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_일상의 단편
“꼭 이럴 때 가야겠니?”
“아, 엄마는 왜 또. 몇 번이나 말했잖아. 지금 여행 못 가면 평생 못 간다니까.”
캐리어를 싸던 딸이 홱 눈을 째려봤다. 지 아버지를 쏙 빼닮은 눈은 쓸데없이 컸다.
“아휴. 니 나이가 몇인데 자꾸 밖으로 싸돌아댕겨.”
“내 나이가 어때서. 아직 삼십 대인데.”
“빨리 좋은 사람이나 만나서 결혼해야지. 내가 니 나이 때는.”
“또, 또, 그 소리.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테니까, 우리 박 여사님은 나가서 어서 쉬세요. 어서.”
딸이 내 등을 떠밀다시피 밀어댔다. 덩치만 컸고, 나이만 먹었지 어째 하는 행동은 어렸을 때랑 똑같을까.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
“몽골. 가서 드넓은 초원에 누워서 별 볼 거야.”
“몽고 그게 뭘 볼 게 있다고. 너도 참.”
“몽고가 아니라 몽골이라구. 나 내일 새벽 비행기라 바빠. 그만 좀 귀찮게 해.”
“알았다, 알았어.”
결국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거실로 나왔다. 남편은 이미 안방에 들어가서 자고 있었고, 별 관심도 없었다. 다 큰딸이 먼 외국에 간다는 데 걱정도 안 되나. 잠도 안 와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틀었다. 케이블에 트로트 경연 재방송이 나와 거기에 머물렀다.
방송에선 젊은 여자가 자신의 고된 사연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동안 힘겹게 무명 생활을 전전하다가, 이번에 좋은 기회가 왔다. 이 기회를 꼭 놓치고 싶지 않다. 부디 제 노래를 들어주세요, 하며.
“딱하네. 딱해.”
꼭 우리 딸 또래 같은 게, 남 같지가 않았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 얘도 있는데, 왜 우리 딸은 저럴까. 빨리 자리 잡고 가정을 꾸려도 부족한 나인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행 같은 거만 다니려는지.
티비 속 가수는 열심히도 노래를 불렀다. 짙은 화장 위로 땀이 맺혔고, 그 절절한 노래에 연예인들이 울컥 과장된 감격을 했고. 고음이 높이 올라가다가 뭉근한 저음으로 바뀌어 두드렸고, 그러다가.
“엄마.”
“응?”
“들어가서 자. 여기서 주무시지 말고.”
어느새 딸이 방에서 나와 있었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놀라 시계를 보니 벌써 자정이 넘어있었다.
“응, 그래야지. 넌 짐은 다 쌌어?”
“캐리어 하나인데 뭘. 여행도 4박 5일이라 별로 안 길어.”
딸은 옆에 앉더니 슥 내게 팔짱을 끼었다. 어깨에 머리를 기대길래 손을 잡아줬다.
“엄마.”
“왜 자꾸 불러.”
“엄마는 내가 이 나이 먹고 여행 다니는 거 싫지?”
“알면서 뭘 물어봐.”
굳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딸은 내 어깨에 머리를 더 푹 기대왔다. 다 컸는데도 여전히 어린애 같은지.
“나도 알아. 내 나이 먹으면 다 좋은 사람 만나고, 결혼하고, 애 낳고 그렇게 평범히들 사는 거.”
“그럼 너도 빨리 좋은 사람 만나서 열심히 살면 되잖아.”
“그게 말처럼 쉽나. 내 친구들만 해도 아직 결혼 안 한 애들이 널렸는데.”
문득 같이 일하는 영숙이네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 집 딸도 나이는 다 먹었는데 아직 결혼도 안 하고, 그렇게 산다면서 언제 사람 만날지 걱정이 크다면서. 그 이야기는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내 딸도 이러는데.
“에휴, 모르겠다. 너 알아서 해.”
“또 이런다. 왜 또 삐지셨어.”
“너도 내 나이가 되어봐라. 자식 낳고, 그러면 이해 될 걸.”
“아으, 그놈의 자식.”
딸은 기댄 머리를 마구 흔들며 비벼댔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툭툭 건드렸지만 그래도 싫진 않았다.
“얘가 왜 이래. 어서 들어가 잠이나 자. 새벽 비행기라며.”
“가서 선물 사올게. 뭐가 좋아?”
“알아서 사와. 비싼 거 말고.”
그렇게 한참을 토닥이다가 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으로 가 한참 잠에 곯아 떨어진 남편 옆에 누워 눈을 감았다. 고롱, 고롱, 남편의 코골이 소리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언제쯤 철이 들런지. 아니, 철이 들었는데 너무 철이 들어버린 건 아닌지.
그저 빨리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더 잘 살았으면 좋을 텐데.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지. 외모는, 그래, 썩 빼어난 건 아니어도 쟤 정도면. 직장도 있겠다 딱 적당한 사람만 만나면 더 좋을 텐데. 직업도 괜찮고, 집안도 화목하고 그런 남자 하나 잘 만나서 그러면.
아쉬운 생각이 계속 이어지다가 잠에 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남편은 이미 일어나 씻고 있었고, 딸의 방에 가보니 딸도 없었다. 새벽 비행기라더니 제때 일어나서 간 모양이었다.
몇 시 비행기였더라. 이미 비행기엔 타 있을까.
잘 도착하면 연락해.
딸에게 카톡을 하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