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새겨진 그릇, 책.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를 읽고.

by 이그저


학부 시절, 훈민정음 언해본과 해례본에 관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 수업은 고서의 내용을 해석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았고, 주로 서지학적인 관점에서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한글의 변화를 책을 통해 살펴보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발표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PPT에 담았던 내용은 훈민정음 책의 크기, 묶음의 형식(4침 혹은 5침 안정법), 인쇄 방식 등이었다.


책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담는 그릇이 아니다.

하나의 콘텐츠를 담는 '방식' 자체가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 중 하나일 수 있고, 또 그 관점은 어쩌면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매체 이론'이라는 견고한 학문이 존재하는 한, '책'이라는 매체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긴 역사를 지니고 있고

또 다른 신생 매체들에 비해 큰 영향력을 행사한 유형물이다.

훈민정음의 진본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서 각 입장들이 내세우는 근거들은 주로 서지학적이 특징에 있다.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에서 나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의 여러 가지 버전에 대한 서지학자들의 뜨거운 논쟁과 맥을 같이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텍스트 자체' 혹은 요새 참으로 이곳 저곳에서 말해지는 '콘텐츠'만 들여본다고 해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책이라는 유형물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런 서지학적인 접근이 일부 사람들만의 관심사로 여겨지면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냐'는 눈총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콘텐츠'는 그것이 가리키고 있는 어떤 의미를 '일부' 표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즉 그 의미를 전부 알기 위해서는, 물론 전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콘텐츠를 둘러싼 전반적인 배경을 두루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대개 하나의 소설을 읽을 때 그 작가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거나 그것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이 곧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책' 자체, 즉 서지학적인 관점이 배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이 완결된 유형물로서 어떠한 형태로 인쇄되었는지를 아는 것 또한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보다 좋은 접근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alba02201107012137170.jpg 로버트 단턴, <책의 미래>.


그러한 의미에서 책이 '집단적인 생산물'이라는 점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 말미에 쓰여져 있는 '책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장에서 그는 책의 역사가 곧 문화적 역사라고 말하며, 이에 따라 서지학적인 특징과 그 변화를 살펴보는 것에서 문화의 역사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책의 역사를 짚어보는 작업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져왔다. 책은 단순히 저자 한 명이 창작하여 나온 결과물이 아니라, 그것이 책으로서 나올 수 있게 한 출판인, 재료 공급업자, 운송업자, 서적상, 그리고 결국 그것을 '구매'한 독자들까지 여러 위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생산물이다.

한 작품이 출판되고, 또 유통되는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어떤 행위자의 역할이 부각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드러나지 않았는지 등을 보는 것은 곧 사회경제적인 관점을 포함하는 큰 틀에서의 문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기록의 축적으로 형성된다고 했을 때,

책은 중요하다.


즉, 기록된 내용뿐만 아니라 기록된 형식이 곧 역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세게의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전자책이 등장했지만,

책은 왜 여전히 '출판'될까.


<책의 미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자 시스템은 '출판되지 못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출판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판가름해보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나의 책이 만들어질 때 사용되는 여러 재료들과 또 디자인되는 표지 등은 그 책이 담고 있는 '콘텐츠'를 표현하는 또 다른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로버트 단턴 또한 학문적인 분야에서 전자 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어떤 학생, 혹은 학자들이 '아직은' 명성을 얻지 못한 채로 연구를 수행했을 때, 전자 시스템을 이용해서 그들의 연구를 세상에 던져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은 위태롭다.

그 불안함의 이유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특징에 향해 있다.

예컨대, 구글의 도서 검색 시스템이 마냥 유토피아적이지 않은 이유는, 구글이 '기업'이라는 자명한 사실에 있다. 인터넷이라는 것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인 기술이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미래로 흐를지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로버트 단턴의 말처럼, 만일 구글이 '좋은 의도'에서 그런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그 서비스가 어떤 형식으로 사용될지는 구글 스스로도 단언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는 구글이 갑자기 다른 기업에게 넘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주로 인터넷이 '견고'하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찍은 사진과 써둔 글 등의 수많은 기록들을 인터넷에 저장해두면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며 안심한다.

하지만, 인터넷에 저장된 기록들은 내 손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 어떤 이유에서도 '사라질'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 쉽게 '이용될' 수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게 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