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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Jan 14. 2020

직장 내 사과의 방법

빨리, 무조건, 됐다고 할 때까지

어제 외근을 다녀온 팀 후배 A가 아침부터 얘기 좀 하잔다. 커피숍에 가서 얘기를 나눠보니 잔뜩 화가 나 있었다. 화가 난 이유는


1. A는 어제 B 팀장과 외근을 갔다.

2. 같은 팀의 막내인 C는 사무실에 있었다.

3. C와 관련된 작업이 잘 안돼서 A가 수정 요청을 했다.

4. C가 전달해준 파일에 오류가 있어 다시 요청했다.

5. C가 테스트를 제대로 안 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그래서 작업을 못 끝냈다.

6. 사실 A보다 C가 외근을 갔어야 하는데

7. B 팀장도 이 일 때문에 화가 났다.

8. 다음날 C는 누구에게도 죄송하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듣고 보니 화가 날만하다. 너 때문에 선배들이 이렇게 고생했는데 한마디도 안 해? 그거 하나 똑바로 테스트 안 하고 보내서 이렇게 고생시켜? 너가 갔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가서 이렇게 고생했는데 미안하지도 않니? 

우리 팀 인원만 있었다면 좀 나은데 다른 팀 팀장도 같이 고생했는데, 여기저기서 두루두루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이다. A 후배는 C에게 직접 얘기하려다 나에게 먼저 얘기한 거다. 현명한 선택이다. 내가 중재자 역할을 맡기로 했다. 


C를 불러서 상황에 대해 얘기를 했다. 그렇게 까지 화낼 일인 줄 몰랐다고 한다. 음... 세대가 달라서 그런 건가? 내가 꼰대라 그런 건가? 누군가 나 때문에 고생했다면 한마디 정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C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해해 보기로 하고 차분히 설명을 했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얘기를 하다 보니 길어졌지만 C도 수긍하고 A와 B팀장에게 음료수 하나 갖다 주면서 사과를 했다. 후배가 그렇게 사과하는데 안 받아줄 선배는 없다. 그렇게 별일 없었다는 듯 지나갔다. C가 다음날 고생하셨다, 죄송하다 한마디만 했어도 이렇게 감정 상할 일 없었는데.


직장 내에서의 사과는 중요하다. 오랜 시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감정 틀어지면 나만 힘들어진다. 요새는 꼰대 이슈 때문에 선배가 후배한테 별 얘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렇게 감정만 상한 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사과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직장이라는 특수성-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관계 때문에 사과는 금세 받아들여진다. 내가 생각하는 직장 내 사과의 법칙에 대해 기술해 본다.




1.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하자

독일은 유태인들에게 그들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과한다고 한다. 그래도 유태인들 안 받아준다. 사과받아버리면 그들이 잘못했고 사과했고 받아줬고 이렇게 끝나버리는 역사가 되니 끝까지 안 받아준다. 

사과는 상대방이 그만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직장 안에서의 사과는 쉽게 받아들여진다. 기억해야 할 역사도 아니고 영원히 볼 사람도 아니고 또 빈정 상해 있으면 서로 피곤하기에 적당히 사과하면 곧 받아준다. 진심으로는 안 받아줘도 겉으로는 쉽게 받아준다. 됐다고 할 때까지 몇 번이고 사과하자. 사과도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세 번은 쉽다. 상대방의 진심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지만 몇 번이고 사과하는데 꽁해 있을 사람은 없다. 



2. 빨리 사과하자

사과는 타이밍이다. 늦게 할수록 효과는 떨어진다. 상대방이 나에게 나쁜 감정을 키우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최대한 빨리 사과하자. 요즘 전화 안 쓰는 직장인 있나? 당장 만날 수 없다면 전화 통화로 사과하자. 요즘 카톡 안 쓰는 직장인 있나? 단, 메신저는 뉘앙스 전달이 어려워 효과가 떨어진다. 그래도 전화가 부담되면 1차는 카톡으로 사과하고 2차로 직장에서 만나 직접 사과하자.



3. 먹을 거라도 사서 사과하자

가볍게 커피라도 한잔 사주면서 사과하자. 먹을 거 앞에 호랭이 없다.



4. 긴가민가 하면 그냥 사과하자

이등병 때 들었던 명언이 생각난다. '니가 뭔가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그냥 하지 마' 아직 군대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등병에게 할지 말지 고민이 생긴 다는 건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높기에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평타, 중간은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얼마나 많은 고민을 깨고 해 버렸던가. 

사과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다면 그냥 해버리자. 상대방이 사과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된 거고 사과받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그럼 또 된 거다. 어쨌든 애매하면 사과하는 게 나도 속편 하다.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거 자체가 에너지 낭비고 시간 낭비다.



5. 난 그렇게 생각 안 했는데 상대방이 오해하는 거면 상대방이 맞다, 또 사과하자

그럴 때가 있다. 내 생각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오해하고 있는 경우. 그렇게 해서 오해가 생겼다면 그건 무조건 내가 잘못한 거다. 상대방이 오해를 하게 행동한 내가 잘못이지 내 마음과 다르게 받아들인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다. 무조건 상대방의 생각이 맞다. 속 편하게 사과하자.



6. 싫은 사람한테도 사과하자

누구나 직장 내 싫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도 나를 싫어하고 있을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한테 사과하는 게 제일 어렵긴 하다. 싫은 사람한테도 먼저 사과하고 그 인간보다 쿨한 내 모습을 보여주자. 



7. 사과 앞에 후배는 없다

선배나 동기한테 사과하는 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후배한테 사과하는걸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그냥 넘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뜨거운 여름날 호프집 먹태처럼 질겅질겅 씹히기 딱 좋은 선배의 모습이다. 후배한테 잘못한 게 있으면 무조건 사과하자. 오히려 선배, 동기보다 더 민감하게 사과해야 한다. 후배는 아랫사람이 아니라 직장 동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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