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오해
2024년 11월 퇴사를 앞두고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자동차정비산업기사 과정평가형 과정이 있는데 어떻냐는 제의였다.
이건 이미 3년전? 연락을 받은 적이 있어서 알고있었는데 이번에 결혼과 함께 1년의 공백기가 생기는 걸 아시고 제의 해주신거 같다.
주부로 1년을 집에서 쉬는 것과 주부학생으로 1년을 나가서 쉬는 것은 아무래도 주변인들의 시선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거 같았는데 결혼과 동시에 난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말고 살자고 맘 먹었던지라 당시 예랑이와 협의를 했다.
1년동안 학교생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과 유지비는 스스로 해결할테니 입학할 수 있게 양해해달라는 내용과 혹, 부모님과의 의견마찰이 생길 수 있으니 도와달라는것이었는데 남편은 그런걸 왜 굳이 허락을 받냐는 쌩뚱 맞은 표정으로 뭐든 하면 좋지~ 라며 이해해 주었다.
원래 1년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쉬게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어떻게 일을 하며 살아왔는지 그걸 5년 가까이 지켜본 남편이 너무나도 잘 알기에 1년 정도는 쉬는게 좋지 않을까 나를 설득했었고 결국 못 이기는 척 쉬기로 했던거였다.
아마.. 공부니까 이해해 준 거 같은데 입학을 허락해준것이 가장 큰 문제였을 것이다.
3월 1일 결혼
3월 2일 ~8일 [ 신혼여행 태국 코사무이 ]
도착과 동시에 양가부모님께 인사드리고 10일부터 등교할 준비를 했다.
학교에서도 결혼은 일주일 정도 출석으로 인정해준다고 해서 이런 저런 서류들도 챙겼어야 했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걱정을 했을거다.
일주일이나 늦게 입학하는건데 이미 사람들 다 친해졌을텐데 어떻게 친해져야 할까? 외톨이 되는거 아닐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뭔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어차피 학교는 내 홈그라운드니까
5년 전에는 위탁생들로 학생들의 50%가 미성년자 그리고 그 중 만학도 1,2명 겨우 있을까 였고 대부분 30%가 20대 나머지가 나와 비등비등하거나 한 두살 오빠였는데
입학하자마자 우와 이걸 어쩌지 싶었다.
위탁생을 받지 않기 시작했기에 학생 전원이 성인이었고 그 중 난 가운데 겨우 끼일 정도의 나이였다.
오빠라고 해봐야 1,2명? 그 외에는 삼촌뻘 그리고 엄마, 아빠뻘도 5명이 넘었다.
망했구나... 솔직히 나도 꼰대인데.. 나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편견과 꼰대기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걱정이 되었다.
이 걱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지..
36살이나 된 나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드디어 꼰대들의 활개가 시작되었다.
내가 이 나이 먹고 여기와서 왜 남의 남자들한테 이런 지적질을 받아야 하나 처음엔 짜증이 났었다.
가장 큰 시기질투를 받게 될 것은 나도 예상했었다.
이제 갓 결혼했으면서 차도 있고 바이크도 있고 자유롭게 놀러도 다니고 외박도 하고 사고 싶은거 다 사고 먹고 싶은거 다 먹고 돈 걱정 없는 것?
이건 위에서 말했다싶이 난 내가 하고싶은 걸 하기 위해 5년 동안결혼자금과 내 여유 생활자금까지 적금을 하고 일을 그만두었으니 당연히 감당이 가능했었다. 그렇기에 이 설명은 이제 마지막 이제 하지 않을 것이다.
입학하고 2주 정도 지났을까? 담배 피며 이야기 하는데 문득 그러더라
"결혼도 한 애가 왜 그러나 싶었는데 아~ 결혼해서 그렇네 싶더라"
이 말을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 바로 답문해주었다.
"사모님한테 용돈받아 쓰시나봐요?"
이 말에 바로 발끈하더라 자기가 그동안 돈벌어서 자기 마누라 먹여살리고 모아 둔 돈 많다고
"저두요 저도 돈 많아요 남편보다 더 많을껄요?"
1년 동안 난 17번의 필기 시험을 응시하였고 5번의 실기 시험을 응시했다.
용접부터 전기 건설기계정비 산업안전 지게차 굴삭기 등등 기능사부터 산업기사 까지 다양하게 도전했고 공부했다. 이왕 1년 버리는거 내가 하고 싶은거 다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런 내 행동이 정비산업기사 딱 1개만 따러온 50년생 아빠들한테는 이해 안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내가 돈걱정없이 시집살이 걱정없이 남편걱정 애 걱정없이 언제 공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이제 남은 내 인생의 직업의 99%의 선택기 아닐까?
안그래도 나이 좀 먹었다고 머리 안 돌아가는데 지금 이순간이 아니면 이제 더이상 필기 공부할 자신도 없었다.
두어달이 걸렸을까?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경제적으로 어느정도의 여유를 가졌는지에 대해 이해시키고(?) 납득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이걸 내가 왜 굳이 남한테 해야 할까?
그저 이렇게 할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살아가겠지가 아니라 왜 여자가 능력이 되면 그 능력이 다 남편에게 빌붙어 얻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 차가 내 바이크가 뭐 엄청나게 우와 할 정도면 이해하겠는데.. 에휴...
같이 다니는 멤버중에 내가 제일 마지막이고 나와 동갑이 친구가 그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뭐.. 얼마지나지 않아 결국 트러블이 생겨 그 친구는 사라졌지만
그리고 이제와서 그 친구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참을성이 이해심이 그리고 한편의 너와 나는 다르니까 라는 생각에 그 동안 무감각하게 버텨왔으니까
조금 늦게 그 친구를 이해했지
학교에서 생기는 마찰을 나는 남편과 속시원하게 다 공유했다.
내가 오늘 하루 무얼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에 노출중인지
당연히 내 남편이 알아야 하고 나도 남편의 현재 상태를 알아야지 다음에 생길 문제에 좀 더 쉽게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버텨줄 수 있을거라 생각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지 이야기를 못하겠다.
이젠 학교 찾아와서 교수실에 가서 엎어버리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싸우는걸 싫어하고 어지간하면 좋은게 좋다는 마인드의 남편인데 그런 남편도 화가 많이 났었나보다
그리고, 내일에 나보다 더 화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게 지금 나에게는 너무 든든한 경호원이 생긴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