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게 뭔데
얼마 전 친구와 대화 중에 S의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평소 S와 내가 비슷한 점이 참 많다는 생각을 해왔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그 와중에 자유를 외치는 여행가 같은 느낌이랄까.(내 삶을 이렇게 포장한다는 게 자의식 과잉 아닌가 싶다.)
여행을 좋아했고, 어떤 준비된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삶의 방식을 선택했고, 남들과는 다르게 살고자 했다.
물론 지금은 남들과 다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릴 땐 반골 기질이랄까 응당해야 하는 일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었으니까.
그런데 친구의 말이 나와 S는 전혀 다른 느낌이란다. 친구가 느끼기에 나는 내 삶을 하나하나 선택하고 나아가는 느낌이지만, S는 마지못해 선택하고 떠밀려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약간은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에 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S는 일찍이 워킹비자로 호주에서 1년 이상 시간을 보낸 후 터키에서 가이드를 하며 몇 년을 살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은 살 곳이 못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 후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아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은 S는 늘 뭔가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불평불만과 투정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 선택은 아직도 도전적이고 진취적인데도 누군가에게는 떠밀려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나는 어떨까, 솔직히 더 멋진 말로 나를 포장하고 싶지만 나는 단지 ‘대가리 꽃밭’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볼뿐이다.
때에 따라서 알 수 없는 부정의 감정에 빠지기도 하지만(누구나 그렇듯) 결국 받아들이고 꽃밭을 뛰놀게 된다.(웰컴투 동막골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리고 고백하자면 결혼을 앞두고 나는 근거 없는 부정의 감정에 빠져들어 있었고, 비로소 오늘 아침 꽃밭을 밟았다.
부정적인 생각이 안개처럼 들어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체력이 소모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고민해도 알 수 없는 미래.
이제 벗어날 때가 되어서 그런 꿈을 꾼 것인지, 그런 꿈을 꾸어서 벗어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기묘한 꿈을 꾸었다.
친한 친구 둘이 동시에 아이를 낳아서 6개월쯤 키웠을 때,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내가 그들을 신격화하며 칭찬을 쏟아 내는 꿈이었는데,
‘이게 가능할지 몰랐다.’,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게 정말 대단하다.’ 같은 무슨 맥락인지도 모를 칭찬을 뱉는 내게, 그들은 하면 된다며, 너도 할 수 있다고.
결혼과 육아에 대한 압박이 있었을까?(혼자서 어디까지 상상한 걸까, 나는.)
하지만 이 꿈이 기묘한 이유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했고, 꿈은 대다수 기억에서 휘발됐지만 그 감정이 남아 내 마음을 바꿨다는 점이다.
이 변화는 작다.
이런 작은 요동이 내 삶의 전반적인 사건과 상황을 바꾸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내 태도를 바꿀 것이며, 그것은 내가 내 삶을 능동적으로 살아 낼 전조라는 것을 나는 안다.
결혼에 관하여 어떤 두려움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파헤치는 것은 사실 무의미하다,.
두려움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본디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감정이고, 무엇을 몰랐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무지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히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
그것은 현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현 상태를 변화시켰다.
어쩔 수 없이 길을 터덜 터덜 걷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경이를 맛보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자의 태도다. 낯선 환경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그것에 소모되는 나를 기쁘게 받아들인다.
여행의 목적은 그것이니까.
그리고 삶은 여행이니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이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다면, 오늘이 아닐까. 삶의 방식이나 스타일이 죽을 때까지 유지될 수는 없다.
나는 언제까지고 개인의 자유와 탐험 누리며 살 수 없다. 내 인식과 주변 사람들이 달라짐에 따라 나도 언젠가는 후반전의 휘슬을 불어야 한다.
적정한 때가 있다면 마흔을 앞둔 지금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흔이라는 숫자, 10년의 연애 같은 딱 맞아떨어지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계절처럼 서서히 때를 맞춘다. ‘툭’하고 열매가 떨어질 때 갑자기 가을이 온 것은 아니니까.
오늘 진정으로 나 자신과 미래의 아내에게 축하를 건넬 수 있게 됐다.
결혼 축하해.
(아직 먼 여정이 남았고, 할 일은 태산이라는 것은 안 비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