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기

2일차

by 심색필 SSF

어떻게 보면 이상형은 일관되었던 것 같다.


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 냉면 같은 여자. 성격은 쿨하면서 하얗고 날씬한 여자가 내 이상형이었다. 원래 가질 수 없으면 더 탐이 난다고 했던가. 사실, 내가 이상형으로 보는 여성들은 사회에서, 남녀관계에서 꽤나 지배적인 존재들이다. 어디에 가나 인기가 있고, 가만히 있어도 매력이 터지는 사람들. 그래서인가 그런 사람들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막상 만나면 한마디도 하지 못할 거면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런 여자들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쉽사리 고백을 하지 못하는 찐따 같은 성격 때문인지 언제나 수동적인 관계만을 이어왔다. 믿기 힘들겠지만 한 번도 고백이라는 걸 해보지 못했기에 그저 좋아해 주는 사람을 좋아했던 관계를 유지했었다.


"생긴 거랑 하는 짓이랑 거리가 머네?"


몸무게 100킬로가 조금 안 되는 에겐남의 성질. 어딜 가서 말을 잘 못하는 편도, 그렇게 내향적인 편도 아니면서 주제에 이상형 앞에서는 언제나 고장이 났다. 지나간 인연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이상형을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네 이상형은 그런 애들이야. 네가 만난 애들.


신기하게도 만났던 친구들은 다들 비슷하게 생겼던 것 같다. 160이 안 되는 키에 작고 귀여운 아이들. 어쩌면 난 길고 마르고 하얀 친구들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어쩌면 내 이상형은 조금 더 작고 귀여운 요들 같은 친구들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연애하는 게 의미가 있나?"


뭔가 조금 더 불타는 느낌으로 사랑을 해보고 싶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한 번 넘보고 싶었고, 다가가지 못할 산이라도 한 번 기웃거려보고 싶었다. 이상형이라는 건 어쩌면 유니콘 같은 애초에 잡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심해와 정글에는 유니콘보다 더 엄청난 생명체들이 살아 숨 쉰다. 유니콘은 애초에 그렇게 특이한 생명체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명체들.


"와... 진짜 내 스타일이다."


길거리를 다니다, 모임을 다니다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볼 때가 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쉽사리 입도 떼어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 나 같은 사람과 엮이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랑을 해보고 싶어졌다. 오를 수 없는 나무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오를 수 있다고 엉겨보고 싶었다. 높은 나무를 타기 위해 매일을 노력하고 있는 느낌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하듯이 이상형을 잡기 위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내가 성장하기 위한 원동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만으로도 누군가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쟁취하기 위해 아마 조금은 더 노력을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싶다.


"미안한데 일단 살부터 빼..."


맞아. 내가 당당해지기 위해서는 조금 더 꾸미고 정진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원래 차갑다. 차가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금은 더 아파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2일차 그림 Copilot_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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