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람 보다 더 편해진 사람
"서희랑 결혼한 사람 좋겠네"
나랑 결혼한 사람... 과연 좋을까..?
난 내가 참 이기적이면서도 개인주의적인 거 같은데..
밖에서야 티가 안나도.. 같이 살면 참 힘들 텐데.. 좋으려나..?
뭔가.. 저 말에 공허함이 느껴지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왜지..? 지금까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내가 실수한 거야..?"
"아..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갑자기 기분이 달라진 적이 잘 없는데.. 나도 당황스러울 만큼 순간 기분이 울적 해져서 당황스러웠다.
요즘 여름타나..? 가을 탄다는 말은 들었어도 가을 탄다는 이야기는 생소한데..
그러고 보니 규진오빠 만나면서 요즘 기분이 자주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같다.
"진짜 내가 실수한 거 아니야?"
"아.. 아니에요 잠깐 다른 생각했어요"
".. 다음부터는 이런 장난 안 칠게 미안해"
"아.. 정말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히 내가 소심한 사람이 될까 봐서 얼른 미소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조금 편했는지 이내 다시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 때문에 시간 너무 잡아먹겠다 내일 박투어도 가야 하는데.. 이만 돌아갈까?"
"아.. 그럴까요?"
지나가는 아저씨들만 아니었음 기분이 그렇게 다운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내일 다시 볼 수 있으니... 까...?
나.. 설마 저 사람이랑 만나는 거 기대하는 거야?
이 정도로? 이 정도면.. 위험한 거 아닐까..?
난 거짓이지만 그래도 저 사람은 가정이 있고 아이들이 있는데..
이런 내 불필요한 걱정이 무색할 만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헬멧을 쓰는 규진오빠가 보였다.
이 감정.. 계속 이렇게 키워나가도 괜찮을까..?
"어머 서희 씨~"
집 근처 집결지인 라이더카페에 도착하자 헬멧도 벗기 전에 사장님이 달려 나왔다.
언제나 라이더들이 보면 엄청난 환대를 하시는 사장님..
그런데 이렇게 친한 사람이라도 차를 타고 오면.. 그렇게 환대를 안 해주신다.
뭔가 찐 라이더들에게만 향하는 영업용 미소?
"안녕하세요"
"오늘 어디 가요?"
"아.. 네.. 오빠들이랑 박투어 가기로 했어요~"
"아 그럼 더 오시겠네?"
"네네.. 도착하기 5분 전에 제가 미리 주문하려고요"
"오늘 비 온다는데 괜찮겠어요?"
"네.. 뭐 조금만 오다가 만다고 하니까 괜찮겠죠?"
오늘 비가 잡혀 있어서 걱정하기는 했으나 아침에 이 정도면 다들 바출한다고 해서 나도 바이크 타고 나와봤다. 아무래도 비가 오면 수막현상 때문에 위험하기도 해서 잠깐 비가 그쳤을 때 조심히 나왔다.
처음 비가 오는 경우보다 비가 오고 물이 고였을 때가 제일 위험한 시간이기 때문에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내 커피를 먼저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하나를 물고 도로를 바라보았다.
진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거 같은 분위기..
이대로.. 진행해도 괜찮은 거 맞겠지?
그래도.. 이제부터 1시간만 비가 오면 비는 그친다고 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비가 없다고 하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규진이 오빠에게 향했지만 애써 시선을 분산했다.
"오는 내내 보슬비 오더라~"
"그래요? 여기 안 오다가 갑자기 10분 전부터 오기 시작했어요~"
"서희는 비 맞고 왔어?"
"아니요~ 뽀송뽀송~ 저는 비 다 피해서 왔지요~"
"이야~"
나올 때는 괜찮았는데 10분 전부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는 내내 비를 맞고 왔나 보다 옷이 약간씩 젖어 있다.
라이딩재킷이라 해서 방수까지 되진 않아 약간 걱정되는 마음에 규진오빠를 바라보았다.
박투 어라 그런지 엄청 들뜬표정..
"비 맞았는데 괜찮아요?"
"응 내가 원래 비 오면 안 나오는데 규칙 하나 깼네"
그의 말에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너 나올 때도 비 왔어?"
"아니요 저는 괜찮았어요~"
"오~ 타이밍 잘 맞췄네~"
"그러게요 ㅎ"
어제부터도 들떴지만.. 지금은 더 들뜬다..
기대된다 이번 박투어.. 과연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박투 어라고 하기에는 코스가 짧았지만 내려오는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면서 다들 보슬비를 맞았다 보니 몸이 무거워졌다.
[여기서 한번 쉬었다가 갈까?]
