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이 변한다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
따스한 온기에 나도 모르게 실눈이 떠졌다..
그리고 내 팔을 따라 손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손이다...'
손이 있었다.. 낯설지만 따뜻하고 익숙한 느낌이 나는..
한참을 바라보면 그 손끝을 엄지와 중지로 만지작 거렸다.
그러다 이 손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해 고개를 들어보니 나의 심장을 뛰게 했던 규진오빠의 평온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눈은 다행이고 곤이 잠이 든 것처럼 감겨 있었고 그런 그의 얼굴을 조목조목 뜯어보았다.
이쁘다.. 잘생겼다.. 그리고.. 너무 아기 같이 조곤조곤 잠이 들어있다.
다행이다.. 잠이 들어서.. 이게 꿈이라면 눈을 떠 나를 안아주었으면.. 이게 꿈이 아니라면 그렇게 가만히 있어주길.. 그의 평온한 표정에 또다시 잠이 쏟아져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는 몰랐다.. 그가 잠이 든 것이 아닌.. 내가 놀라 손을 거둬가 버릴까 봐서 잠이 든 척했다는 것을..
꿈같던 박투어가 끝이 났다..
내일부터 출근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 꿈은 강렬했다.
아직도 그 사람의 손가락을 만지던 내 손에.. 그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듯 화끈거렸다.
그리고 그때 생각만 하면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지는 내 모습이 이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영상 고마워~]
박투어의 꿈을 잊고 싶지 않았을까.. 난 박투어 때 찍은 영상들을 열심히 편집해서 올려주었다.
이제 진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면 모를까 결혼까지 한.. 심지어 아빠인 사람에게 끌리면.. 어떻게 하자는 건지..
내 시선을 사로잡던 그 사람의 영상만 빤히 바라보았다.
나 혼자만… 좋아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그저 티를 내지 않고.. 좋아만 하는 거라면.. 이게 오히려 내 삶에 활력이 될 수도 있잖아..?
그 사람만 알지 못하게..
라는 멍청한 생각과 결정이 나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그쪽 지역에서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말이지.. 그것도 꼭 여자 검사원이었으면 좋겠다는데 우리 쪽 지역에서는 자네뿐이라.. 다들 자네를 추천하기도 하고 서희 씨도 이미 여기 사람들하고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다 보니.. 차라리 그게 더 좋지 않겠어? “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제가 문제를 만든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잘잘못 따져서 좋을게 뭐가 있어~”
“아니… 일단.. 어디인가요? “
난 한숨과 함께 일단 어디로 전출을 가라는지 알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조금 위에기는 한데.. 일단 서희 씨 집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이기는 해”
라며 위치를 보여주는데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 강제 전출인데.. 전출지가 마음에 들었다..
오빠들이 사는 동네였다..
안 그래도 바리갈 때마다 거리가 멀어서 매번 만나기도 힘들고 코스 정하기도 그랬는데..
“일단.. 조금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은 소식 주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웬만하면 이번 주 안으로 결정 부탁해 “
이사장실을 나오면서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이대로 강제전출 가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여길 계속 다니는 건 싫은데.. 가면 좋은데..
그쪽이 물가도 좀 저렴하고.. 여기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서 생활하기 좋을 거 같긴 한데..
실보다 득이 많다면.. 가야 하는 거겠지?
”서희 씨 전출 이야기 있던데..? “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하며 일을 하는데 그래도 중간중간 인사하며 지내던 사무실 언니께서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러게요.. 갑자기 이야기 들었어요..”
“나랑 커피 한잔 할래?”
언니 말에 뒤를 돌아 동료들을 바라보자 다녀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적한 야외 휴게실에 도착하니 언니가 시원한 커피 한잔을 건네주었다.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오지랖일 수도 있고.. 서희 씨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네.. 괜찮아요 이야기하세요.. “
“나는 서희 씨가 거기로 갔으면 좋겠어..”
그 말에 난 언니를 빤히 바라보았다.
“솔직히.. 나도 이번 달까지만 하고 여기 그만둘 건데.. 여긴 아닌 거 같아.. 사무실에서도 시하 씨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이곳 사람들.. 아닌 거 같아..”
그래…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는데 이 정도일 거라는 생각 못한 것도 아니긴 한데..
왜 이제 와서 내가 나약해지는 걸까.. 그리고 그런 내가 너무 싫어서.. 고작 이 정도도 못 버틴다는 게 너무 싫어서..
그거 하나 때문에.. 버틴 건데..
“저도.. 알고는 있는데..”
“아마.. 서희 씨나 나나 비슷한 이유일 거 같은데.. 나도 검사원이 되고 싶어서 다 준비하고.. 처음에는 검사원으로 이곳에 왔었어”
“언니도요?”
“응.. 근데 아니더라.. 현장은.. 여자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나 봐.. 너무 당연하고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성희롱들과 추행이.. 너무 힘들더라.. 나 나름 단념하고 물러난 게 지금 이 자리인데.. 여기마저도.. 너무 힘들더라..”
“아…”
“내가 이미 겪어봤으니까 난 서희 씨 마음 백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시간 지나면 그 고집..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더라.. 결국 언제고 그럴 줄 알았다는 시선이.. 나를 둘러싸더라..”
“언니는… 어디로 가실 생각이에요?”
