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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26. 2023

나도 나를 모를 나의 일기

여름의 끄적

여름은 설렘의 계절. 코 끝에 맺히는 여름 밤 냄새, 한 철 반짝 열심히 먹어줘야하는 딱복과 아오리 사과. 이런 걸 떠올리기만 해도 어느새 행복이 봉봉- 부풀어오르기 마련인데 올해 여름은 감흥이 없다. 처음으로 참 무채색 같은 여름이다.

종잡을 수 없는 불안이 혹은 우울이 여름의 색을 구석 어디쯤으로 밀어 넣었다. 감정도 기분도 생각도 온통 회색. 흰색과 검은색 사이. 딱복도 그 어디쯤 떨어져버렸나. 그럼에도 일상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곱씹어야 한다는 선생님 말을 떠올려보며. 작디 작은 행복을 발굴하는 마음으로. 흐린 경계의 여름 일기 시작.


5월20일. 여름은 아닌 것 같지만 반팔을 입고 피자를 먹었으므로 여름으로 치기로 한다. 당니와 자주 가던 피자집을 그에게도 소개해주었다. 크지만 한 조각 이상 먹어야 제맛인 요 피자. 겁도 없이 페퍼론치노 가루를 마구 뿌렸다가 헥헥댔다. 요즘은 파파존스 스파이시이탈리안 씬도우에 빠져있다. 최고. 언제나. 항상. 또 먹고싶다. 최근에 만난 후배와 언젠가 피자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한 판을 다 먹지 못하면 집에 가지 못하는 모임으로.


척박한 서초동에 한 줌 온기를 지닌 아늑한 카페. 사람이 없을 때 꽃을 보며 커피를 마시면 조그마한 행복이 왔다가, 카페를 나서는 순간 떠난다. 행복은 불안과 달리 잡아두지 않으면 쉽게 떠나버린다는 선생님 말을 떠올려보면 체감만 그런걸지도. 언젠가 꽃다발을 사서 퇴근해야지.


많이들 간다는 더현대. 마포구 주민이 된 기념으로 처음 가봤다. 남들은 멋쟁이처럼 사진을 찍던데 우리는 왠지 뚝딱대고 말았다. 왜 여기서들 사진을 찍을까?


특명, 행복을 찾아라. 정확하게는 어딘가로 떠나가 꼭꼭 숨어버린 행복을 찾아라. 그가 이때다! 싶게 주문한 게 아닌지 아직도 약간은 의심스러운 슬램덩크 전권. 목적이야 뭐였든 하루에 한권씩 짙은 감동과 몰입을 선사해줬다. 햇살을 받으며 뭉근한 공기반짜리 빈백에 몸을 파묻고 슬램덩크를 아껴 읽었다. 슬램덩크 주인공은 그러니까 원래 강백호였다. 영화볼 때 그에게 원래 강백호 저렇게 이상해..? 라고 물었더니 원래 더 이상해. 라고 하던 그의 답을 이해했다. 하지만 농구천재는 인정. 왼손은 거들뿐! 진흙 투성이가 되는 가자미! 포기하지 않는 남자! 호우!


린나의 특별한 브라이덜 샤워. 예약한 배구코트를 찾는데 한 시간 정도 걸렸지만 배구는, 정확하게는 배구 비스무리한 것은 20분 정도 한 우리. 그래도 예비신부님 나이키 모자 아래 면사포를 씌워줬다. 공주세트로 공주도 만들어줬다. 린나의 시그니처 퍼플로다가 맞춰서. 겁이 날법한 인생의 길목에서 중대한 결정을 동시에 두개나 내려버린 린나에게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서브를 날려보았다.


나아름 나쁘지 않았다. 콜드파스타! 그는 대부분 음식을 불평없이 먹는다. 다만 얼마나 먹는건지 양은 잘 모르겠다. 그때 그때 달리 먹는 것 같아.


딤섬은 또현과 먹어야 한다. 또현과 함께라면 식당의 모든 딤섬을 먹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또현 딤섬 파워-. 명동의 딘타이펑에 가면 맞은 편엔 코리안 스타일 치킨거리가, 옆에는 성인용품점 간판이 크게도 보인다. 여기가 바로 K-코리아란다 외국인 친구들아. 또현과는 잠실에서 장소만 바꾸었을 뿐 신세 한탄과 한숨이 잔뜩 묻은 대화가 오간다. 석촌호수 대신 을지로와 명동 어딘가를 정처없이 걸었다. 테니스가 주는 짜릿함이 아니고서는 우리에게 한탄만 무한 반복되는 것인가. 그래도 나에게 그 자체로 큰 위안이 되는 또현.


