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지역, 어른의 역할

고치현 우마지촌 마을 안내소와 어느 퇴직 공무원의 회한

by 시골살이궁리소

지난번 고치현 우마지촌을 방문했을 때, 지역 공무원을 퇴직하고 지금은 마을 안내원으로 활동하는 키요오카 히로유키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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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퇴직 후 생활이 편리한 도시로 나가 연금으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소멸해가는' 지역에 남았습니다. 그리곤 자신이 나고 자란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안내를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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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에 그와 저는 마치 하이파이브라도 할 태세로 서로 의기투합(?) 되었습니다.


결국 예정에도 없던 그가 사는 동네까지 따라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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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생한 육성과 현장의 공기는 '시골살이궁리소' 유튜브 채널에서 곧 영상으로 공개하겠습니다.)


그가 쓴 <그래도 진흙 배를 젓는다>라는 기고문을 먼저 소개합니다.


이 글은 단순한 노년의 회고록이 아닙니다.


저무는 마을을 지키는 한 인간의 '비장한 선언문' 이자 책임을 느끼는 동내 어른의 각오 같습니다.


제목: 그래도 진흙 배를 젓는다


글쓴이: 키요오카 히로유키 (72세, 농업, 우마지촌 우마지)


#참고 진흙 배(泥舟)란? 일본 전래동화(카치카치 산)에 나오는 물에 녹아 가라앉는 배를 뜻합니다. 여기서는 인구 감소와 소멸 위기를 겪고 있는 '우마지촌'을 비유합니다.


우리가 탄 배는 균열이 생기고 떨어져 나간 곳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리 크지도 않은 낡은 '진흙 배'를 타고 있습니다.


요즘은 갈라진 틈으로 바닷물이 들어와, 안전한 항해마저 위협받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가망 없다고 보고 배를 떠나는 승무원도 끊이지 않고, 앉아 있는 승객도 완전히 고령화되었습니다.


식료품 보급 등으로 육지에 접안했을 때 배를 내려,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근처를 신형 배가 지나가면 옮겨 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붙잡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인생 항해를 하기 위해 7대양으로 나서는 기개를 접하니, 오히려 듬직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나이를 먹은 사람들은, 거친 파도가 정면으로 몰아치는 상황에서 이 배에 계속 타고 있는 것이 사실 고통입니다.


제가 이 배에 타기로 결심했던 50년 전에는 승객·승무원이 2천 명을 넘겨 나름대로 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7백여 명입니다.


올봄에는 이 배의 명운을 쥐게 될 선장을 누구로 할 것인지, 4년에 한 번 있는 절차(선거)가 있습니다.


#참고 [촌(村)의 의미] 일본의 '촌(Mura)'은 규모로는 한국의 '면(面)' 정도지만, 권한은 '군(郡)'과 맞먹습니다. 독자적인 의회와 조례가 있고, 주민이 직접 뽑은 촌장이 예산권과 집행권을 갖는 독립된 지자체입니다.


선장은 방향을 그르치지 말고, 승무원의 힘을 결집시켜, 행선지를 승객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만 합니다.


빗물이나 스며든 바닷물을 끊임없이 퍼내지 않으면 진흙으로 만든 이 배는 녹아서 가라앉습니다.


폭풍우와 마주치면 돛대가 부러지지 않도록 몇 사람이고 달라붙어 떠받쳐야만 합니다.


저에게는 노를 쥘 힘은 이제 없지만, 표주박이나 양동이를 손에 들고 물을 퍼 버리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습니다.


자! 힘을 합쳐 배를 저어 갑시다.


#시사점


공무원 퇴직 후 지역의 '안내원'으로 활동하며, 72세의 나이에 지역 신문에 이런 글을 기고한 키요오카 히로유키 씨.


그의 글은 단순히 한 노인의 푸념이 아닙니다.


인구 소멸과 고령화라는 '정해진 미래'를 마주한 우리의 농산촌에 던지는 작은 화두이자 현실적 행동서입니다.


