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 새끼야. 그렇게 갑자기 집을 가버리면 내가 곤란해질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어? 넌 더 맞아야 해. 이 새끼야.”
녀석은 어제 다 때리지 못한 것까지 더 맞아야 한다는 식으로 이전보다 더 심하게 나를 때렸다. 같은 반 애들한테도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평소보다 더 과장된 폭력을 쓰는 것 같았다. 무리에서 버려졌지만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녀석의 주먹에 너무 익숙해진 탓인가? 녀석의 주먹이 아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녀석이 때리다 지친 느낌이 들었을 무렵, 개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슴에서 일렁이는 감정보다 머리에서 계산된 판단에 집중해라. 솔직히, 이 정도면 녀석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주환처럼 애초에 미친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그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이 녀석을 겁낼 필요도 없었다. 매일같이 녀석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속에 잡혀 있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질 못했다. 순간, 애초에 내가 가진 두려움이 지금 나를 때리는 황현구가 아니라 현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서 녀석과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서자, 가슴속을 짓누르던 공포는 뜨거운 분노로 금세 바뀌어버렸다.
“야. 이 씨발놈아!”
때리느라 지쳐있는 녀석에게 나는 지금껏 꾹꾹 눌러놓았던 응어리를 토해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놈은 제대로 대비도 못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적으로 내지른 주먹에 나도 얼떨떨했지만, 항상 아래에서 누군가를 올려다보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녀석을 쓰러뜨리자 알 수 없는 희열감이 속에서 일렁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머리에서 나오는 말을 듣지 못한 것이었다. 본능에 잠식이 되어,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개미처럼 황현구의 머리를 계속해서 내리찍었다. 살려달라는 황현구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녀석의 귀 한쪽이 찢어져 너덜거린 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나를 뜯어말렸다.
“백의민. 너 그만 안 해? 미쳤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매일같이 맞다 공포를 이겨내고 용기를 내어 휘두른 주먹인데, 선생님은 칭찬을 해주지 않고 싸대기를 날려주었다.
-짝!-
지금껏 괜찮냐는 말만 연신 내뱉은 주제에 지금까지 내가 당한 고통은 외면했으면서 갑자기 참교육인 행세를 하는 위선적인 모습에 구역질이 났다.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얘기를 했지만, 사실 부모님을 학교에 모셔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무서웠다기보다는 부끄러웠다. 영업직을 핑계로 매일같이 술에 취해 아침이 돼서야 집에 들어오는 아버지와 술집을 하시며 자식 교육은 뒷전인 어머니. 두 분 다 학교에 올 시간도 없었을 뿐 아니라, 혹여나 술 냄새를 풍기고 학교를 찾아올까 그게 더 걱정이었다.
"내일 둘 다 부모님 모시고 와! 알았어?"
선생님은 내일 꼭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말과 함께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가방을 챙기러 교실로 돌아가자 황현구의 찢어진 귀에서 흘러나온 핏자국이 보였다. 핏자국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벽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나타났다. 녀석의 발길질에 흙먼지가 묻어있어야 할 교복에는 녀석이 흘린 피가 가득했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취급을 당하고, 어떤 모욕을 당한다고 해도 내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녀석들도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에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피를 보고 나서야 녀석들은 내게 눈길을 주었다. 아마, 저놈들도 자기 안위가 더 중요했겠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에도 사람들이 온몸에 피가 묻은 내 모습에 집중했다.
“개미야. 나 해냈어. 내가 그 개새끼 이겨냈어.”
“말했잖아. 내가 도움이 될 거라고.”
“뭐야? 너 왜 그래? 왜 이렇게 힘이 없어?”
“그날 너무 심하게 다쳤나 봐. 점점 힘이 없어지네.”
죽어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안절부절하지 못하다 집을 나가 놀이터에 핀 철쭉 한 송이를 꺾어왔다.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와 메말라가는 흙이 담긴 페트병 위에 쓰러진 녀석을 보고 재빨리 옆에 새빨간 철쭉 한 송이를 올려두었다. 그러나, 녀석은 더듬이와 팔다리를 파르르 떨다가 이내 꽃으로 주둥이를 가지고 가는 것을 포기했다. 안 그래도 희미한 개미의 목소리가 점점 더 조그맣게 들려왔다. 나는 개미의 소리를 더 크게 듣기 위해, 정말 조심스럽게 녀석을 들어 내 귀에다 가져갔다.
“따뜻하다. 여기라면 괜찮을 것 같아. 나 여기서 지내도 돼?”
“어. 괜찮아. 대신 고막은 건들면 안 돼.”
