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위의 철학

32년간 모아온 젓가락 받침대 이야기 입니다

by 시골살이궁리소


프롤로그 | 식탁이라는 우주

식탁 위에는 세상의 질서가 있다.
그 위에 놓인 젓가락, 숟가락, 그릇, 그리고 젓가락 받침대까지 —
그 사소한 배열 속에 삶의 방식과 마음의 모양이 숨어 있다.

나는 30년 이상 젓가락 받침대를 모았다.
누구는 그게 다 똑같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하나하나가 전혀 다르다.
누군가는 흙으로 빚었고, 누군가는 나무로 깎았고,
어떤 것은 유리 속에 바다를 담고, 또 어떤 것은 사람의 표정을 닮았다.

그 모든 젓가락 받침대는 누군가의 손끝과 시간, 그리고 온기를 품은 작은 우주다.


한 벌의 젓가락 받침대에서 시작된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은 1993년 6월. 정확하게는 6월 8일이었다.
일본 규슈의 어느 농촌 펜션에 머물던 아침이었습니다. 낯선 이들이 함께 둘러앉은 소박한 식탁, 그곳에선 주인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며 서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열어주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생각했죠. 언젠가 이런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리고 그런 자연스러운 아이스브레이킹의 소재로, 저는 작은 젓가락 받침대를 떠올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세월을 지나며 세계 곳곳에서 이 작은 받침대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멋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도시와 그 순간을 기억하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매개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의 여백을 메우지도, 눈에 띄게 꾸미지도 않은
그저 “자리를 지키는” 존재였다.

그것이 내게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람도, 관계도, 일도 이 젓가락 받침대처럼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존재’로 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단정한 삶의 모습 아닐까.

그날 이후,
나는 여행을 가면 꼭 젓가락 받침대를 하나씩 사 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한 시절의 기억’을 붙잡는 의식이 되었다.
그렇게 모인 젓가락 받침대들이 내 인생의 지도처럼 늘어섰다.


손끝에 닿는 사물에서 삶을 배우다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단단하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흙으로 만든 것들은 ‘견디는 법’을,
유리로 만든 것들은 ‘비추는 법’을,
나무로 만든 것들은 ‘시간과 함께 늙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떤 젓가락 받침대는 깨져 있었고,
어떤 것은 손때가 타 윤기가 났다.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젓가락 받침대는 내게 그런 말을 건넸다.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인생도 흙처럼 구워지고, 닳고, 깨지고, 다시 이어지며 단단해지는 것임을.

나는 그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삶의 의미는 화려한 그릇에 담긴 것이 아니라,
그릇 아래, 젓가락이 잠시 머무는 작은 자리에도 깃들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모은 것은 물건이 아니라, ‘시간과 온기’였다

30여 년간 모은 젓가락 받침대는 이제 수백 개가 되었다.
그중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은 것들이 많다.
먼지가 쌓여 빛이 바랜 것도, 깨져 본드로 붙인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단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그것들은 내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 시절의 공기, 나를 지나간 사람들,
그리고 함께 식탁을 나누었던 순간의 온기가 그 안에 살아 있다.

그래서 젓가락 받침대는 내게 ‘시간의 저장소’이고,
‘기억의 좌표’이며,
‘삶의 무늬’를 기록한 가장 작은 철학 노트다.

이 책은 그 이야기들을 모았다.
사물의 생김새를 통해,
나는 사람의 마음과 관계, 그리고 세상을 배워왔다.

젓가락 받침대의 형태는 다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같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누군가의 하루를 받쳐주는 존재.”

삶이란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일 아닐까.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보이지 않아도, 반드시 그 자리에.

오늘도 나는 식탁 위에 하나의 젓가락 받침대를 올린다.
그 위에 젓가락을 가지런히 내려놓으며 생각한다.


“삶이란, 이렇게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일의 연속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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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의 꿈은 이음채라는 공간에서 현실이 되어 사람들의 웃음과 대화를 꽃피웁니다. 작은 젓가락 받침대 하나하나가, 이제는 서로 다른 이들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이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함께 엮어가고 있습니다.


1부. 사물은 기억을 품고 있다

시간과 사람, 그리고 한 시절의 온기

사물은 생각보다 오래 기억한다.
사람의 손끝이 닿은 물건들은
그 순간의 공기, 온도, 표정까지도 함께 품는다.

젓가락 받침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한 끼의 온기를 받쳐주던 그 자리에
그날의 대화, 그 사람의 숨결, 그리고 그 시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한다.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이야기들은
단지 오래된 물건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얼굴들과의 대화다.
흙이 기억하고, 나무가 기억하고,
그리고 나 또한 그 기억의 일부가 되어 살아간다.



기억을 품은 나무

20250915_043808.jpg 나무의 기억,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젓가락 받침대

이 젓가락 받침대는 제가 일본 우쓰노미야(宇都宮) 대학에 있을 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1999년에서 2001년 사이쯤,
호주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온 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그 교수는 제가 젓가락 받침대를 모으고 있다는 걸 알고,
어느 날, 호주에 살고 있는 자신의 딸에게 연락해
제게 선물로 하나 건네주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손끝에 닿으면 마치 돌처럼 단단하고 맑은 소리를 냅니다.
목재의 결이 고요하고,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집니다.

그 교수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하나 드릴게요.”

그 말 한마디와 함께 건네받은 이 젓가락 받침대는
지금도 제 책상 위, 혹은 식탁 한켠에
오래된 친구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인자한 얼굴, 사람 좋은 미소,
그리고 느긋하고 따뜻했던 대화의 순간들이
이 나무의 결 사이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아마 이 젓가락 받침대가 없었다면,
그 사람의 얼굴도, 그 시간의 공기도
이제는 잊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무 하나가 기억의 매개가 되어
세월을 건너 한 사람의 온기를 다시 불러옵니다.

결국 제가 모아온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물건 속에 스며든 시간과 사람의 온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의 흔적, 나무의 기억

20250915_043041.jpg 함께 남는다는 것의 의미

우드버닝은 ‘불로 새기는 예술’입니다.
뜨거운 열로 나무 표면을 지지면
그 자리는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도 그랬을 겁니다.
나와 아내의 성씨가 새겨지는 그 순간,
짧은 불의 시간이 지나고,
이후부터 그 안에는 우리의 긴 시간이 새겨졌습니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기억이 남는다.”


나무는 불에 닿으면 탄 흔적을 남기지만,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레 나이테처럼 녹아듭니다.
우리 부부의 이니결이 새겨진 이 젓가락 받침대도 그렇습니다.
삶 속에서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언젠가는 이 흔적도 빛바래겠지만,
그 안의 온기만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겁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식사가 지나가지만,
그중 어떤 한 끼는 마음을 새기고,
어떤 한 끼는 사랑을 새깁니다.
그 모든 식탁의 순간이 쌓여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됩니다.


외국의 낮선 체험마을에서 마을 사람이 새겨준 글씨이지만,
이것은 우리 부부의 인생 여정에 새겨진 ‘부부의 문장’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나무에 열선으로 쓴 글씨라고 보겠지만,
우리에게는 함께 살아낸 시간의 증거이지요.


세월의 무늬

20251006_041255.jpg 시간의 빛

이 젓가락 받침대는 놋쇠로 만들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번쩍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빛이 눌리고 색이 깊어졌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어느 부분은 닳고,
또 어떤 곳은 어둡게 변했지만,
그 변화가 오히려 이 물건의 품격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놋쇠는 쓰면 쓸수록 윤이 납니다.
닦지 않아도, 감추려 하지 않아도,
사람의 손길이 닿는 만큼 빛이 살아납니다.
그 빛은 단 한 번의 광택이 아니라,
시간이 쌓아 올린 온기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번쩍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빛은 바래고 흔적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 흔적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세월의 무늬가 아닐까요.

빛은 새것이 아니라, 오래됨에서 나온다


세월이 다듬은 표면에는
수많은 식탁의 순간이 스며 있습니다.
밥 짓는 냄새, 대화의 온기, 그리고 사소한 웃음까지.....
그 모든 것이 이 놋쇠에 남아 윤이 되어 갑니다.

결국 사람도, 물건도,
닳아감 속에서 빛을 얻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끊어진 선로의 끝을 향해 걷고 있는 저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세월은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게 하는 것이다


맑음의 자리

20250915_045717.jpg 맑음의 자리

이 젓가락 받침대는 한 잎의 잎사귀를 닮았습니다.
푸른빛이 안쪽으로 스며들어,
마치 맑은 하늘이 잎맥을 따라 흘러드는 듯합니다.

표면에는 유약이 고르게 번져 있고,
안쪽에는 은근한 금이 서려 있습니다.
그 금이 이 잎의 결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균열은 상처가 아니라,
빛이 머무는 길이 된 셈입니다.

삶도 이와 같습니다.
누구의 인생도 깨끗이 다듬어진 표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저마다의 금과 균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틈을 통해서만
빛은 안으로 스며들고, 마음은 깊어집니다.

식탁 위 젓가락 받침대가 말합니다.

맑다는 것은 깨끗함이 아니라, 투명함이다


완벽히 닦인 표면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가 함께 스며드는 투명한 마음.
그것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 잎사귀 모양의 젓가락 받침대는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흐리게 살아도 괜찮다.
진심은 언제나 맑은 쪽으로 흐르니까

그 모습 그대로 좋다

20250915_045550.jpg 괜찮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모양은 작은 주전자 같고, 귀퉁이가 살짝 깨져 있습니다.
그런데도 매장 한쪽 선반 위에 조용히 놓여 있었습니다.

물건을 다룬 점원이든, 고객이든
누군가의 실수로 흠집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만든 사람의 손맛과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지려 하는가

인생도, 관계도, 일도
조금씩의 흠과 균열 속에서
더 따뜻해지고, 더 인간다워지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그 깨진 젓가락 받침대를 사 왔습니다.
그때서야 점원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같은 제품이 있으면 새것을 드리겠지만,
저건 본래 하나만 들어온 거라 판매는 어렵습니다.”

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그 깨진 게 좋아요.
그 모습 그대로 포장해 주세요.”

가끔 그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말합니다.

괜찮다, 너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깨진 귀퉁이마저 품은 이 도자기처럼,

삶도 그렇게 불완전해야
비로소 따뜻함을 품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일수도

20250915_045638.jpg 다시 시작으로

이 젓가락 받침대는 흙의 질감이 살아 있는 소박한 빛깔을 지녔습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한 나선형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쪽으로 돌며 끝을 향해 가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선을 바꾸어 안쪽부터 본다면,
그 길은 다시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끝과 시작이 맞닿아 있는,
멈춤과 흐름이 함께 있는 모양이지요.

삶도 이와 같습니다.
어떤 일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쪽에서는 이미 새로운 일이 자라고 있습니다.
하루의 해가 지면 또 다른 아침이 오듯,
끝나는 일마다 시작이 깃듭니다.

젓가락 받침대는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끝이라 여긴 그 자리가, 어쩌면 다시 시작되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안쪽으로 돌면서 깊어지고,
다시 바깥으로 향하며 넓어지는 그 형태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안과 밖을 오가며
조용히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부. 자연의 결, 사람의 결

흙과 나무, 생명과 고요의 이야기


자연의 사물들은 늘 자기 속도로 산다.
흙은 흙의 속도로 단단해지고,
나무는 나무의 속도로 자란다.
누구와 경쟁하지 않지만, 제 자리를 잃지도 않는다.

