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 수 없음'을 고르겠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고.

by 이그저


드디어 수능이 끝나고, 재수가 확정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더 실력있는 강사들과 더 체계적인 시스템, 더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을 기준으로 삼아 학원들을 줄 세운 후,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나에게 적합한 학원을 선택하게 되었다.


학원 개강일을 잊을 수 없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곳이라,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강의실에 거의 마지막에 들어갔는데

맨 뒤에 딱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친구와 나는 그 곳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그 곳에서 70개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정확히 3일 째 되는 날의 자습 시간,

나는 학원을 그만 두었다.

나름 첫날보다 일찍 학원을 갔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자리는 뒷자리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여전히 나는 3일 동안 70개의 뒷통수와 함께 수업을 들어야했기 때문이다.

'최적의 공부환경'이 나에겐 오히려 불안감만을 안겨주었던 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곳에 있다가는 답답함을 생각하느라 공부가 잘 안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3일 째 되는 날, 자습시간에 빈 종이를 꺼내서 1년치 계획을 세웠다.

그것을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교 동창에게 보여줬더니, 친구는 "이대로만 할 수 있다면"이라는 불안함이 담긴 말로

나를 붙잡았다.

환불받은 학원비 영수증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부모님의 당황스러운 표정은 잊히지 않는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며 자연스레 나의 일탈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마땅히 없었다.

쥐어짜낸 후에야 나온 경험이, 재수 학원을 3일만에 뛰쳐나온 일이다.

그 뒤로 나는 혼자 도서관을 다니며 공부했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하셨던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중간에 다시 학원에 등록했지만, 학원을 다니던 2달 동안 꾸준히 나의 성적은 떨어졌고, 끝내 나는 부모님께 당당하게 두번째의 학원 환불 영수증을 내밀 수 있었다.

물론, 나의 공부 방법이 학원의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였겠지만,

그 경험은 영화와 함께 시스템이 결코 모든 사람을 합리적인 길로 이끄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 '합리적'이라는,

시스템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 자체에도 의문을 갖게 하였다.

꼭 합리적이어야만 하는가.

합리성이 장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합리성'이 마치 '최선'처럼 비춰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수학원을 등록하기 전, 그리고 그만둘 때에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야."


우리를 시스템에 주저 앉게 만드는 것은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인 것 같다.

그 곳에 벗어나게 되면, 곧장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고독'의 상태에 놓여 본 적이 없는 우리는,

여전히 '시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그 선택의 결과가 남들이 보기에도 '좋아보여야' 한다는 어떤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듯하다.

남들의 인정을 받아야만 '자발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매모호할 확률이 큰 시스템 밖에 발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무엇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고집이 센 사람'으로 여겨지고 만다.


영화 속 '일탈'로 표현되던 인물들이 결국은 시스템으로 인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우리는 온전히 일탈하는 인물들에게만 응원을 보낼 수 없다.

시스템 안에 있는 인물들이 곧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며,

영화에서도 그들의 그런 비자발적인 선택을 결코 비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극적인 결말은, 손쉽게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좌절로 읽히지 않아야 한다.

그보다는 '시스템은 이리도 견고하고 세다. 하지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지만'의 뒤에 이어질 무엇이다.

모든 사람에게 '그 무엇'은 너무나도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무엇'이 도대체 '무엇일까' 이전에,

'하지만' 뒤를 고민해보는 것, 결국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음'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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