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mputing Conference 2018
9월 19일에서 22일까지 항저우 남쪽의 윈치마을(云栖小镇)에서 열린 2018 알리바바 윈치대회(阿里巴巴云栖大会, The Computing Conference 2018)에 다녀왔다.
나는 업무와 관련있는 세션만 듣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20일과 21일에 열린 신유통, 브랜드의 디지털화, 디지털 마케팅 등의 내용만 들으려했는데, 이렇게 유익한 행사였단걸 알았다면 4일동안 이런 저런 세션들을 들어볼걸 약간은 후회했다.
단순히 컨퍼런스 내용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알리바바가 만들어가는 커다란 생태계를 직접 보고 체감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미래의 인류 생활은 어떤모습일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현장이었기에 더욱 뜻깊었다.
현장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기록 안하면 자꾸 까먹어서 큰일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들을 함께 메모해본다.
1. 생태계를 만들 줄 아는 기업 - 알리바바
윈치대회는 알리바바가 주최하는 행사라 광고냄새(내가 제일 잘한다는 자신감과 자랑!!)가 곳곳에서 풍기지만, 그 어느 컨퍼런스나 박람회보다도 배울것이 많았다. 이들은 기업홍보나 영업차원에서 행사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며 획득한 인사이트를 가감없이 전달하고, 꿈과 비전을 이야기 할 줄 아는 집단이다.
무엇보다 알리바바의 중장기 계획부터 특정 프로덕트의 테크니컬한 부분까지, 각 사업부의 리더나 실무 담당자가 직접 이를 소개하며, 잠재적인 파트너나 고객들(로컬기업, 글로벌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정부기관 등)이 알리바바라는 거대한 플랫폼을 활용하고 협력할 수 있는 판을 까는, 즉 생태계 구축을 위해 이런 행사를 개최한다는 느낌이들었다. 이제 알리바바가 '생태계'라는 단어를 꺼내면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조금이나마 깨달았다고나 할까.
2. 알리바바의 '신(新)'
사실 말장난일수도 있겠으나... 알리바바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꼭 '新OO'이란 키워드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두통을 유발한 '신유통(新零售)'이라는 단어도 있고, 이번에 마윈이 강조한 '신제조(新制造)'까지. (사실 마윈도 뭐라 붙일만한 단어가 없어서 맨날 신OO, 신XX이라 한다고 이번 기회에 자수했다 ㅎㅎ)
이번에 내가 여러 세션을 들어보니 '신OO'은 그냥 모든 프로세스에서 디지털화(数字化), 데이터화(数据化) 하는거란 결론을 내렸다. 싹 다 바꾸는거다.
예를들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1)인지 - (2)관심 - (3)구매 - (4)재구매'의 과정을 거친다면, (1)어떤 소비자가 우리의 타깃인지 User information을 통해 판단/획득하고, 그 타깃이 가장 좋아할만한 메시지 및 컨텐츠로 제품을 인지시킨 후, (2)어떤 시간대, 어떤 환경, 어떤 사건 등이 구매 결정에 도움이 될지 사전에 캐치하고 정보를 송출해야 한다. (3)앞서 언급한 두가지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면, 결제 과정에 번거로움이 없도록 시스템을 운영해야 하고 배송 역시 빠르고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4)구매 후 제품은 잘 사용중인지,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선해야 할 필요는 없는지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해야하며, 단골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하고 차별화 된혜택을 지속적, 단 과하지 않게 제공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간단한 과정에서 이미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러닝, IoT, 핀테크 등과 관련한 기술이 활용되었는데, 일반적인 제조사나 유통사는 감히 엄두도 못낼 일들이다. 게다가 위의 과정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를 분석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전환율을 높이는데 사용하며 제품 개발에도 반영시킨다면? 재고 관리 및 처리, 그리고 수요 예측까지 가능하다면? 이정도 되면 그냥 유통이 아니라 '신유통'이고, 이는 알리바바가 실제 진행하고 매출도 내고 있는 일들이다.