#첫째. "소멸을 인정하는 용기" (#현실직시)


우리의 많은 지자체는 아직도 "인구를 늘릴 수 있다", "공단을 유치하면 된다"라는 장밋빛 희망 고문에 갇혀 있습니다.


곧 있을 자자체 선거에서 그런 구호 현수막이 넘쳐 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첫 문장부터 선언합니다.


"우리는 가라앉고 있는 진흙 배를 타고 있다“


이것은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냉철한 현실 인식입니다.


배가 가라앉고 있음을 인정해야,


"어떻게 더 화려하게 꾸밀까"가 아니라


"어떻게 물을 퍼내며 안전하게 항해할까",


나아가서는 "어떻게 침몰의 시기를 늦출 수 있을까?"라는 실질적인 대책이 나옵니다.


제가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수많은 지자체를 다녔습니다.


70개 소먈위기 지자체에 시군당 최대 90억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신활력’ 사업을 했지만,


상당수는 #쉰활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일까요?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의 환상'을 버리고 '존엄한 축소'를 준비하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둘째. "떠나는 청년을 박수 쳐 보내는 품격" (#세대갈등해소)


학업이든 취업이든 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지역을 버리고 간다"며 서운해하거나,


알맹이도 없는 당근을 일시적으로 던지며 억지로 붙잡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젊은이는 스스로의 인생 항해도를 그린다. 7대양으로 나서는 기개를 접하니 오히려 듬직하다“


이 대목은 ‘한 때는’ ‘나 때는’ 으로 무용담을 펼치는 것이 아나라,


면목 없는 기성세대가 보여줄 수 있는 그나마의 '품격'입니다.


평생을 지역의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이 지경에 이른 본인의 회한과 반성일 수도 있습니다.


청년을 마을을 지키는 '수단'으로 보지 않고,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쿨하게 응원해 주는 고향이 있을 때 청년들은 나중에라도 자주 찾거나 어쩌면 다시 돌아옵니다.


억지로 붙잡는 손보다, 등을 두드려주는 손이 청년의 마음을 얻습니다.


#세번째. "노를 젓지 못하면 물이라도 퍼내라" (#노년의역할)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은 흔히 '부양받아야 할 존재'나 '짐'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본인들 스스로도 "내 나이에 뭘 해"라며 뒤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찾았습니다.


"노를 쥘 힘은 없지만, 배에 들어온 물을 한 줌이라도 퍼 내는 일이라면 해낼 수 있다."


거창한 마을 개발 사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60대 젊은이가 마을입구를 예초기로 풀베기 할 때,


80대 노인은 뒷짐지고 서있기라도 하며 참여를 해야 어른입니다.


마을 앞 눈을 쓸거나, 꽃밭에 물을 주거나,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


내지는 마을로 전입해 온 사람들에게 마을에서 살아가는 지혜를 나누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기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소멸 위기 마을을 지탱하는 힘입니다.


#네번째. "선장은 방향을 설명하라" (#리더십)


그는 마을의 리더(선장/지자체장)에게도 명확히 요구합니다.


"행선지를 승객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만 한다“


위기일수록 리더는 "나만 믿으라"는 호기로운 말 대신,


"지금 상황이 이렇게 어렵고, 우리는 이 방향으로 갈 것이니, 이런 고통을 분담해 달라"는 투명한 소통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젊은이든 나이 든 사람이든 주민들을 '진흙 배'에서 뛰어내리지 않게 만드는 접착제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일본의 성공 사례는 아닙니다.


다만, '가라앉는 배 위에서도 어떻게 서로를 다독이며 웃을 수 있는지', 그 태도는 작은 여운을 남깁니다.


큰 노를 젓지 않더라도 내 손으로 한 줌이라도 내 몫의 물을 퍼내는 사람.


그런 어른이 사는 마을은, 비록 작아질지언정 초라하게 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 일행의 눈에 비친 마을 안내소와 키요오카씨가 살고 있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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