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뜨거웠던 어느 날

이제는 가을이 온 것 같다

by 심색필 SSF

-짹.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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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고 해가 뜨면 언제나처럼 새들이 가장 먼저 수다를 떨었다. 산비탈길에 있는 넓지만 저렴한 2층집. 귀가하는 모든 순간이 수련과도 같았던 여름날의 끝에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탁. 타닥. 탁. 타닥.-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다이빙했던 어젯밤을 후회하며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손으로 노트북을 두드렸다.


-탈. 탈. 탈. 탈. 탈.-


그 어떤 음악도, 그 어떤 소음도 흘러나오지 않는 집에서 유일하게 내게 말을 거는 녀석은 선풍기뿐이었다. 이전 집에서부터, 그 전전 집에서부터 옆에 꼭 붙어 앉아 내게 빨리 일 하라며 잔소리하던 녀석은 오늘도 어김없이 내게 늦장 부리지 말라며 쉬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하아... 돈도 안 되는 거 언제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나...”


옆에 앉아서 쉬지 않고 열기를 가라앉혀주는 녀석이 있었음에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화기가 가득 차있었다.


“도대체 언제 성공하냐?”

“저번에 좀 나아졌다 하지 않았어?”


굳이 스트레스받아도 되지 않을 그 가벼운 말에 쉽사리 중압감

을 느꼈고, 지나간 세월 동안 이룬 게 없다는 허망함을 느끼고는 했다.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말인데.

-빵!-


“하아... 제발 운전 좀... 제대로 하자.”


피곤한 날에는 유독 운전을 이상하게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난다.


“3시간 반... 언제 가냐?”


오랜만에 내려가는 대구 출장이었다. 이전에 노인운동사업을 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갔던 대구. 코로나 이전의 그때부터 대구에 일이 있어 내려갈 때면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햄. 오늘은 시간 좀 개안나?”
“내 오늘 좀 바쁜데.”

“그래? 어쩔 수 없지...”
“내 오늘 니랑 술 마셔야 해서 좀 마이 바쁘다.”
“말을 빙빙돌리노.”

“오랜만에 봤는데 오늘 맛있는 거에 술 한잔 시원하게 빨아야지.”

“좋지.”


스키장에서부터 함께 수많은 시간을 보냈던 형이었다. 가장 철없을 시절에 평생의 안주를 키웠던 공간에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그때의 추억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해서인지 우리는 그 잠깐의 2달을 인연으로 13년의 시간을 공유하게 되었다.


“언제 한 번 또 여행 가야지?”
“이번에 금마 시간 된다더나?”

“뭐. 가면 간다카지 않겄나?”

스키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낸 다른 선배와 셋이서 1년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났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한 번씩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민낯을 보여주며 우리는 종종 철없는 그때의 시절로 돌아갔다. 그래서였을까? 얼굴을 볼 때면 제정신일 때보다 반쯤 정신이 나가있을 때가 더 많았다.


“야. 니 진짜 오랜만이네. 결혼식 이후에 처음이가?”
“그렇지. 형수. 얼굴 좋아졌네? 신혼생활 너무 신나게 보내는 거 아이가?”
“우리야 뭐 재밌지. 항상.”


절대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았던 형은 좋은 형수를 만나 결혼을 했고 자연스럽게 형수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아졌다.


“야. 이번에 우리 여행 가려는데 니도 같이 갈래?”

“아. 좋지. 안 그래도 휴가 생각 중이었는데 같이 가자.”


그렇게 1년, 2년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그간의 1,2년 삶이 너무 고돼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난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그래서 이번에 대구 왜 왔는데?”

“아... 다른 게 아니라 이번에 나 이번에 프로젝트 하나 준비 중이다.”

“뭔 프로젝트?”


오래전에 한 번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폐광촌 도시재생 프로젝트. 산 위에 있는 버려진 탄광촌을 관광지로 만들려는 프로젝트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말 발에 땀이 나게 움직였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미끄러졌다.

“손발에 땀이 많아서 그런가? 자꾸 미끄러지네.”


나는 손발에 언제나 땀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쉽사리 미끄러지고는 했다.

“긴장하지 마.”

“초조해하지 마.”

“급해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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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해주는 격언은 그저 마음을 잘 먹으라는 것뿐 구체적인 대안을 내어주지 않았다. 인생의 답을 누군가 대신 내려주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래도 뭔가 명확한 목표가 보였으면 했다. 난시가 보는 세상처럼 흐리멍텅하고 불확실한 시야에서는 언제나 그 결승점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짠.-


“야. 이거 잘 되면 개안캤는데?”
“그니께. 잘 되게 조금만 도와주소.”

“야. 니 접대하러 이까지 왔나?”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라. 내 이번건 살게.”

“돈 많나?”

“없지.”

“크크크. 그런데 뭔 술은 산다카노?”
“말했잖아요. 내 오늘 접대하러 왔다고.”
“야... 근데 니는 직업이 뭐가? 하는 게 왜 이리 많은데?”

종종 듣는 이야기였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일까? 내 직업은 무엇일까? 뭐 이것저것 하는데 하나같이 다 불안했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것저것 다 하는 것 같은데 정말 잘하는 게 무엇인지 정말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고르지 못한 느낌. 정처 없이 우주를 떠도는 인공위성에서 떨어져 나간 작은 부속품 같은 느낌이었다.


