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심장이 미친 듯 뛰어도 되는 걸까..?
1층에 짐을 대충 정리해 두고 다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각자의 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듯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운데에서 나만 뭘 해야 하나 멀뚱멀뚱하게 서 있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옷 가져왔지?"
"아.. 네네 갈아입고 올게요~"
멀뚱멀뚱 서 있으니까 규진이 오빠가 말을 건네었다.
그래.. 옷부터 갈아입고 생각하자..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이동해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물도 따뜻하게 나오니 온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갑자기 엄청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라이딩재킷과 바지가 무거워서였는지 벗어던지자 더 가뿐한 느낌이었다.
몸이 축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
옷을 갈아입고 나와 발을 닦고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들자 상반신이 나체인 남자의 몸이 시선에 들어왔다.
순간 움찔하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런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낄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오랜만에 보는 남자의 나체라..
당황스럽긴 했다.
"난 고기 구우러 나갈게~ 안에서 준비해서 내보내줘~"
라며 옷을 입더니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규진이 오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나도 금세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옷을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베란다와 연결된 테라스 쪽으로 눈길이 갔다.
상상보다 넓은 어깨.. 문신 때문인지 허전하지 않았던.. 뭔가 가득 차 보였던 뒤태..
옷을 정리하고 테라스로 나갔다.
"혹시.. 도와 드릴 거 있어요..?"
"아.. 주혁이가 주는 거 받아 오면 될 거 같은데? 사장님이 바비큐는 이미 준비해 두셨네~"
"그래요? 챙겨서 나올게요~"
1층이라 그런지 테라스가 실외로 바로 연결이 되어 있었고 개인 바베큐장이 완비되어 있었다.
내가 찾고 예약한 곳이지만 나름 만족? 심지어 바다도 바로 보이고.. 편의점도 가깝고.. 딱 좋은 거 같다.
"오빠~ 밖에 가져갈 거 있어요?"
"응 채소랑 버섯.. 이것만 챙겨 나가서 정리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래요?"
주혁오빠도 능숙하게 고기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난 이렇게 놀러 나올 일이 많지 않은데 이 사람들은 많이 다녀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짐을 대충 받아서 나가서 하나하나 정리하였다.
"고기 제가 구울까요?"
"아니야~ 여자들은 이런데 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여자라..
"생물학적 성별덕에 호강을 누리네요 제가.."
"그래? ㅎ.."
내 말에 살짝 미소 지어 보이더니 다 구워진 고기 한 점을 들고는 밖으로 나갔다.
왜?.. 그런 행동이 궁금하면서도 그저 묵묵히 기다려 보았다.
"여기 고양이 있어~"
"아.. 여기 손님 많은가 봐요 고양이들 있는 거 보니까"
"그래?.. 근데 아직 사람손을 타거나 그러지는 않네 가까이 오지는 않아"
"그래요?"
규진이 오빠말에 출구 쪽의 바비큐를 피해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진짜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가 멀뚱멀뚱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와.. 귀엽다.."
"그렇지?"
귀여운데 살짝 옆으로 가길래 놓치지 않기 위해 좀 더 몸을 내밀었을 때 계단에 바비큐 기름이 있었는지 살짝 미끌해버렸다.
탁-!
"조심해야지.."
다행히 넘어지지 않게 잡아준 건 규진이 오빠였다.
"불도 조심하고 그러다 다쳐"
"아.. 죄송해요"
"나한테 뭐가 죄송해 다칠뻔한 너한테 미안해해야지"
"아.."
규진이 오빠가 잡은 팔이 하필.. 그곳과 가까운 곳이라 보니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소란스럽게 오버제스처를 하며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다시 고기를 굽는 규진 오빠뒤를 바라보면 잠깐이었지만 왼팔로 나의 오른쪽 팔을 잡으며 자기 쪽으로 당기며 가까워졌던 그 사람의 숨소리가 생각나 얼굴이 빨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기를 구워서일까..? 엄청나게 따뜻한 숨이 나의 목깃을 스치는 듯했다.