그런 자연의 결 속에는
사람이 배워야 할 삶의 방식이 숨어 있다.
비워야 단단해지고, 기다려야 자란다는 이치.
나는 흙으로 만든 젓가락 받침대의 거친 표면에서,
나무의 온기 속에서
삶의 리듬을 배운다.
자연이 오래 품어온 균형과 단단함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 닮아가야 할 질서이기도 하다.


대나무의 마음

20250915_045737.jpg 비어 있기에 꺾이지 않는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대나무의 마디를 닮았습니다.
겉은 단단하고 매끄럽지만,
그 안은 비어 있습니다.
대나무는 그 비움 덕분에 더 가볍고,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지만,
그 속은 언제나 비워 둔 채로 자랍니다.
자신을 꽉 채우지 않기에
더 높이 뻗어 오를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식으로, 명예로, 말로 자신을 가득 채우려 하면
조금의 바람에도 흔들리고 부러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운 사람은
늘 여유 있고 유연하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식탁 위의 작은 젓가락 받침대가 말합니다.

비워야 단단해진다.
비어야 멀리 본다


이 작은 대나무 모양의 젓가락 받침대는
하루의 식사 자리에서
겸손과 절제의 철학을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흙 속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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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마치 작은 그릇 같습니다.
바깥은 거칠고 단단한 흙의 질감,
안쪽은 반짝이는 푸른 유약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손끝으로 만지면 바깥은 따뜻하고,
눈으로 보면 안쪽은 시원합니다.

흙과 빛, 거침과 고요,
이 두 세계가 하나의 조형 안에서 절묘하게 공존합니다.
바로 그 균형이 이 젓가락 받침대의 아름다움입니다.


“진짜 깊이는, 드러나는 곳이 아니라 숨겨진 곳에서 나온다.”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겉모습은 흙처럼 투박하고 단단해야 하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빛이 있어야 합니다.
겉이 단단하기에 안의 고요가 지켜지고,
안이 고요하기에 겉의 거침이 의미를 가집니다.

식탁 위에서 이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스스로의 마음도 한 겹 벗겨집니다.
겉의 모양보다 안의 색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보여지는 완벽함보다 내면의 깊이가 더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이 작은 흙그릇이 일깨워 줍니다.


“빛은 흙 속에서 자라고,
고요는 거침 속에서 피어난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흙의 단단함과 마음의 깊이,
그 둘이 만나 만들어내는 온도의 균형을 닮았습니다.


세월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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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은 흙그릇 같습니다.
손끝으로 만지면 울퉁불퉁한 흙의 질감이 느껴지고,
안쪽에는 매끄럽게 고인 유약의 빛이 고요히 머물러 있습니다.
그 대비가 참 따뜻합니다.

흙이 불에 구워져 단단해질 때,
그 속에서는 빛이 만들어집니다.
뜨거운 시간을 견뎠기에
이토록 부드럽게, 이토록 단단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단단함은 시간이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엔 언제나 온기가 있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깎고 태워내며 단단하게 만들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뜻한 사람의 결이 남습니다.
상처가 많을수록, 그만큼 깊어지는 빛이 있습니다.

식탁 위에서 이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면
묘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완벽하지 않은 형태, 매끄럽지 않은 질감,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 느껴지는 진짜 온기.

흙이 사람의 손에서 그릇이 되듯,
사람도 세월 속에서 자신만의 그릇이 되어갑니다.


“흙의 결이 남듯,
사람의 마음에도 세월의 결이 남는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 세월의 결을 닮은,
작고 조용한 인생의 단면입니다.


단단한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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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둥급니다.
겉은 흙의 색을 그대로 품은 거친 질감,
그러나 안쪽은 잔잔한 유약으로 덮여 부드럽게 빛납니다.
흙이 그대로 드러난 바깥과, 정제된 안쪽의 조화 —
그 단순한 구조 속에 긴 시간이 담겨 있습니다.

이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생각이 멈춥니다.
겉의 투박함은 세월이 만든 흔적이고,
안의 매끄러움은 오랜 인내가 남긴 온기입니다.


“진짜 단단함은 부드러움을 품을 때 완성된다.”


흙이 단단하기만 했다면
이토록 부드러운 곡선을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스스로 녹아내리며
마침내 지금의 형태로 태어났겠지요.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세상과 부딪히며 다져진 단단함 속에는
사실 부드러운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그 마음이 있기에 사람은 여전히 따뜻할 수 있습니다.

식탁 위의 이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흙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따뜻한 그릇이고 싶다.”


이 받침대는 흙의 거칠음과 유약의 온기가 만나
견고하면서도 부드러운 삶의 균형을 닮았습니다.
바깥의 단단함이 속의 평온을 지켜주고,
속의 부드러움이 바깥의 거칠음을 다독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완성’이라는 이름의 조화로운 인간미를 봅니다.


평범하지만 언제나 중심

20251006_041112.jpg 땅속의 시간이 만든 품격

이 젓가락 받침대는 대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흰빛에서 초록빛으로 번져 가는 그 형태가
마치 흙 속에서 올라온 생명의 결을 그대로 담은 듯합니다.

대파의 흰 부분은 빛을 보지 못한,
땅속에 묻혀 자라난 자리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 부분이 길수록
더 높은 값을 매깁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란 만큼, 가치가 깊어지는 것이지요.

겉으로 드러난 초록보다
보이지 않던 흰 부분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 —
그건 아마도 세상살이의 이치와 닮아 있습니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바라보지 못해도 묵묵히 자라난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여야
비로소 향기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젓가락 받침대는 말 합니다.

진짜 힘은, 드러난 자리보다
드러나지 않은 자리에서 자란다


화려하게 빛나는 초록은 금세 시들지만,
흙 속의 흰 부분은 오래도록 단단함을 품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곳이 뿌리이고
그곳에서 생명이 자랍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겸손한 자리에서 자라난 진짜 품격을 닮았습니다.


멈춤의 고리

20250915_045034.jpg 삐뚤어진 듯 둥근, 그 안에 머무는 고요 — 멈춤의 고리

이 젓가락 받침대의 이름을 붙인다면, ‘멈춤의 고리’라 하고 싶습니다.
형태는 완벽한 원이 아니고,
유약의 번짐도 균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불균형이 주는 안정감이 있습니다.

젓가락을 올려두면,
마치 바쁜 하루의 호흡이 잠시 고이는 듯합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채우려 할수록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지만,
조금 비워두면 그 자리에 여유가 머뭅니다.

완벽함보다는 온기,
균형보다는 흐름,
그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멈출 줄 아는 마음을 배웁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하루의 식탁 위에서 조용히 말합니다.

“잠시 멈추어도 괜찮습니다”

저에게도 꼭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닮은 듯 다른, 흙의 이야기

이 두 젓가락 받침대는 얼핏 보면 거의 똑같이 생겼습니다.
거친 흙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고,
안쪽에는 말려 들어간 빈 공간이 있습니다.
표면은 매끄럽지 않지만 일정한 패턴을 그리고 있지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는 조금 더 연한 빛을 띠고,
다른 하나는 더 거칠게 굽어 있습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두 개의 질감이 주는 느낌은 분명 다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직업, 비슷한 환경 속에 살아도
각자의 결은 조금씩 다릅니다.
겉으로는 닮았지만,
안쪽에는 서로 다른 온도와 마음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더 낫거나 덜한 것은 아닙니다.
그 미세한 차이들이 모여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흥미롭게 이어주는 것 아닐까요.

겉은 닮았지만,
안쪽의 온도는 저마다 다르다


겉모습은 단정히 빚을 수 있지만,
속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흙의 형상도
다듬어진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거친 흔적과 울퉁불퉁한 틈이 남아 있습니다.

그 틈이 바로 우리를 사람답게 만들고,
따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젓가락 받침대는
오늘도 조용히 그렇게 말합니다.

같은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각자의 빛으로 굽어 있다


그리고 둘 다, 안쪽의 빈 자리에는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자기 나름의 흙의 숨결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작고 투박한 젓가락 받침대들이 지닌,
진짜 생명감인지도 모릅니다.


접히는 미학

20250915_045623.jpg 펴짐보다 접힘이 더 깊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본래 형태 없는 흙이었습니다.
정해진 모양도, 쓰임도 없었겠지요.
그 흙이 사람의 손을 거쳐 사각형으로 빚어지고,
다시 그 사각의 평면이 삼각으로 접혀지며,
문양이 입혀지고 유약이 덧발라져
지금의 형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한 번의 굽힘과 여러 번의 열을 견디며
그 속에는 흙의 기억과 불의 흔적이 함께 남았습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이 작은 사물이 빛을 가지게 되었겠지요.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우리의 날것 같은 마음도
시간이라는 불 속에서 다져지고,
관계라는 손끝에서 빚어지고,
겸손이라는 접힘 속에서
비로소 나다운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사는 일은 펴지는 게 아니라, 접히는 일

흙이 사각으로, 다시 삼각으로 접히며 아름다워졌듯

우리도 그렇게 여러 번의 굽힘을 거치며
조용히 완성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3부. 관계의 온도, 사람의 자리

함께 살아가는 다름의 미학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서로 다르고, 느리거나 빠르고,
때로는 엇박자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다름이 꼭 불협화음인 것은 아니다.
서로의 온도를 조심스레 맞춰가는 일,
그것이 관계의 기술이고, 삶의 온기다.

식탁 위의 젓가락 받침대는 늘 짝을 이룬다.
나란히 있으면서도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식탁을 완성시킨다.
관계란 결국, 서로의 틈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 장의 이야기들은 그 틈을 따뜻하게 품은 관계의 기록이다.


조화는 같음보다 어울림에서

20250915_045913.jpg 조화는 같음보다 어울림에서


하얀 도자기로 빚어진 이 젓가락 받침대는
마치 연못 위를 나란히 미끄러지는 백조를 닮았습니다.
몸은 부드럽게 굽어 있고, 부리 끝에는 금빛이 살짝 물들어 있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그 자세는,
화려함보다 품격 있는 겸손을 느끼게 합니다.

식탁 위에 한 마리의 백조만 있어도 아름답지만,
이 젓가락 받침대는 여러 마리가 모였을 때
비로소 완전한 장면이 됩니다.

나란히 놓인 곡선들이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하나의 조화로운 흐름을 만들어냅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닮았습니다.
누군가를 앞서기보다,
함께 어울릴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모양은 같지만, 각자의 위치와 각도가 다르기에
그 어우러짐이 더 아름답습니다.

조화는 같음이 아니라, 어울림에서 온다


식탁 위의 젓가락 받침대가
그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함께 있음이 부담이 아니라,
서로의 곡선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한 장의 풍경.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품격을 배웁니다.








4부. 삶의 철학, 식탁의 사유

작은 사물에서 배운 인생의 태도

사람은 평생 배우며 산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배움은 책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온다.

젓가락 받침대 하나에도 삶의 철학이 있다.
견디는 것, 기다리는 것, 다시 쓰이는 것,
그리고 비워두는 것.
그 모든 행위가 결국 인생의 단면이다.

식탁 위의 사물은 작고 조용하지만,
그 안에는 삶의 태도가 있다.
균형을 잡는 일, 멈춤을 아는 일,
그리고 지나치지 않게 머무는 일.
이 사물들은 내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있나요?”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20250915_044614.jpg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방송 3사와 함께 유럽 농촌 탐방을 다니던 어느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 작은 접시를 구입했습니다.
이 미니 접시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면
늘 한 사람, 제 아들이 떠오릅니다.

전공이 맞지 않아 고민하던 아들은 1학년을 마치고 입대했 있었는데, 그가 제대할 쯤 저는 당시 큐슈대학에 초청교수로 가 있을 때입니다.
저는 비행기 티켓 한 장을 예약해 두었습니다.