[네~]
어느새 해는 기웃거리고 있었고 저녁식당을 30분 정도 남겨두고 우리는 편의점 앞에 주차를 했다.
엔진떨림에 비까지 맞아서인지 다들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오고 테이블에 하나 둘 앉기 시작했다.
목이 마르기는 하는데.. 식당도 얼마 남지 않았고.. 어떻게 해야 할까나..
"뭐 마실래요?"
"아니 괜찮아~"
"마시자~ 어차피 안 마셔도 엔빵이야 먹어~"
다들 안 먹으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규진이 오빠는 마실건지 같이 일어나 주었다.
나머지 두 명도 안 마시려고 하다가 어영부영 같이 마실 거를 고르러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주었다.
그래도..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아무것도 안 사는 것도 좀 아닌 거 같고..
화장실까지 빌려서 그런지 더 뭐라도 하나는 사야겠다 싶긴 했다.
"시하꺼.."
"아.."
능숙하게 내가 마시는 캔커피 하나를 꺼내더니 빙그레 웃으며 계산대로 이동했다.
괜히 따라 들어온 게 어색한 상황이 되어버린..
"안 힘들어?"
"저는 괜찮아요~ 이 정도야 뭐.."
시원한 커피를 한나 건네주며 다정하게 물어왔다.
평소보다는.. 거리가 짧아서 그런지 그렇게 힘든 건 못 느꼈지만.. 비를 맞아서 그런지 기진맥진 하긴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아 오는 내내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도 해주고..
"근데 왜 내가 계속 로드서요?"
"내 뒤에 오면 숨 못 쉴걸?"
생각해 보니 여기서 내가 제일 초보라이더 같은데 나를 길잡이로 세운게 궁금하긴 했는데..
주혁이 오빠라 똥꼬배기라 매연이 사람 얼굴로 다 날아와서 어쩔 수 없지 싶은데..
"나는 제일 뒤가 좋아.."
규진이 오빠는 은근.. 내 뒤만 따라오는 거 같은...
"잘하잖아~"
승기 오빠는 로드 서는 거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 같고..
진짜 여기서 나 말고는 없구나..
규진이 오빠가.... 서도 될 거 같긴 한데..
아.. 안되는구나.. 지난번 바다바리 때도 복귀하는 길에 빠지지 않게 텐션 업되는 바람에 산으로 갈 뻔했지..
나밖에 없구나.. 포기하자..
"왜 힘들어? 오빠가 서?"
"아니 안돼... 절대 안 돼.."
주혁이 오빠말에 강한 부정을 띄며 반대하는 규진이 오빠
진짜 매연은 절대 맡기 싫었나 보다..ㅋㅋ
내가 쏘아 올린 공에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냥.. 내가 할게요.. 뭐.. 그게 그리 어렵다고..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결국 내가 다시 로드를 서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식당에 도착하고 탈의를 하고 가만히 서 있길래 오빠들을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담배도 하나 필 겸
"주문하셨어요?"
"응 주혁이가 알아서 하는 거 같았어"
"그래요 어차피 저도 밀치회는 처음 먹어봐서 주문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
"그래.. 사진은 찍었어?"
"네~"
바이크를 타면서 새로운 곳도 많이 다니고 새로운 음식들도 많이 먹어보게 된 거 같다.
그동안은 먹던 것만 먹어왔고 갔던 곳만 가봤었는데..
"아.. 사진 보니까 1층에만 TV 있던 거 같던데 오빠 1층에서 주무실 거예요?"
"응 그러려고 너만 위에 올라가서 자면 돼~"
"아.. 위에 침대가 2개던데 제가 올라가긴 좀 그런데.."
"괜찮아 뭐 어쩌겠어~ 아님 마음에 드는 사람 데리고 올라가서 자도 되고 ~ 어차피 복층이라 뭔 일 있겠어?"
그렇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죠..
하지만,.. 불편해요.. 굳이 고르라 하면..
나도 모르고 속으로 생각하다 규진이 오빠를 바라보았다.
"응?"
"아.. 아뇨.."
다행히도 속마음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근데 정말 어떻게 자야 하는 거지..
처음에는 오빠들이 다 위에서 자고 난 아래층에서 잘 생각이었는데..
복층에 TV가 없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영 불편하면.. 나랑 같이 1층에서 자도 되고.."
걱정되는 마음에 담배만 피우고 있었는데 잔잔한 목소리로 내 귀를 뚫어버린 대화의 주인공은 이내 담배를 비벼 끄더니 식당 안으로 사라졌다.
1층에서 자라는 것도 아니고.. 나랑 같이.. 1층에서 자도 되고..?
지나친 듯 꺼낼 수 있는 말임에도 그 말에 왜 이리 두근거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야.. 저 사람한테 이런 마음 가지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