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농촌이 변하고 있다면 아예 그 변화를 주도하겠다
○㈜드림 파머즈
○大分県宇佐市安心院 (오이타현 우사시 아지무)
분지의 마을 ‘아지무’는 1965년부터 국영 종합 개발 시험 사업으로 ‘일본 최고의 포도 단지’를 슬로건으로 산지 육성이 시작된 곳이다. 무네타케氏의 부친 세이이치氏도 1972년에 4,000주 규모의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을 개장했다. 이 마을은 분지 특유의 풍토·기후라서 양질의 포도가 생산되어 서일본 유수의 포도 산지로 성장했다. 그러나 1990대에 들어서 고령화, 향도이촌, 과소화, 방폐 농지가 늘어나며 아지무 포도 농가들은 많은 문제를 안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인 세이이치氏가 생각한 농촌 살리기는 독일의 농박 연수에서 힌트를 얻어 시작한 아지무의 농박. 슬로건은 "1번 머무르면 먼 친척, 10번 머무르면 진짜 친척". 이후 "그린 투어리즘"로 불리는 농산어촌 지역에서 자연, 문화, 사람들과의 교류를 즐기는 체류형의 여가 활동은 점차 주목을 받게 되었다. 현재는 특히 수학여행 지역으로 명성이 높다.
○ 미야타 무네타케(40세)
본래 오이타현 우사시 출신으로 동경농업대학 농학부 농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뒤, 1999년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포도 재배에 관해서는 제로 상태였지만, 포도원을 운영하고 있던 부친이나 농원 직원들로부터 현장에서 부딪히며 지식과 기술을 쌓은 뒤, 2008년 4월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의 대표에 취임했다.
미야타家의 2대인 무네타케氏는 한 알 한 알 품질이 우수하나 송이가 엉성해 생과로는 규격 외 포도를 이용한 건포도 가공 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 2012년에 6차 산업화 법에 근거한 종합 사업 계획이 인정되어 인근 젊은 농부들과 ㈱ 드림파머즈를 설립. 유연한 발상력과 행동으로, 아지무의 젊은 농업인들을 리드하고 있다.
○ 미야타 노리에(43세)
인근 오이타시 출신으로 7년 전 무네타케氏와 결혼하게 되면서 결혼해서 이곳으로 옴. 자택에 부속한 판매장 운영을 맡고 있다. 결혼 전에는 오이타 시내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농업 관련 교육받은 적은 없다.
○ 미야타 세이이치(66세)・마사코 부부
아지무 그린투어리즘의 창설자인 부친은 20년째 NPO법인 아지무 그린투어리즘 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인물로 "아지무 농박"의 창설자. 1972년에 일본수의축산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이곳 우사시가 고향이기는 하지만 연고가 없는 이곳 아지무 마을로 귀농하여 포도농사를 시작. 이후로 세이이치氏는 농업 생산만으로는 점차 농촌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지역민들과 합심하여 1992년에 'Agri투어리즘 연구회'를 발족시키고, 1996년에 '아지무 그린투어리즘 연구회'를 발족하고 회장에 취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2002년에 오이타현 그린투어리즘 연구회를 발족 후 회장을 겸임하는 일본 전국에서도 인지도를 갖는 인물. 개인적으로는 2013년에 민박을 했던 인연이 있다.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의 농지는 현재 5ha. 인수한 관광농원에는 베리 A, 고르비 등의 품종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거봉이다. 먹는 순간 왕이 된 기분이 들 정도의 최고급 포도라는 것을 표현한 브랜드 ‘임금님 포도’ 화학 비료는 일체 쓰지 않고 쇠똥 퇴비, 깻묵, 어분, 콩 퇴비, 쌀겨 등 유기질 비료만 사용하여 토양을 가꾼다. 병충해 방제에 있어서는 농약의 농도나 횟수를 줄임으로써 맛있고 안전한 포도 재배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
역시 농대를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2대 무네타케氏는, 아무리 애를 써도 포도알의 크기는 각각이고 착색 불량도 발생하게 되는데 이 중에는 한 알 한 알의 포도알은 최상급이지만 꽉 들어차지 않은 송이는 역시 2 등품 취급을 받는 상황을 고민하게 된다. 맛은 우수하나 모양이 안 좋아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이른바 ‘규격 외 포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과제를 풀지 않으면 산지로서의 명성을 이어갈 수 없다. 이렇게 해서 궁리한 것이 ‘한 알 한 알을 떼어 내 말려보자. 한 알 한 알로는 최고의 품질인 이들이 더욱 빛나는 주역이 되도록 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는 결국 건포도 가공상품 개발로 이어졌고 이어서 100% 거봉 주스, 거봉 잼이나 소스 등의 상품까지 연결되었다. 물론 이러한 가공제품의 평가가 호평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으로부터 양질의 거봉포도를 공급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 농업을 하게 된 계기는?
