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너에게 마음이 가.. 어떻게 해야 할까?
"괜찮아요?"
"아.. 네..."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고 나니까 갑자기 부끄러움이 온몸을 지배해 버렸다.
다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큰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쫓아오는 거 하나 때문에 왜 그렇게 겁을 먹었던 건지.. 처음 느껴보는 남자의 강압적인 행동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나름 어릴 때부터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엄하고 무섭게 자라서 어지간한 일에는 겁도 안 먹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차는 결국 탁송을 불러서 집으로 보냈다. 그나마 원격시동이 되는 거라 문만 잠그면 되는 거라서 문제는 없었다.. 차에 주로 헬멧을 넣어두다 보니 그거만 툭 꺼내서 규진 씨 뒤에 매달려 근처 카페로 이동을 했다.
도저히 온몸이 떨려서 운전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너무 부끄러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고개 좀 들면 안 돼요..?"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그게 또 마음에 걸렸나 보다..
"아직도 많이 힘들어요..?"
"아.. 그건 아닌데.."
쪽팔린다는 말을 어찌하냐고..
이번에는 왜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굴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안 받던가 받아도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미안하다고 하던가.. 그러고 경찰서를 가던 아님 어떻게든 따돌리고 집으로 갔어야 했는데..
"그런 거 아니면 이제 고개 들어요.."
계속 이러기도 그래서 결국 조심히 얼굴을 들었다
"얼굴이..."
많이 이상한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이.. 괜히 머쓱해져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 언제부터 그랬어요?"
진지한듯한 그 사람의 질문에 난 다시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차근 차근히 예전부터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편한 것만도 속 시원하다기 보다도 괜히 약점 하나 생기는 거 같아서 불편하기만 했지만.. 이미 도움을 준 사람에게 말을 안 하고 넘어가기에는 미안하기도 해서..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직장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딱히 하지 않았다.
그저 사무직이라고..
"그게.. 조금 걱정이긴 해요.. 아무래도 남성직원들의 비중이 많다 보니.. 조금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서 불편하 기는 해요.."
"그만 둘 생각은 없지요..? 일이 오늘 있기도 했다 보니 결정하기는 쉽지는 않겠지요?"
그게 나도 걱정이긴 하다..
내일부터 출근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퇴근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이렇게 했는데 내일은 언제 어디서 쳐들어올지 모르잖아..
"그런데 이 과장한테 아까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아.. 그냥.. 남자친구라고 이야기했어요"
아.. 그랬구나..
제일 핑개대기 쉬운 내용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내일 출근해 볼게요.."
"그래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연락 줘요 그리고 퇴근할 때도 전화 줘요"
".. 네.."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이 사람의 말이 너무 든든하고 위안이 되어서 바로 대답을 했다.
가정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걸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조금만.. 나쁜 년이 되어도 되는 걸까..?
"조심히 들어가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요.."
나의 약점이..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비밀 같은 이야기가..
정말 지켜질지.. 아니면 내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사람을 믿고 싶다.
내 말에 다른 말 없이 살짝 웃어 보이고 떠나갔다.
출근을 앞두고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어제 규진 씨 덕분에 많은 힘이 되었지만.. 그래도.. 걱정은 된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면서 힘을 길러왔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두려운가 보다.
"안녕하세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차갑고 딱딱한 나의 인사
어제와 똑같은 미지근한 환대..
하루 종일 걱정을 했음에도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인지 사람들이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뭘까.. 이번에는 어떻게 나를 이야기했을까..?
그때 처음 입사했을 때의 나도 모습이 떠올랐다.
그 힘들었던 남녀차별이 흔했던 시절 그리고 여자라고 온갖 무시와 조롱을 받으며 힘들게 공부를 마치고 취득한 자격증으로 어렵게 입사한 회사.. 그리고 빛날 줄 알았던 나의 미래는..
또다시 암흑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그날 이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과장도 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고 나도 마주칠 일을 만들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 함께라는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오히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게 더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끌어 앉고 살아가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박투어의 일정이 다가왔다.
[밤바리 가자~]
퇴근할 때 문득 밤바리 이야기가 나와서 대화창을 열어보았다.
[오늘 조금 일찍 끝날 거 같은데 간단바리 어때?]
[나는 내일 박투어 위해서 일찍 숙면할 예정]
[저도 쉴래요ㅋㅋㅋ]
음...
[저는 가능요]
[오~ 그럼 어디서 볼까요?]
