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나의 호위무사

by 달빛검객

대금을 배운지 어느듯 7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거문고였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거문고를 좋아하는데도 대금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 째가 대금은 휴대하기가 간편하다는 것이다.

거문고는 무겁기도 하지만 들고 다닐 때는 조심 조심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대금은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는데다가 등에 멋지게 매고 다닐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두 번째 이유는 거문고는 악기를 연주하기 전에 반드시 조율을 해야하고 심지어 연주 중에도 줄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율을 해가며 연주해야 하는데 나로서는 그런 부분이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런데, 대금은 조율할 필요가 없다. 아무 때나 불고 싶을 때 꺼내서 불어도 음정이 바뀌지 않는다. 물론 제대로 불었을 때 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죽도처럼 대나무로 만들어 있어 친근감이 간다. 게다가 정악 대금은 길이와 무게가 거의 목검과 비슷해서 대금을 불다가 갑자기 칼을 휘두르고 싶을 때 딱 좋다. 때로는 나의 호위무사가 되기도 한다. 나 홀로 인적이 드문 산행을 할 때 더없이 든든하다. 물론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게 최고의 호신술이지만 백만분의 일의 경우가 올 경우는 분명코 나를 지켜 줄 수 있는 무기로서의 변신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대금을 배우고 싶었고 결국은 3년 동안 개인교습을 받았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재미로 조금씩 배워 가고 있는 중이다.

대금을 불기 위해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것은

잘 부는 법이 아니라, 숨을 잘 쉬는 법이다.

호흡이 약하면 대금을 불기가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금 배우기를 겁내고 어려워 한다. 기본 음정을 내는데 한 달 정도 걸리는데 이걸 극복하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용기를 내서 대금을 시작했다면 우선 마음을 차분히 가라 앉혀야 한다.급한 마음으로는 오히려 소리가 나지 않고,

흐트러진 호흡으로는 음이 끊기게 마련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호흡도 깊어진다. 들뜬 마음은 호흡을 들뜨게 만들고, 급한 마음은 호흡을 길게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대금의 수련은 맨 처음 두 세달이 가장 힘들 수 있다.

소리를 차분히 길게 낼 수 있어야 아름다운 노래를 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간단한 동요조차도 호흡이 짧으면 연주할 수가 없다.

아마도 모든 처음이 다 그러할 것이다. 검도도 호구(보호장비)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두 세달이 걸리는데, 첫 두어달 동안 칼이 움직이는 동선을 몸에 익힌다. 혼자서 거울을 보며 같은 동작을 무수히 반복해야 호구를 착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두어달 동안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데는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무엇을 배우든지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어 익숙해 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처음 두어달을 잘 견뎌 낸 사람들은 드디어 호구를 쓰고 대련의 즐거움을 맛볼 수가 있다.

대금도 두 달만 지나면, 짧게는 한 달만 지나면 반달이나 섬집아기를 불 게 된다.

나 역시 그런 날들이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는 시간,

음이 갈라지는 날들,

아무리 불어도 마음처럼 울리지 않는 순간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배웠다.

참는 법이 아니라, 버티는 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법을!

대금은 나에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울릴 수 없다!’고 가르쳤다.

검도가 그렇듯이 대금 역시 음악 수련이면서 동시에 삶의 훈련이었다.


예전에는 자주 나홀로 산행을 하곤 했었다.

호젓한 산길을 걸을 때,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었다. ‘죽도라도 들고 왔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죽도를 들고 등산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웃겼다. 그 때, 단단한 대금 한 자루만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을 대신 싸워줄 수 있는 무기로서 대금은 든든해 보였다.

지금은 예전만큼 산행을 하진 않지만 반드시 대금을 들고 간다. 산길을 걷다가 잠깐 쉬어갈 때는 한 곡씩 불기도 하고 한 번씩 휘두르기도 한다.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버스킹을 멋들어지게 할 수 있는 실력이 안되지만 호젓한 곳에 혼자 앉아서 불고 있으면 박수를 쳐주는 사람도 있다. 몇 년 전 인도여행을 할 때도 강가에 앉아서 대금을 불고 있었는데 인디언플룻을 든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서 신나게 플롯을 불어주어 바로 친구가 된 적도 있다.

인생에서 그 무엇이건 듬직하게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대금은 어렵게 얻은 나의 호위무사이자 이제는 항상 내 곁에 머무는 벗이 되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