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선 다들 나를 '착한 애'로 봐줬다. 고마웠지만 내가 아는 나는 별로 안 착한 것 같아서 조금 덜 고마운 걸로 나와 퉁치기로 했다.
"왜 만춘 씨는 화를 안 내요?"
내가 화를 안 냈던가? 잘 모르겠다.
하루는 창고에서 게이트 서류를 챙겨 나오는 길에 창고에 있는 동기한테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언니 이 서류 빼먹고 안 가져갔다'고 해서 부리나케 창고로 되돌아갔다. 빼먹고 간 서류를 챙기며 "와~ 좆될뻔했다~" 라고 했더니 창고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빵 터지며 만춘 씨도 그런 말을 할 줄 아냐며 신기해했다.
내가 욕을 잘 안 했던가? 모르겠다.
나는 언뜻 모든 상황들을 포용하는 것처럼 비치지만, 사실은 겉으로 표현을 못 해 안에서 곪는 것이다. 나는 공항에서 담아온 모든 감정들을 집에다 풀어냈다. 내가 뭘 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모든 물건에 우울이 덕지덕지 붙었다. 그냥 내버려만 둬도 그렇게 잘 자란다는 다육식물조차 우리 집에선 생기를 잃고 시들어버렸다. 그래서 글을 썼다. 더 이상 나의 집이 우울에 잠식당해 눅눅해지지 않도록.
기실 나는 '우울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밥 말아먹은 사람이었다. 나는 우울하면 그 우울감으로 굴삭기를 만들고 '우울한 나'의 자아를 만들어 끝간데 없이 땅굴을 파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래서 내 글의 기본값은 우울이었다. 물 먹은 미역마냥 축축 쳐지는 글이 싫어 글 사이에 해학을 꾸역꾸역 쑤셔 넣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하루 가벼운 사람이고 싶었다. 우울한 건 모두 파란 하늘에 묻어버리라고 그 언젠가 체리도 말했으니까. 내 고등학교 친구 중 한 명은 초등학교 선생님인데, 미래를 위해 몇 달 동안 내내 퇴근 후 학원에 가 무슨무슨 상담사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와, 너 진짜 끝장나게 멋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자꾸 이렇게 나 비행기 태울 거야?"
"그게 내 직업이거든!"
친구와 실없는 대화를 하며 낄낄거렸다. 하지만 나는 낄낄거리는 와중에도 마음속에 곰팡이 같은 불안감을 피웠다. 모든 것이 두려운 까닭이었다. 내일의 출근도, 오늘 밤이 오는 것도 두려웠다. 친구와 헤어지고 눅눅해진 집으로 돌아와 보니 곰팡이 같은 내가 보였다.
나는 어릴 적 외계인을 제일 무서워했다. 아니 외계인이라기 보단, 알고 보니 이 세상에 인간은 나 혼자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외계인이었다는 충격적인 결말을 제일 무서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너무나 선명하게도 어릴 적 무서워했던 그것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 혼자였다.
충격을 마주한 순간 곰팡이 인간은 소리 내어 울었다. 공포 앞에 벌거숭이로 내던져진 자신을 지켜야만 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냐면, 아무것도 안 했다. 아니, 우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울다 지친 나는 냉장고에서 오렌지주스를 꺼내 마셨고, 지옥 같은 공황이 도져 방금 마신 주스를 모두 게워내야만 했다. 이건 외계인이 나의 홀로서기를 질투해 나를 아주 오래, 그리고 자주 외롭게 만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오래, 그리고 자주 오렌지주스 같은 괴로움을 홀로 삭혔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모든 걸 이해하고 포용하는 예수나 붓다 같은 성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나를 '착한 사람'으로 봐줬던 건, 내 마음속에 곰팡이가 피어있어서다. 매일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울어대니 마음속이 눅눅해져서 곰팡이가 피어버렸기 때문이다.
곰팡이는 무럭무럭 크기를 키울 때도 있었고 맥도 못 추리고 작아질 때도 있었다. 불가항력적으로 처음 마주해야만 했던 그 아이는 내가 곰팡이 인간 진단을 받은 지 삼 년 만에 서서히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나는 곰팡이 같은 나를 타개하기 위해, 우울한 집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글을 썼고, 글은 나에게 '환상적으로 공황장애 극복하기', '끝내주게 우울증 날려버리기' 같은 걸 검색창에 쳐보지 않고도 알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물론 아직 환상적으로 공황장애를 극복한 것도 아니고 끝내주게 우울증을 날려버리지도 못했다. 위 문장에서 내가 단언할 수 있는 건 '아직'. 나는 '아직' 모든 걸 극복하진 못했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렇게 글을 쓰며 지난날의 아픔에 대해 용감하게 고백하고 있는 내 자신이 좀 좋아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