부친이 이미 오랜 기간 포도농사와 함께 '아지무 농박'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과 농대를 다니다 보니, 농학은 점점 발전하는데 정작 농촌은 텅텅 비어 가고 있는 실정을 보고 현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본래는 연구원이나 교사생활을 하며 사회생활을 경험 한 뒤 농촌으로 갈 생각이었지만, 농대 다니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가 '농업은 지금까지 하던 방식으로 하면 안 된다.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이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들 새로 시작하는 것이라면, 굳이 다른 분야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가서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취업 후 도시에서 경험을 쌓은 뒤 농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학업(동경농업대 석사)을 마치고 바로 귀향하게 되었다.
◉ 포도농사, 가공공장, 판매장, 농가민박 이른바 생산, 가공, 판매, 서비스의 1, 2, 3차 분야를 다 운영하고 있는데 중 어느 분야가 가장 쉽다고 느껴지나?
단연코 드라이 후르츠(Dried fruit) 사업이다. 가공은 좋은 원료를 깨끗이 해서 매뉴얼대로 컨트롤이 된다. 방법이 확립되면 직원들에게 맡기면 된다. 하지만, 농업은 자연환경에 대해 경험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직접 해야 하고 알면서도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재배는 물론 가격이나 판매는 예측 불허다.
◉ 자가 생산한 물건으로 원료가 부족하면 어떻게 하는가?
포도 농가 3인이 회사를 하기 때문에 아직 원료가 부족하지는 않지만, 향후 부족해 농장 규모를 확대하거나 오이타현에서 받을 예정이다. 오이타 지역으로 관내로 범위를 두되, 굳이 이 마을에서만 받을 생각은 없다.
※품질과 가격을 고려해야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3 농가의 포도재배 면적은 10町 약 10ha이다 (1町≒0.991736ha).
대성공을 거둔 ‘아지무 그린투어리즘’ 발상의 배경도 그랬지만 2대 무네타케氏도 「농업은 생산만 갖고는 안 된다"」생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네타케氏가 고향으로 돌아와 시작한 것이 가공 사업이다.
◉ 드라이 후르츠(Dried fruit) 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야채와 달리 과일은 규격외를 팔 곳이 별로 없어 주스나 잼을 만들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드라이 후르츠를 만들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아주 최근부터 드라이 후르츠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수년 전만 해도 국산 드라이 후르츠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농장에서 생산한 것을 드라이 후르츠로 한 경우는 더더욱 없다고 본다. 특히, 6차 산업 사업자 신청을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 하지만 건포도는 식감이나 당도가 대개 비슷하고 어디든지 있다시피 하지 않나?
맛있는 과일은 농축하면 더욱 맛있지만, 맛이 별로인 것을 농축하면 더더욱 맛이 좋지 않은 특성이 있다. 우리는 이름에서 보듯이 '임금님 포도 ; 오우사마노 부도우'라는 이름을 당당히 붙였듯이 이 지역이 분지 지역인데다, 수십 년 간 토양관리를 철저히 해 왔기 때문에 포도의 품질은 이미 최상급이다. 물론 2 등품도 있지만, 포도 한 알 한 알의 맛과 당도는 최고인데, 송이가 꽉 들어차지 않아 이른바 규격 외로 나오는 것들이 있다. 이것을 한 개씩 분리해서 상품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컨대 우리 건포도는 2 등품을 말린 것이 아니라, 장외 1 등품을 말린 것이다. 품질에서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다.
◉ 6차 산업 인증은 건포도로 받았는가?
그렇다. 아마 우리가 오이타현 1호 (2012년) 인증 농가로 알고 있다. 처음에는 건포도로 시작하였으나,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현재 여러 가지 과일 종류로 확대를 시도하고 있는 중이다. 당시 지원받은 비용은 기계설비를 갖추는 데 사용했다.
◉ 계획대로 잘 되지만은 않았을 터인데?
거봉을 사용해 처음으로 가공한 것이 거봉 주스이다. 가공분야 역시 경험 없이 시작했지만 후원자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실패를 거듭하다 우연하게 우리 직매장을 찾은 식품가공 전문가로부터 상품 개발의 조언을 듣게 되었고, 주말에 한해서는 그가 자신의 가공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후로 거봉을 몇 톤이나 사용하며 시제품 만들기를 반복하여 드디어 상품이 완성되었다. 어느덧 가공 멘토가 된 그는 나에게 '일본 어디에도 없는 상품'이라며 칭찬했지만 그것은 ‘미야다 패밀리 포도원’으로부터의 원료의 생산력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 임금님 포도
먹은 사람이 왕이 된 기분이 들 정도의 극상의 품질을 표현한 브랜드명이지만, 거봉이 포도의 왕이라는 뜻도 담았다고 한다.