“집에 오면 비행기표가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로 가거라.
그곳 농장에서 1년 동안 지내며,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지 생각해보렴.”


아들은 별 말 없이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꽃과 식물, 플로리스트리의 세계를 만났습니다.
귀국 후 그것을 배울 수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국기능경진대회에서 메달을 따기도 하고,
작년 한 해 동안 베트남과 싱가폴에서 초청 작가로 작품을 선보일 정도로
자신의 길 위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젓가락 받침대는
제게 단순한 기념품이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생겨나는 에너지,
그 빛의 원천을 보여주는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전히 ‘해야 할 일’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끔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혹시 내가 하는 일도,
해야 할 일이라기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 답을 굳이 확인하고 싶진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아직 제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만은
이 작은 접시가 매번 일깨워 줍니다.






5부. 손끝으로 배운 것들

삶을 다듬는 마음의 자세

손끝은 사람의 마음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무엇을 만들든, 다듬든, 붙잡든
그 안에는 손끝의 온도가 배어 있다.

나는 젓가락 받침대를 쓰고, 닦고, 정리하며
언제나 그 온기를 느낀다.
그 작은 동작 속에서 사람의 성정(性情)이 드러난다.
정성은 손끝에서 시작되고,
그 정성이 모여 하루의 질서가 된다.

삶이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손끝의 일이다.
젓가락을 올리고, 식탁을 정리하며,
그 속에서 오늘의 마음을 다듬는다.
이 마지막 장은 내가 손끝으로 배운,
‘살아 있음의 방식’에 대한 기록이다.






에필로그 | 삶은 결국 손끝의 일이다

손끝의 온기로 이어진 관계들, 젓가락 받침대가 내게 가르쳐 준 ‘살아 있음’


살아간다는 건 결국 손끝으로 세상을 만지고,
그 감촉을 마음으로 기억하는 일이다.
젓가락 받침대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한 끼의 식사에도 질서가 있고,
그 질서 속에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젓가락이 쉬는 자리, 그 조용한 틈새가
삶의 여백을 만든다.

식탁은 하루의 철학이 머무는 자리다.
그곳에서 나는 배운다.
삶의 무게는 말의 크기가 아니라,
손끝의 정성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삶은 결국 손끝의 일이다.
그리고 그 손끝이 닿는 곳마다, 철학이 자란다.















웃자

20250915_045420.jpg 웃음에도 무게가 있다. 가벼운 듯, 깊은 듯, 식탁 위의 광대

파란 모자와 폴카도트 무늬의 광대는
젓가락을 어깨에 짊어진 채, 느긋하게 누워 있습니다.

언뜻 보면 우스꽝스럽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짠한 여운이 남습니다.
세상 모든 광대가 그렇듯,
그의 웃음 뒤에는 조금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숨어 있겠지요.

식탁 위에서 이 받침대를 볼 때면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고 미소 짓게 됩니다.
“그래, 인생이란 게 원래 이렇게 조금은 웃기고, 조금은 힘든 거야.”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진지함과 우스움, 기쁨과 피로를 함께 안고 있습니다.
이 작은 광대는 그 모든 모순을 품은 채
오늘도 묵묵히 식탁 위에서 웃음을 짓습니다.

가끔은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웃는 얼굴로 하루를 버티는 것도 용기니까


그 웃음의 무게를 아는 사람만이
소찬일지언정 진짜 따뜻한 밥 한 끼를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은 여전히 받은 자리

20250915_045507.jpg 받은 건 물건이 아니라 마음. 식탁 위에 남은 따뜻한 빚

이 젓가락 받침대는 태국 치앙마이 공항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아닌 누군가가 대신 사 준 것입니다.

그날, 주머니를 뒤져도 돈이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이 이 물건에 머무는 걸
옆에 있던 동료 교수님이 눈치채셨지요.
아무 말 없이 계산을 대신해 주셨습니다.

돌아와 그 값을 갚으려 했지만,
그분은 끝내 “그냥 선물이에요” 하며 웃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분이 모르게 작은 간식과 커피를 자주 두었습니다.
값으로 따지면 열 배가 넘었겠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받은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선물의 가치는 물건이 아니라,
그 순간의 따뜻함에 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분이 눈치채지 못하게 마음의 이자를 갚고 있습니다.






다 주고 남은 자리

KakaoTalk_20251006_044954802.jpg 다 주고 남은 자리
20251006_040937.jpg 다 주고 남은 자리

생선을 다 먹고 나면,
남은 뼈에는 식탁의 시간이 묻어 있습니다.
함께한 사람의 웃음소리,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온도,
그리고 ‘잘 먹었습니다’라는 감사의 마음.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런 기억을 닮았습니다.
비워졌지만, 비어 있지 않은 자리.
끝이지만, 완결이 아닌 자리.

우리는 살아가며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고,
또 무언가를 남기려 애쓰지만,
정작 중요한 건 다 주고도 남는 마음 아닐까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남기려 했고,
얼마나 내어주었는가


뼈만 남은 물고기처럼,
다 주고도 고요히 남아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완성된 삶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안쪽의 모양

20250915_045654.jpg 겉은 다듬어졌지만, 안에는 여전히 숨결이 남아 있다
20250915_051218.jpg 비어 있음이 품은 생명

이 두 젓가락 받침대는 거친 흙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고,
말려진 안쪽에는 빈 공간이 있습니다.
표면은 매끄럽지 않지만,
그 투박함 속에 오히려 자연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겉모습은 단정하게 빚을 수 있지만,
속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닮았습니다.
겉으로는 다듬어진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거친 흔적과 울퉁불퉁한 틈이 남아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안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균질함 덕분에
사람의 마음도, 흙의 형상도
하나의 온기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안쪽이야말로,
그 사람의 진짜 모양일지도 모른다


겉은 단정히 모양을 갖추었지만,
그 안쪽의 빈 자리에는 여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흙의 숨결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이 작고 투박한 젓가락 받침대가 지닌
진짜 생명감인지도 모릅니다.












진짜 빛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는다

20251006_041035.jpg 진짜 빛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는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흙과 유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겉은 투박하고 자연의 질감이 살아 있지만,
가운데에는 작게 박힌 초록빛 고임이 있습니다.
그 빛은 화려하지 않지만,
전체를 은근히 밝혀주는 조용한 중심입니다.

살다 보면 이런 존재들이 있습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곁에 있으면 공간이 편안해지는 사람들.
그들은 말이 많지 않지만,
자기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주변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의 초록빛처럼,
그들은 중심을 차지하지 않고도 중심이 됩니다.
자기 빛을 과시하지 않기에
그 빛이 오래, 깊게 남습니다.

진짜 빛은, 스스로를 비추지 않는다


식탁 위에서 젓가락을 올려두며 생각합니다.
화려함보다는 온기, 중심보다는 균형.
이 작은 초록빛 하나가
오늘 하루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돈해 줍니다.


고요함은 움직임을 품은 평온

20250915_045952.jpg

이 젓가락 받침대는 오리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둥글고 단정한 몸체, 살짝 숙인 고개,
마치 물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니는 모습입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오리는 물 위에서는 유유히 떠다니지만,
물속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움직이고 있지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파문이 일고,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갑니다.

이 오리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히 말합니다.


고요함은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라,
움직임을 품은 평온이다


그래서일까요.
이 젓가락 받침대를 올려놓을 때마다
마음이 조금은 느려지고, 숨이 고르게 됩니다.
바쁜 하루의 한가운데서도
잠시 숨을 고르고, 고요 속으로 내려앉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이 작고 평화로운 오리 젓가락 받침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단단함의 온도

20250915_050103.jpg 두드림이 만든 단단함의 미학

이 젓가락 받침대는 금속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차가운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망치로 두드린 자국이 표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흔적 덕분에 금속의 질감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빛을 반사하는 매끄러움보다,
손끝의 노동이 남긴 미세한 울퉁불퉁함이 더 깊은 빛을 냅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더 인간적이고 더 진실합니다.

사람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부드럽게만 살아온 사람보다,
수없이 부딪히고 깎이고,
그 안에서 단단해진 사람이 더 따뜻합니다.
겉은 차가워 보여도,
그 안에는 견딤으로 만들어진 온기가 흐릅니다.

식탁 위의 이 금속 젓가락 받침대는
매일 반복되는 수많은 ‘두드림’의 결과입니다.
장인의 망치질이 빚어낸 이 질감처럼,
우리의 삶도 반복과 인내 속에서 단단해집니다.

진짜 빛은 반짝임이 아니라, 견딤에서 나온다
완벽한 삶보다,
흔적이 있는 삶이 더 아름답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2023년 12월
동료 교수들과 함께한 오사카 연수 중,
신사 입구의 작은 상가에서 발견한 물건입니다.
일행과 잠시 떨어져
유리 진열장 안의 금속 스푼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들여왔습니다.

판매처에서는 이것을
녹차를 다기에 퍼 넣을 때 쓰는 스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노동과 시간, 견딤의 빛’을 담은 작은 예술품이었습니다.
손끝에 남은 망치 자국이 말하고 있었거든요.

두드려지고, 닳아가며, 빛이 된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내게 단순한 식탁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견디고 다듬어내는 인간의 작은 찬가처럼 남아 있습니다.


웃음의 온도

20250915_050145.jpg 식탁위의 세 얼골

이 젓가락 받침대는 세 개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해맑게 웃고,
한쪽은 눈을 감고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또 다른 한쪽은 장난스럽게 입을 오므리고 있습니다.

마치 한 사람의 하루 속 표정 같습니다.
기쁠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고,
가끔은 장난기 섞인 웃음으로 버티기도 하지요.
그런데 세 얼굴 모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웃고 있다는 것.

우리는 흔히 ‘웃음’을 가벼운 일로 여기지만,
때로는 웃는 일이 가장 큰 용기일 때가 있습니다.
힘든 날일수록 웃음을 지킨 사람은
스스로를 단단하게 세우는 법을 배운 사람입니다.

식탁 위의 이 젓가락 받침대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을 때,
그 모습은 이렇게 속삭이는 듯합니다.

삶이란, 진지함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일이다


가끔은 웃어야 하고,
가끔은 눈을 감고 쉼을 취해야 하며,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익살스럽게 굴어야 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그 사실을 조용히 알려줍니다.
하루의 끝, 한 끼의 밥상 앞에서
미소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다고 말이지요.



재생의 철학

20250915_050245.jpg 유리 복어는 투명하지만 생명감이 있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투명한 유리 속에 파란 바다가 머물러 있고,
붉은 입술을 내민 물고기의 모습이 유쾌하게 빛납니다.

오타루는 한때 그물을 띄워 주는 어업용 유리 부표 제작으로 유명했던 도시였습니다.
바다 위를 떠다니던 수많은 유리 구슬들은
그 지역 사람들의 생계와 희망을 비추던 빛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플라스틱 부표가 등장했고,
어업의 풍경도, 도시의 활기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때 오타루 사람들은 고민했습니다.
“이 기술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피워낼 것인가.”

그들은 ‘유리 공예’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손끝에서 깎이고 녹여지고 다시 태어난 유리들은
이제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예술이 되었습니다.
과거의 도구가 현재의 문화로 재탄생한 것이지요.

젓가락 받침대가 말합니다.

사라진 것은 끝난 게 아니다.
다시 빛을 만나면, 또 다른 형태로 살아난다


지역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습니다.
어떤 기술이나 경험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빛을 잃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시 해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가능성이 열립니다.

