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8. 21. 장마

에세이_하루의 단어

by 시고

내게도 기나긴 장마의 시기가 있었을까.


쏟아지는 비, 우중충한 하늘, 사람의 발을 묶는 폭우. 평소보다 축축한 공기는 몸을 무겁게 한다. 빨래도 잘 마르지 않는다. 빨리 이 장마가 끝나고 햇살이 비추기를 바라지만 내 의지로 장마를 끝낼 수는 없다. 장마는 자연이며, 나는 미약한 인간 하나일 뿐. 그저 자연의 조화가 내게 이로운 방향으로 흐르기만을, 비를 맞으며 바랄 뿐이다.


대학생 때, 시험을 준비했을 때가 장마의 시기였다. 나라에서 어렵다고 손꼽히는 시험을 준비했다. 부모님의 의지도 있었고, 내 의지도 있었다. 처음엔 반드시 합격할 거라는 햇살만이 가득했다.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포기하면서 시작했던 수험 기간. 일 년이 지나고, 곧 먹구름과 함께 장마가 시작되었다. 독서실, 학원, 독서실, 집. 매일 똑같은 모습과 시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나아가고 있는 건지. 퇴보하고 있는지. 내 위치가 불확실했다. 그렇게 시험을 봤다. 한 번, 두 번. 두 번째엔 희망이 있었다. 장마가 곧 끝날 거라는 미래가 보였다. 조금만 더. 이 장마를 참고 견디면 햇살이 쏟아지리라. 세 번, 네 번. 그리고 끝. 내 의지와 힘으로 장마를 끝내지 못했다. 도망쳤다.


어정쩡한 위치에 놓였다. 남들이 즐기던 대학 생활을 온전히 보내지도 않았고, 취업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내가 원한 일을 이루지도 못한 그런 존재. 그 과정에서 떠나보냈던 사람들. 가까웠으나 흘려보낸 관계들. 장마는 그쳤어도 내가 서 있는 땅은 여전히 질척거렸다. 방향도 잃었다.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도. 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길이 지금 내 직업이었다.


도피로 시작한 그 길이, 지금은 내 평생의 업이 되었다. 장마 속에 있을 때도, 장마에서 도망친 그때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지금의 나다. 이곳에서 내가 작게나마 도움을 준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때의 장마는 내 의지로 끝내지 못했기에 장마가 되었지만, 그 장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 어디에도 햇살은 항상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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