○ 주스 제조 납품용
직판장이나 택배 발송 등 직거래를 하지 않는 2 등품은 호텔 등에 주스용으로 납품하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한마디 '상품이 아니면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 건포도
6차 산업화 법의 인정을 받은 ㈱ 드림 파머스의 건포도 사업.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에서 자가 생산한 포도를 이용했다.
○ 샤인 마스카드와 농축 밀감 드라이 후르츠
㈱ 드림파머즈는 건포도뿐만이 아니고 다양한 과일을 사용한 드라이 후르츠(Dried fruit)를 구상하고 있다.
○ 100% 거봉 스트레이트 주스
가공사업 시작의 발판이 된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의 주력 제품인 100% 주스. 농후한 스트레이트 주스로 과즙 100%. 희석하지 않고 그대로 마시면 된다. 적당한 산미와 달콤함이 일미.
○ 농축 거봉 주스
물에 3~5배 희석 사용할 수 있는 농도. 홍차를 마실 때 설탕 대용이나 한천 양갱, 따뜻한 물에 희석해 마셔도 된다. 가장 좋은 조합은 우유와 희석해 마시면 최적.
○ 거봉 잼
미야타 패밀리 포도원에서 생산한 거봉포도를 통째로 사용한 수제 거봉 잼
○ 거봉 소스
깔끔한 맛으로 요구르트나 케이크에 맞는다.
○ 임금님 포도 거봉 소프트 아이스크림
일본인들은 유난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즐긴다. 모친이 제안한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거봉 버전. 자가생산 임금님 포도를 통째로 사용한 거봉 주스를 첨가하여 만든 오리지널 거봉 아이스크림. 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다른 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2012년에는 도쿄의 이세탄 에도 출점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라 할지라도 제값을 받고 팔아야 한다.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노력과 수단은 생산기술 못지 않게 중요하다.
○ 판매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직매장이 5할을 차지한다. 나머지는 거래처에 내는 것이 3할 정도 된다. 거래처를 통해서는 고속도로 휴게소, 도로변의 '미찌노에끼', 동경의 몇 군데 상점 등이다. 그리고 매스컴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들어오는 전화 주문식 직거래 택배가 약 2할로 어느 정도 판매는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 인지도가 낮았던 사업 초창기의 판매방식은?
우여곡절 끝에 상품을 완성했더니 이번에는 팔아야 한다는 부담이 다가오더라. 그래서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이웃 지역의 유후인 역전에서 시음 등 꾸준한 판매 촉진을 했다. 반응이 오는 데까지 3년이 걸렸지만 그 이후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어, 유후인의 고급 료칸 「타마노유」에서도 인기 상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 「우리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판매처에 물건을 내고 싶다. 우리 생각을 이해하고 전달할 수 없는 곳에는 팔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무네타케氏. 그동안의 실적을 통한 자신감과 상품에 대한 확신, 애정이 엿보인다. 국내산 제품으로는 드문 거봉 건포도. 무첨가 상품을 고집하며 주로 여성을 타깃으로 판매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농업은 즐겁고 시간이 자유롭다. 다만 돈이 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돈도 벌고 즐겁고 시간도 자유로운'직업이 농업이라는 것을 구현하자고 나선 것이 직판장을 시작하게 된 계기.
생산한 농부가 가격을 매겨 팔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아지무 최초 직판장이 탄생했다. 운영은 부인 노리에氏.
아지무의 그린투어리즘에 대해서는 직접 숙박하며, 농가, 방문객, 운영자 등을 취재한 내용에 대해 다음호에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6차 산업화 플래너와의 콜라보레이션
「대학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구석에 박혀 연구하는 가공은 체질에 맞는다」는 무네타케氏는 건포도를 만들기로 결심. 지역의 젊은 농가들과 힘과 지혜를 모아 6차 산업화 법의 인정을 받아 2012년 5월 ㈱ 드림파머즈를 설립했다. 그런데 6차 산업화 사업자 신청을 하며, 사실 본인들의 뜻이 들어 있는데도 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대표이사 무네타케氏. 이 때 의지가 되었던 것이 6차 산업화 서포트센터 플래너 제도. 본인들이 고민하고 구상하고 있던 것들을 플래너들이 네트워크와 인맥을 활용하여 구체화시켜 주었다고 한다.
※ 플래너 제도 : 우리나라 6차 산업 홈페이지의 전문가 풀과 비슷한 개념인데 분야와 인력풀이 훨씬 방대하다.
◉ 6차 산업화 인증을 받기 전후의 차는 무엇인가?