오타루의 유리처럼,
우리의 삶도 언제든 다시 빛날 수 있습니다.
단, 그 변화는 외부가 아니라
자기 안의 창의와 의지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
이 작은 유리 물고기가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소박한 한 마리의 철학

20250915_050218.jpg 작은 것도 제자리에 있으면 충분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단단한 멸치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번들거리는 은빛 표면에는
마치 파도와 햇살이 스며든 듯,
바다의 냄새가 묻어납니다.

멸치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식탁의 시작과 끝,
국물의 맛과 밥상의 향을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없으면 그 빈자리가 바로 느껴집니다.

사람의 삶도 이 멸치와 닮았습니다.
눈에 띄는 일보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크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자기 몫을 다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탱하지요.

식탁 위의 이 멸치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합니다.

작은 것도, 제자리에 있으면 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크고 화려한 것을 좇지만,
사실 일상의 근원은
이런 작고 단단한 존재들로부터 나옵니다.
멸치가 국물 속에서 사라져도
그 맛이 남듯,
누군가의 진심은 드러나지 않아도 오래 남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단순함의 미학을 넘어,
성실함이 남기는 향기를 상징합니다.


흐르되 잃지 마라

20250915_044021.jpg 나무결이 살아 있는 고기 모양 받침대

이 젓가락 받침대는 짙은 나무결로 빚어진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창가를 타고 들어 온 햇살의 빛을 받으면 갈색 속에 고요한 윤이 돌고,
손끝에 닿으면 오래된 나무의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작지만 생명의 형태를 닮은 이 물고기에는
흐름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물고기는 늘 흐릅니다.
잠시 머물러도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숨을 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한 물살을 거스르기도 하고,
고요한 웅덩이 속에서 잠시 멈춰 서기도 하지요.

그 모습이 꼭 사람의 삶과 닮았습니다.
누구나 넓은 강을 향해 흘러가지만,
그 길에는 잔잔한 날도 있고 거센 물살도 있습니다.
흐르며 방향을 잃기도 하고,
멈추며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식탁 위에서 이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흐른다는 건 단지 이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새롭게 비워내는 일이다.”


삶도 그렇게 흘러야 하지 않을까요.
붙잡지 않고, 고여 있지 않고,
때로는 부딪히며 다시 투명해지는 길.

이 나무 물고기 젓가락 받침대는
그 모든 과정을 고요히 품고 있습니다.
흐름 속에서도 단단함을 잃지 않는,
그리하여 결국 자기 모양을 지키는 생명의 상징처럼 말입니다.


함께 흐르는 삶

20250915_050349.jpg 흙으로 구운 송사리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잔잔한 강물 속을
힘차게 헤엄치는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매끄럽게 구워진 유약의 결 사이로
물살의 빛이 번지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물고기는 혼자 흐르지 않습니다.
나란히, 그러나 서로의 길을 방해하지 않으며
각자의 물살을 따라갑니다.
함께 있지만, 얽히지 않고,
가깝지만, 구속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서로의 흐름을 인정하며,
각자의 속도로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그런 함께의 거리감을 알려줍니다.

진짜 조화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울려 흐르는 것이다


흐르다 보면 빠른 이도 있고,
조금 늦게 오는 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강줄기 안에서
서로의 흔적을 남기며 흘러갑니다.

나란히 놓인 네 마리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삶도 이렇게 함께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따르지만,
모두 같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함께 있으되, 스스로의 방향을 잃지 않는 삶을 닮았습니다.


복어의 지혜

20250915_050438.jpg 부드러움 속의 단단함

이 젓가락 받침대는 복어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검은 바탕 위에 금빛 비늘이 은은하게 반짝이고,
둥근 눈동자는 어딘가 장난스럽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복어는 단순히 귀여운 생선이 아닙니다.
생명과 위험, 그 경계 위를 사는 존재입니다.

복어는 강한 독을 품고 있지만,
그 독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패이자 생존의 도구입니다.
자극하지 않으면 결코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 자체로 ‘절제의 생명’이지요.

사람의 삶도 이 복어와 닮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예민한 부분이 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세워 둔 경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치게 하지 않으려면
서로를 존중하며 조심히 다가가야 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히 말합니다.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다.
절제 속에서 피어나는 또 다른 강함이다


복어의 둥근 몸은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연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무조건의 온화함이 아니라,
필요할 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마음.

식탁 위의 이 복어 젓가락 받침대는
그 미묘한 균형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삶은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맞닿은 곳에서 안전해진다


달빛 아래의 대나무

20250915_050456.jpg

이 젓가락 받침대는 대나무의 한 마디를 잘라 만든 것입니다.
유려한 곡선 위에는 달과 대나무, 그리고 잎사귀가 정갈히 새겨져 있습니다.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따뜻합니다.

대나무는 속이 비어 있기에 꺾이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면 휘어지고, 눈이 쌓이면 흔들리지만,
결코 부러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대나무가 지닌 고요한 강함의 본질입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비워야 단단해지고, 낮출수록 멀리 보입니다.
소리 높이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의 곁은 언제나 편안합니다.

식탁 위의 이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합니다.

고요함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형태의 힘이다


검은 표면에 새겨진 달빛은
그 절제된 강함 위에서 은은히 빛납니다.
말없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그 빛은 어느 화려한 조명보다 오래 남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고요 속에서 자신을 세우는 사람의 품격,
그리고 겸손함 속에서 피어나는 강함을 닮았습니다.


여백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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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정한 도자기로 만들어졌습니다.
겉은 유약의 빛으로 반들거리지만,
그 안은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음 덕분에 더 가볍고,
단단함 속에서도 여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한 형태지만,
그 속에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화려함을 더해 빛나는 것이 아니라,
덜어냄으로써 본질만 남긴 아름다움.

삶도 이 젓가락 받침대와 같을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더 얻으려 애쓰기보다,
조용히 덜어낼 때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비워지고 나면,
그 자리에 바람이 스며들고, 여유가 피어납니다.

식탁 위의 이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합니다.

채워야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단단해진다


안쪽의 빈 공간은 단순한 공허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여백이 있고,
그 여백 덕분에 형태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모든 걸 채우려 하기보다,
조금은 남겨 두는 여백이 필요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 여백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공간임을 일깨워 줍니다.


고요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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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둥글지만,
한눈에 마음이 머무는 힘이 있습니다.
깊고 매끄러운 흑빛은
무언가를 반사하기보다,
조용히 모든 것을 품어 안습니다.

그 형태는 완벽한 원이 아닙니다.
한쪽이 살짝 눌려 있고,
그 안쪽으로 젓가락이 자연스럽게 안깁니다.
흐트러짐이 없는 단정한 균형,
그 안에서 오히려 안정감과 여백의 아름다움이 피어납니다.

검정은 흔히 무겁다고 하지만,
그 속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깊이가 있습니다.
밝은 색이 빛을 내는 존재라면,
검은 빛은 빛을 머금는 존재입니다.
그 차이는 겉의 화려함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함에서 옵니다.

식탁 위의 이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합니다.

세상을 비추지 않아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


이 매끄러운 곡선은
삶의 모난 부분들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그 안쪽의 고요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속도가 아닌 방향, 말보다 침묵,
빛보다 그림자 속에서 더 단단해지는 마음.

이 젓가락 받침대는
세상의 중심은 언제나 조용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식탁 위에서 매일 일깨워 줍니다.


빛의 여백

20250914_035015.jpg 빛은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바라보는 각도가 세상을 바꾼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은은한 보랏빛 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고,
손끝으로 만지면 차가우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유리의 투명함은 비움과 여백의 상징입니다.
무언가를 채워 넣기보다,
빛이 머물 자리를 남겨두는 태도.
그 여백 속에서 색은 더 깊어지고,
형태는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닮았습니다.
너무 단단하지 않아서 빛을 통과시키고,
너무 비지 않아서 제 색을 잃지 않는 균형.
그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의 그림자를 품어 주기도 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히 말합니다.

삶의 온도는 내가 머무는 빛의 방향으로 바뀐다


보랏빛이든, 투명하든, 어둡든 ...
모양이 아니라, 관계가 색을 정합니다.
그것이 빛과 사람, 그리고 하루가 가진 진짜 힘입니다.

빛은 모양을 바꾸지 않는다. 바라보는 각도가 세상을 바꾼다

고요한 동행

20250914_035047.jpg 단단하지만 부드럽게

이 젓가락 받침대는 돌을 빚어 만든 고양이의 모습입니다.
작지만 단단하고, 표정은 익살스럽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따뜻합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물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양이의 느긋한 숨결이 담겨 있습니다.

고양이는 참 이상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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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있다가도, 필요할 땐 민첩하게 움직이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지만,
자신의 자리를 결코 잃지 않습니다.
그 태도에는 고요함 속의 품격, 그리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사는 지혜가 있습니다.

이 돌 고양이 젓가락 받침대를 식탁 위에 올려두면,
그 존재만으로도 공기가 조금 차분해집니다.
바쁜 하루의 끝,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고양이를 바라보면
이 작은 물건이 조용히 속삭이는 듯합니다.

조급해하지 말아요.
오늘도 당신은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돌의 묵직함은 변하지 않는 시간을,
고양이의 유연한 곡선은 부드러운 마음을 닮았습니다.
단단하지만 따뜻한,
이 둘의 어울림이 바로 이 젓가락 받침대의 매력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고요히 머물면서도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
그리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존재의 온기를 닮았습니다.


푸른 빛의 조화

20250914_035058.jpg 함께 있으되 섞이지 않고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다섯 송이의 꽃을 닮았습니다.
얇고 투명한 도자기 표면 안쪽으로
푸른빛이 번지듯 스며 있습니다.
그 빛은 한 점에서 시작해 부드럽게 퍼져나가며,
서로 다른 그릇들이지만 한결같은 조화의 색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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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보아도 아름답지만,
이 젓가락 받침대는 나란히 놓였을 때 더 빛이 납니다.
서로의 존재가 경쟁하지 않고,
곁을 내어 주며 어울릴 때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식탁 위의 젓가락 받침대들이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조화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어울리는 것이다


사람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모양과 색이 조금씩 다르더라도,
서로의 빛을 인정하고 함께 놓이면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푸른빛이 가장 짙은 중심부를 들여다보면
마치 물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처럼 고요하고 맑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의 마음도 잠시 멈추어
자신과 타인의 거리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조화로운 삶, 균형 잡힌 관계의 은유입니다.
함께 있으되 섞이지 않고,
가까우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그 섬세한 거리감이 식탁 위에서 빛납니다.


고양이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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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한 마리의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젓가락을 두 다리 위에 살포시 올려놓은 채
세상 근심 하나 없이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눈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고,
그 표정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괜찮아요, 오늘은 조금 느려도.”


식탁 위의 이 고양이는 단순히 귀여운 장식이 아니라,
쉼의 상징입니다.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야 하는 식사 시간 속에서도
그 존재 하나가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잠깐의 식사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그 자체로 시간을 음미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뛰다 보면
진짜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그러나 멈춰서 숨을 고르고 나면,
그때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고양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히 가르칩니다.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다


바쁨 속에서도 고요를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삶의 균형을 지키는 힘입니다.
이 작고 사랑스러운 젓가락 받침대는
그 단순한 진리를 매일의 밥상 위에서 상기시켜 줍니다.


웃을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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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받침대는 한 마리의 고양이입니다.
두 눈은 가늘게 감겨 있고,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러 있습니다.
한쪽 손을 살짝 들어 올린 모습이
마치 “어서 오세요, 좋은 일이 곧 찾아올 거예요” 하고 인사하는 듯합니다.

복고양이는 예로부터 행운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가게 앞에 놓인 고양이는 손님을 부르고,
집 안에 놓인 고양이는 웃음을 부른다지요.
하지만 진짜 복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웃을 수 있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을 이 고양이는 알고 있는 듯합니다.

