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하루의 단어
어떤 장면은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에 깊이 남아버리곤 한다.
눈을 감거나, 꿈을 꾸거나 하면 금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내 인생의 어느 시기 또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대표하는 장면들. 몹시 편안했거나, 마음에 들었거나, 행복했거나. 아니면 지독히도 슬펐거나. 장면이 기억에 새겨지는 이유는 모두 감정이었다. 감정의 장난은 그 장면을 평생 내 기억 속에 남게 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바랐다면 몇몇 장면은 기억에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아야 했다. 절망, 비애, 좌절. 삶이 꺾였던 그 장면의 고통은 아직도 기억 한편에 존재했다.
내가 원하는 장면만을 기억하고 싶었다. 눈을 감았을 때 늘 좋은 모습만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지. 불가능하기에 바랐다. 대신 비슷하게나마 원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방법을 찾았다. 기록. 그 순간을, 그 장면을 내 의도에 따라 형태로 남기는 것이었다.
장면을 기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진도 가능하고, 글도 가능하다. 영상도 있겠다. 내가 원하는 장면의 풍경을 어떤 형태든 남기고, 이를 나중에 볼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 장면이 내가 진정 원하는 풍경이었다면 작은 계기만으로도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여름에 어디 계곡으로 놀러 가 즐겁게 물놀이하는 사진이라면, 그때 그날의 더웠던 온도와 서늘했던 물, 따갑게 뺨을 두드리던 물방울과 웃음소리가 떠올랐다. 행복했던 감정과 함께.
글도 나쁘지 않다. 일기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아니면 시나 소설도 좋다. 내가 원했던 장면을 표현한 글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나 스스로 만족하는 글이면 더더욱. 내겐 소설과 시가 그랬다. 내가 경험했던 그 장면을, 나만의 단어 또는 비유로, 아니면 소설의 등장인물을 통해 그리곤 했다. 가장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했던 글은 누군가에게 선물로 줬던 글이었다. 그때의 순수했던 감정만을 담았기에 쓸 수 있었던 글. 선물로 글을 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였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비록 그때의 순수가 사라져 아쉽긴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