주목을 받게 된 점이다. 현이나 市 또는 정부 등과의 네트워크가 생겨 도쿄의 백화점 매장을 소개받는다든지, 현청으로 요청 온 취재 등이 연결되어 방송이나 다양한 매스컴에 노출 경우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또는 오이타현청으로부터 오이타 현내 또는 전국단위의 행사에 참가 권유가 많아졌는데 이러한 것들이 직접 거래처나 판매로 연결되는 점도 있지만 소비자 신뢰로 이어지는 효과가 큰 것 같다. 전문가를 포함하여 각 분야의 여러 사람들이 방문하게 되고, 이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나 코칭을 받는 부분도 크다. 고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점검도 되지만, 고객의 요구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게 되어 눈에 보이는 매출 이외에도 얻는 것이 크다. 이러한 것들이 이전에 없었던 6차 산업화 인정을 받게 되면서 일어난 현상들이다.
◉ 일반 소비자가 6차 산업화 인증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가?
구체적으로야 모르겠지만, 나름 오랫동안 추진해 왔고, 온오프라인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이므로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해당 상품이 그런 식으로 정부 인증을 받았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 일본의 경우는 사업자가 부착할 수 있는 6차 산업 인증마크는 없고 6차 산업 서포트센터에 비상근으로 등록되어 활동하는 플래너(분야별 전문가) 인증마크만 있다. 이 마크는 관련법 기본방침에 의거(농림수산성 고시 제607호) 특정 상품 등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어 현장에서의 불만이 있다. 이러한 반응은 일본의 6차 산업 인증농가 방문 시 몇 군데에서 듣게 되었다. 따라서 원재료의 형태가 확인되지 않는 가공제품의 특성 상, 대기업 브랜드가 아닌 개인이나 농기업 법인이 안고 있는 소비자 신뢰의 장벽 해소에는 정부 인증이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6차 산업 인증사업자로 선정된 경우는 농촌 융복합산업 인증사업자로 표기할 수 있는 마크가 부여되며 해당 마크는 사업장과 생산 및 가공한 제품뿐만 아니라 그 제품의 포장·용기·홍보물 등에 인증표시를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도 6차 산업 인증사업자가 생산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6차 산업 상품으로 인증된 경우만 부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비자 신뢰를 유지할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따라서 인증마크 부착은 적극 활용하고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매스컴에 자주 노출되면서 도쿄의 어느 유명한 사람과 인연이 되어 뉴욕의 백화점에 보낼 기회가 있었는데, 이 내용이 '며느리의 저력으로 드라이 후르츠를 수출'이라는 제목으로 전국판 잡지에 소개된 적이 있다. 뉴욕의 백화점에 보내는 것이 양적으로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사례가 신뢰와 판매로 이어지는 것에 놀랐다.
◉ 6차 산업화 인증 제도에 참여하고 있지 않는 일반농가의 소외감은 없는가?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 6차 산업은 1차 농업경영이 되는 농가가 더욱 분야를 넓혀가는 경우와, 1차 생산만으로는 경영이 안 되어 2, 3차로 진출하는 농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6차 산업 분야에 참가하지 않으면서 나한테 오는 파이가 저쪽으로 가고 있다는 식의 주장은 시기 질투에 불과하다. 여전히 1차 산업 분야에도 파이는 나눠지고 있다. 6차 산업을 하기 위해서는 회사(법인)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기계설비나 시설 투자, 종업원 고용 등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이다. 당연히 경영능력이 요구된다.
◉ 6차 산업화 분야에 진출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한마디 한다면?
일단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농업은 생산만으로는 어렵다. 농가레스토랑, 숙박, 부동산 등 거기에서 얻은 이익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농업경영을 안정적으로 이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길 권하고 싶다. 또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금이 회전되는 경영 형태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자금에 쫓기게 되고,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자금이 순환되는 구조를 생각해야 한다.
◉ 농업을 시작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극단적으로는 이 마을에 농업경영인은 3명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경영자의 형태로 농업을 고집하지 말고 나머지는 종사자로 일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서로 비효율적이고 효과 없는 경쟁을 할 뿐이다.
마을은 돈이 되는 농업과 경관유지의 농업, 개인 취미의 농업이 복합되는 구조가 효과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방식으로 마을 구성원들이 역할을 분담하면 경제적인 측면이나 여가, 정신적 스트레스 같은 측면에서 보다 풍요로운 농촌 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리더는 기본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선진적인 생각과 기술로 세계를 상대로 지역농업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농업을 두려워하지 말고 미래에 대해 준비하고 도전하라고 말하고 싶다.
▣ 문의
○ 채상헌 교수
- 농림축산식품부 6차 산업 우수제품 판로지원 중앙단위 유통전문가
- 농림축산식품부 정책연구용역심의 농정 소위 (위원)
- 천안연암대학 교수 (시골살이궁리소장)
- http://sigolsari.yonam.ac.kr
- ka5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