식탁 위에 이 고양이 젓가락 받침대를 올려놓을 때마다
밥을 먹는 행위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을 나누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으며 웃을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은 복을 받은 셈이니까요.

이 고양이는 조용히 웃으며 말하고 있습니다.


복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웃는 얼굴로 부르는 것이다


작은 몸집 안에 담긴 그 미소 하나가
식탁의 공기를 바꾸고,
하루의 마음을 밝히는 힘이 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은 웃음 하나가 만들어내는 큰 행복을 닮았습니다.


산은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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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후지산을 닮았습니다.
하얀 눈이 덮인 산봉우리 아래로
연한 분홍빛의 벚꽃이 흩뿌려져 있습니다.
차가운 흙 위에 핀 그 따뜻한 색의 대비는,
봄날의 후지산이 보여주는 자연의 절제된 아름다움과 닮아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직접 후지산을 찾은 적이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과 자갈 하나에도
묘한 평화가 깃들어 있었습니다.
그 산은,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잇는 존재.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손바닥만 한 도자기 속에
그날의 하늘빛, 산의 고요, 그리고 제 마음의 평정이 함께 담겨 있는 듯합니다.

식탁 위의 이 작은 후지산은 조용히 이야기합니다.


높이 서 있되, 낮게 머물라


산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 자리에 서서
하늘과 땅, 계절과 바람을 이어 줍니다.
그런 존재는 말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드러내는 크기보다,
조용히 지켜내는 자리가 더 깊고 오래갑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문득 생각합니다.


진정한 높이는,
오르는 데 있지 않고 머무는 데 있다


벚꽃이 피고, 눈이 녹아도
후지산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시간의 묵묵함이야말로 자연이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닐까요.

이 젓가락 받침대는
제가 후지산에서 느꼈던 침묵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 고요 속에 깃든 겸손의 철학을 매일 식탁 위에서 되새기게 합니다.


기다림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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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푸른 물총새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몸이지만 날카로운 부리와 또렷한 눈빛이 있습니다.
그 눈빛은 고요한 물 위를 향해 있고,
마치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듯 고요합니다.

물총새는 날아다니는 새 중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멈춰 있는 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냥을 위해 몇 초, 때로는 몇 분 동안
물 위의 잔잔한 파문을 바라보다가
찰나의 순간에 몸을 던집니다.
그 기다림이 있어야, 비로소 날갯짓이 의미를 가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그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줍니다.
밥 한 끼를 대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무언가를 이루려 할 때도
“서두르지 말라, 때가 오면 자연히 움직이게 된다.”
그런 조용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합니다.

푸른빛의 유약은 물빛 같고,
그 아래 노란 빛은 햇살처럼 따뜻합니다.
물과 햇살이 만나야 새가 날듯,
삶도 고요와 열정이 만나야 비로소 완성됩니다.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총새의 부리 끝을 바라봅니다.
그 고요 속의 긴장감,
멈춤 속의 생명력.


진짜 날개는 기다릴 줄 아는 데서 자란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고요와 움직임의 조화,
그리고 기다림이 만들어내는 삶의 리듬을 닮았습니다.


단정한 선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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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청화백자의 무늬를 닮았습니다.
흰빛 바탕 위에 정갈하게 그려진 푸른 선들은
서로 얽히지 않으면서도 은근한 리듬을 이룹니다.
그 모양은 화려하지 않지만, 한 번 보면 눈길이 오래 머뭅니다.

청화백자는 예로부터 ‘절제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색을 더하기보다 빼는 미학,
형태를 꾸미기보다 다듬는 마음.
그 단정한 기품이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 안에서도 느껴집니다.

식탁 위에 젓가락을 올려두면,
그 곡선과 색감이 은근히 조화를 이루며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소란했던 하루의 마음이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순간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조용히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품격은, 드러내지 않는 데 있다


화려함이 아닌 정돈,
과시가 아닌 절제,
그 속에서 비로소 진짜 깊이가 생깁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말을 아낄수록 마음이 단단해지고,
행동을 절제할수록 품격이 깊어집니다.
그런 태도가 결국 주변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정한 선으로 완성된 조용한 위엄,
그 안에서 피어나는 내면의 평화를 닮았습니다.


부채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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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부채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살짝 펼쳐진 곡선,
손끝에서 막 바람이 흘러나올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광택이 과하지 않은 유약 위로
은은한 빛이 고요히 머무르고 있습니다.

부채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지만,
그 바람은 결코 거세지 않습니다.
손끝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지는
절제된 바람, 필요한 만큼의 바람.
이 젓가락 받침대도 그런 느낌을 품고 있습니다.

식탁 위에서 젓가락을 올려두면
그 조용한 곡선이 마음의 리듬을 느리게 만듭니다.
급하게 움직이던 손이 잠시 멈추고,
식사라는 행위가 한층 차분해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품격이란, 절제의 다른 이름이다


부채가 과하게 흔들리면 바람이 흩어지고,
적당히 움직일 때 가장 시원한 바람이 나듯
사람의 삶도 절제 속에서 제 품위를 지닙니다.
과하지 않은 말, 억지로 꾸미지 않은 행동,
그 안에서 생겨나는 고요한 힘.

이 젓가락 받침대는
절제의 미학,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쉼의 품격을 닮았습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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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한 마리의 거북이를 닮았습니다.
투명한 유리의 몸 위로 조개껍질의 무늬가 얹혀 있어
빛과 그림자가 부드럽게 교차합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생명을 품고 있는 듯 고요합니다.

거북이는 오래 전부터 장수와 평온의 상징이었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존재.
그 느린 걸음 안에는
급하게 달리며 놓치는 것들을 품는 여유가 있습니다.

식탁 위에 이 거북이 젓가락 받침대를 올려놓으면,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 듭니다.
빨리 먹고, 빨리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 대신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스며듭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라,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용기다


거북이는 끝까지 목적지에 도달하는 존재입니다.
빠름이 능력이 아니듯,
느림이 결코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가 조용히 일깨워 줍니다.

유리의 투명함은 진심의 깨끗함을,
조개껍질의 단단함은 삶의 지속성을 상징합니다.
빛이 스칠 때마다 그 표면에 맺히는 은은한 무늬는
마치 세월이 남긴 흔적처럼 아름답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느림의 미학, 그리고 꾸준함의 존엄을 닮았습니다.


묵묵한 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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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나무로 깎아 만든 코끼리 모양입니다.
부드러운 곡선, 작은 다리, 그리고 등 위를 가로지르는 한 줄의 선.
그 단정한 선이 마치 세월의 흐름을 한 줄로 새겨놓은 듯합니다.

코끼리는 오래 사는 동물입니다.
천천히 걷고, 조용히 움직이지만
한 번 내딛는 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힘을 자랑하지 않아도 강하고,
소리를 내지 않아도 존재감이 또렷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런 코끼리의 기품을 닮았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두면, 그 단단한 나무결이
하루의 분주함을 차분히 가라앉혀 줍니다.

묵묵함은 약함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강함이다


코끼리는 기억의 동물이라고 하지요.
그들은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고,
슬픔마저도 조용히 품은 채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은 우리에게 ‘느리게, 그러나 깊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이 나무 젓가락 받침대는
손끝에서 전해지는 나무의 온기와 함께
그 묵직한 삶의 리듬을 일깨워 줍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꾸밈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존재의 무게.

식탁 위에서 이 코끼리를 바라보면,
하루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서 있었는가

깊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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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바다의 색을 닮았습니다.
맑고 투명하지만, 가까이 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작은 기포와 굴곡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결함들이 오히려 유리를 더 빛나게 합니다.

바다는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그 속에는 끝없는 흐름과 생명이 있습니다.
이 푸른 유리의 표면 또한 고요하지만,
안쪽에는 시간이 굳어진 흔적,
불과 바람이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히 이야기합니다.맑음은 단순함이 아니라, 깊이에서 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 유리처럼 빛을 반사합니다.
하지만 그 빛이 아름다운 이유는
겉이 아니라, 속이 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깊이가 없는 맑음은 쉽게 깨지고 흐려지지만,
속이 단단한 맑음은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의 푸른빛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마치 바다를 바라볼 때처럼,
스스로의 마음속에도 조용한 파도가 이는 것을 느낍니다.고요함이란, 멈춤이 아니라

마음의 파도를 가라앉히는 일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깊이 있는 고요, 투명한 내면의 단단함을 닮았습니다.


함께 있음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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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닮았습니다.
하나는 따뜻한 흙빛이고,
하나는 부드러운 회색빛입니다.
색도 다르고, 방향도 조금 다르지만,
그저 나란히 앉아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토끼는 늘 온순하고 조심스러운 존재입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귀를 쫑긋 세우며 세심하게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일까요 —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함께 있으면서도 조용히 서로를 배려하는 관계의 아름다움이 떠오릅니다.

식탁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은 말을 아끼고,
다른 한 사람은 웃음으로 대답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순간,
그 밥상은 이미 온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조화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포근히 인정하는 일이다.”


흙빛의 토끼는 따뜻함을,
회색빛의 토끼는 차분함을 닮았습니다.
둘은 다르지만, 함께 있을 때 완전해집니다.

삶도 이와 같습니다.
누군가는 활기차고, 누군가는 조용하지만
그 다름이 모여 세상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그 평화로운 조화를 매일 가르쳐줍니다.


“같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고요한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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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비취빛의 고요함을 품고 있습니다.
손끝으로 만지면 매끄럽지만,
그 표면 안쪽에는 연꽃의 무늬가 깊게 배어 있습니다.
직접 새긴 흔적이라기보다,
세월이 자연스레 스며든 듯한 결입니다.

식탁 위에 놓인 이 작은 받침대는
빛을 머금은 채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킵니다.
화려한 장식도, 강한 색감도 없지만
그 단정한 자세 하나만으로도 품격이 느껴집니다.

진짜 아름다움은 드러나지 않는다.
조용히 머물며, 자신을 빛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말을 앞세우지 않으며,
그저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

비취의 색은 언제나 중간에 머뭅니다.
푸르지도 않고, 노랗지도 않은 —
자연의 빛깔이 한데 섞여 만들어진 균형의 색.
그 절묘한 조화가 바로 품격의 색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식탁 위에서
“조용한 사람의 강함,
말보다 태도가 전하는 깊이

를 상기시켜 줍니다.


비워야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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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대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겉은 단단하고, 결은 곱습니다.
그러나 그 안쪽은 비어 있습니다.
바로 그 ‘비어 있음’ 덕분에
대나무는 꺾이지 않고, 바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정교하게 깎인 사각의 형태와,
그 안에 뚫린 둥근 공간은 서로를 완성시킵니다.
하나는 틀을 만들고,
다른 하나는 여백을 남깁니다.
그 조화로 인해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순한 나무 조각이 아니라, 균형 잡힌 구조물이 됩니다.

식탁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젓가락을 내려놓을 ‘자리’가 있어야
식사라는 행위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삶 역시 그렇습니다.
무언가를 쌓기보다, 내려놓을 자리를 만들 때
비로소 균형이 생깁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단단함을 위한 구조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
‘채움과 비움’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겉은 사각의 규율을 지키되,
안은 둥근 마음으로 열어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의 균형 아닐까요.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
마음도 머문다.”








균열 속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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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은 돌처럼 묵직합니다.
바깥은 거칠고, 안쪽은 유약이 스며들어 부드럽게 빛납니다.
빛은 바깥에서 반사되지 않고, 안쪽으로 머물러
조용한 깊이를 만들어냅니다.