3. 엄청난 열기
키노트 수준의 강연은 으리으리한 메인홀에서 하는 반면, 별관에서 진행되는 세션은 대학교 강의실보다 열악한 환경이다. 에어컨도 소용없는 이 좁은 공간이 후끈한 열기로 가득차고, 자리를 비우면 바로 뺏기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사람도 없고, 강연이 끝나면 발표자에게 '마지막 페이지 한번만 더 보여주세요!', '개인 메신저 아이디 QR코드 띄워주세요!'라고 곳곳에서 소리치고.
나는 이곳에서 세가지 단어가 생각났다. '믿음, 신뢰, 신앙'. 청중은 발표자가 전달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고, 발표자는 잠재적인 파트너일 수 있는 청중들을 신뢰하고, 청중들은 알리바바를 믿고. 이래서 중국인들이 '알리~알리~' 하는거 아닐까? 나같은 외국인도 서너시간을 서서 꼼짝도 안하고 발표를 듣게 만든건 그들만의 특별함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4. 블록체인과 인공지능의 활용
알리바바가 작년 윈치대회에서 기초과학, 혁신적 기술, 응용 기술 등을 연구한다고 3년간 1천억위안(한화 약 17조원)을 투입한다고 한 연구개발 조직인 Damo Academy(达摩院)에서도 여러가지 성과를 전시했다. 사실 뭔가 근원적인 과학 연구를 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시해둔걸 보니 '완전 상업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리고 설립한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 뭘 전시할게 이리도 많은지... Anyway, 몇가지 인상깊었던 프로젝트들이 있는데.
첫번째로는 중국의 주택 임대 문제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해결한다는 플랫폼. 방 한칸에 여러사람이 들어가 살거나 실거주자가 계약자와 다른 문제, 실제로 없는 집인데 온라인에 띄워두는 부동산 업체들, 계약이 불공정하여 피해보는 세입자, 계약자와 실 거주자가 다른 문제 등, 중국의 월세 시장은 상상을 초월할만큼 개판(;;)인데, 이걸 블록체인 기반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함. 세입자가 집을 엉망으로 쓰면 신용관리 시스템에서 감점당해 이사갈때는 새집을 못찾을수도 있고, 전자계약을 통해 공정하고 유효한 법적 효력을 확보하는 형태이다. 실제로 시진핑이 특별 관리하는 도시인 '슝안신구(雄安新区)'에 적용했단다. 잘 적용되면 대박 아이템, 그리고 세계 최초라고 함.
두번째로는 사법 계통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시스템인데, 자연어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법원, 기업, 개인 등 법률 서비스가 필요한 주체에게 재판상황 기록, 법적 모순 발견, 주요 심리 내용 도출, 인공지능 판결, 판결문 생성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실제로 절강성 인민법원에서 사용중이라 하는데, 이런건 수입해와도 좋지 않나...?
세번째는 KFC!!! 로봇 기기 앞에서 '핫윙 2개랑 오렌지 주스, 에그 타르트 하나만 줘' 라고 이야기하고 QR코드를 스캔하거나 얼굴을 들이밀면 주문이 끝나는 형태. Damo Academy 인공지능 주문 알바(?)라는 이름을 붙였놨다. 윈치대회로 첫 출근한거라 함.
5. 니들만 배송 잘하냐. 우리도 한다.
알리바바의 차이냐오(菜鸟)야 중국 물류 업계에선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로 워낙에 잘나가는 기업이지만. 직배송의 최강자인 JD닷컴을 의식해서인지 B2C 택배서비스나 일반 소비자들에게 물류 자동화 시스템 등을 알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일단 자동화 시스템(feat. 3배속 영상)은 택배 박스를 로봇이 받고 인식하여 목적지 지역별 분류하는 것 까진 일반적인데, 로봇들이 다니는 궤적에 QR코드들이 깔려있는게 신기했다. 저걸 0.0X초만에 인식해서 길을 찾아다니는건가...
JD닷컴이 택배 배송용 무인차를 만들었는데 차이냐오도 똑같은걸 만들었고, 챠이냐오 물류망과 연동한 아파트 단지용과 가정용 스마트 택배함도 꽤나 안정적으로 구동되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 없다더니 JD닷컴과 정말 비슷하다.