그가 일하러 간 틈을 타 접시 부자가 되어보기로 했던 날. 그 없이 그의 가족들과.. 그러니까 이제 나의 가족이기도 한 이들과 저 멀리 접시 아울렛 탐방을 떠났더랬다. 데려가 주셔서 감사해요. 북돋아 주신 덕분에 한 번도 만들어본 적 없는 라자냐를 만들기 위해 2만9000원을 썼다. 역시 한 번도 해본 적 없지만 대규모 집들이를 대비해보자며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많은 접시를 샀다. 작고 귀여운 디저트 스푼과 포크. 일리 머신에 딱 들어갈 법한 에스프레소 잔. 눈이 휙휙 돌아가는 접시 아울렛. 다녀온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사온 그릇들 중 세개만 써봤다.. 그래도 라자냐를 두 번 만들어 먹었으니까 괜찮은 듯도.   


우리 홍구. 귀엽다. 핑크색 꼬깔모자 진짜 안 어울린다. 눈썹이 앵그리버드니까 더 안 어울린다. 하지만 귀엽다. 지금 당장 앵그리버드!라고 놀리고 싶다. 생일 축하해 홍구. '홍구'와 '박사' 라는 말은 참 안 조화롭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 갈 길 알아서 잘 가는 것 같다. 사실 잘 모른다. 얘는 무슨 공부를 하는걸까. 공대생의 공부란 어떻게 생겨먹었을지. 그래도 내 생일에 생각보다 값 나가는 레인부츠를 턱 선물해주고 숙미랑 뮤지컬에도 데려가주는 걸 보면 잘 사는 것 같다. 좋은 나라로 가는 학회가 많아보여 부럽다 홍구야. 아프지말고 건강해.


출근길 문에 끼었다. 출입증 줄이 문고리에 걸리고 왼쪽 바지는 복합기에 어딘가 걸렸는데. 한참 뒤에 지나고 보니 바지가 터져있었다. 박음질이 된 부분도 아닌데 저렇게 터진다고..? 긴 셔츠를 안에 넣어입어서 망정이지 속옷을 자랑하고 다닐 뻔 했다. 신성한 법정을 오가며 속옷 자랑이라니. 이 바지가 터진 주에 치마도 두 번이나 터졌다. 살이 찐걸까..


나름대로 여름 점심. 이마트 노브랜드 메밀소바는 생각보다 맛나다. 스팸이 못나게 들어간 조막만한 주먹밥이 메밀소바의 슴슴함을 잡아줬다. 메뉴 발제가 항상 어려운 그와 내가 뭔가를 만들어 먹는 일은 늘 시간이 걸린다. 뭘 먹어야 좋을까 우리는. 한참 동안 고민 끝에 나온 두 조합. 역시 그는 배가 안 찼다.


또현이 '제목을 새겨 듣고 가벼이 읽어라'며 보내준 선물. 정말 멋지다. 또현은 참 멋져. 저 어깨가 굽어버린 곰은 법원 앞 잔디밭 의자에 앉아있는 나같다. 운동을 열심히해도 노트북 앞에선 굽어버리는 등과 목을 어쩌면 좋아.

더위 속에서는 수평 자세로 누워서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렇게 애써 쉬는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여러 일들이 사람을 조금씩 갉아막는다는 사실을 살수록 실감합니다. /30p.


감정이 널뛰는 나를 야구장에 데려가준 그. 그는 자기만의 가장 좋은 방법으로 나를 여기 저기 데려가고 이것 저것 먹인다. 이날 우리는 피자를 먹었다. 날씨가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KT위즈 김상수 응원가는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나라면 야구방망이 휘두르다 힘빠질 것 같아. 날려버려 김상수 야야야야야. 안타안타 김상수 야야야야야. 다섯번의 '야'가 갈수록 음정이 떨어진다. 땅굴까지 내려가겠어. 야↘야↘야↘야↘야.


힘모스 좌장 환동쓰. 우리의 결혼식 앨범에도 실렸다. 보정은 우리 둘만 해준다더라 조금 미안해. 그렇지만 환동쓰가 결혼식에서 우리 둘을 소개해준 장본인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던 인사말이 떠올라 앨범 사진 중 하나로 픽됐다. 자전거를 타기만 하면 길을 잃고 환동쓰네 집 쪽에 가게 되는데 조만간 또 찾아가야지.

귀여운 고양이 키링. 나도 가방에 키링이 생겼다. 못생긴 눈을 한 강아지 키링과 커플템. 또현은 내꺼다. (보고있나 연수)

처음 겪는 낯선 생일. 정말 새 가족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든 날이었다. 낯설지만 나름 좋았다. 올해처럼 가족 중심(?)의 생일을 보낸 것도 처음인 듯.

