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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27. 2018

나의 덕질 이야기

8월의 이야기 열여섯

 중학생 때 나는 개그콘서트를 참 좋아했다. 시청률이 못해도 20%는 나왔고 개콘에 나오는 개그맨이 가장 힙할 때였다. 이태선 밴드가 연주하는 개그콘서트 엔딩 연주를 들어야 일요일이든 일주일이든 끝나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음날 애들끼리 모여 유행어를 따라하고 낄낄대야 피로가 풀렸다. 그 중 페이보릿은 역시, 마지막 하이라이트 코너, 봉숭아학당.


 하루는 봉숭아학당에 어떤 촌스런 차림의 개그맨이 나왔다. 덥수룩한 장발에 청자켓, 청바지, 심지어 발에는 롤러브레이드.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햇!” 이라든가 “선생님, 똥칼라파웟!” 같은, 다소 저렴한 대사까지. 충격받았다. 개그가 너무 내 스타일. 그 날 개콘이 끝나고 나는 이불에 들어가는 대신 다음에 들어갔다(당시는 다음이 네이버보다 인기였다.) 그리고 검색. 유,세,윤. 생긴지 몇 달 안돼 보이는 회원수 105 명의 카페 하나가 검색됐다. 마침 실시간 채팅을 하고 있었다. 팬클럽 회원과 신인 개그맨의 정모 채팅.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신인 개그맨 유세윤의 각오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뭔가 짜릿하고 흥분이 됐다. 응원 더 열심히 해야지.


 그로부터 거의 10년여 후, 라디오 스타에서 유세윤은 울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루고 나니, 원하는 그림을 다 만들고 나니 허무했다... 뭐 그런 의도였던 것 같다. 나는 그 눈물을 보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무도 못 알아보던 개그맨이 국민 예능의 패널이 되었구나.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내 첫 덕질은 유세윤의 눈물과 함께 끝났다. 물론 지금도 유세윤을 좋아한다.


 비슷한 경험이 몇 번 더 있다. 무명의 누군가에게 끌렸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사람이 빛을 보는 것을 봤던 경험. 래퍼 넉살이 그랬고 배우 이정현이 그랬다. 쇼미더머니 2에서 예선탈락을 할 때 가슴이 무척 아팠다. 그때는 넉살보다 이준영이었다. 이준영이 낸 앨범 ‘작은 것들의 신’을 주변에 추천하기까지 했다. 시즌 2에서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했던 그는 보란듯이, 시즌 6에서 준우승을 했다. 배우 이정현 씨는 <SBS스페셜> ‘스타로부터 한 발자국’에서 처음 봤다. 무명 배우들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였다. 눈빛이 인상깊어서 저 사람은 뭘까, 싶었는데 결국 다음 해에 <미스터 썬샤인>에서 대중의 관심을 받더니 결국 예능 프로 해피투게더에도 나왔다.


 꿈을 이룬 그들을 볼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든다. 유세윤의 눈물을 볼 때와 같은 감정이다. 누군가는 깜짝 스타라고 할 지 모르나, 사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들. 오랜 시간 자기의 일을 했고 성과를 거뒀다.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가 얘기했던 공식이 떠오른다. R=VD라고 했던가, 현실화(Realization)를 위해서는 생생하게(Vivid) 꿈꿔야(Dream) 한다고. 내가 끌렸던 미완의 대기들은 생생하게, 그것도 오랫동안 꿈꿨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봤으니까.


 그리고 요즘 나는 박정민의 산문을 읽는다. 이 배우를 처음 본 적이 언제였더라. 멕시코로 교환학생 가는 비행기에서 본 <동주> 속 송몽규. 주인공 동주보다 인상깊었던 기억이 난다. 책 <쓸만한 인간>은 그가 무명 시절 일기처럼 썼던 글을 시간 순서대로 모은 산문집이다.


"누구나 다 그렇듯, 그리고 특히 20대에는 더 그렇겠지만 참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나 안 조급해. 나는 약간 천천히 가는 스타일인 듯."이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사실 마음이 그렇지만도 않다. 소싯적에 길바닥에서 소주 좀 마셨던 친구가 이제는 어엿하게 몇십만 원짜리 양주 먹는데 어찌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마 차 끌던 친구가 지금은 벤츠 타는데 어찌 그것이 부럽지 않겠는가. 부러워 죽겠지. 그래서 애써 그렇게 마음을 다스린다."


불안함이 많다. 그러나 와중에도 박정민은 이렇게 얘기했더라.


“어쨋든 나 또한 계속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해나가겠다. 꿋꿋이 걸어가 보겠다. 여러분도 그대들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의 복이 도리 수 있게 맡은 바 최선을 다하시길 빌겠다. 우리 모두 정상에서 만납시다. 정상의 공기가 여기보단 나을 거라 기대하고서 말이다."


대책없이 ‘잘 될 것이다’라고 한 그 때의 자신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번엔 나를 떠올린다. 사실 이건 비밀인데,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내가 진심으로 좋아졌다. 그래서 덕질을 하기 시작했다. 꿈을 계속 꿔야지. 모두 다 이뤄서 눈물이 날 정도로 꿈을 꿔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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