눈에 띄는 작은 균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흠은 이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균열이 있어,
빛이 더 섬세하게 흩어지고 고요함이 깊어집니다.


“완벽함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흠마저 받아들인 평화의 순간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이 잔잔해집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균열과 상처가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덜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그 흠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증거이자,
빛이 스며드는 틈이기 때문입니다.

식탁 위에서 이 작은 도자기를 바라보면,
완벽을 향한 마음이 서서히 느슨해집니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흠을 품은 평온함,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진짜 온기입니다.


“빛은 흠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곳을 찾아 스며든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불완전함을 통해 완성을 배워가는 삶의 철학을 닮았습니다.


속의 고요

20250915_051715.jpg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단단합니다.
겉은 거친 흙빛, 안은 푸른빛의 유약으로 덮여 있습니다.
빛이 스며들면, 그 안쪽에서 조용히 반짝입니다.
마치 바람 한 점 없는 연못처럼,
스스로의 깊이 속에서 빛을 머금은 듯합니다.


“진짜 평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자라는 것이다.”


흙은 세상의 바깥을 닮았습니다.
거칠고 단단하며, 때로는 무겁지요.
그러나 그 속을 열어보면, 고요히 잠든 빛이 있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하루의 분주함과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그 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나’가 있습니다.

식탁 위의 이 작은 흙그릇을 바라보면
문득, 마음이 단정해집니다.
젓가락을 내려놓는 그 짧은 순간,
일상의 분주함이 멈추고,
내면의 물결이 잦아듭니다.

흙이 유약을 품듯,
사람도 세상 속에서 자기의 고요를 품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섞여도, 물들지 않는 마음.
그것이 진짜 평온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겉과 속의 균형,
단단함과 고요함의 공존을 닮았습니다.


고요한 균형

20250915_051826.jpg 균형은 완벽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완성된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네 모서리가 부드럽게 들려 있습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 없는 날,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작은 배 한 척이 떠오릅니다.

겉은 흙 그대로의 질감을 살려 투박하지만,
그 곡선의 흐름은 매우 섬세합니다.
그 안에는 손으로 흙을 빚은 사람의 호흡과 리듬이 남아 있습니다.


진짜 균형은 완벽한 대칭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흔들림 속에서 완성된다


삶도 그렇습니다.
흔들림을 완전히 없애려 하면 오히려 금이 가고,
작은 움직임을 받아들이면 전체가 조화를 이룹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바로 그 ‘살아 있는 균형’을 상징합니다.

식탁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젓가락을 올려놓는 순간,
움직임과 멈춤이 교차하며 조용한 질서가 만들어집니다.
흙이 중심을 잡고, 유약이 부드럽게 감싸는 구조처럼,
우리의 일상도 단단한 중심과 여유로운 여백이 함께할 때 비로소 안정됩니다.


균형이란,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싸움이 아니라
중심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흙과 손, 형태와 공간이 만나
하나의 고요한 조화를 이룬 결과물입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조용히 수평으로 이끌어줍니다.


소박한 꽃 한 송이

20250915_051856.jpg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크지 않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보면, 마치 봄날 들길에서
작게 피어난 야생화를 닮았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는
자연이 만들어낸 균형과 따뜻한 생명이 있습니다.

유약의 번짐이 일정하지 않아도,
그 불균질한 색의 깊이가 오히려 이 도자기를 더 자연스럽게 만듭니다.
완벽히 그려진 꽃이 아니라,
스스로 피어난 꽃 같다는 느낌.


“진짜 아름다움은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삶이 만들어낸 흔적 속에서 피어난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우리는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그 하루하루가 작은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지요.

식탁 위에서 젓가락을 올려두는 이 순간조차,
하나의 꽃잎을 올려놓는 듯한 마음으로
조심스러워집니다.
이 작고 고요한 꽃 한 송이가
우리의 하루를 단정히 마무리해주는 듯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단정한 자리에서 피어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크지 않아도 빛나는 존재,
단정함 속에 머무는 생명력을 닮았습니다.


곰처럼, 꾸역꾸역 36

20250915_051933.jpg 느리지만 변치 않는 인연

이 젓가락 받침대는 일본 큐수 지역의 구마모토市를 상징합니다. 제가 구마토토에 처음 간 것은 1989년, 구마모토에 홈스테이를 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혼식에도, 장례식에도 서로의 곁을 지켜준 세월.
언뜻 보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꾸준함이야말로 곰처럼 느릿하지만 강한 생명력입니다.

도자기 위의 ‘熊’ 자는 단순한 글씨가 아닙니다.
그건 기억의 표식이자,
시간이 남긴 인연의 문양입니다.


“곰은 달리지 않는다.
그러나 멈추지도 않는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그 꾸역꾸역 살아온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서로의 소식을 몇 년에 한 번 듣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 침묵 속에도 변함없는 온기가 있습니다.

식탁 위에 이 받침대를 올려두면,
그때의 밥 냄새, 웃음소리, 그리고 낯설지 않았던 따뜻함이 되살아납니다.
삶이란 어쩌면 이렇게 빠르지 않지만 끈질긴 것인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속도를 재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곁을 지키는 마음 —
그게 곰 같은 인연의 힘 아닐까요.


“느리게 살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함께 있는 것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오랜 시간에 길들여진 인연, 그리고 꾸준함의 미학을 닮았습니다.
화려하지 않고, 변함없으며,
그 꾸준함이 결국 따뜻함을 남깁니다.


내면의 샘

20250915_052020.jpg 단단한 겉과 고요한 속이 만든 내면의 빛

이 젓가락 받침대는 첫눈에 보면 단단한 흙덩이 같습니다.
겉은 거칠고, 모양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심에는 맑은 물빛이 고여 있습니다.
그 빛은 번쩍이지 않고, 조용히 머무르며 반사됩니다.


“진짜 깊은 물은 흔들리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이 만들어낸 고요한 생명력이 있습니다.
마치 오래된 돌 틈에서 천천히 솟아오르는 물처럼,
삶의 본질은 겉이 아니라 속에서 자랍니다.

식탁 위의 이 작은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흙’과 ‘빛’이 서로 기대어 있는 것을 느낍니다.
단단한 흙이 없었다면,
이 깊은 빛도 머물 수 없었겠지요.

삶도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바쁘고 메말라 보여도,
그 안에는 여전히 흐르는 나만의 샘이 있습니다.
그 샘이 고갈되지 않게 지켜주는 일,
그게 결국 자신을 돌보는 일입니다.


“겉은 바람에 흔들려도,
마음의 샘만은 늘 고요해야 한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내면의 고요함과 지속성,
그리고 흙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 생명력을 닮았습니다.


사람 사이의 온기

20250915_052101.jpg 사는 일은 결국, 밥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순한 식탁의 소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그림책 같습니다.
네 개를 나란히 놓으면,
마치 오래된 마을의 하루가 펼쳐집니다.
누군가는 식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웃으며 손님을 맞이하고,
어딘가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
그 모든 장면이 모여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듭니다.


“사는 일은 결국, 밥을 함께 나누는 일이다.”


그림 속 인물들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밥을 짓고, 인사하고, 웃고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그 소박한 풍경 속에는
오랜 시간 쌓여온 **공동체의 정(情)**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얼마나 근본적인 기쁨인지 새삼 떠오릅니다.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놓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나누고, 마음을 이어주는 공간이니까요.


“좋은 인연은 멋진 말이 아니라,
한 끼의 밥상 위에서 자란다.”


흙으로 빚어 유약을 입히고,
그 위에 사람의 손으로 그려 넣은 작은 이야기들 —
그 정성의 결이,
오늘 우리가 밥을 함께 먹으며 이어가는 관계의 결과 닮았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소박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관계의 아름다움,
즉 **“밥상에서 시작되는 공동체의 힘”**을 상징합니다.


절제의 미학

20250915_052143.jpg 덜어낼수록 깊어진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순함의 극치입니다.
장식도, 화려한 문양도 없습니다.
그저 도자기의 곡선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경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그 안에는 묘한 존재감이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형태 속에 담긴 집중력,
색의 깊이와 질감이 만들어내는 품격.
이것이 바로 ‘절제의 아름다움’입니다.


“과하지 않음이, 가장 완전한 상태일 때가 있다.”


우리는 종종 ‘덜어냄’을 두려워합니다.
더 채워야, 더 보여야, 더 커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진짜 깊이는 덜어냄 속에서 태어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처럼,
형태는 단순할수록 본질이 드러나고,
색이 절제될수록 고요한 깊이가 생깁니다.

식탁 위에서 이 받침대를 올려두면
주변의 물건들이 자연스레 정돈되어 보입니다.
그 자체로 질서를 만들고, 중심을 세웁니다.
아마도 ‘절제’란
자신의 자리에서 과하지 않게, 그러나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일일 겁니다.


“진짜 품격은 드러내지 않아도 보인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덜어냄’이 만들어내는 여백의 힘을 보여줍니다.
겉의 청색 유약은 고요하지만,
그 안에 스며든 불의 흔적은
묵묵한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그 모든 시간과 과정이 모여,
지금 이 단정하고 고요한 형태를 만들어 냈습니다.


단단한 온기

20250915_052206.jpg 뜨거움을 견디며 온기를 남긴다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는 철로 만들어졌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수차례 달궈지고 식혀졌을 겁니다.
그 뜨거운 과정을 견뎌낸 덕분에
이제는 단단하고, 묵직하며, 쉽게 식지 않는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뜨거운 시간을 견뎌야, 따뜻한 사람이 된다.”


불은 쇠를 녹이지만,
그 불을 견딘 쇠만이 다시 세상을 데울 수 있습니다.
삶도 마찬가지지요.
누구나 한 번쯤은 불의 시간,
즉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안에서 단단한 온기가 만들어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지만 강합니다.
그 무게는 쇠의 것이 아니라, 인내의 무게입니다.
뜨거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온도를 만들어낸 흔적입니다.

식탁 위에서 이 주전자 모양의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면
마치 오랜 세월 묵묵히 사람 곁을 지켜온
다관(茶罐) 한 점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겉은 검고 거칠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차향 같은 고요함이 담겨 있지요.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사람 —
그게 진짜 강한 사람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뜨거운 시간을 견디며 자신만의 온기를 만들어가는 존재,
즉 ‘단단한 따뜻함’의 상징입니다.
그 모습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어설픈 온기

20250915_042746.jpg 조금 엉성해도 괜찮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집니다.
꼭 닮았지만 똑같지 않은 두 마리의 고양이,
서로 기대듯 놓여 있는 모습이 꼭 사람 같기도 합니다.
삶이란 원래 이런 것 아닐까요 —
조금 엉성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함께일 때 따뜻한 것.


“세상에 꼭 맞는 짝이란 없다.
다만, 서로의 빈틈을 맞추며 살아가는 사이가 있을 뿐이다.”


고양이의 눈은 크고 동그랗지만, 그 시선에는 긴장감이 없습니다.
마치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하고 말하는 듯합니다.
삶이 바쁠수록, 우리는 너무 단정하고 정확해지려 애쓰지만
때로는 이런 투박함이 오히려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마치 “느긋함”의 상징 같습니다.
젓가락을 올려두는 그 잠깐의 틈새,
그 사이로 피어나는 여유와 미소,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과의 온기가 스며 있습니다.


“사람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따뜻해서 곁에 머문다.”


두 마리의 고양이는 흙으로 빚은 듯 소박하고,
색깔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서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의 다정함이 드러납니다.