왕왕와아아아왕 초보운전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드디어 달게 된 왕초보운전 딱지. 뉴 드라이버는 차선은 바꿀 수 있지만 네비는 못본다. 노래는 따라 불러도 커피는 못 마신다. 올해 안에 왕과 초보 딱지를 모두 뗄테야. 또현과 남들처럼 운전해서 테니스 치러 갈테야.

야식으로 만두는 못참지. 그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야식의 유혹으로부터 시험이 시작된다.

모처럼 같이 출근. 이른 출근하게 된 그는 코가 부었다. 차를 얻어타게 된 나는 해피.

연애 6년차 처음 받아본 살아있는 꽃다발. 정말 놀랐다. 레고 꽃다발이 아닌 생화는 처음. 대왕 꽃다발이 아닌 평범한 꽃다발은 처음. 시들어버리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엄마집에 있는 레고 꽃다발도 데려와야겠다.

동기의 고양이. 귀엽다. 나만 고양이 없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을 거쳐 나온 결혼식 사진. 세상 빠르게 걸어와 그의 손을 잡고 말한 첫마디는 ‘춥다’였다. 추운 계절이 가장 싫은 나는 저때 정말 춥다는 생각 뿐이었다. 추위에도 축하해주러 온 분들께 감사를 돌려줘야지.

생일선물로 함께 하게 된 필라테스. 표정이 왜 그래?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만 되어도 참 좋을텐데. 동시에 근육통을 호소하며 낑낑대는 우리가 약간 우스우면서도 재밌다. 지금도 맨소래담 냄새가 진동을 한다.

다시는 안 산다 대왕팝콘. 남은 거 집에 가져와서 내가 다 먹었다. 남들은 재미있다던 미션 임파서블, 잘 시간에 가서 보니 졸리기만 했다 흑.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능동미나리! 또현과 나의 눈치싸움은 애매하게 성공해 20분 정도 대기했지만 기다린 보람이 아주 많이 있었다. 또 먹고 싶다. 요 근래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간 곳 중 가장 맛났다. 미나리는 역시 미나리. 다음엔 꼬리찜을 먹자.

바람과 앵무새, 금쪽이 둘.

낄낄 필라테를 다녀오면 턱선이 생기는 그. 나와 달리 시력이 아주 좋은 그.

목동까지 자전거 타고 가는 모험 중 노을이 졌다. 길치에겐 모험이라고 칭해야 마땅한 루트. 아직도 한강길을 따라가다 어디에서 빠져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가는 길은 자전거가 달리기 아주 적합하지 않게 육교를 편도로 다섯번 오르내려야 했기 때문에 뭔가 잘못된 건 확실하다. 게다가 지도에선 다른 길을 알려주는데 나는 자꾸 환동쓰네 집 쪽에 와있다. 역시 머리가 못 따라주면 몸이 고생하는 법인데. 이렇게 험난한 모험을 거쳐 그를 데리러 갔다. 가서 내가 운전해서 태워왔으니 데리러 간 게 맞다.

뱀은 대체 왜 개구리 뒷다리를 물었는가! 진지한 토론과 다정한 선배, 동기들. 모처럼 많이 웃었던 밤.

할머니가 되어버린 걸까. 아침잠 실종 사건.. 진행형.. 다섯시반이면 눈을 뜨고 찬물에 샤워하는 나 어떤데.. 아무리 폭염이라지만 보일러 고친다고 일주일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건 너무한 게 아닌가. 아무튼 원치 않게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있다. 벌써 오들오들 떠는 계절을 두번이나 거친 출근길.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실패의 기록으로 끝내고 싶지 않은데. 몸이 견뎌주기를.


당니와 운동. 주말에 헬스장을 가자며 쌩뚱맞게도 을지로에서 만난 우리. 당니의 어깨가 탐난다. 당니의 멋진 등도 탐난다. 기질에 성격까지 비슷한 우리에게도 완벽하게 좋은 날이 오기를-. 화팅.


운동했는데 잔뜩 먹어버렸다? 파파존스 스파이시 이탈리안 정말 너무 좋아!!!! 예니니와 보리밥이 먼 길 거쳐 울집에 놀러와줬다. 우리의 사진은 하나도 없고 음식 사진 뿐..


그래도 일단은 딱복과 무화과를 먹어줬다. 집주인의 취향을 완전히 파악해버린 친구들.


하계 엠티로 참여한 강릉. 빨강지붕의 숙소는 사진으로 보는 것 보다 다섯배는 좋았다.


마루에 가만히 앉아 고구마밭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고요하고 근심이 없어진다. 일곱명이서 알차게 하룻밤을 보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먹는 아이스크림 꿀맛-


날 할퀴고 깨물었지만 널 좋아해 고양이~_~ 애플워치까지 할켜서 기스냈지만 그래도 널 좋아해~_~ 나만 고양이 없다~_~


8시간짜리 제주도. 덜 절망하고 덜 불행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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