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베끼면 반드시 실패하는 이유

'전체'로 움직이는 일본, '끼리끼리' 뭉치는 한국

by 시골살이궁리소

지난번 '젓가락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화두를 던집니다.


이번 일본 산촌 탐방의 주제는 "농사짓지 않고 산촌에서 살기"입니다.


과소화되는 농산촌을 살리기 위해 한국도 일본도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현지에 가면 눈부신 성공 사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탐방단에게 미리 당부하고 싶습니다.

눈앞에 피어 있는 '꽃(현상)'만 보지 말고, 그 꽃을 피워낸 '흙(사회 문화적 토양)'을 봐야 한다

비슷해 보이는 두 나라의 집단주의, 하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뭉쳤다 흩어지는 역동성

한국의 소집단주의

학자들은 한일 양국을 모두 '집단주의 문화'로 분류하지만 결이 다릅니다. 한국의 집단주의는 '소집단(小集團)주의'입니다. 전체보다는 내가 속한 작은 '이너 서클'이 더 강합니다.


버스 안의 '우리'

난폭 운전하는 버스 기사는 무섭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버스에 올라타 승객이 되는 순간, 묘한 심리 변화가 일어납니다.


버스가 끼어드는 승용차와 시비가 붙으면, 승객들은 순식간에 기사 편이 되어 맘 속으로 "우리 차가 잘못한 게 아닌데 저 차가 왜 저러냐"며 역성을 듭니다.


버스라는 울타리 안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배타적인 '우리'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동문회의 딜레마

미국이나 일본 학생들은 해외 유학을 가도 굳이 '유학생회'를 만들지 않지만, 우리는 반드시 '한국인 유학생회'를 결성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람이 조금만 모이면 그 안에서 또 갈라진다는 점입니다.


"어? 너 OO 고등학교 나왔어?" 하며 고교 동문으로 쪼개지고, 지역 향우회로 다시 뭉칩니다.


더 작은 공통분모를 찾아 끊임없이 내부로 파고드는 소집단주의.


2002년 월드컵 때는 온 국민이 '붉은 악마'로 하나가 되었지만, 직후의 대선에서는 '노랑'과 '파랑'으로 명확하게 갈라졌던 기억이 있지요.


이것이 한국 사회 특유의 '역동성이자 배타성'입니다.


제가 그때, 동아일보에 '컬럼'을 쓴 적도 있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힘 : 일본의 전체 집단주의

반면 일본은 '전체(全體) 집단주의'의 성향이 강합니다. 과거 고이즈미 총리가 90%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기록했을 때, 한 지식인은 이를 '부화뇌동(附和雷同)'이라 표현했습니다.


한번 "이것이 대세다"라는 사회적 분위기(쿠우키, 空気)가 형성되면, 초목까지도 "우~" 하고 한 방향으로 쏠립니다. 개인이나 소집단의 이익보다는 '전체 집단의 질서와 방향'을 따르는 힘, 이것이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입니다.


이 차이는 마을 만들기에서도 드러납니다. 일본 마을이 '전체 합의'를 통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전체 집단주의'라는 토양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남의 옷, 우리 몸에 맞게 '가봉(假縫)'하기

우리가 일본 산촌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일본은 '마을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우리는 '문중', '작목반', '동호회', '귀농인'과 '원주민' 등 소집단별로 움직이는 에너지가 훨씬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성공 방식(옷)이 아무리 멋져 보여도, 덥석 입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집단적 역동성'이라는 체형에 맞게, 뜯어고치고 바느질하는 '가봉'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번 탐방은 그저 구경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들의 옷감을 만져보고,

치수를 재러 가는 길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지을 수 있을지,

그 보이지 않는 토양까지 꼼꼼히 살피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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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편: 목수 남편과 기자 아내, 오지 산골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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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 2월, 또 다른 '실험의 무대'로 떠납니다 (B코스)

이 연재는 하나의 생각 실험입니다.
그리고 2월, 그 생각을 현실에 대입해 보는 B코스 일본 산촌 현장 탐방이 이어집니다.

A코스와 같은 질문을 품고 떠나되,
지역과 방문처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갑니다.
다른 조건, 다른 실패, 다른 가능성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묻습니다.
"농사짓지 않고, 어떻게 시골에서 존엄하게 살 것인가?"

그 질문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싶은 분들을 위해
B코스 탐방단을 모집합니다.

1월 7일까지 '채상헌 교수의 브런치'에 공지

☞ 브런치는 네이버에서 채상헌교수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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