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세운다는 것은 마음을 바르게 하는 일이다.
20대 초반, 검도와 서예를 같은 시기에 시작을 했다.
문무(文武)를 겸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예를 처음 배울 때는 줄긋기부터 시작한다.
가로를 길게 그은 다음은 세로를 길게 그린다.
아니, 쓴다!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림과는 다르게
붓글씨는 몸의 자세와 붓의 자세를 바르게 해야만 한다.
요즘은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있는데,
캘리그라피는 그래서 그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붓글씨는 ‘바름’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나는
‘잘 쓰는 법’을 먼저 알고 싶었다.
획이 흔들리지 않는 법, 남들보다 단정한 글씨를 쓰는 법 말이다.
하지만 붓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먹을 덜 갈거나 먹물을 많이 찍으면 종이 위에서 글씨가 번졌고,
먹물이 되거나 덜 묻히면 붓끝이 갈라졌다.
붓을 종이 위에 힘으로 너무 눌러도 너무 가볍게 지나가도
글씨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붓글씨는 글씨를 쓰는 기술을 익히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은 문방구점에서 갈아둔 먹물을 팔기도 하고, 먹을 벼루 위에서 돌려주는 기계까지 있다.
그러나, 진지하게 서도(書道)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직접 먹을 쥐고 긴 시간동안 벼루를 문지르고 있다. 먹을 너무 꽉 쥐지도 않고, 벼루에 너무 힘껏 문지르지도 않고, 조금씩 물을 부어가며 천천히 부드럽게 먹을 간다.
바른 글씨를 쓰기 위해서 마음을 먼저 다스리는 것이다.
천천히 먹을 갈면서 나자신을 바라본다.
빨리 글씨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면 먹을 쥔 손이 빨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붓을 잡기도 전에 몸이 먼저 지쳐버리고 농도가 옅은 먹을 화선지에 올리는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다.
충분히 먹을 갈아서 드디어 화선지에 깔끔한 한 획이 그으질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 글자를 쓰게 되면 나의 미흡한 점이 다시 여실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한 글자를 쓰는 동안 호흡이 흐트러지면 곧바로 획에서 드러난다.
똑바로 내려 긋지 못한 한 획은 어지러운 나의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서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게 한다.
획 하나에 호흡이 담기고,
먹의 농담에 그날의 상태가 스며든다.
나는 글씨를 쓰다가 자주 멈췄다.
‘왜 이렇게 급할까?’
‘왜 오늘은 이렇게 흔들릴까?’
붓은 늘 조용히 묻고 있었다.
서예는 속도를 허락하지 않는다.
빨리 쓰면 글씨가 무너지고, 앞뒤, 좌우의 글씨와 맞추지 않으면
전체의 밸런스가 깨져서 아름답지 않다.
한 획, 한 글자가 모여서 시가 되고, 글이 되어 작품이 탄생한다.
붓글씨를 처음 배울 때는 옛날의 유명했던 서예가의 글씨체를 따라쓴다.
한문서예로는 구양순체, 안진경체가 대표적이고,
한글 서예로는 꽃들 이미경체가 유명하다.
그분들의 글씨체를 오랜 시간동안 흉내 냈었다.
모든 창작의 근본은 모방이라는 말이 있지만,
정말 긴 시간 동안 따라쓰기를 했지만 결코 대가들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서예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흉내내기를 그만 두었다.
대가들의 교본은 저 멀리 던져버린지 오래다.
흉내 내기는 붓글씨를 쓰는데 싫증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은 문장에 있는 것이지 단순히 글자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히 글씨를 흉내 내는 것에 문(文)은 없었다.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찾아서
나만의 획으로 글씨를 쓰고 있다.
글씨는 비록, 서툴고 볼품이 없을지라도
쓰는 재미가 있고, 문장을 음미하는 희열을 찾았다.
몸을 바로 세우고, 천천히 먹을 갈고, 문장을 읽은 후
적당히 먹물을 묻힌 붓을 하얀 화선지로 옮긴다.
우리는 누구나 가끔씩 남의 흉내를 내면서 살곤한다.
남의 흉내를 낼 필요도 있긴하다.
잘 되는 사람들을 벤치마킹해서 잘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글씨도 삶도 남의 흉내만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결국 남는 것은 자기만의 글씨고, 자기만의 삶이다.
누가 보더라도 내 글씨인 것을 알 수 있고,
나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삶이 진짜 삶이다.
서예는
또한 내게 비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여백이 있어야 글자가 숨쉬듯,
삶에도 여백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든 시간을 채우려 할 때,
마음은 가장 먼저 메마른다.
붓글씨를 쓰는 태도는 나의 삶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완벽하려 하지 말자.
다만, 바르게 세우자.
검도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게 아니라,
상대에게 내 머리를, 손목을, 허리를 내어 줄지언정 바른 자세를 유지하자.
세상에 절대 강자는 없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듯이 고수 위에 고수가 있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 자신이 되기로 했다.
검도계의 절대 고수가 되기보다 바른 검도로 나를 똑바로 세우기로 결심했었다.
바른자세로 고요히 앉아서
한 글자, 한 글자를 쓰는 동안
생각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흩어졌던 마음은 한 점으로 모인다.
먹이 하얀 화선지에 서서히 스며들고
붓 끝이 제자리를 찾을 때쯤이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가라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