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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Jan 29. 2020

주니어 당신, 안녕한가요?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은 있다

회식이 있었다. 회식장소 고깃집. 특이하게 반지하 방이 있다. 메인 회식 장소와 구분되는 공간인데 바퀴벌레처럼 빛과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 눅눅한 습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지하 방으로 스며들었다. 맞은편은 예약되어있는 자리라고 앉지 말란다. 방에서 조용히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공간을 쉐어해야 하나보다. 오붓함은 기대 말자. 술과 고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맞은편 예약자들 여덟 명 정도가 들어온다. 저기도 회사 회식을 온듯한데 전부 여성들이다.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니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그런데 제일 앞장서서 들어오는 한 사람이 무척 낯이 익다. 순간적으로 기억 회로를 돌려봤지만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그 얘기인즉슨 만난 지 오래된 사람이란 뜻이다. 어디서 만난 사람이더라? 기억 속의 폴더를 하나하나 뒤져본다. 노화된 머릿속 검색엔진이 열심히 일을 한다. 어렴풋이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회사. 전 회사 사람.' 


실마리가 잡히자 조금 더 구체적인 기억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나의 첫 회사에서 다른 팀에 인턴으로 들어왔던 친구다. 그 팀에서 남녀 인턴을 한 명씩 뽑았고 그중 한 명만 정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했었다. 당시에  퇴사자가 워낙 많아서 이 사람이 정직원으로 뽑혔는지 퇴사했는지 최종적으로 어떻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구체적인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 아마 퇴사했던 것 같다. 그때는 팀이 달라서 얘기는 거의 못 나눠 봤다. 그 팀 분위기가 워낙 강압적이라 갈굼도 많이 당하고 질책도 많이 당하던 모습들이 떠오르는데 그러면서도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던 친구다.

들끼리 얘기하는걸 살짝 들어보니 그녀는 팀장인듯싶다. 팀장이 되어 팀원들을 이끌고 회식을 하러 온 것이다. 8명 정도의 팀이라면 작은 팀은 아닌데 주니어에서 팀장까지 잘 성장한듯하다. 벌써 팀장을 하고 있단 사실에 질투의 마음도 들었지만 그보단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에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혹시 전에 그 회사 다니지 않았냐고 물어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그녀는 전 회사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도 있어 말을 걸진 않았다.


음날은 오후에 외근을 나갔다. 2주 연속 금요일 외근이다. 작업이 잘되면 바로 퇴근해서 불금을, 작업이 잘 안되면 불맛을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은 항상 전자이지만 실은 매번 후자다. 도착하니 업체 담당자분이 누군가와 회의 중이다. 잠시 대기하고 있었다. 담당자분의 큰 소리가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니 회의가 아니라 담당자분이 누군가를 질책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담당자분이 시니어, 질책당하는 친구가 주니어다. 점검을 시켰는데 주니어가 내용을 정확히 모르고 있었나 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 같다. 제법 혼을 내고 담당자분이 우리에게 와서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줬다. 조금 전과는 다른 사근사근한 목소리. 적응 안된다. 

주니어 친구도 우리 옆에 앉아서 뭔가를 하고 있다. 여기는 pc에서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는 것 같은데 효율이 잘 나올 리가 없다. 뭘 알고 찾는 모습도 아니다. 혼도 나고 부끄럽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져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못 잡는 모습, 멘탈이 많이 손상당한 듯 보인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계속 신경 쓰인다. 주니어는 결과물을 들고 몇 번 담당자분을 찾아갔지만 계속 퇴짜 맞고 욕만 들어먹고 온다. 요즘도 저런 회사가 있나? 좀 심하게 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괜히 내가 민망해진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으니 나도 후배들한테 저랬던 적이 떠올라 지나친 비난은 삼가기로 했다.

어느덧 다섯 시가 가까워 온다. 우리 작업도 끝나간다. 역시나 희망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30분 만에 끝날 걸로 예상했는데, 불맛까진 안 보고 불향 정도만 맡고 간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오니 담당자 분도 톤이 누그러졌다. 어쨌건 주니어 친구도 시간 내에 맡은 업무를 끝내야 한다. 담당자분이 주니어에게 말하길 모르면 사수한테 전화해서라도 물어봐야지 멍 때리고 있지 말라고 말한다

아하! 담당자분의 의중을 알겠다. 주니어가 모르는 건 당연하다. 그건 차차 배워가야 한다. 하지만 모르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짧은 지식으로 인터넷 뒤져봐야 답 안 나온다. 주니어는 본인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인터넷에는 답이 없다. 본인 사수한테 물어봤다면 문제 해결에 한결 쉽게 다가갔을 것이다. 주니어는 본인이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아니면 사수에게 미안해서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에 전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담당자분은 주니어의 그런 잘못된 생각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답은 알려주지 않고 물고기 잡는 법만 계속 강조한 것이다. 모르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고 누구에게 물어보는 게 잘못된 게 아니다. 방법은 거칠었지만 주니어 친구도 깨닫는 게 있지 않았을까. 깨닫지 못했다면 뭣 같은 회사 때려치워야지가 되는 것이고 깨달았다면 조금 성장하는 것이고.

 

끝내고 나오니 어둑어둑하다. 겨울은 금방 어두워져서 별로다. 나의 주니어 시절은 어땠었나? 누구에게도 얘기하기 싫은 흑역사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제 그런 역사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좋은 밑바탕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주니어 시절은 힘들고 답답해도 그런 시절 없이는 성장도 없다. 모두가 아는 진리인데 또 그게 내 얘기가 되면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게 우리네 인생. 상념을 뿌리치고 퇴근길 열차에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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