추가적으로 알리바바는 동네 슈퍼들을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이러한 슈퍼들이 무려 6만개란다. 이러한 슈퍼를 중국에선 '소매부(小卖部)'라고도 하는데, 작게는 2~3평정도 되는 공간에 음료, 소소한 먹거리를 파는, 그리고 알바 고용없이 부부 내외가 12시간정도 근무하는 형태다. 알리바바는 물건 공급, 재고관리, 상품 비치, 결제(POS기 포함) 등을 알리바바 플랫폼과 연동시켜 전자동화 시켜주며, 부가적인 수익원으로 복사, 무인자판기, 택배 수발, 코인세탁 등의 서비스도 붙여준다.
소비자의 편의성 관점에서 본다면 아파트 단지의 무인 택배함, 동네 슈퍼의 택배 수발, 가정용 택배함까지, 퇴근길 집으로 돌아오는 라스트마일 범위 내에 택배 수령이 가능한 스팟이 최소 2~3개씩이기 때문에 정말 편리할 것 같다. 배송기사 입장에서도 하나씩 전화해서 부재인데 어디둬야 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배송 효율도 상승할 것이고. 물론 타오바오나 티몰에는 배송 주소 입력 시 'OO아파트 O동 스마트 택배함', 'XX 지하철역 1번출구 XX 슈퍼'와 같이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은 이미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6. 스마트한 행사 운영
윈치대회는 알리바바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행사 운영에 있어서도 자사 기술을 십분 활용한다. 여타 행사에서 여러 자동화 제공 업체를 찾아서 갖다 붙이긴 하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일단 행사장 중심에는 행사 전체를 총괄하는 데이터센터가 있다. 무슨 올림픽 프레스센터 같은 느낌인데, 현재 진행중인 세션의 생방송 현황과 채널 관리, 출입객 분석, 주변 교통상황 등을 일목 요연하게 대쉬보드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내가 사진찍을때 입장객 정보를 보면, 64개국의 사람이 왔는데 CEO 및 임원의 비중이 27%며, 전체 입장객 중 한국인이 6번째로 많고, 재활용쓰레기는 238kg이 모였다!
그리고 입구/출구와 각 세션별 행사장에는 안면인식 기기가 있는데, 출입객 정보를 얼굴인식 만으로 관리하고 있다. 수많은 세션에 몇명이 들어갔는지 자동으로 체크가 될 것이며, 티켓 구매 시 기본정보가 입력이 되어 있을거라 분석 수요에 맞게 남녀 비율, 연령대 등도 자동으로 추출이 가능할 테니 진정한 '신박템'이라 할수 있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은 QR코드를 스캔했다.)
7. 미래의 편의점은 어떤 모습일지 한줄로 요약해보자
편의점에 얼굴을 찍고 들어가서 내가 찾는 상품을 안내대에 말하면, 바닥에 해당 상품이 위치한 매대를 안내하는 가이드 라이팅이 들어오고, 상품을 들고 가게를 나가면 자동으로 알리페이에서 돈이 빠져나간다. (한줄 요약 성공!!)
8. 디지털 도시를 만들다
오래전부터 알리바바는 항저우를 스마트 도시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교통, 소방, 치안, 공공시설, 세금, 민원 등등, 거의 모든분야에서 알리바바가 기술을 지원하여 생각할 줄 아는 도시,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데 이바지해왔다. 당연히 Powered by Aliyun!!
알리바바는 항저우에 터를 잡은지 거의 20년이 다되어가는데, 어찌보면 항저우가 전자상거래의 도시, 기술의 도시, 스마트한 도시로 변하는데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기업 하나가 혁혁한 기여를 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실제로 교통 효율이나 소방 안전등에 있어서는 효율화 정도가 수치상으로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으며,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도 하겠지만 알리바바가 항저우라는 도시에서 글로벌 사업을 펼쳐나가는데 있어 정부와의 관계도 매우 끈끈하게 가져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아참, 알리바바 덕분에 집값도 미친듯이 뛰었다. 9월 기준으로 주택거래 평균가가 한국 평수로 2천만원/평 이니, 30평짜리 아파트 하나 장만하려면 기본적으로 6억은 준비해야한다는 말이다.
