비
면접관 : 애매해 보이는 지원자와 면접 -> 업무/인간적인 부분에서 모자람 -> 탈락
나 : 탈락의 원인을 파악하지 못함 -> 회사에 집중 불가 -> 불만 증폭 -> 변화 없이 다시 네거티브 이직 준비


부정적인 요인에 내 문제가 많이 끼어 있었다. 부정적 요인을 긍정적으로 돌려놓지 않고 부족한 상태에서 이직을 하려 했으니 면접관들은 경력에 비해 부실하고 문제 있음을 제대로 꿰뚫어 본 것이다. 사실 꿰뚫어 볼 것도 없이 그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볼 것 없이 탈락이다. 네거티브 이직의 원인은 나에게 있기에 면접 내내 자신감도 없고 대답은 얼버무리고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답변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열다섯 번의 면접과 열다섯 번의 탈락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요즘 후배들에게는 포지티브 이직을 하라고 말한다. 내가 더 이상 성장할 게 없고 바꿔볼 게 없다고 생각되면, 누가 싫고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더 발전하고픈 마음이 생길 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직을 하라고 말이다. 좋아지겠다는 열망을 담아서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말해준다. 포지티브 이직을 하려는 사람은 아마 이미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업무적으로 기술적으로 인간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은 어떤 회사에서든 쉽게 뽑히고 옮겨 가서도 잘할 것이다.


꼭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직을 해야 한다. 나를 부정적으로 이끈 요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떠나려 하면 이직 확률도 낮아지고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부정의 요소가 다른 회사에서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더 독한 경우가 있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때마다 매번 이직을 택할게 아니라면 현재의 회사에서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9. 후기

이직은 포기했다. 나이가 많아서 이직이 쉽지도 않지만 아직 회사에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오래 다녀서 편하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에 박수를 쳐주면 쳐줬지 막지는 않으니 결코 나쁘지 않은 회사다. 짜증 나는 것도 있고 문제도 있지만 어떤 회사든 이 정도 문제는 있을 것이다. 어차피 다른 회사를 가도 사람 사는 거, 일 하는 거 다 비슷비슷하다. 좋은 회사에 갔다고 좋아지지도 삶이 확연히 나아지지도 않는다. 연봉 많이 받으면 그만큼 더 일해야 한다. 새로운 곳에서는 또 새로운 고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니 이전보다 조금 더 좋아졌다. 회사에서 욕심도 제법 생기고 노력이란 걸 하고 있다. 그때도 이랬다면 최소 한 두 군데는 합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무의미한 상상도 해본다. 이 회사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다른 회사로 갈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여기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렇게 믿고 내 일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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