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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24. 2018

수색역에 서서

8월의 이야기 열다섯

이 일을 해보겠다고 각종 스펙을 쌓아댄 것부터 계산하면 벌써 7년째. 이 일을 해보겠다고 애써 졸업을 미룬 건 어느덧 3년째. 그렇게 오늘도, 면접을 보러 수색역에 갔다.

 

수색역은, 그러니까 그 위치부터가 제법 독특했다. 수색역을 가로지르는 경의 중앙선 철길. 그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아주 허름한 동네가. 오른쪽에는 아주 화려한 방송가가 위치해 있었다. 수색역의 하나뿐인 출구는 이 왼편의 허름한 동네로 이어져있었고, 오른편의 화려한 방송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지하터널을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이 지하터널을 나와 화려한 방송가를 맞이했을 땐, 마치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 마법 세계를 처음 마주한 해리포터와도 같은 기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으론 그렇기에 수색역은, 그 돌아오는 길이 꽤나 쓸쓸하기도 했다. 화려한 방송사의 간판 불빛은 나의 초라함을 적나라하게 비춰댔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대비되는 나의 느릿한 발걸음이 부끄러웠고, 애써 빨리 걸어 보기도 했지만 이내 제 속도로 돌아와 지곤 했다. 그래서 이날 면접이 십분 만에 끝나 버렸을 땐, 눈앞에 호그와트행 기차를 두고도 탈 수 없단 얘길 들은 머글과도 같은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수색역에 서서 양쪽 동네를 번갈아 바라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철길 하나 사이였고, 3분도 안 걸릴 지하터널 하나만 건너면 되는 거리였지만. 왼편의 구멍가게, 모텔의 불 꺼진 낮은 간판에 비해 오른편의 방송사 간판은 유독 더 높고 화려해 보였다. 그래서 절대 넘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고, 그렇게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내 꿈이 모두 신기루만 같았다.


다행히, 빵- 지하철이 들어오는 큰 소리가,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감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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