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지금부터 시작인 <야구소녀>를 위하여
20년 만에 고교 야구선수가 된 소녀.
야구천재로 불린 주수인이라는 소녀가 있습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수인을 기다리는 것은 찬란한 미래가 아닌 냉혹하기만 현실이었습니다.
여느 선수와 마찬가지로 프로에 지명을 받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아야만 하는 상황.
어린 시절부터 했던 야구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수인은 프로의 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야구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그 소중한 꿈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야구부 감독도, 교장도, 심지어 어머니도 수인의 무모해 보이는 꿈을 반대합니다.
그럼에도 수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직 해보지 않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현실의 벽은 무척이나 높습니다.
여자가 아니어도 프로의 벽은 무척이나 높은 것이었죠.
하지만 여자라는 존재만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매우 차갑기만 합니다.
수인을 선수로도 인정해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수인의 주변에 두 명의 인물을 보여줍니다.
한 명은 오랜 시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지만 합격하지 못하고 있는 수인의 아버지.
다른 한 명은 프로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독립구단에서 선수생활을 이어왔던 야구부의 코치입니다.
이들은 수인의 도전이 실패하면 그들처럼 힘겨운 삶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수인의 꿈을 막는 사람이자, 꿈을 막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수인의 꿈에 힘을 실어주기로 합니다.
끝내 꿈을 포기하지 않은 수인은 말 그대로 피나는 훈련을 이어나갑니다.
아버지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반대를 견뎌가며, 공장에서 일도 해가면서 말이죠.
코치의 도움으로 수인은 성장만화처럼 각성하고, 눈부신 성장을 보여줍니다.
결국은 주변의 응원도 얻게 되고, 프로의 문 앞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됩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수인은 이미 수많은 벽을 넘어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하는 여자라는 이유로 당했던 수많은 아픔을 모든 견뎌내었고,
아무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던 여자 고교야구선수가 되었죠.
그러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주수인들의 희망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제 수인에게 프로라는 벽은 자신만의 벽, 어쩌면 그 이상의 의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구소녀의 엔딩은 기쁘면서도 불안하고 걱정스럽습니다.
수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편견을 이겨가며 새로운 길을 여는 이들에게 세상은 결코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실력으로 이겨내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을 유리천장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천장을 깨는 한 사람의 힘은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내죠.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가능하다면 수많은 아이들의 꿈의 한계가 사라집니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은 야구소녀 주수인처럼
또 다른 주수인들을 만들어 낼 주수인의 미래는 이제 시작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결코 엔딩이 아닙니다.
빠르지 않아도 조금은 느리더라도 이길 수 있는 순간을 꿈꾸게 하는 영화.
수많은 편견 속에서도 한계를 규정짓지 않은 이들을 꿈꾸게 하는 영화.
나는 이 세상의 수많은 야구소녀 주수인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