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나이테는 그리움으로 새긴다

응답하라 1998

by 기민

어젯밤 동네 이웃과 맥주 한잔을 마셨다.

40대 후반, 그리고 20대 중반의 음악꾼, 그리고 30대 후반의 나.


똑 단발에 캡을 쓰고 있는 20대 친구에게 ‘나애리’ 닮았다,라는 말을 건네었는데 (얼마 전 영화관에서 본 ‘달려라 하니’ 리메이크 작의 연상작용으로..?)

그걸 시작으로 80년, 90년, 2000년 대 유행했던 만화 영화 이야기부터 게임, 핸드폰, 컴퓨터까지 별의별 이야기를 나눴다.


몇 십 년 만에 꺼낸 이야기도 아니다, 시시콜콜하게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만나면 늘어놓는 스테디셀러의 넋두리.


둘 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고, 나도 왕년(?)에 춤을 좀 췄던 터라 신나게 테이프 시대의 일화들이 펼쳐졌다.

테이프가 두 개 들어가는 고급(?) 카세트를 가진 친구에게 붙어 테이프를 복사하던 일화부터 춤추기 위해 음악을 편집하는 과정까지.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음악을 자르고 붙이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가위와 스카치테이프로 똑같이 편집을 했다.


도구는 바뀌었지만, 원리나 내용이 가지는 형식은 바뀌지 않았다. 필름으로 영화를 찍던 그 당시 편집도 마찬가지였고, 이어야 하는 것은 잘라서 붙이고,

사이에 뭔가 다른 것이 들어가야 한다면 잘라서 그 사이에 다른 것을 덧씌우는 것.


친구와 부모님 몰래 통화하기 위해서 ‘신호음 두 번 울리면 끊어. 그럼 내가 다시 걸게!’ 라던지,

‘누구야~ 놀자~’, 창문에 돌 던지기, 사정이 생겨 오지 못하는 친구를 한 없이 기다리던 시내 유명한 스폿.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가 49세였다는 것과 함께 이야길 나누던 형의 나이가 비슷하다는 데에 생각이 번졌다.

밀레니엄이다, 스마트 폰이다, AI시대다 하면서 세상이 송두리째 바뀐다고 늘 이야기해오지만,

내게 남아있는 것은 그리운 시절과 그리운 사람인 것이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늘 스무 살 언저리에 머물러 해를 헤아리지 않는 나의 영혼이 뒤돌아 펼쳐진 아찔한 거리와 광활함에 놀라곤 한다.


시대는 변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안다.

도구는 700만 년 전부터(그 속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변화해 왔다.

그것이 발전인지, 쇠퇴인지, 재앙인지는 먼 훗날 결과로 입증될 테지만 그 도구를 쥔 사람은 늘 무언가 그리워했을 것이다.


맥주 한잔에 그 긴 세월을 훑어볼 수 있다는 게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도 언젠가 그리워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나를 느끼고, 응원한다.


나의 영혼은 찬찬히 흔적을 남기고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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