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중지와(海中之蛙) - 바다에 빠진 개구리

바다를 본 개구리 中

by 심색필 SSF


“어? 엄마. 아빠. 나 2주 뒤에 제주도 가야 하는데?”

“에휴. 왜 제주도로 취직했니?”

“취직은 아니고 저번에 얘기한 취창업 프로그램인데 나 선정됐대.”

“잘됐네. 가서 잘 배우고 와. 뭐 혹시나 괜찮은 데 취직하게 될지 누가 아니?”

“알겠어요. 근데...”

“왜?”

“나 비행기 탈 돈이 없는데?”

-찰칵.-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축하한다고는 말했지만 비행기값은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나마, 요즘 배달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 내게 한줄기 등불과 같았다. 남들이 받지 않는 일명 ‘똥콜’이라는 것들을 받아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배달을 다녔다. 취직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알바를 위해서 투자를 한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세상이었다.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돈이 쏠쏠했다. 할게 이거 하나밖에 없다 보니 생각보다 돈은 잘 모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벌고 나니 꽤나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컷. 식사시간 30분이니까 식사하시고 여기서 다시 모이겠습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궁금함에 엑스트라 연기도 신청을 해보았다. 하루 온종일 뛰고 나면 15만 원. 대기시간도 길어서 다른 짓도 할 수 있고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매일같이 좁디좁은 독서실 책상에서 글자만 보다 카메라 앞에서 열의를 태우는 사람들을 보니 지금껏 느끼지 못한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그냥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 TV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어우. 저는 사람이 더 무서워요.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그냥 집에서 혼자 일 하는 게 훨씬 더 편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사는 게 훨씬 더 피곤하고 감정소비가 심하더라고요.”


일이 아니라 간단한 아르바이트라서 그런지 글과 벽만 보면서 공부만 하던 시간에 비해 그래도 사람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이 상황이 훨씬 더 좋았다. 그래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 자체가 꽤나 큰 행복이었다.

“으아아아앙.”

“쓰읍. 박현성. 여기서 떼쓰면 안 된다고 했지?”


작은 돈이지만 정신없이 돈을 벌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다. 2주라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수중에 돈은 꽤 모여있었다. 사실, 마지막에 부모님도 조금 미안했는지 계좌에 30만 원을 부쳐주었지만 제주도 표값을 사고도 대략 100만원이라는 돈이 들어있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보람찼다. 하기사 나이가 삼십에 가까워진 채 주머니에 꼴랑 100만원 있는 걸로 흡족하게 생각하는 내가 병신 같았지만 그래도 4년이라는 시간 이후에 느끼는 돈벌이의 만족은 꽤나 값지다고 생각했다.


“여기가 제주도구나.”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갔던 게 부산이었다. 정말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여행 간 마지막 피서지. 해운대 해수욕장. 끝이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다가 펼쳐진 모래사장과 듬성듬성 그늘을 내어주는 빨간색, 흰색 패턴의 파라솔. 바닷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득했던 벌거벗은 아이들과 둥그런 밀짚모자를 쓰고 잠을 자던 아저씨, 아줌마들. 비릿하고 짭짤하지만 불쾌함보다는 재밌는 향으로 기억나는 바다내음. 그게 내가 생각하는 바다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철썩. 철썩.-


너무 오랜만에 와서 유행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제주도의 바다는 부산 해운대의 바다와 느낌이 원래부터 다른 것인지 마음이 가라앉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검푸른 색이 아닌 초등학교 아이들의 스케치북에 나올 듯 한 파란 크레파스로 칠한 듯 아름답고 투명한 바다색과 모래사장 위에서 슬리퍼를 손에 쥐고 천천히 산책을 하는 연인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정말 미치도록 평화롭구나.”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풍경이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게 아니라, 복잡한 마음을 잔잔하게 세상을 비추는 거울처럼 고요해진 호수로 만드는 파도소리와 바다짠내였다. 아직, 서귀포에 도착하기도 전이였지만 지금껏 나를 옥죄어오던 시험에 대한 따분한 온도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답답했던가. 이산화탄소가 가득한 독서실의 공기. 사부작거리는 샤프와 펜의 소리. 짓이겨지는 엉덩이와 등줄기를 불쾌하게 적시는 식은땀의 찝찝함까지. 밝은 미래를 꿈꾸며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 한 묵직하고 불쾌한 온풍을 이겨내려 했지만 결국 열정이라는 가면을 쓴 어쭙잖은 뜨거운 온풍에 나는 포기라는 말을 외치고 말았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인 한라산을 넘어가자 완만하게 내려지르는 산비탈 도로 아래로 흐릿하게 바다가 보였다. 제주도에 오기 전에 한 영상에서 본 내용이 있었다.


