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ng‘ 아래 깔려버린 나의 ‘being’

균형이 무너져 버린 삶

by 기민
할 일은 많은데 하고 싶지는 않은데 또 아무것도 안 하면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는, 사면초가


라고 인스타 스토리에 업로드했더니, 곧이어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서 ‘너무 공감’한다는 메시지들이 왔다.

최근에 이런 강력하게 공감한다는 신호를 목격한 것이 오랜만이라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도파민, 목적의식, 효율, 욕망…?

무엇이 우리의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는 걸까.


누군가의 릴스에서 ‘Doing’과 ’Being’에 대해서 언급한 걸 보고 한참을 봤던 게 생각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쇼츠나 릴스 보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급기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뇌는 자극이 없는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되었고, 보상 심리는 점점 더 강해진다.


결국에는 삶에서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헛헛함이 자리한다. ‘Being’, 존재하는 방법에 대해 잊은 나의 증상.


불은 무언가를 태워 흙이 되고, 흙은 금을 품어 온전하게 한다. 금은 물을 담아 맑게 하고, 물은 나무를 키운다. 그리고 나무는 다시 불을 키운다.

음양과 오행. 동양 철학에서 다루는 이 개념은 우주는 순환하고 있고, 어떤 한 곳에서 막히거나 하나만을 고집해서는 잘 순환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통하면 건강하고, 불통하면 병이 난다는 게 동양 철학의 기본 개념이다.

이 흐름을 자신의 사주에 빗대어 설명하면 내가 존재(비겁)하고, 자연스레 재밌는 것을 찾고(식상), 그것을 함께 할 사람들과 관계(재성)하고, 그걸 잘하기 위한 틀, 규칙을 만들고(관성), 마침내 깨달음(인성)을 얻는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나의 존재, 내가 존재하는 시간을 감각하는데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는 것.


멍 때리고,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영상을 보지 않고 맛을 느끼고, 길을 걸으며 바람과 온도를 느끼고, 눈을 감고 나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어떤 의도를 가지지 않고, 무위 하는 것.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을 그렇게 두면 돈이 돌지 않는다. 반대로 그렇게 두지 않고 들들 볶아 돈을 번 사람들을 보게 되면 너도 나도 그러고 싶다.

존재하지 않고, 그저 목적만 남는다면 우리의 영혼이 있어야 할 곳을 잃는 것 아닐까.


‘Doing’은 오로지 ‘Being’을 위해서 행해져야 한다. 존재가 사라져서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돌아오는데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내게 끊임없이 노크한다.

‘툭툭, 툭-’

생각에서 벗어나 ‘여기’로 돌아오라고, 현재에 머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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