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계급인가.
영화 <미나리>에서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휩쓸었다는 기사들을 보며,
새삼, 벌써 약 1년 전이 되어버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1년 전의 이야기, 영광이 되어버린 그 결과에 대해서
괜시리 '새삼스레' 이제서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나의 (사실 많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넌 그 영화 보고 나서 기분이 어땠어?""
"진짜 너도 그 냄새가 뭔지 알아?"
"송강호 그 캐릭터가 마지막에 죽이는 그거, 어때?"
사실, 나를 포함한 우리는 또 다시 '새삼스럽게'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나서
'공감의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비슷하기 때문에, 혹은 다르지만 여전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 살아가고 있었다 여겼던 수많은 우리들은,
<기생충>을 보며,
어쩌면 '우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나눴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 영화를 보고 느꼈던 직관적인 감정과 생각들은, 한편으론 각자가 느끼는
한국 사회에서의 위치를 알게 해주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나는 이해했던 그 냄새에 대한 궁금증을, '우리 중 한 명'이었던 나의 친구가 느끼지 못했을 때의
침묵. 같은 것.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개의 상을 받을 그 시간에,
우리는 모두 '국뽕'을 허락받았었다.
하지만 사실 모두가 느끼는 그 영화에 대한 감정은 매우 달랐던 것 같다.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책임지며 살아왔던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는
운이 좋게도(하필이면), 일찍 '계룡남'이 되었기에 <기생충>에서 말하는 '지하철 냄새'를 알 도리가 없었다.
그는 20대 때부터 자신의 차를 몰던 사람이고, 사시사철 그 차에서 출발해 주차하는 일상을 보냈던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따뜻한 패딩에 매년 돈을 쓸지 말지 고민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
그런 그와 함께 영화 <기생충>을 함께 보고 나왔던 그 날은, 아마도 서로에게 중요한 날이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로 번져나갔다.
왜 내가 따뜻한 패딩을 찾았는지 그는 조금 이해한 듯 보였고,
나는 그가 왜 내 패딩에 돈을 보태지 않는지 조금 이해했다.
내가 영화 <기생충>에 아주 잠깐 꽂혔던 건, '냄새' 때문이다.
영화라는 장르에서는 결코 표현되지 못할 '그 냄새'를 이야기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겐 매우 솔직하게 느껴졌다.
30대가 되도록 여전히 영화 <향수>에서의 '냄새'라는 것 때문에 그 영화를 가장 관능적인 영화라 여기는 나에게 있어서, '냄새'라는 요소는,
사실 어떤 한 캐릭터, 그리고 그 캐릭터를 바라보는 또 다른 캐릭터의 관점을 말해주는 '전부'라고.
굉장한 오버를 해도 창피하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단 한번쯤은 '냄새'로 어떤 사람을 평가한 일이 모두가 있을 것 이라, 그렇게 단언해본다.
냄새는 속일 수 없다는 믿음일까.
속일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매일 아침,
씻으면서 내가 오늘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며
바르는 바디로션은,
나 또한 그 '냄새'로 평가받는 사람임을 인지하는 행동일지 모르겠다.
나는 오늘 어떤 냄새를 선택했나.
나는 오늘 어떤 냄새를 풍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