“한라산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이 맑은 날은 사실 2주에 한번 정도? 볼까 말까 하죠. 3박 4일 놀러 갔는데 산이 보이면 운이 좋은 거예요. 그럴 일이 거의 없거든요.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런 날. 꼭 한라산을 등반해 봐요. 이전까지 보지 못한 절경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얼마나 아름답길래 날이 좋으면 저 높은 산을 한 번 타보라는 얘기를 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얼마나 구름이 많이 끼고 쨍쨍하고 맑은 날이 없으면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맑은 날의 한라산을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바다를 보고 산을 보며 마음이 평온해졌다가도 막상 프로그램 캠프장소에 다다르니 갑자기 좀 떨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성함이.”

“임재영이요.”

“아. 여기 있습니다. 2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 항상 이 명찰을 차고 다녀주세요.”

“아... 네.”


나이 삼십이 다 되어가는데 명찰이라니. 무슨 수련회에 온 것 같았다. 물론, 꽤나 나이가 든 수련회였지만 말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내 나이가 여기서는 중간 측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 편이 되어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해서 이 먼 제주도까지 왔을 줄 누가 알았겠느냐는 말이다. 명찰과 번호표를 받고 내 자리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6명이 앉을 수 있는 거대한 테이블이 8개나 깔려있는 거대한 강당. 독서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루틴에서 벗어나 이제 막 사람들과 대면하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뭔가 설레기도 하면서 낯설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저 임재영이요. 혹시 성함이...”

“저 고유정이요.”


건너편에 앉아 있는 고유정이라는 여자는 머리에 선글라스를 올리고 미국 신문지 같은 영어활자가 그려져 있는 오프숄더에 새까만 나팔바지를 입고 있었다. 뉴욕에서 온 것만 같은 외관에 대화 중에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교포식 악센트까지. 한국토박이. 아니, 그중에서 가장 특색 없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나 같은 서울 촌놈에게는 매우 이질적인 겉모습이었다. 아직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스스럼없이 자신의 스타트업 일대기를 술술 털어놓는 그녀의 말재간에 살짝 당황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때, 뒤에서 백팩을 멘 또 다른 자유로운 영혼이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서구현입니다.”


서글서글한 얼굴에 키는 작지만 다부진 몸을 가진 남자였다. 체대를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겉모습을 가졌지만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자신과 적성이 맞지 않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우연히 이 프로그램을 보고 지원을 했다며 편안하게 대화에 탑승했다. 사실, 어차피 천천히 알아가게 될 기나긴 시간의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벌써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이 당황스러운 대화의 열차에서 빨리 하차하고 싶었다. 누군가, 이 자리를 빨리 정리해 줬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아. 아. 잘 들리시나요?”

“....”

“다들 처음이라 조금 낯설죠? 안녕하세요. 멀리 서귀포까지 찾아주신 여러분 들 진심으로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취창업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된 유지은 팀장입니다.”

정말 적절한 타이밍에 스태프 한 분이 강단에 나왔다. 다른 테이블에 비해 유난히 말이 많던 우리 테이블도 팀장의 등장에 다들 조용해졌다. 팀장이라. 한 집단의 팀장까지 올라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능력이 필요할까? 나랑 비슷하거나 어려 보이는데 강단 앞에 나와 힘차게 떠드는 팀장이 굉장히 멋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대본 없이 청산유수처럼 프로그램의 개요와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꼿꼿한 자세는 사람을 훨씬 더 자신 있어 보이게 만들었고, 자연스러운 미소는 여유로움이 만연해 있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 말씀드린 대로 조별로 모여서 회의를 해볼까요?”

“네.”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정말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다른 취창업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취창업 프로그램은 상당히 신박했다. 취업, 재취업, 창업, 재창업 이렇게 4분류의 사람들이 한 팀을 이뤄 2주일 동안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3일간 가장 즐겁게 제주도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첫 번째 미션이었다. 마음을 비우는 건 좋았지만, 취창업 프로그램의 첫 번째가 가장 즐겁게 노는 것이었다. 14일이라는 시간이 있어 아이스 브레이킹을 먼저 하라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우선은 군말 없이 프로그램에 따르기로 했다. 요즘 MZ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는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말을 잘 듣는 민족이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부조리한 걸 시켜도 결국에는 한다고. 우리는 그 말에 반증이라도 하는 듯 실제로 정말 말을 잘 들었다.


“근데, 우리는 아직 조원이 한 명 안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4명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좋기는 한데, 우선 있는 사람들끼리 얘기해 볼까요? 여기서 계속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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