“난 그냥.. 애 아빠도 그렇고 이제 집 근처에서 카페 하나 작은 거 하래… 오히려 이젠 그렇게 살아도 큰 문제없을 거 같기도 하고”
그만둔다는 건.. 이직한다는 건 패배자이자.. 낙오자로 찍혀서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하고 힘들거라 생각했는데..
왜 언니의 표정에는 후련함과 행복함이 보일까..?
그렇게 처음으로 나에게 조언을 해준 언니와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한 동안 생각에 잠겨져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좀 더 가벼워졌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패배자일수도 낙오자일수도 있지만..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준다는 거니까..
이직 때문에 한 주가 빨리 지나간 거 같다..
이렇게 오래 까지 생각할 마음은 없었는데…
그래도.. 처음 있는 일이라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한 거 같다.
“전출 가겠습니다”
“그래?? 역시 우리 서희 씨!!”
내 말에 이사장은 엄청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들이 좋으라고 한 걱정 아니니까.. 너무 좋아하지는 마..
뭔가.. 스펙터클하게 사이다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나 하나만 생각하자 싶었다.
일단 내 마음만 편하다면.. 주변에서 무슨 생각을 하든.. 나하나만 생가하자..
“잘 생각했어..”
“제가 잘하고 있는 게 맞겠지요? “
내 물음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서희 요즘에 만나는 사람 있어? “
“네?”
언니 말에 난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아.. 만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얼버무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서희 씨한테 좋은 사람인가 봐”
좋은 사람… 이죠.. 충분히 좋은 사람..
“표정 보니까.. 아직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주춤하는 듯 보이는데 가끔 솔직하게 다가가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일 거야 내 눈에는 서희 씨 참 괜찮은 사람이거든.. 서희 씨 힘들게 하는 그 짐 충분히 다른 사람하고 나눠서 가진다고 해서 문제는 없어”
저도 그러고 싶은데.. 제가 마음에 담으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있어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그럼 이사는 언제 오는 거야?]
[아직 집도 못 구했어.. 집부터 보러 가야겠는데?]
[같이 보러 가주리?]
[에이~ 아냐 괜찮아 혼자서 보러 갈 수 있어]
[원래 집 보러 갈 때 혼자 가면 좀 그래 같이 가 줄게]
[그런가.. 그럼 오빠 시간 괜찮을 때 이야기 해줘 이주 뒤부터 정식 출근이라 아직 여유로워 여기 짐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그래]
[아.. 그리고.. 다른 오빠들 한테는.. 아직 이야기하지 말아 줘]
[왜?]
[아니.. 그냥..]
[그래 그럼]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결국 주혁이 오빠에게는 이야기했다.
이주뒤면 이제 이곳도 끝이구나.. 정이 많이 들긴 했는데.. 그래도 친한 사람은 딱히 없다 보니까 그래도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는 거 같다.
갑자기 찾아온 기회인데.. 다른 마음으로 생각하면 좋은 기회 같아..
퇴사와 동시에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오빠네들 동네 가서 같이 집도 보고 이것저것 많이 알아도 봤다.
출근 시간대에는 어디가 길이 막히는지도 알아보고 어디가 좋을지도 보고
나름 그래도 오빠들 동네가 여자 혼자 살기에는 크게 나쁠 거 같진 않았다.
“이제 진짜 이 동네 사람이네~ 바리 갈 때 집결지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겠어~”
“그러네~ 이제 슬 시즌이 마무리되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네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그런가.. 한 달 정도?”
“넌 어차피 오프 없이 쭉 달릴 거 아냐?”
“모르겠네.. 요새는 나도 겨울에 타기 추워서.. 오프 할까 싶긴 한데..”
“네가??
“나도 사람이거든?”
“에이~ 아무도 안 믿어 ㅋㅋ 한시적 오프 아니야? 평일에는 일해야 해서 안 타고 주말에 타고! ㅋㅋㅋ“
드디어 이사를 다 했다.
혼자 하기는 버거워서 주혁이 오빠가 와서 도와줬는데 안 도와줬음 혼자서 엄청 힘들었을 거 같다.
이사를 하니까 뭔가.. 되게 좋은 일들만 가득할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집들이는 언제쯤 할 거야?”
“음.. 정리되는 대로 해볼까 해요 ㅎ 근데 적응 먼저 해야 해서 빨리는 못할 거 같아요 “
“적응이야 뭐 우리들이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말고”
조금 귀찮을 만큼 말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사람
[다들 뭐 함?]
[그냥 있지요~]
[오랜만에 밤바리? 콜?]
남은 짐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단톡에서 규진이 오빠의 부름이 들려왔다.
음.. 오랜만에 밤바리라..
일주일 동안 못 타기는 했지..
“오빠 바리 갈래? 규진이 오빠가 가자는데?”
“그래? 오랜만에 출동?”
“그러자~ 나도 못 타서 조금 아쉽기는 하네”
“그래~”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오빠도 잘 지냈지요?”
집결지에 도착하니 규진이 오빠가 제일 일찍 도착해 있었다
익숙한 듯 오빠 바이크 옆에 주차를 하고 규진이 오빠 곁으로 다가갔다.
“여기”
다정하게 나에게 캔커피 하나를 내밀어 주었다.
“우와.. 고마워요 ㅎ”
이런 소소한 배려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