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경이야기>를 보고.
내게 <동경이야기>는 그저 ‘다다미 쇼트’라는 한 단어로 기억되는 영화였고, ‘다다미 쇼트’를 설명하기 위해 책에서 보여준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막연하게 ‘가족에 관한 이야기’겠거니 하고 넘겨버린 영화였다.
그리고, 그저 오래된 흑백 영화였다.
누군가 내게 “<동경이야기>는 어떤 영화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다다미 쇼트로 유명하지”라는 대답이 아닌, “쓸쓸한 웃음때문에 슬픈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동경이야기>는 전쟁 후의 일본 가족의 모습, 성공하기 위한 발판이 되었던 동경이라는 도시의 이면 등 50년대의 일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늙음’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었을 때 흔히 볼 수 있는 자식과 부모의 갈등이나 혹은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식들에 희생하는 부모 등의 폭발력있는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또한, 자식들이 있는 동경에 짧은 휴가를 다녀오는 노부부의 이야기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에 따라 ‘늙어감’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단지, ‘이미’ 늙어버린 사람들의 ‘참 할 일 없는 일상’을 찬찬히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서 ‘늙음’은 곧 ‘언제인지 모를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아직은 늙지 않은’ 사람들에게 ‘할 일 없음’이 ‘지루함’인 것에 반해, ‘이미 늙은’ 사람에게 ‘할 일 없음’은 ‘쓸쓸함’이다.
<동경이야기>가 며칠동안 나를 먹먹하게하는 까닭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노부부는 내게 곧 작년 겨울, 50일 차로 연달아 돌아가신 외조부모였다.
그들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놓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경험이 나를 더 영화 속으로 당기게 하는 힘이었고, 영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선 중에서도 ‘늙음’을 바라보는 발판이었다.
그리고 각자 다르게 노부부를 대하는 자식들의 모습에서 엄마를 포함한 5자매가 외조부모를 대했던 방식들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동경이야기>에서 자신들의 일이 바빠 부모를 보살피지 못하는 자식들을 ‘불효자(녀)’로 간단하게 비난할 수 없다.
만일 영화에서 자식들이 부모가 놀러왔다고 해서 자신들의 일을 내버려두고 부모를 모시는 데 온 시간을 다 쏟았다고 한다면, 그 즉시 ‘효자(녀)’가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동시에 그들의 ‘가정’과 ‘일’을 소홀히 한 사람이 되고 만다.
또한, 사회적 위치를 고려했을 때 그들은 ‘동경’이라는 일본의 중심에 살고 있지만, 실상 ‘동경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변두리에 ‘간신히’ 붙어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일을 소홀히한다는 것은 자신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선택지인 것이다.
<동경이야기>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식들의 배려가 부모의 쓸쓸함을 키우는 원인이 된다.
자식들이 부모를 위한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고 그 거리감이 길수록 부모에겐 오히려 그 공간이 결코 편하지 않은 곳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은 곧 그들에겐 ‘고립’과 다름없다.
노부부는 먼저 첫째 아들인 코이치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아들 내외는 부모를 위해 2층방을 내준다.
자식과 부모가 만나기 위해선 계단이라는 매개를 이용해야하며, 노부부에게 그 계단은 자식들이 일방적으로 찾아와야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애써서 손자의 방을 노부부를 위해 대신 내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공간은 넓지만 심리적인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둘째 딸의 집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공간적 거리감이 심리적 고립감으로 가장 극대화되는것은 온천이다. 아들과 딸은 일 때문에 바빠 동경까지 찾아온 노부부를 보살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 경치 좋은 온천을 택한다.
동경이라는 도시가 아닌 아예 다른 도시에 존재하는 그 온천은 무리해서 비용을 마련한 대안이지만, 노부부에게 그 곳은 편한 여행지가 아니다.
오히려 노부부에게 직접적으로 ‘우린바빠서 함께 할 수 없어요’라고말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눈치’이고, 노부부는 경기 좋은 바닷가를 보며 고향에 돌아갈 것을 다짐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다.
이에 반해, 전쟁통에 남편을 잃은 며느리 노리코의 작은 방이 노부부에겐 가장 심리적으로 안정된 공간이다.