“뭐... 오늘은 기획자로 왔지. 일 시작하기 전에 이것저것 다 알아봐야 안 하겠나?”
“그래? 그래도 니 이것저것 해서 자주 본다. 야. 이전에는 진짜 자주 왔다 아이가?”

“그때는 진짜 찐으로 기획자였고. 지금은 반반.”

“바쁘나? 술 좀 따라도.”

“미안합니데이.”


어디 하나 소속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런 느낌들이 좋았다. 일을 만들어가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시작하면서 분에 넘치는 꿈을 꾸는 것이. 체력이 부치기 시작하면서 이런 삶이 조금은 버거웠지만 그래도 이런 순간들이 너무 좋았다.


“날씨 너무 좋다. 이제 여름 끝난 것 같다.”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의 여름도 고집을 꺾고 조금은 누그러진 듯했다. 빳빳하게 내리꽂던 햇빛은 망가진 콘센트에 코드를 꼽은 가습기처럼 비를 내릴랑 말랑하는 구름에 조금은 유연해졌고 전원이 꺼진 밤에는 조금은 스산하게 바람을 불어주기도 했다.


“아우... 피곤하다.”

-털썩.-


이전에 누가 누웠는지도 모르고, 그 위에서 무슨 짓을 한지도 모르는 이름 모를 모텔의 침대 위에 피곤한 몸을 던졌다. 에어컨으로 냉각시킨 차가운 이불 위로 살갗을 비비며 켜켜이 쌓여있던 하루의 피로를 조금씩 털어내었다. 렌즈를 빼고 불을 끄자 눈앞에 새까만 천장이 더 흐릿하게 들어왔다. 시원한 이불 때문인지 하루가 끝났다는 해방감 때문인지 흐릿하게 보이는 천장이 그림처럼 보였다.


“야! 이거 이렇게 하면 다 망치잖아. 하여간 말을 안 들어. 말을.”


어릴 적 파스텔로 선을 그은 스케치북 위로 나도 모르게 몇 번 손을 가져간 적이 있었다. 망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저 그렇게 비비는 게 맞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시력이 떨어지자 눈앞의 세상이 그때의 망가진 파스텔 그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형색색의 파스텔로 선명하게 스케치를 끝냈음에도 꿋꿋이 선생님과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어지럽힌 그 흐리멍텅한 그림들. 인생의 선배들을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살다가 목표를 상실한 듯한 시점. 눈가에 가득하게 눈물이 고여야지만 볼 수 있는 그 멍울진 세상. 안경을 벗고 렌즈를 빼면 내 앞에 피어난 세상은 언제나 그런 식이 었다.


-위이이이잉.-


「 담주에 서울 올라가면 연락할게 」


머리맡에 둔 핸드폰의 진동에 눈을 뜨자 어두컴컴한 모텔의 창가 블라인드 뒤로 새하얀 태양빛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숙소 밖을 나오자 지나치게 선명한 하늘이 보였다.


“가을인가 보네.”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한 파란 하늘에 하얀색 파스텔로 분칠을 한 듯한 희끄무리한 구름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마음 한편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 그래. 다음에 서울 오면 연락하소. 주변에 생각 있는 사람들 있으면 잘 전해주고 」

「 당연하지 내 꼭 전달할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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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웅.-


차에 시동을 걸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바람이 불어와서인지 이상하게 상쾌했다. 분명 아직은 흐릿했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지만 지금의 프로젝트는 불확실했고 명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다. 어제의 그 짧은 술자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거기서 오간 말 때문이었는지 뭔가 후련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니 열심히 산다. 진짜로.”

“열심히야 살지.”

“뭐 조만간 크게 하나 터지지 않겠나?”

“그게 거의 8년째 긴 한데 뭐 어떻게 되겠지.”
“그래도 진짜 잘 버티긴 한다.”

“뒤지겄어. 불안정해 죽겠다. 항상.”

“불확실해도 너처럼 사는 게 훨씬 더 좋다 아이가. 재밌다 아니야?”
“재밌기는 하지.”


몰랐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재미를 잊고 산 듯했다. 흐리멍텅한 세상 위로 다시 파스텔로 선을 그으며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그런 일들. 뜬구름 잡는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파랗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지난 날들. 입으로 볼멘소리를 하고 있어도 사실은 재밌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뛰고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던 건 어쩌면 짜증과 답답함이 아니라 흥분이었을 텐데 말이다. 깎아지르는 경사를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던 그때의 스키장처럼 변칙적이고 위험한 구간일수록 심장이 뛰는 게 더 잘 느껴졌다. 어쩌면 한 치 앞도 예상이 안 되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한때가 아닌 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이이이이잉.-


답답하기만 했던 뜨거운 여름이 끝나가고, 머리를 식히는 바람이 불어오자 손과 발을 적시던 땀의 원인을 깨닫는 것 같았다.


“이제 좀 시원해지려나 보네.”


감사했고 감사한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며 흐리멍텅했던 나의 삶에. 빛 번짐처럼 멍하니 번져있는 나의 시야에. 언제 어디로 불어오고 떠나갈지 모르는 바람에. 어디로 흘러갈지도 모르고 어디에 종착할지도 모르는 지금의 이 순간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도 감사의 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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