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본 개구리 上
다 싫었다. 모든 것이 별로였다. 머릿속에는 하루 종일 비관적인 생각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왜 세상은 나를 알아봐 주지 않는 거지? 왜 그 흔하디 흔한 행운은 한 번도 내게 찾아와 주지 않는 거지? 하늘에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면,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이렇게 어두운 앞날을 보고도 한 줌의 빛이 되어 나를 찾아와 밝은 미래가 날 기다릴 것이라고 속삭여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길거리에서 ‘도를 아세요?’, ‘혹시 요즘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말이다.
“힘내라. 계속하다 보면 뭐 되지 않겠냐?”
“아니면 그냥 다른 일을 해봐. 뭐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는 없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 오래도록 공부했다. 정말 오랫동안. 남들은 나만큼 공부하면, 나만큼 오래 일을 했으면 모두 다 쉽게 시험에 붙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험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았고, 열심히 하면 결국에는 붙을 수밖에 없는 시험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나한테는 그런 그 이야기가 해당되지 않았다.
“재영아. 이제 그만큼 했으면 너도 할 만큼 했다. 이제 다른 일...”
“하아... 알아요. 근데, 1년만. 딱 1년만 더 해보면 안 될까요?”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방 안에 틀어박혀서 공부한답시고 언제 끝날 줄 모르는 그 생활을 언제까지 할 건데? 이제 일하자. 눈을 낮춰서 일을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꾸준히 하면 나중에 좋아질 수 있어.”
“저도 일 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 절 찾는 데가 없어요. 제가 찾아가도 써주지도 않고요.”
“눈을 낮춰! 그러면! 왜 자꾸 하고 싶은 것만 다 하고 살려고 그래?”
“제가 뭘 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요? 하기 싫은 걸 하려고 지금 이렇게 하기 싫은 공부를 하는 거예요. 세상에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요? 저도 대충 살아도 돈 펑펑 버는 직장 찾아서 인생 즐기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고요.”
“왜 아직도 만화 속에 살고 있니? 이제 정신 차려야 할 거 아니야?”
“그렇게 살고 싶다는 거지. 그렇게 사는 거 꿈꾸지도 않아요. 적어도 남들만큼. 그냥 평범하게 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는 장난감처럼 뇌 빼놓고 그냥 몸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좀 제대로 된 걸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시험만 끝나면 나오는 밥상머리 풍경이었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직감했다. 지금 틀리는 이 한, 두 문제는 사실 내가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허들이라는 걸. 운동을 하다 보면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순간이 온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래도 노력하면 어느 수준까지는 가겠지. 그래도, 하다 보면 일정 수준 이상의 어딘가에는 닿아있겠지. 그러나, 이 생각은 세상에 널려있는 타고난 천재들을 보는 순간 한 줌의 가루처럼 바람에 날려 스러져버린다.
“하아...”
온기를 잃은 식탁. 김치와 오징어채. 김. 식은 밥과 식은 국. 다들 입이 짧은 탓에 많은 반찬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온기 하나 없는 이 밥상은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어렵사리 인정했다. 지금 내 상황과 내 재능의 한계를.
“저 이제 공부 그만할게요.”
다들 답이 없었다. 그렇게 원하는 말이었음에도 아무도 내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실패의 나락으로 달려가는 것을 멈춘 것이지 내 인생에 빛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거냐? 이제?”
“일자리 좀 알아봐야죠.”
“생각해 둔 곳은 있고.”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래도 빨리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네. 고민이 많으면 그나마 할 일도 다 놓치게 된다.”
아버지는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밥을 드시면서 말을 이어갔다.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4년이라는 시간을 때려 박았기에 아마도 더 그랬을 것이다. 의미 없는 시간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결과가 없었기에 그렇게 의미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길바닥에서 붕어빵을 팔았으면 장사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를 알게 되었을 것이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면 작지만 돈이라도 만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면서 전혀 쓸모없는. 그저 술자리에서 한 번 더 얘기할 수 있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지식들을 습득하느라 책상에서 4년이라는 시간을 버렸다. 그것도, 아무런 결과 없이. 그렇기에 일자리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구인구직. 일자리 매칭 지원사업.’