"저는.. 밖에 구경해도 돼요?"
"어? 아.. 응 밖에 조명 이쁘게 잘해놨더라 둘러보고 와~ 바닥 조심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말이 너무 따뜻하게 너무 좋았지만 그만큼 두려웠다.
이 사람의 친절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텐데.. 이 친절함을.. 오해하고 이용해도 되는 걸까..?
이런 나의 걱정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깡그리 사라졌다.
줄 조명이 이쁘게 장식되어 수많은 조명들이 빛나고 있었고.. 달빛에 비친 바다는 너무 아름답게 파도치고 있었다..
"우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밤바다가 이쁠 수가 있구나..
밤이라 거리감이 줄어들었지만 바다와 가까운지 파도소리가 들려올 정도였다.
바비큐 파티는 문제없이 잘 이루어졌고 혹여나 동물들이 사고를 칠까 봐 음식들만 깔끔하게 정리를 해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가볍게 맥주도 한잔해서 기분이 최고인 상태였다.
1층에서 둘러앉아 수다를 떨다 승기오빠가 문득 자러 간다며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어... 뭐지.. 이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넌 어디서 잘 건데?"
"나야 뭐 승기랑 같이 자지 뭐"
"그래 그럼 시하는?"
"저.. 는.. 오빠 두 명이 올라가면 전 아래에서 잘게요 오빠도 위로.."
"아.. 난 TV 없으면 못 자서 밑에서 잘게"
진짜.. 이렇게 둘이서 1층에서 자는 거야?
어제 한 장난이 진짜인 거야?
주혁 오빠는 나를 쳐다도 보지 않고 과감히 나를 버리고 위로 올라가 버렸다..
아니.. 그래 뭐.. 오빠랑 나랑도 같이 잔 적이 없고 그만큼 친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기 때문에 알게 된 사람한테 날 이렇게 가차 없이 버리고 간다고?
이건 아니잖아...
어색함에 애절하게 주혁오빠를 바라봤지만... 사라졌다.. 위로...
그때 규진 오빠는 이미 이부자리를 깔고 있었다.
"바닥에서 자는 거 안 불편하겠어?"
"아.. 저는 괜찮아요.."
"그럼.. 이 정도는..."
하더니 끝에 이부자리 하나 끝에 이부자리 하나 뭐 남북 분단국가도 아니고 엄청난 거리에 자리를 따로 펴주셨다. 뭔가 어색함에 긴장되었던 나는 허탈함에 웃음이 났다.
"응? 왜?"
"아.. 아니.. 이 정도로.. 거리 두는 게.. 맞나 싶어서요"
"아.. 그럼 붙어서 잘까?"
"아.. 아니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이불을 다시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가길래 급하게 그 행동을 저지했다.
그리고 그러다 포개진 손과 함께 나도 정지해 버렸다.
"걱정 마 오빠는 안전해"
말장난과 함께 살짝 웃더니 다시 이불을 원래대로 되돌려주었다.
괜히 그 말에 나만 부끄러워져서 급하게 내 이부자리에 등을 돌리고 앉았다.
"다들 바로 잘 거야?"
"아니 조금 더 놀다가 잘 건데?"
아마.. 금방 규진이 오빠 말은 귓속말로 조용하게 읊조리듯 한 말이라 아무리 복층이래도 저 오빠들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규진이 오빠가 테라스 쪽으로 나가길래 불렀다.
"어디 가요?"
"응 담배 피우러 같이 갈래?"
그 말에 나도 겉옷을 입고 따라나섰다
"저도 같이 갈래요.."
갑자기 궁금한 게 생기기도 해서 오늘 꼭 물어보고 싶었다.
따뜻하게 입고 테라스로 나오니 조명과 함께 바다가 너무 이쁘게 보였다.