[중간 어디쯤에서 커피나 한잔 하시죠?]
지난번 도와준 것도 고맙고.. 이상하게 이 사람이 나온다 하면 가고 싶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거 너무 잘 아는데.. 그래도 마음이.. 계속 간다..
나만 선 넘지 않고 잘 조절하면 문제가 없을 거 같다.
거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거 같은데 내가 지켜본 저 사람은 그냥 친절한 거 같다
[성 야경 좋다던데 딱 중간이고 괜찮겠지요?]
[그래요 주소 올려주면 거기로 갈게요]
[네 올려드릴게요~]
중간쯤으로 만날 곳을 정한 뒤 집으로 출발하였다.
"어..."
다행히 내가 일찍 도착해서 편의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바이크 한대가 천천히 들어왔다.
규진 씨였다. 난 천천히 일어나 살짝 앞으로 걸어 나가서 손을 흔들었다.
내 앞에 부드럽게 세우더니 헬멧을 벗고 한한 미소를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 미소가 문제였어.. 내가 금사빠인 건 아니야.. 이러니까 내가 흔들리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세상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
"일찍 도착했네요?"
"금방 왔어요.."
내 말에 살짝 웃더니 이내 커피 마실 거죠?라는 말과 함께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뭐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잘 몰라서 기다렸는데..
카페는 주로 바닐라라떼만 먹는 거 같고 편의점에는 그때그때 달라서 그냥 기다렸다.
그렇게다고 내 거만 사긴 그래서 규진 씨는 익숙하다는 듯 레쓰비를 꺼내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아..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뭔가 고맙다고 표현을 하고 싶어도..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게 익숙하지 않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마실거나 필요한 거를 사주는 걸로 지금까지 표현했는데..
그럴 기회도 주지 않아서.. 조금 난처하다..
"그런데.. 바이크가 바뀌셨네요?"
"아.. 네.. 방에 동생들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오늘 안 나올까 봐서"
"아.. 그러니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안 나오는데.. 이젠 따라가지도 못하겠어요"
"에이.. 서희씨면 충분히 쫓아올 수 있어요~아니다.. 아마 당분간은 저 보다 더 빠를걸요?"
"에이.. 거짓말요~"
"어차피 내일 박투어 가면 알걸요?"
그 말을 한 뒤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두근거린다..
"여기서 계속 있기는 힘든데 배 안 고파요?"
"아.. 조금 고프기는 해요"
그리고 보니 저녁도 안 먹고 바로 온 거구나..
"여기는 먹을게 딱히 없던데.."
"아.. 그럼 다른 데 갈까요?"
"올라올 때 보니까 다른 편의점 있던데.. 이동할래요?"
"아!.. 그래도 돼요~ 어차피 이 동네는 이 시간 되면 식당은 안 하니까요.."
동네가 작다 보니까 저녁에는 일찍 문을 닫아서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도시로 나갔다면 갈 곳은 많았을 텐데.. 갈 곳이 없어서 선택의 폭이 좁아졌다.
여기 편의점은 작아서인지 먹을게 딱히 없고 입구에는 그나마 큰 편의점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보려는 듯했다. 내일 또 움직여야 하다 보니 지금 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는 그렇고 야경만 살짝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지
"아.. 잠깐 정차할게요"
"네~"
"잠시만 기다려줘요"
먼저 앞서 가던 규진 씨가 바로 앞에 멈추었다.
그러더니 바이크에서 내려서 반대편 차선으로 옮기는 거 같았다.
"어..?"
"야경이 너무 이뻐서 찍어줄게요"
"아.."
뒤에 배경을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에 약간 부끄럽긴 했다.
이게 손가락으로 브이 하는 거는 반사신경인가 보다.
어색하고 부끄러운데도 이상하게 손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네..
"나중에 방에 올려줄게요.."
찍은 사진을 둘러보며 걸어오는 규진 씨
"아.. 그거.. 그냥 개인톡으로 보내주면 안 돼요..?"
"초상권 있으니 그럴까요?"
"네네~"
멀지 않은 편의점에 다시 자리를 잡고 이것저것 요기거리들을 들고 나왔다.
"잘 먹겠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나..?
왜 이렇게 맛있지..?
요 근래 밥을 잘 안 먹다 보니 그동안의 배고픔이 지금 몰렸나 보다
스윽-
그때 갑자기 입술로 따스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런데.."
"... 네..?"
