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과 함께 사회로 나아가려는 사람들, 혹은 이제 막 사회에 나간사람들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는 쉬운 방법이있습니다.
1. 대기업 말고 규모는 작아도 그 회사가 너의 적성에 더 잘 맞지 않겠냐고 권하기.
2. 취미가 무엇이냐고 질문하기.
3. 학점, 토익 같은 스펙 따지는 회사 타박하기.
4. 좋아하는 것을 하라는조언하기.
5. 일이 안 맞거나 스트레스만 가득하다면 그만두라고 말하기.
반대로, 이 방법들만 피한다면, ‘현실적인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적’이라는수식어를 달게 된 사람들을 ‘꿈’을 내세워 딴지를 걸 순없습니다.
성인으로서의 독립, 결혼, 육아, 노후까지이어질 삶의 과정들이 돈과 함께 머릿 속을 스쳐지나갑니다.
많은 돈을 벌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게살 수 있지 않느냐는 말도 쉽게 내뱉을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행복과 너무나도 다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행복’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불행’이라는단어를 끌어와서,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삶은 불행하지 않겠냐는 질문은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느샌가, ‘행복’이라는말은 너무나도 커져버린 기대와 함께 영영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저 높은 곳에 떠 있고, ‘불행’이라는 말은 그만큼 자칫하면 밟게 되는 사람들의 바로 발 밑에 놓여져 있는 진흙과 같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이라는단어를 외치지만 사실은 ‘불행’이라는 단어를 더욱 자신들과가깝게 놓고 있기에, 차라리 ‘불행’이라는 단어가 ‘현실적’이어서더 와닿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기타를 한 달만에 때려치웠을 때, 방구석에 처박혀서 유화를 그렸을때, 이런저런 영화제를 쏘다녔을 때, 토익학원을 환불하고불어학원에 등록했을 때, 제가 들었던 말은 “그런게 필요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특정한 미래를 위해 얻어야 할 지식이 담겨져 있다는 근거를 들어야만 ‘필요한 공부’로서 인정받는 상황 속에서, ‘필요할지도 모르는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인지를 오랜 시간동안 고민했습니다.
어느 샌가 ‘무기력’은 ‘무력’입니다. 하지만, ‘무기력’은 곧 ‘평온’일 수 있다고, 속으로 말해봅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을 이어나가다보니, 지금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평온함’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혹 일기를 쓴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고 쓰면서도흡족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평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