원룸에 살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을 내어줄 수 없는 노리코와 노부부는‘다른 공간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함께 얼굴을 맞대고 있게 되고, 그런 상황을 노부부는 가장 ‘편한곳’이라고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인자한 미소를 띠던 어머니는 며느리와 하룻밤을 보내는 날, 처음으로 운다. 그것은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다른 감정의 얼굴이고,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여태까지의 미소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내보였던’ 표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영화는 물리적은 공간의 거리를 통해 곧 심리적인 거리감을 형성하고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온천여행을 떠나서 어머니가 어지러움을 느끼고 그것이 곧 어머니의 죽음의 징조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들을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떠났던 동경으로의 여정에서 자식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던 시간과 공간에서 그 우려가 실제화된 것이다.
동경에서의 며칠동안 형성된 심리적 거리감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구체화되어 드러난다.
첫째 아들과 딸은 가장 먼저 달려왔지만(이것은그들이 노부부에게 했던 물질적인 배려와 일치시켜 생각할 수 있다.) 아들은 의사로서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며, 딸은 갑작스러운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만 돌아가신 후에 어머니의 유품을 챙긴다. 그리고 그들은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다음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위해 제일 먼저 동경으로 떠난다. 또한, 노부부를 끝내 만나지못한 오사카에 사는 아들은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기 못하고 가장 늦게 온다.
같은 공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도 일을 하지만 유일하게 직장에 휴가를 낸 며느리 노리코가 가장 늦게까지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인물이라는 점은 아들, 딸과 대비되는 점이다.
며느리라는 것은 곧 신체적으로도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또 가족으로서 함께한 시간이 가장 짧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리코의 이러한 모습은 여태까지의 함께한 삶의 축적이 곧 심리적인 연대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함께한 시간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례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떠난 사람에 대한 그 사실의 슬픔보다 떠난 사람 곁에 남은 사람에 대한 위로가 중요하다. 노리코가 가장 늦게까지 아버지 곁에 남아 있었다는 점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영화가 끝난 시간후의 삶에서도 아버지에게 가장 ‘가까운사람’일 것이라는 예측을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밝힌 것처럼 <동경이야기>는 결코 ‘불효’에 대해 타박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가 ‘늙음’에 대해 말한다고 하는 이유는 오히려 ‘효를 따를 수 없는 인간 삶의 순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들이 노부부에게 ‘불효’하는 모든 순간은 ‘할 일이 많고 바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식들이 성장하면서 ‘독립된’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가면서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되어 있는’ 그 순리이다.
일 때문에 빨리 장례식을 떠난 오빠와 언니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는 막내 딸에게 며느리 노리코가 하는 대사는 이러한 점을 관통한다.
“언니에게는 언니의 삶이있고 지금 언니에겐 그 삶이 가장 소중한 거에요. 언니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에서 너무 빨리 벗어난다해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어요. 아가씨도 나이가 들면 이런 점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될 거에요”
첫째 아들은 쉬는 날에도 환자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작은 동네 의사이면서, 두 아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삶을 살고, 큰 딸은 자식은 없지만 남편과 함께 돈을 벌어야 하는 일하는 여성의 삶을 산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그러한 바쁜 삶 때문에노부부와의 심리적 거리가 멀다.
이에 반해, 며느리와 막내딸은 아직 스스로만을 책임지면 되는 삶을 살고 있고, 그들의 노부부와의 심리적 거리는 가깝다. 곧, 아직은 돌아봐야하고 부양해야할 짐이 없는 것이고 노부부와의 연대에 쏟을 수 있는 시간과 심리적인 여유가 다른 아들, 딸과 비교해서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들과 딸은 ‘너무 바빴던’ 건지도 모른다.
그들은 충분히 여유를 가질만한 삶이 아니고, 동경 속에 살고 있는 ‘주변인’이었다. 성공해서 그 ‘중심’이 되고자 부단히 노력할 수 밖에 없는.
그렇기 때문에 <동경이야기>는‘동경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경이라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동경이라는도시는 곧, 성공이며 그 성공은 짐이고, 그 짐은 나이가들면서 챙겨야 할 삶이고, 그 삶은 부모와의 연대조차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순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