삶이란 결국,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처럼 조금 비뚤고, 그러나 다정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름 없는 강아지

20250915_042826.jpg 말없이 곁을 지키는 존재

이 젓가락 받침대는 작고 단정한 강아지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색도, 표정도, 장식도 거의 없습니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 있는
조용한 한 마리의 강아지 같습니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묘한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
우리 곁에서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누군가’를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강아지는 말이 없지만, 언제나 곁에 있다.”


우리는 종종 ‘위로’라는 말을 거창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위로란 이런 모습 아닐까요.
가만히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있어주는 것.
지치고 외로운 날,
문득 옆을 돌아봤을 때 거기에 그대로 있는 존재.

이 젓가락 받침대는 마치 그런 조용한 존재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밥상 위에서도 소리 내지 않고,
젓가락을 받쳐주는 아주 작은 역할을 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 작음이 얼마나 고마운지 —
사람의 마음도, 관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묵묵히 함께하는 마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서로의 삶을 조금씩 나누는 일이다.”


이 강아지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밥상 위에서 늘 ‘곁에 있음’의 의미를 일깨워 줍니다.
그저 조용히, 그러나 늘 그 자리에 있는 존재.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사라지면 허전한 존재.

그게 바로,
우리 삶 속에서 진짜 소중한 것의 모습 아닐까요.




쓰임의 두 번째 인생

20250915_043204.jpg

한때는 녹차를 다기에 옮기던 도구,
지금은 젓가락을 지탱하는 받침대가 된 이 작은 나무 스푼.
본래의 역할을 다한 후에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임을 얻는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모양은 변해도, 마음은 남는다.”


사람의 삶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정해진 자리에서 한평생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길로 나아갑니다.
어느 쪽이든, 그 안에 담긴 마음과 태도는
결국 같은 본질로 이어집니다.

이 스푼은 쓰임의 형태를 바꾸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식탁’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자리를 바꾸었을 뿐,
여전히 사람의 손과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본래의 쓰임을 다한 후에도,
새로운 자리를 찾아 나아가는 것.
그것이 오래된 것의 품격이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래서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된 쓰임’의 상징처럼 느껴집니다.
삶의 한 시절이 지나고도,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누군가의 곁에 머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지속의 아름다움 아닐까요.


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받습니다.

20250915_043345.jpg 명의 식탁, 이따다키마스 – 물고기 젓가락 받침대

이 젓가락 받침대는 일본 문부과학성을 방문했을 때 구입한 것입니다.
당시 MBC 다큐멘터리 '농업이 미래다' 촬영을 위해 일본을 찾았는데,
그 자리에서 일본의 ‘식육(食育, 식욕교육)’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체계적으로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 교육의 핵심이 바로 식사 전에 하는 한마디,
“いただきます(이따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입니다.

하지만 그 뜻은 단순한 예의의 표현이 아닙니다.
“이 생선도, 이 채소도, 이 과일도 원래는 하나의 생명이었다.
내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그 생명을 잘 받겠습니다.”
이것이 ‘이따다키마스’의 본래 의미라고 합니다.

그때 들은 이 말이 제게는 참 깊게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조금은 다르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감사와 경외, 그리고 생명에 대한 예의가 깃들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 물고기 모양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그날의 교훈이 다시 떠오릅니다.
식탁 위의 작은 물고기 한 점,
그 속에는 우리가 매일 잊고 사는 ‘생명의 무게’가 담겨 있습니다.

결국 밥 한 그릇, 채소 한 잎,
모두 누군가의 생명이 내게 건네준 선물입니다.
그 생명을 잘 받겠다는 마음으로 젓가락을 올려두면,
이 작은 받침대 하나도 감사의 자리가 됩니다.


균형 위의 쉼

20250915_043530.jpg 단단함과 여유 사이,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이 젓가락 받침대는 형태가 단순하지만,
젓가락이 그 위에 놓이기까지 미묘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조금만 한쪽으로 기울어도 젓가락이 미끄러지고,
너무 세게 눌러도 안정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이 받침대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삶이란 결국 ‘균형의 예술’이라는 것을.


너무 힘을 주면 부러지고,
너무 놓아버리면 흩어진다.


밥상 위의 젓가락처럼,
우리의 일상도 그렇게 작은 균형 위에 놓여 있습니다.
일과 쉼, 관계와 거리, 욕심과 만족 —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매일 조금씩 조정하며 살아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의 형태는 바로 그런 삶의 자세를 닮았습니다.
무심한 듯 서 있으나, 그 안엔 섬세한 긴장이 있습니다.
단단한 나무의 질감 속에 담긴 묵직한 여유처럼요.


“흔들림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단지 젓가락을 받쳐주는 도구가 아니라,
삶의 무게를 단단히 지탱하는 마음의 은유 같습니다.


붕어빵이 아니라, 나 다움

20250915_043658.jpg 나무 토막 젓가락 받침대 – 일상에서 태어난 소박한 창의

사진 속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저 나무 가지 몇 토막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작은 조각에서 농촌 체험의 새로운 가능성을 봅니다.

이 받침대는 일본의 한 산촌 체험마을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기억에 470엔, 우리 돈으로 약 5천 원쯤 했던 것 같습니다.
두 개가 한 세트였으니 결코 비싼 물건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소박한 나무토막이 지역의 정체성을 담은 완성된 상품이라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농촌의 체험마을들도 이런 걸 만들어 팔면 어떨까?”

농한기, 일손이 한가한 겨울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버려지는 가지나 나무토막을 잘 다듬고,
천연 바니시나 친환경 오일을 칠해 방수 처리를 하면
이렇게 멋진 젓가락 받침대가 됩니다.
여기에 마을 이름을 새긴 스티커 하나만 붙여도
그 자체로 우리 마을의 이야기와 손맛이 담긴 상품이 됩니다.

요즘 농촌 체험 프로그램들을 보면
딸기 따기, 떡 만들기, 인절미 체험처럼
어디서나 비슷비슷한 ‘붕어빵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을다움’, ‘시골다움’, ‘나다움’을 담은
작고 독창적인 아이템 하나가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젓가락 받침대는 그 좋은 예입니다.
그저 식탁 위의 소품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손끝과 마음이 담긴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겹으로 쌓인 아름다움

20250915_043740.jpg 겹으로 쌓인 아름다움

이 젓가락 받침대는 일본 전통 공예 ‘요세기자이쿠(寄木細工)’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서로 다른 나무의 색과 결을 조합해 문양을 이루는 이 기법은
결국 **“다름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서로 색이 달라도,
결이 다르고 질감이 달라도,
함께 맞물리면 더 깊은 무늬가 생겨납니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의 관계와도 닮았습니다.
누군가는 따뜻하고, 누군가는 냉정하며,
누군가는 부드럽고, 또 누군가는 단단합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가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세상은 더 풍요롭고 단단해집니다.


“서로의 다름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밥상 위에서 젓가락을 받쳐주는 이 조각 하나에도
그 철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어느 한 나무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무늬,
다른 존재와의 조화로 완성되는 형태.


다름은 불편이 아니라,
새로운 조화를 낳는 시작이다.




날아오르지 않아도 새는 새다

20250915_043817.jpg 작고 소박한 존재의 ‘자리’에도 의미가 있다.

아마 이 새는 한 번도 날아오른 적이 없을 것입니다.
나무였을 때도, 조각이 된 이후에도
늘 땅에 닿아 있던 존재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형태를 보고 ‘새’라 부릅니다.

나는 그 사실이 참 좋습니다.
꼭 날아야만 새일 필요는 없다는 것,
꼭 대단해야만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하루하루 제자리에 서서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조용히 젓가락을 받쳐주는 역할만으로도
이 새는 충분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삶의 무게’와 ‘자리의 의미’를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세상에는
크게 날아오르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며 세상을 조금 따뜻하게 만드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나는 조용히 속삭입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날고 있다.”


조용한 지혜의 자리

20250915_043845.jpg 지혜는 말보다 시선 속에 있다.

부엉이는 예로부터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밤의 고요 속에서도 가장 멀리 보고, 가장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존재이지요.
하지만 이 젓가락 받침대 속 부엉이는 날개를 펴지 않습니다.
그저 식탁 한켠에서 젓가락을 받치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지혜란,
많이 알고 멀리 나는 데 있지 않고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늘 앞서가야 한다는 마음에 급히 날갯짓하지만,
결국 세상을 오래 비추는 건
고요히 자리를 지키는 이들입니다.

부엉이의 두 눈은 아무 말이 없지만,
그 눈빛은 말하는 듯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순간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때다.”


포장보다 신뢰

20250915_043924.jpg 신뢰의 무게, 올리브 나무 젓가락 받침대

작년에 지인 몇 명과 함께 일본 시코쿠(四国)현의 올리브 주산지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본 것은 단순한 올리브 생산지가 아니라,
‘신뢰’라는 이름의 브랜드였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사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스탬프였습니다.
책이나 봉투에 찍는 용도였지만,
가로로 눕혀보니 젓가락 받침대로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원래부터 젓가락 받침대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 아이는 새로운 역할을 얻었습니다.

올리브 하면 흔히 이탈리아나 스페인을 떠올리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일본산 올리브유가 더 비싸고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함께한 일행 중에는 유명 호텔 출신의 쉐프도 있었는데,
“일본산이 왜?” 하며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지요.

세계 시장의 기준으로 보면,
일본의 기후나 환경이 올리브 재배에 그리 유리하지는 않을 텐데.....
그럼에도 일본 소비자들은 왜 일본산을 선택할까요?
아마도 그 안에는 이런 생각이 있지 않을까요.
“일본산은 믿을 수 있다”

그날 이후 저는 오랫동안 이 생각에 머물렀습니다.
결국 농업의 경쟁력은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라는 구호나
‘어머니의 품을 지키자’는 정서적 메시지보다,
소비자가 느끼는 신뢰의 무게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그 신뢰는 거창한 슬로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작은 일상 속의 성실함, 꾸준함, 진정성에서 비롯됩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가 그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었습니다.

‘올리브도 키우는 섬’ 시코쿠에서 배운 건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품질은 기술이 만들지만, 가치는 신뢰가 만든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우리 농업도 누군가의 신뢰 위에서 다시 서야 한다고.
농촌을 지켜야 한다는 구호보다,
“이건 믿을 수 있어.”
그 한마디가 농촌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문장 아닐까요.


나란히 다르지만, 함께 아름답다

20250915_044328.jpg 균형은 ‘같음’이 아니라 ‘어울림’에서 온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균형’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같은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두 사각의 빛깔은 조금씩 다르고,
높이도, 질감도 완벽하게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전체는 안정감을 잃지 않습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모양이 같지 않아도, 생각이 달라도
서로를 존중하며 나란히 설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완벽히 맞춘 대칭보다
조금 어긋나 있으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삶의 진짜 미학일지도 모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같지 않아도 괜찮다.
나란히 서면 그것만으로도 조화가 된다.”


조용한 조화의 무늬

20250915_044406.jpg 작은 무늬들이 모여 한 폭의 평온한 풍경을 만든다.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화려함이 아니라 ‘균형’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무늬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선이 고르지 않고, 색도 일정하지 않지요.
그런데도 전체로 보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어울립니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개개인의 모양은 다르고, 색감도 톤도 조금씩 어긋나 있지만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전체가 아름다워집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의 꽃무늬는
서로의 다름이 어울려 만들어낸 ‘조용한 조화’의 풍경입니다.


“서로 달라서 더 아름답고,
다 함께 있어야 온전하다.”