9. 기술만 이야기하거나 일방적인 정보전달만 하는건 아니다
수많은 세션 중 저작권과 세계 경제 질서를 이야기하는 세션도 있어서 들어가봤는데, 잠이 솔솔(ㅠㅠ). 워낙에 카피를 잘하는 나라다보니 저작권은 무시되고 상품도 베끼는 경우가 무수히 많지만, 적어도 타오바오에서는 원작자의 저작권이나 유/무형의 산출물에 대해 권리를 보호해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타오바오에서 상품을 판매할때, 상품이나 상세페이지 등에 대해 직접 만든 창작물이라고 플랫폼에 신청을 해두면, 빅데이터와 클라우드에 기반하여 이미지, 텍스트, 패턴 분석 등을 진행해, 다른 판매자가 해당 내용을 가져가 등록할 시 자동으로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현재 정확도는 99%에 달한다고 한다.
항저우 인타이백화점 CEO는 미친듯한 인문학 지식을 자랑하며, 역사 이야기와 본인의 사업철학을 결합해 꽤나 설득력있게 설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뭘 알아들을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건 정말 어느정도 지식수준을 가진 중국인들만 100% 이해할 수 있다. 외국인이 중국에서 부딪히는 한계 중 하나인데, 중국 사업 시 매우 중요하게 인식해야하는 부분이다. 어렵다고 제껴두지 말고 언제 써먹을날이 있을지 모르니 시조 한수는 외워두고 '나 중국 조금 알아요~'라고 보여지도록 준비는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이메일 주소를 공개하는건 비일비재하지만, 이번 컨퍼런스의 작은 세션들, 즉 실무자나 팀장급이 발표하는 경우에는 본인의 메신저와 휴대폰 번호까지 공개했다. 그리고 청중들과 이후에도 교류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왜 저렇게까지 오픈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아마 중국인들의 핏속에는 수용하고 오픈하고 소통하는 특성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10. 알리바바가 투자와 인수를 멈추지 않는 이유
중국 BAT기업은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에 매우 적극적이다. 이들 3개기업이 한 해 집행하는 투자건수만 해도 수백개가 넘는다. 알리바바는 2013년 시나웨이보에 지분 투자를 진행했고, 그 뒤로도 계속하여 주식을 매입했다. 웨이보는 2013년까지만 해도 높은 트래픽에 비해 수익화에 대한 뾰족한 방법이 없었는데, 알리바바의 투자를 받은 이후 수익화에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다. 광고 상품도 지속적으로 개발하였고 커머스 연동이나 최근의 왕홍경제까지, 알리바바와의 협력이 없었다면 자체적으로 이루어내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알리바바와 웨이보는 최근 양사 플랫폼의 회원 정보를 통합하여 '커머스 데이터'와 '소셜서비스 데이터'를 합치는 작업을 진행하였고, 이는 광고 타깃 설정 시 높은 정확도를 가지면서도 커스터마이징이 용이한 상품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경쟁사의 고객을 뺏어오기 위해, 타오바오에서 경쟁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집단이 웨이보에서 어떤 연예인을 팔로우 하는지 분석하여 자사의 모델로 사용한다면? 웨이보에서 레이쥔에게 좋아요를 유독 많이 누르는 사람에게 샤오미에서 출시하는 신제품을 타오바오에서 추천한다면? 흥미로운 광고 방법이 참 많이 나올 것 같다.
이처럼 알리바바의 생태계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와 인수없이는 불가한 일이다. 동네 슈퍼 상품을 배달하는데 '어러머' 배송기사를 활용하고, 알리바바 신선식품 신유통의 선구자인 '허마센셩'도 알리바바가 투자하며 협력하게 된 사례다. Aliyun 총재는 알리바바와 중국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미래에 벌어질 일들입니다." 이쯤되면 중국에서 배울건 배워야 하지 않을까.