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하루의 단어
기록은 나를 위한 글과 상대를 고려한 글이 있다.
책을 좋아하고, 매일 활자에 중독된 삶은 자연스레 글을 끄적이게 됐다. 나를 위한 기록. 내 하루의 계획을 세우는 버릇을 들이고 싶었다. 가장 효율적인 기록은 무엇일지 고민하며 수많은 유튜브나 자기개발 책을 보고 또 봤다. 수첩, 다이어리, 스마트폰을 사용한 기록, 노션, 에버노트 등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나를 위한 기록은 - 주로 업무 리스트 작성 - 도움이 될 때도 있었고, 안 될 때도 있었다. 쏟아지는 업무를 리스트에 꾸역꾸역 넣고, 당장 할 일, 나중에 할 일, 언젠가 할 일 등으로 구분하고, 그렇게 분류해 봤자 언제는 쭉쭉 리스트가 지워지지만 어쩔 때는 리스트가 터질 듯이 늘어났다. 이걸 어떻게 하냐, 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결국 업무 리스트 작성을 멈췄다.
안타까운 건, 다시 또 작성을 하고 만다는 거다. 머릿속에 업무 리스트가 있더라도 눈에 보이면 왜 이렇게 편한지. 노션을 배우고 나선 노션에 온갖 표와 달력과 계산을 활용해 쫙 업무를 정리했을 때 상쾌함이란. 다시 던져버릴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못하는 중독성이 있다. 깔끔한 기록과 유지는 내 영원한 이상향이다.
반면 상대를 고려한 글은 항상 글의 마침표를 찍을 때 뿌듯함이 있다. 나를 위한 기록은 아무리 마침표를 찍어도 이게 끝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면, 상대를 즉 독자를 고려한 글은 마쳤을 때 확실하게 끝냈다는 쾌감이 있다. 퀄리티를 떠나 한 건 했다는 느낌까지. 그 중독성은 나를 위한 기록보다 더 짜릿하다. 그 누가 됐든 내 글을 어떻게 읽어내리든 모조리 독자의 몫으로 맡기면 된다. 기록의 형태가 업무 보고서라도 마치기만 하면 좋았다. 평이 좋다면 더더욱.
도돌이표처럼 이 자리에 항상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기록을 썼다. 내 생각을 담은 기록. 책임감에 작성해야만 하는 보고서보다 이 에세이처럼 내 의도로 쓰는 기록이 더 마음에 든다. 정확히는 마음을 풀어준다. 딱딱했던 머리를 한 올씩 풀어 손끝으로 적어 내리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