에필로그 | 삶은 결국 손끝의 일이다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
인생은 결국 손끝으로 살아온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흙을 만지고, 씨를 심고, 나무를 가꾸며,
학생들과 함께 흙을 밟고, 손으로 흙냄새를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언제나 손끝이 앞서 있었지요.
그리고 그 손끝의 온기 속에서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일과 삶의 무게,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배워왔습니다.

젓가락 받침대도 그랬습니다.
그것은 손으로 쥐고, 내려놓고, 다시 들면서 쓰는 물건입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매일의 식탁 위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세상의 중심에 서서 눈부시게 빛나지만,
누군가는 식탁의 모서리에서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고,
넘치지 않게, 흐르지 않게 받쳐줍니다.

나는 오랜 세월 그 ‘받쳐주는 삶’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들에게서 배웠습니다.


손끝의 온기로 이어진 관계들

내가 젓가락 받침대를 모은 것은
결국 생각을 모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어느덧 물건을 모은 것이 아니라, 삶의 온기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손끝에서 시작된 온기가 내 손끝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다시 내 식탁으로, 그리고 내 삶으로 옮겨졌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손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악수를 하고, 흙을 만지고, 씨를 심고, 글을 쓰고, 젓가락을 쥐고,
그 모든 순간이 결국 **‘손끝의 철학’**으로 모입니다.

손끝이 닿는 일에는 언제나 정성, 집중, 그리고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믿습니다.
정직한 손끝이 만든 관계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는 것을.


젓가락 받침대가 내게 가르쳐 준 ‘살아 있음’

젓가락 받침대를 바라보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살아 있다는 건, 그저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지만, 매일 쓰입니다.
하루의 시작과 끝마다 사람의 손을 거칩니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음이 오가는 그 자리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그곳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무너질 듯 흔들릴 때,
이 젓가락 받침대처럼
작게라도 ‘받쳐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고 믿습니다.

삶의 본질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습니다.
손끝이 닿는 자리,
누군가의 식탁,
그곳의 사소한 온기 속에 있습니다.

그 온기가 바로 ‘살아 있음’의 증거입니다.


식탁은 하루의 철학이 머무는 자리

나는 식탁을 하나의 우주라 생각합니다.
그 위에는 관계의 질서가 있고, 나눔의 온도가 있습니다.
젓가락은 나와 너를 잇고,
받침대는 그것을 조용히 떠받치며 균형을 잡아줍니다.

이 얼마나 단단한 은유입니까.
삶도 결국 식탁 위의 풍경처럼,
균형을 잡으며 서로를 지탱하고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요.

식탁이란 단순히 밥을 먹는 자리가 아니라,
하루의 철학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어제의 마음을 풀고, 내일의 삶을 약속합니다.

식탁은 그래서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깊은 철학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철학의 중심에는
언제나 손끝의 온기와 젓가락 받침대의 자리가 있습니다.

이제 나는 안다.
젓가락 받침대는 그저 식탁 위의 장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며, 관계의 방식이며, 존재의 은유라는 것을.

살아간다는 건
결국 손끝으로 세상을 만지고, 마음으로 그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식탁 위의 젓가락 받침대를 쓸어본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작은 감촉 속에서
다시 하루를, 다시 사람을, 다시 나 자신을 배운다.


삶은 결국 손끝의 일이다.
그리고 그 손끝이 닿는 자리마다, 철학이 자란다.


정체성의 징표

20250915_044535.jpg 정체성의 징표 – 네덜란드 나막신 젓가락 받침대

농업 연수단의 지도교수로 네덜란드를 여러 차례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풍차 마을을 방문했을 때,
목에 스카프를 두른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소박한 옷차림이었지만,
누구나 한눈에 “아, 네덜란드 사람이다” 하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스카프 하나가 정체성의 징표였던 것입니다.

이 젓가락 받침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전통 나막신 (클롬펜; klompen) 모양의 스카프 슬라이드
누구나 보면 ‘네덜란드’라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문화가
작은 물건 안에 담겨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딱 보면 알 수 있는 정체성은 뭐지?


정체성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화려한 장식이나 로고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태도, 그리고 일상의 결이 만드는 얼굴입니다.

'채상헌' 그리고 '시골살이궁리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크게 외치지 않아도,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딱 보면 알 수 있는 정체성’,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텐데 그런 것을 남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위한 꽃 3 : 남을 위한 꽃 7

20250915_044431.jpg 나를 위한 꽃, 식탁 위의 사색
20250915_044837.jpg

이 두 젓가락 받침대는 압화로 장식된 작은 정원입니다.
한 점은 제주 여행 중에, 또 하나는 우연히 들른 공방에서 구입했습니다.

투명한 유리와 흰 도자기 속에
작은 꽃잎들이 고요히 머물러 있습니다.
시간은 멈췄지만, 그 안의 색은 여전히 따뜻합니다.

우리나라의 꽃 소비는 ‘나를 위한 꽃 3 : 남을 위한 꽃 7’이라 하지요.
결혼식, 장례식, 축하와 위로의 자리에서만 꽃을 찾습니다.
하지만 꽃은 본래 나를 위로하기 위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책상 위에 한 송이, 식탁 위에 한 점의 꽃만 있어도
하루의 온도는 달라집니다.
이 작은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선진국은 꽃을 많이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나를 위해 꽃을 두는 마음이 있는 나라다”


소비로서의 꽃이 아니라,
삶을 향한 예의로서의 꽃.
그 마음이 궁리소의 식탁에도 이 받침대와 함게 늘 피워 보려고 합니다.


평화를 품은 식탁

20250915_044959.jpg 평화를 품은 식탁

붉은 학 모양의 젓가락 받침대입니다.
학은 예로부터 평화와 기원의 상징이었지요.
날개를 접은 듯 고요히 식탁 위에 앉아 있지만,
그 마음은 멀리 날아오르는 듯합니다.

하루의 식사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마음을 나누는 평화의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받침대는 사용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지 않으면 넘어지곤 하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얼마나 서둘러 밥을 먹고 있는가’
이 작은 붉은 학은 제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밥 한 끼에도 마음을 담으세요.

그래서 이 젓가락 받침대는
평화의 상징이자, 삶의 속도를 돌아보게 하는 작은 스승이 되었습니다.


다름 속의 평형

20250915_045301.jpg 다름의 균형

길쭉한 허리를 가진 강아지 모양 젓가락 받침대입니다.
비율이 조금 맞지 않아 보이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정겹습니다.

다른 젓가락 받침대들처럼 반듯하지 않아도,
이 강아지는 자기만의 균형으로 식탁 위에 서 있습니다.
삐뚤고, 길고, 낮은 그 몸이 오히려 안정감을 줍니다.

살다 보면 모든 것이 균형 잡히길 바라지만,
인생은 언제나 약간의 불균형 위에서 굴러갑니다.
중요한 건 완벽한 비례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지요.

이 젓가락 받침대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조금 기울어도 괜찮다. 그 또한 나다운 모습이니까


불균형 속의 조화, 다름 속의 평형.
그것이 이 강아지 젓가락 받침대가 알려주는
조용한 인생의 균형법입니다.


KakaoTalk_20260305_050431487.jpg

이 아이는

처음부터 젓가락 받침대였던 것은 아닙니다.

산골 냇가에 굴러다니던

길쭉한 작은 돌 하나였습니다.

지난주 도쿠시마 산골마을

‘이로도리’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낙엽으로 연매출 26억을 만든

그 유명한 마을입니다.

일을 마치고 일행들과 잠시 떨어져

마을 온천에 들렀습니다.

평일 오전,

인적 드문 산골 온천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쪽 발을 물에 담그고

누워 있었습니다.

며칠간 이어진 일정 때문인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눈을 떠 보니

물에 담근 다리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옷을 입고 나왔지만

가려움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저온화상’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습니다.

급히 냇가로 내려가

겨울 물에 다리를 담갔습니다.

차가운 물이

천천히 열기를 식혀 주었습니다.

그때

길쭉한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물살에 쓸리고 구르며

표면이 매끈해진 돌이었습니다.

손에 들어 보니

묘하게 젓가락이 얹히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은 묻지 않고

제 욕심에

같이 왔습니다.

사실

제게 있는 젓가락 받침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가게에서 사고,

어떤 것은

누군가 선물로 주고,

또 어떤 것은

이렇게

냇가에서 만납니다.

사람도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의 사건,

어느 날의 만남,

그리고 어떤 시간들이

조금씩 사람의 모양을 만듭니다.

이 돌 역시

처음에는 그저 돌이었겠지만

물과 시간에 다듬어져

이 모양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돌 젓가락 받침을 볼 때마다

그날의 뜨거운 온천물과

냇가의 차가운 물,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의 표정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억은 물건 하나에

조용히 머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삶도

어쩌면 이렇게

시간과 사건에 다듬어지는 것인지 모른다고.

모양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DSC02808.JPG 2026. 2. 24~2. 27 도쿠시마 탐방 팀 (박창규, 문유빈, 박주연, 김혜진, 채상헌, 현지인, 한숙희, 이윤희

KakaoTalk_20260305_050431487_02.jpg

이 젓가락 받침대는

붉은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 놓으면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헤엄쳐 갈 것 같은

작은 물고기입니다.

색깔은 유난히 붉습니다.

일본에서는 붉은색이

생명과 축복, 그리고 길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물고기에는

어딘가 축제 같은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젓가락 받침을 만난 곳은

가고시마의 농산물 직매장

‘야스라기노 사토’였습니다.

이곳은 조금 특별합니다.

채소를 설명해 주는 사람,

채소 소믈리에가 있는 곳입니다.

채소도

어디서 자랐는지,

어떤 계절에 가장 맛있는지,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지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다른 식재료가 됩니다.

이날 그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설명을 듣고 있으면

채소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한 땅에서 자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곳에 채소를 내다 파는 농부들 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와인에 빈티지가 있듯

채소에도 가장 맛있는 순간, ‘순(旬)’이 있습니다.

마트의 점원은

유통기한을 보지만,

야스라기의 농부들은

채소의 표정을 봅니다.

오늘 나온 시금치는 단맛이 꽉 찼으니 무치지 말고 샐러드로 드세요


이 고구마는 사흘 뒤에 쪄 드시면 꿀이 나옵니다

이곳의 농부들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상인이 아닙니다.

맛과 식감,

그리고 요리법까지 꿰뚫고 있는

채소 소믈리에들입니다.

300명의 소믈리에가 제안하는

산골마을의 제철 미식.

그 향긋한 큐레이션에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옵니다.

아침 9시 문을 열자마자

다른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이 카트를 끌고 들어오는

이른바 ‘오픈런(Open Run)’의 현장이 됩니다.

길가의 직매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파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돌아 나오는 길에

다시 들어가

이 붉은 물고기를 하나 구해 왔습니다.

여행의 기념품이라기보다

그날 들었던 이야기의

작은 조각 같은 물건입니다.

가만히 보면

이 물고기는 꼬리를 위로 치켜들고 있습니다.

마치

한 번 더 몸을 튕겨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같습니다.

비늘 하나하나도

정성스럽게 새겨져 있습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시간의 흔적처럼 보입니다.

어쩌면

이 작은 물고기는

그곳에서 채소를 키우는

농부들의 얼굴일지도 모릅니다.

흙 속에서 자란 채소도

이 물고기처럼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나

식탁으로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이 물고기는 어디서 온 겁니까?”

묻는다면

가고시마의 작은 직매장과

300명의 채소 소믈리에 이야기,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했던 8명의 사람들 이야기

식탁이 다시 채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좋은 농산물은
밭에서 자라지만,
좋은 기억은


사람과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자란다.
DSC02623.JPG 정의길, 최수정, 호나미 이케다, 김준영, 채상헌, 이주량, 이정원, 한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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