소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일자리를 툭툭 잘 구하는 녀석들과 다르게 나는 아버지의 걱정대로 이 수많은 일자리 중에서도 어떤 일에 내게 더 맞을지. 어떤 회사에 들어가야 내가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될지 기나긴 고민의 톱니바퀴에 끼고 말았다.
‘3개월 특수직업 교육과정.’
무언가를 더 배우고 싶지 않았다. 물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배워야 했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흰쌀밥도 엄마와 나 사이의 냉기를 이기지 못해 금세 식어버린 것처럼 나 또한 무언가를 배우는 열정은 다 타버린 지 오래였다. 사실, 핑곗거리를 찾고 있었을 수도 있다. 지금 이 상황을 끝낼 수 있는 더 악조건의 파도가 밀려온다면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내게 등을 졌다.’라는 말로 이 상황을 외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를 해야 할 시기였지만, 그 무엇도 함부로 들이댈 수 없었다. 그냥 쉬고만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무언가의 열정을 더 쏟기보다는 축축한 땅 밑에 숨어서 새로운 단비가 내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앞섰다.
‘취창업 캠프. 한 달 살기 in 제주.’
눈앞에 떠 있는 달콤한 핑곗거리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취창업 캠프. 제주에서 한 달 살기. 그래도 뭔가가 좀 있을 것 같았고, 그래도 내 인생을 조금이나마 바꿔줄 만한 글귀인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 같았다. 독서실, 집, 독서실, 집, 독서실, 집. 비행기 한 번 타보지 않은 내 삶에 새로운 날개가 되어줄 것 같았다. 그 어떤 근거도 없는 확신이었다. 어느 하나 확실한 것도 없었지만 그냥 일단 저질러보고 싶었다. 항상 목표를 근거에 두고 살았지만, 그냥 별 계획 없이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저질러보고 싶다는 말이 아마 이런 뜻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결국 저질렀다. 일단은 해보기로.
“흠... 이번 사업에 참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우선 취, 창업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지원을 한 것도 있지만... 사실,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 그려진 활자가 아니라 진짜로 살아 숨 쉬는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한 번 사람들의 활자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럼 재영님께서 사람들에게 들려드릴 활자는 무엇인가요?”
순간 멍해졌다. 사실, 그런 건 생각을 안 해봤다. 면접이라고는 했지만 무엇을 물어보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고, 질문에 대한 그 어떠한 가이드라인도 잡혀있지 않았다.
‘가이드라인이 잡혀있지 않다.’
나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본적으로 넘어야 하는 목표점수가 있고, 그 점수를 위해서 내가 언제까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며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쳐가야만 하는 커리큘럼들과 스케줄들이 존재했다. 내가 사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그랬다. 잘 맞춰진 시계처럼 가상의 목표를 위해 해야 할 것들을 제 시간 안에 끝내야 하는 삶.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거나 뒤처지면 점점 더 감내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삶. 그게 내 인생에 정해진 톱니바퀴였다.
“재영님? 답변하기 어려우신가요?”
“아.. 그게 아니라...”
면접관의 눈에 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발버둥 쳐야 했다.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의 눈에 들어야 배에 올라탈 수 있다. 면접관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물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구에게 구명튜브를 던져줘야 이 배가 건강하게 살아갈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저 사람도 자기가 살기 위해 구명튜브를 던지겠지. 그나마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 조금이라도 이득을 줄 것 만 같은 사람들에게 구명튜브를 던져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만한 무기는 없었다. 그나마, 지금 내가 사람들에게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랜 시간 동안 공부했다는 하찮은 시간의 흔적밖에는. 그래서 내뱉을 수 있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포기할 때를 알고 과감하게 포기하는 용기에 관한 글을 선보일 것 같습니다.”
“네?”
“꼭 희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요. 희망이 길면 독이 된다. 적당히 타는 게 아니라 활활 다 타버리고 나야 새로운 새싹이 피어나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비록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했지만 남김없이, 후회 없이 활활 태웠던 제 과거 이야기를요.”
멍청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품고 새로운 앞길을 열어가야 할 취창업 프로그램 면접장소에서 포기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다니. 세상 멍청한 이야기가 아닌가. 기껏 골을 넣으라고 공을 패스해 줬더니 우리 쪽 골대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답을 해버린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멍청한 답변이었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런 말밖에 없었다. 나 스스로를 나조차도 부정할 수는 없었기에.
-위이이잉.-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9월 20일. 제주도 서귀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