“그게 뭐야?”
“아...솔직히 나도 잘 몰라. 이름만 들어봤지. 그냥 너무 깊숙이 들어가지만 마.”
“알겠어.”
내 귓구멍 안으로 들어온 녀석은 내 체온이 따뜻하다며 이전보다 훨씬 더 안정감이 든다고 했다. 나는 개미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그와 훨씬 더 긴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귀에 들어간 개미는 내 속을 읽기라도 한 듯 부모님을 학교에 모셔가야 하는 내 고민에 대해 말을 꺼냈다.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실 거야. 걱정하지 말고 부모님께 얘기해. 오히려, 너에게 힘이 되어주실 거야.”
개미의 말을 듣고 나는 보다 안정된 마음으로 엄마, 아빠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다. 굉장히 긴장된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지만, 개미의 말대로 부모님은 그날 일찍 집에 들어와 지금껏 내가 당했던 이야기를 들어주며 그동안 신경을 못 써주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 다음날 학교에 찾아간 엄마와 아빠는 노발대발하며 현구의 부모님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아들 간의 싸움은 이내 아버지들의 싸움으로 번져있었다.
“하도 변변찮게 사는 거 같아서! 선생님이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해서! 그래서! 참고 또 참았는데 뭐! 사과를 못해!”
“그럼 어떻게 사과를 합니까! 제 아들이 저 망나니 같은 놈한테 우리 아들이 1년을 넘게 맞고만 있었는데! 그럼 그냥 때리는 데 맞고만 있어요!”
“아니! 애들끼리 좀 투닥거릴 수도 있지. 그렇다고 애들 귀가 너덜거릴 때까지 때리는 게 말이 돼? 저거 그냥 놔뒀다가는 살인자 될 놈이야!”
“뭐! 당신 말 다 했어? 자기보다 약한 애들만 때리는 그런 파렴치한 새끼가 왜 이렇게 컸나 했더니 부모 싹수가 보이네. 저놈은 놔뒀다가는 나라 팔아먹을 놈이야!”
“뭐 이 새끼야!”
“어쩔 건데? 이 새끼야!”
경찰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좋게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던 선생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황현구의 아버지는 법적절차를 밟겠다고 얘기했고, 아버지는 지난 폭력에 대한 정황들을 모은다며 학교 측에 CCTV 자료를 요청했다. 선생은 개인정보를 들먹이며 어렵다고 얘기했지만, 학교를 상대로 소송과 민원도 불사하겠다는 아버지의 단호한 행동에 교장선생까지 등장해 둘을 중재시키러 나섰다.
'쓰레기 새끼들.'
역겨웠다. 화를 내고,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그들의 안일한 행동과 얄팍한 수가 너무 화가 났다. 학교에서는 평상시 내가 황현구에게 주기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점 때문에 서로 이 일을 묵과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일이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정학을 피하지 못했다. 사실, 정학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 구역질 나는 학교를 떠나고 싶었으니까. 엄마, 아빠는 계속해서 내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만 하고 언제든 다른 학교로 전학 가고 싶으면 말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개미라는 친구가 생긴 나에게 다른 학교는 필요 없었다. 사실, 학교 자체가 필요 없었다.
“엄마. 나 그냥 학교 안 나가고 공부해서 대학 가면 안돼?”
“아들. 그래도 그건....”
“알았어.”
부모님은 나를 위해 싸워주실 수 있는 분들이었지만, 체제를 위해 싸워주실 수 있는 위인은 아니었다. 결국 한 달의 정학을 받은 나는 꽤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학교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영화도 한 번에 몰아볼 수 있었고, 지금까지 내가 커서 어떻게 살아갈지 대한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었다.
“난 조커가 참 멋진 거 같아.”
“왜?”
“온몸에 휘황찬란하고 비싼 장비들을 다 가지고 있는 배트맨을 상대로 겁 없이 대항하잖아. 타고나길 부자로, 강자로 태어났으면서 악인들의 잘못을 운운하는 배트맨보다 잘못된 사회의 시스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조커가 더 멋진 거 같아.”
“뭔가 개미 네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좀 아이러니하다.”
“그런가? 왜?”
“원래 개미는 세상에서 가장 사회적인 생명체 아니야? 개인이 아니라, 종족과 집단의 번식을 위해 평생 일하다 죽는 곤충이잖아.”
“그래서 후회가 되더라고. 고양이 한 마리의 장난에 사라질 집단에 왜 내가 그렇게까지 목숨을 걸었는지. 나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부조리함에 반항하면서 살아볼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