아까 바라본 그 바다가 좀 더 깊고 우아해 보였다.
캠핑 체어가 준비되어 있어서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멍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잠깐 고개를 들어 규진오빠를 바라보았다.
"왜.. 요..?"
"나랑 같은 취미가 있는 거 같아서?"
"응? 어떤 거요?"
"나도 바다나 야경 보면서 멍 때리는 거 좋아하거든"
"아.. 저도 좋아해요.."
좋아한다기보다는.. 모르겠다.. 일단 난 T라서 그런 감성 때문은 아닌 거 같은데..
그저 바다가 이뻐서.. 달이 이뻐서.. 바다에 비치는 달의 모습이 이뻐서..
한 동안은 저 모습을 눈에 담아 두고 싶긴 해서..
물어볼까..? 이제..?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이야기해"
"그.. 오빠가 장난기가 많은 건 알겠는데.. 저한테만 그렇게 장난치는 거예요? 아님 원래 그래요?"
"응?"
"아까처럼 안전하다느니 부부같이 보이냐느니 그런 장난 이요"
"아.."
내 말에 생각에 빠지는 듯 보였다.
"딱히 너한테만 그러는 거 같지는 않아 원래 남자들 보다는 여자들이 더 편해서 친하게 지내는 편이거든.."
"아.."
그래.. 특혜는 아니었어.. 그저 원래 여자사람들에게 격 없이 잘 친해지는 사람이었어..
다행이다.. 내가 오해하기 전에 사실을 알 수 있어서..
"혹시 오해하거나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 아무래도 유부녀면 내가 조심했어야 하는 거 같네"
"아니에요.. 기분 상한 건 없고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였어요"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약간의 서운함과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왠지 모를 쓸쓸함이 몰려왔다.
"이제 좀 추운데 안 들어가?"
"저는 조금만 더 보고 들어갈게요 먼저 들어가세요"
"그래 빨리 들어와"
내가 유부남한테.. 그것도 이쁜 딸이 둘이나 있는 남자한테 뭘 바란 거야..
그러면 안 되잖아.. 나도 참 한심하다..
내 인생에 불륜녀 딱지 붙을 뻔했네..
상대라도 제정신이라서 다행이다..
이제 새벽 4시가 거진 다 되어 가고 있다..
한 시간에 한 번은 잠에서 깨는 듯했고.. 그때마다 규진이 오빠도 잠을 못 자는 듯 보였다.
잠자리 많이 가린다던데 정말인가 보다..
나는 한번 자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규진이 오빠 뒤척거림이 너무 신경이 쓰여서 자꾸 눈이 떠졌다.
"너도 잘 못 자나 봐?"
"그러네요.. 오빠는 왜 그리 못 자요?"
"나는 원래 잘 못 자 그냥 안 잔다 생각하고 있어"
"그래도.. 내일 복귀할 때 많이 힘들 텐데.."
"괜찮아..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서.. 너라도 좀 편하게 자"
그러고 싶은데 저도 오늘은 텄어요..
원래 저 엄청 잘 자요 한번 가면 10시간 심지어 20시간도 자고 그런 애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잠을 못 자겠어요.. 오빠가 있어서 그런가 봐요.. 아무래도 단념은 하지만 마음은 자꾸 쓰여서..
"오빠도 조금이라도 자요.."
"알았어"
마지막 담배를 피우고 자리에 누웠다.
이제는.. 나도 더 이상 피곤해서 눈을 못 뜰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기와 함께 먹은 맥주의 힘일까..
아님.. 계속 선잠을 자서일까..
온몸이 뻐근해 기지개를 켜며 팔을 뻗었는데 손끝에 무언가가 걸리적거렸다.
그리고 곧 그게 따뜻하게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더듬더듬거리며 엄지와 중지로 그것을 잡았다.
그리고 이내 부드러운 촉감에 나도 모르게 만지작 거리며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