"주혁이 하고는 말 편하게 하잖아요..?"
"아.. 네..."
"나하고도 편하게 지낼래요? 주혁이 보다 좀 더..?"
주혁오빠보다.. 더..?
그 말을 하는 규진 씨의 눈이 엄청나게 달콤하고 애틋함이 묻어났다.
"ㄱ... 그... 래도.. 돼요.."
"그래.. 그럼 오늘부터 말 편하게 한다?"
"아.. 네..!"
편하게 말을 놓으니까 더 부드럽고 달달해지는 기분이 든다.
뭔가 진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동생을 대하는 듯한 기분?
"내일 우리가 너희 동네로 넘어갈 거야~ 넘어갈 때 연락 줄 테니까 편하게 준비하고 천천히 나오면 돼"
"아.. 아니에요 저도 올라가면 되는데.."
"아니야 어차피 코스가 내려가는 길인데 네가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우리들도 한 번씩은 내려가야지"
"그래주면 고맙 기는 하지요~"
"아.. 그런데 남편분은 박투어 가고 그러는 거 뭐라고 안 해?"
아.. 남편...
"어.. 괜찮아요 서로 취미생활하는 거 존중해 줘서요.."
"아.. 그렇구나.."
그리고 어김업싱ㅇ
순간 움찔 하기는 했지만 왜 그 말을 하는데 턱을 괴고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는 건데..
저 웃음은 무슨 의미지..?
“왜 그런 표정 지어요?”
“내 표정이 어떤데?”
“그냥.. 왜 그렇게 웃는지 궁금해서요,,“
“음.. 그냥 좋아 보여서 서로의 취미를 존중해 주는 거”
“규진 씨는.. 아 말 편하게 하기로 했으니까.. 호칭은 어떻게 할까요?”
“승기나 주혁이 한테는 오빠라고 바로 불렀잖아? 나는 굳이 왜 물어봐 오빠라고 하면 되지”
“아.. 그럴게요.. 오빠는요?”
“응?”
“오빠는 아내분께서 어떠신지 궁금해서요.. “
“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내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난번 애기들 사진 올리는 거 보니 결혼한 지 오래된 거 같은데.. 벌써 서로에게 무관심해질 정도인 걸까..?
사생활을 계속 묻기도 그래서 적당히 멈추었다.
그때 우리가 앉아 있는 편의점 앞으로 차 한 대가 천천히 멈추더니 이내 아저씨 세 명이 내리고 편의점을 다녀오더니 담배를 하나씩 물면서 우리 바이크를 바라보며 수다를 시작하셨다.
이건 어디 브랜드니 몇 cc 같으니 자기들끼리 자기 말이 맞다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라떼는 말이야가 나오기 시작하였다.
젊을 때 한가닥 안 한 사람이 없던 시절..
너무 뻔한 이야기인지라 식상하기도 하지만 종종 그런 말들을 들을 때면 재미있기도 해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이런 내 모습을 규진오빠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이거 두 분 차이지요?”
그때 자기들끼리 몇 cc냐에서 논쟁을 하다가 결국 맞히지 못하더니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남들이 보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논쟁을 하고 있었구나..
“네 저희 차입니다”
“이거는 몇 cc라요?
“흰색은 1340이고 옆은 400입니다. “
규진오빠의 대답을 듣고는 또 내가 맞니 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고 있으셨다.
남자들은 저런 걸 맞추는 걸 많이 좋아하나 보다.. 진짜 어린애들처럼 보였다.
“어디서 오셨대요?”
“옆동네에서 왔어요 커피 한잔한다고요”
“어 맞네 맞아 옆동네 난바네 두 분 부부사이인가 봐요? “
아저씨들의 질문에 약간 당황하였으나 이성이랑 둘이서 바리 갈 때면 매번 받던 오해인지라 크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내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걸 대하는 규진오빠의 대처였다.
“그리 보이세요?”
라는 말과 함께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무리 옆동네 라지만.. 그래도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혹시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 일수도 있고.. 저렇게 장난쳐도 되는 거야?
뭔가 나만 예민한 걸까?
"보기 좋네~"
아..? 이게.. 이거..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규진오빠는 뭔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짓더니 아저씨들이 조심히 타라하고 가니까 인사했다..
"저.. 옆동네인데 괜히 오해 만드는 거 아니에요?"
"부부라는 거?"
"네.."
"오해받음 뭐 어때?"
뭐가 어떻기는.. 난처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